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인물 풍경 | 이상범 시집)

새 (인물 풍경 | 이상범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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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 코로나 시대, 거리에서 시작된 그림의 여정
이상범 시인의 시집 『새』는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고요한 시대에 걸음으로부터 태어났다. 70이 넘은 시인이 적당한 거리의 산책을 일상으로 삼으며 카페 한구석에서 다시 시작한 캐리커처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새로운 예술적 감각의 출발점이 되었다. 마스크 틈으로 빨대를 밀어 넣고 냉커피를 마시던 시절, 시인은 검은 화지 위에 하얀 볼펜으로 속삭이듯 그림을 남기기 시작했다. 컵 속 음료의 잔량을 기준 삼아 그림을 그리던 그 섬세한 감각은, 매일의 일상과 창작의 경계를 허문 고유한 예술 행위였다.

2. 천 명의 초상, 천 번의 만남
시집 『새』에는 1,000명의 얼굴과 함께한 짧고 깊은 인연의 온기가 묻어 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청춘부터 삶의 전환기에 선 이들까지, 시인이 카페에서 그려준 그림 한 장에 눈물을 보이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 진심 어린 반응이 시인을 더욱 붓 앞으로 이끌었고, 만년필형 붓을 들고 그린 선들은 점점 더 예술적 깊이를 품게 되었다. 그렇게 2년 동안 쌓아온 천 명과의 만남은 기록이 되었고, 감동이 되었으며, 마침내 시가 되었다.

3. 림에서 시로, 시에서 새로
『새』라는 제목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작가의 눈앞에 펼쳐진 자유롭고도 섬세한 존재들의 비상을 담고 있다. 이 시집은 그림과 감정, 거리와 고요함, 여운과 치유 사이를 날아다닌다. 불가의 42장 경을 염두에 두고 구성된 42편의 시는 한 편 한 편이 소중한 얼굴의 기억을 품고 있다. 시인은 그림을 그리며 시를 썼고, 시를 쓰며 그림을 기억했다. 『새』는 그래서 어떤 회상의 시집이 아니라, 살아 있는 순간들이 펼쳐진, 작지만 단단한 날갯짓이다.
저자

이상범

1935년진천
생시조문학천료(1963)
신인예술상수석상(1964)수상
조선일보신춘문예(1965)당선

정운시조문학상,한국문학상,중앙일보시조대상,육당문학상,가람시조문학상,이호우시조문학상,고산문학상,바움(숲)문학상,유신작품상특별상수상,이설주문학상수상

시집:『별』『신전의가을』『풀꽃시경』『한국대표명시선100화엄벌판』『하늘색점등인』『녹차를들며』등28권출간

한국시조시인협회회장,한국문인협회시조분과회장,한국시조사대표,포석문학회장역임

목차

시인의말코로나시대의여류인물풍경 4
발문-우주를포획하는이상범의시학 ┃이근배 186
발문-붓끝으로읽은시대진단,혹은원융으로불러낸인간애 ┃민병도 198
발문-녹원이상범시인의상상세계 ┃이숭원 214


정일품(正一品) 15
피안의등불 19
단정학(丹頂鶴) 23
큰산성(山城) 27
케이블카타고권금성을오른다 31
들판엔메뚜기떼 35
창변엔멧비둘기 39
여객기도소리죽여 43
친구 47
흰비둘기떼 51
잔대꽃은꽃자주빛 55
까치부부 59
공작새 63
파랑새 67
구절초꽃 71
더디사는법 75
구름부호 79
까만별 83
뻐꾸기소리 87
꾀꼬리소리에도노란향기 91
머리위엔새한마리 95


학의울음 101
히말라야눈보라 105
꿈 109
깔끔미(美) 113
태풍의눈 117
물새떼 121
메뚜기떼풀풀난다 125
동해에빠진눈발은 129
칼새 133
아름다운숙녀 137
고요생각 141
산에는노란송홧가루 145
노트북을바라보며 149
깃털구름 153
평창엔아직도“스키점프새” 157
화살같은햇살 161
입방아 165
조막손의기도 169
쇠기러기 173
소리집 177
물총새 181

출판사 서평

우주를포획하는이상범의시학

이상범시인은바로저향가에서시의틀을잡혀온겨레의시,시조의대가이다.올해구순의나이에도펄펄끓는시정신이며창작의맥박이어느젊은천재시인보다도앞서서항상붓과노트를상비하고어느누구도따라오지못하는시조의새경지로온몸을던져몰입한다.그뿐이아니다.조선의추사김정희가〈세한도〉를그려내듯시,서,화에필력을세워독존의경지를이뤄내고있다.〈난시화집〉〈펜시화집〉〈시화컬러집〉등에이어〈디카시집〉만일곱권을넘고있다.아직까지우리시단에이처럼자유분방파죽지경의시상을난사해온시인은없다.등단이후어디서어떻게시신의영접을받은것이지우주적삼라만상과언어의재구성에발산하는초월적시상은한마디로경이롭다.

