예수와 함께 조선을 걷다 (조선 선교사 하위렴(William B. Harrison)의 선교행전)

예수와 함께 조선을 걷다 (조선 선교사 하위렴(William B. Harrison)의 선교행전)

$15.00
Description
하위렴의 선교행전
이 책에서는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하위렴 선교사의 사역을 정리하면서, 그의 역할과 비중에 주목하고 그가 가시화했던 남장로교 선교전략이 이 지역 선교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살피고자 했다.
하위렴 선교사는 의료, 교육, 복음 사역 등의 분야에서 전천후 사역을 할 만큼 다양한 은사를 가진 선교사였으나 공교롭게도 그가 사역했던 3개 선교지부 어디서도 스테이션 조성이라는 마뜩잖은 일이 맡겨지고 있었다. 전문적 지식이나 안목이 없이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사역이었으나 그는 그때마다 어김없이 그의 역량을 발휘해 성공적으로 완수해 냈다.

병원과 학교건축 그리고 교회 설립 등을 포함한 유형의 선교기지 조성은 물론 나아가 공의회와 노회 설립에도 깊숙이 관여해 교회 조직과 제도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도 그의 수완(手腕)은 빛을 발했다. 이처럼 그가 구축한 유무형의 인프라를 통해 그 이후의 호남선교는 발길이 훨씬 수월해지고 있었다.
저자

백종근

ㆍ전북群山
ㆍ한양대공업화화과(BS)
ㆍ동대학원(MS)
ㆍ산업연구원(KIET)책임연구원
ㆍAustinPresbyterianTheologicalSeminary(M.Div)
ㆍ미국장로교(PCUSA)CovenantPresbytery에서안수
ㆍ비버튼한인장로교회정년은퇴

ㆍ저서:
 -『하나님나라에서개벽을보다』토박이예수꾼백낙규장로의영성과신앙
 -『예수와함께조선을걷다』조선선교사하위렴(WilliamB.harrison)의선교행전
 -『예수가울다』설교집近刊

목차

저자서문|4
들어가며|7
나가며 |296


제1부나를좇으라하시니일어나좇으니라(마9:9)

제1장하위렴의고향켄터키
서부로가는관문22
남북전쟁과켄터키23
출생과성장26
모교회레바논장로교회29

제2장선교사가되기까지
의사가되기로마음먹다32
대학가를휩쓸었던학생자원운동(SVM)33
의과대학을자퇴하고신학교로34
버지니아유니온신학교35
개척선교사들의내한여정37
조선선교의교두보‘딕시(Dixie)’40
제3장고요한아침의나라,조선으로(1896)
하위렴선교사조선에오다44
북장로교선교부와의료사역협력50
호남선교를시작하다51
선교지를전남지역까지확대하다52


제2부모든족속으로제자를삼아(마28:19)

제4장풍남문(豊南門)의성곽길을따라(1896~1904)
농민항쟁에스러진함성을껴안고56
전주지부에합류하다60
데이비스와결혼(1898)62
1차안식년(1899~1900)69
데이비스와함께복음사역에전념하다70
신흥학교의설립74
스테이션조성사역80
아내데이비스의죽음82

제5장탁류의선창(船倉)에복음의닻을(1904~1908)
상처(喪妻)의아픔을딛고군산으로85
부임당시선교부의상황86
스테이션조성공사를마무리하다90
팀사역을이끌다91
구암(궁말)교회당회장으로94
순회전도사역95
개복교회/동련교회/고현교회/대붕암교회(제석교회)/
웅포교회/선리교회/황산교회/만자산교회
사경회와지도자수련107
영명학교사역116

제6장에드먼즈와의운명적인만남
북감리교내한선교사에드먼즈119
도티(SusanA.Doty)양의소개로만난에드먼즈125
2차안식년(1908~1909)과에드먼즈와의재혼127


제3부땅끝까지이르러(행1:8)

제7장남도에서부르는전도자의송가(頌歌)(1909~1912)
유진벨과목포선교지부132
유진벨의후임으로목포에오다136
양동교회에서의협력목회136
백만인구령운동의열풍속으로137
양동교회재건축과리더십이양140
스테이션조성공사144
순회사역145
영흥학교교장으로사역하다154
전라노회창립에참여하다(1911)158
사경회강사로참여하다160
순천선교지부개설을위한타당성조사161

제8장선택의갈림길에서서
출산을기뻐할겨를도없이163
혼신을다한목포에서의사역165
아내의신병치료을위해귀국하다(1912)173
몬트리트선교사대회에참석하다(1913/1914)176
고비를딛고다시한국으로(1915)178


제4부이반석위에교회를세우리니(마16:18)

제9장다시금강을따라궁말언덕에(1915~1918)
3차안식년을마치고182
다시군산으로(1915)186
사역분담과전문화188
사경회(査經會)를개최하다(1916)197
전북노회창립과활약(1917.10.)201
전북지방선교25주년기념행사(1917.11.)204
군산지역선교초기역사를갈무리하다206

제10장3·1운동과군산선교지부(1919~1921)
군산3·5만세운동과영명학교223
영명학교교장으로사역하다(1919~1921)224
일제의간섭과조선인탄압에대해교단의관심을촉구하다226
조선의상황에대한교단의반응228
콜레라가창궐하다230


제5부영생에이르는열매를모으나니(요4:36)

제11장황토의들녘에서추수꾼으로
순회사역에매진하다234
동련교회/송산리교회/옥곡교회/제석교회
왕골교회(초왕리교회)/고현교회/함열교회/두동교회
애너벨니스벳선교사를추모하다(1920.6.)260
하위렴선교사내한선교25주년기념행사(1921.2.18.)263
교사연수회개최(1921.3.)266
제12장만종(晩鐘)이울리는석양에서서
세대교체가일어나다270
인돈부부의귀환272
4차안식년(1922.7.~1924.8.)274
리더십의이양을촉구하다275
해리로디스의군산방문(1924)277
안식년을마치고(1924.8.)280
유진벨의사망소식을듣다(1925)280


제6부달려갈길을마치고(딤후4:7)

제13장하위렴을추모(追慕)하며
32년조선선교사역을마치다285
세계주일학교연맹에김중수를추천하다287
소천(1928.7.3.)288

제14장자녀들의이야기
딸,셀리나해리슨(MargaretS.Harrison)292
아들,찰스해리슨(CharlesW.Harrison)293

부록
연보(年譜)301

출판사 서평

구한말호남선교의기틀을다진하위렴선교사

맨처음하위렴의행적을마주한것은그를통해복음을듣게된필자의증조부이신백낙규장로(동학농민항쟁당시우금치전투에참여했다가패한후기독교로개종한그는하위렴선교사로부터세례를받고후에장로가되었으며,그의향리익산에동련교회와계동학교를세워복음전파와민족계몽에앞장섰다.)의개종의과정을좇으면서부터였다.그와관련된초기내한선교사들의자료들을찾아보다가예기치않았던하위렴의선교행적을만나게되면서내친김에책으로엮게된것이다.

‘조선선교사하위렴의선교행전’이라는부제가시사하듯이책은그의연보(年譜)를따라전기형식을취했으며무엇보다조선에서의사역과활동에초점을맞추었다.그는구한말열강의침탈에역사의뒤안길로스러지던조선에들어와일제강점기를지나는동안,호남선교의기틀을다져온남장로교선교사였다.

군산선교의기틀을놓았던전킨(WilliamM.Junkin)의후임으로부임한이후,그가가장많은시간을보냈을뿐더러그의사역을마무리한곳도바로이곳이었다.비록그의재임기간내내부위렴(WilliamF.Bull)선교사를비롯한여러선교사가함께사역했지만,지부는줄곧그의리더십아래있었다.
특히군산선교부를이끌며이지역에커다란족적을남긴선교사가운데전킨과부위렴그리고하위렴이세사람은공교롭게도모두가남부출신이라는공통점에,유니온신학교동창이라는끈끈한학연으로맺어진선후배관계에다더욱재미있는것은그들모두의이름은윌리엄이었다.

그후에하위렴선교사가선교부의긴박한사정으로지부를옮긴적도있고,또아내의병고로자리를비우던시기도있었지만,오히려그덕분에여러지부의사역을공시적(共時的)인안목으로파악하고호남선교의교두보를구축할수있었을뿐만아니라,스테이션의효율적운용의주역이었다는점에서도그는양보할수없는위치에있었으나안타깝게도늘무심함에가려지고있었다.

뒤돌아보면선교역사가절반을점하고있는한국교회사이기에선교역사가차지하는비중만큼이나이제는가려져있던선교사들에게도눈을돌려야한다고생각하던차에다행히도하위렴선교사의행적을돌아볼수있게된것은참으로뜻깊은일이다.
하위렴선교사의행전발간을계기로묻혀있던남장로교선교사들의사역과활동을새롭게조감(鳥瞰)하고초기선교역사를거시적안목으로바라보게하는지남차(指南車)가되었으면하는것이저자의바람이다.
덧붙여이책에인용한사진자료들은대부분인쇄물에서퍼온것들이라초점이흐려유감이지만,글로만전할수없는또다른면모를전달해주리라기대하며그대로사용하였다.


하위렴선교사의역할과비중

이책에서는이지역에서활동했던하위렴선교사의사역을정리하면서,그의역할과비중에주목하고그가가시화했던남장로교선교전략이이지역선교에어떻게영향을주고있는가를살피고자했다.
하위렴선교사는의료,교육,복음사역등의분야에서전천후사역을할만큼다양한은사를가진선교사였으나공교롭게도그가사역했던3개선교지부어디서도스테이션조성이라는마뜩잖은일이맡겨지고있었다.전문적지식이나안목이없이는엄두를낼수없는사역이었으나그는그때마다어김없이그의역량을발휘해성공적으로완수해냈다.

병원과학교건축그리고교회설립등을포함한유형의선교기지조성은물론나아가공의회와노회설립에도깊숙이관여해교회조직과제도를바르게세우는일에도그의수완(手腕)은빛을발했다.이처럼그가구축한유무형의인프라를통해그이후의호남선교는발길이훨씬수월해지고있었다.

이렇듯그는남장로교의선교기반을다듬어낸주역가운데한사람이었지만안타깝게도예기치않은시련이줄곧그를따라다녔다.7인의개척선교사였던아내데이비스의갑작스러운사망으로선교초기부터그의사역에위기를맞아군산지부의전킨과사역지를교환하기도하고,얼마후에드먼즈와재혼하면서그의선교여정에재시동을걸었으나무리한사역은그의섬약한체질을끊임없이괴롭히기도했다.

안식년을마치고돌아온그에게부진했던목포지부가맡겨지고있을때도그는혼신의힘을다해교회,학교,병원등어느것하나도빠짐이없이정상화시키는동안자신은물론아내에드먼즈마저다시병고에시달리면서또한차례시련이찾아왔다.
1912년미국에돌아가3년가까운치료와요양에도불구하고아내의건강이온전히회복되지못한것을보면아마이때가선교사로서그의진퇴를결정해야할만큼그에게닥친최대의위기가아니었을까하는생각이든다.
그러나그는주변의만류에도불구하고,다시조선으로복귀해몇해만에군산선교를정점에올려놓으며기염을토했다.


시련을딛고이땅에서이뤄낸
사역의결과물들은성령의능력

1922년군산지부를방문했던해리로디스HarryA.Rhodes목사는이때상황을이렇게적었다.
“지난25년동안군산에서거둔놀라운결실은씨뿌리고,가꾸고,돋우며수고한모든사역자의결과라는것을언급하지않을수가없다.”
관할지역의크기나스테이션의위치등의취약점을극복하고75개의교회에5,000여명의교세를일구고,성인세례교인만1,500명에이르는부흥에크게놀라워하면서손배돈과동역하며전국남장로교병원가운데가장큰규모로최고의전성기를이뤄낸야소병원에와서는입을다물지못한다.

복음을들고외길을줄달음쳐사명을완수한다고하는일은성령의인도하심이아니고서는결코쉬운일이아니다.왜냐하면,증인의사역은바로그분의임재와함께부어지는능력과긴밀한연관성이있기때문이다.마찬가지로하위렴선교사가시련을딛고이땅에서이뤄낸사역의결과물들역시성령의능력이아니고서는도저히설명할수도없는조선에역사하신하나님의손길그자체였다.

하위렴선교사가조선땅에쏟아부은고귀한헌신의자취를추적하며이책을통해그의선교여정을드러내보고자한것은,전체적인한국선교(사宣敎史)를바라보게하는귀중한단서들을놓치고싶지않은저자의욕심때문이기도했지만,무엇보다도그가키워낸맹아(萌芽)로부터그렇게풍성한결실을수확하면서도전혀돌아보지못했던송구스러움이앞섰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