이시집의표제는〈새〉이다.새는자유롭다.노래한다.무한천공을난다.죽지않는다.불사조가있다.고구려에는삼족오가있었다는전설처럼불로장수를의미하기도한다.그런데왜여자가〈새〉일까,여자는어머니이며딸이며아내이며불멸의연인이다.누구도그런정의를내리지는않았지만,고대그리스에서발견돼루브르박물관에있는로마신화의여신상비너스는어떤언어로도다풀이할수없는〈우주〉이다.이상범시인은마침내시의눈빛으로〈우주〉를발견하고붓을들어그얼굴을그리면서샘솟는시적감동을옮겨쓰기시작한다.거리에서도커피숍에서도공원에서도무수히만나고스쳐지나가는여인들을볼때마다먼저붓을들어그얼굴을그려낸다.누가허락하지도않은절대보존의자신을한장의종이에옮기고다시거기깊이스며있는의미를언어로바꾸기까지는사람의일이아닌어떤절대자능력만이감당할수있는일이다.

인류의절반이여자다.그한몸의모든아름다움과지성과삶의경력과숨겨진극비의언어는얼굴에있다.눈,코,입,귀와머리카락신비의형상에서우러나오는무한한스펙트럼은오직시인의영적감수성에서만잡을수있다.이상범시인이만나는여자는하루에도헤아릴수가없다.스쳐가는것,잡혀오는것,눈을통해서가슴에박히는것,걷잡을수없는충동에구비치다가,끓어오르다가,확산하다가점점이미지로굳혀가는과정을거쳐서시가되고글씨가되고그림이되는삼위일체의시,서,화가이루어진다.

〈새〉의변용과이미지의확산
〈새〉가날아들었다.비둘기,까치,참새,뻐꾸기,종달새…저마다멋진이름을달고고운소리로노래부르며지저귀는새들.그것들가운데지금내가만나는새는누구일까.눈빛,고갯짓,날갯짓입속에서우러러나오는소리는또무엇인가.그렇지이놈봐라,시인의눈은보이는것,보이지않는것그리고먼우주밖에서오는환상과놀라운깨우침까지도받아적는다.

붓으로죽죽그은⁄선이잠시꿈틀댄다
흔들리며제자리로와⁄앉았다
가을물서늘한하늘⁄높이뜨는단정학

-「단정학」전문

생각을따라가는붓이그어대는선이살아서천가닥만가닥의조형물이되며꿈틀대고날아오른다.어디로가는길인가,무엇이되려는몸짓일까,정신을차리고보니절세의미인이막판서한듯모습을드러낸다.그렇구나,가을물서늘한저하늘에한마리단정학이높이솟아오르고있다.
시조는본래초,중,종삼장의단수였다.현대라는복잡무쌍한시대를만나서연작시로자유시와맞서고시의함량이늘어지게되었다.그시대의변화에엇시조,사설시조,장시조로분화되기도했지만,시조는초,중,종장이열고이어받고되채기는아주불가사의한의미의전환으로사람의마음을이리채고저리채다가대반전으로뒤집힌다.이절묘한시형식은오랜시의역사를가진나라의정형시나어떤시형식에서도찾을수없는극적비의(泌義)를내포하고있다.
-이근배(대한민국예술원회원)시인작품해설중에서


붓끝으로읽은시대진단,혹은원융(圓融)으로불러낸인간애

우선이번시조집의몇가지특징을짚어보면우선시조집부제에서밝힌대로〈코로나시대의여류인물풍경〉378편의여인이케리커쳐라는양식의인물화로등장하고그가운데42명에게는창작시조를곁들인이상범예술의백미(白眉)라는점이다.더욱이지구상의많은사람을불안하게만든〈코로나19〉라는펜데믹(pandemic)을맞아위축되고절망할수밖에없었던시대상황에서아흔에근접한노시인의창발적이고긍정적인세상읽기라는점에서시가넘쳐나도시인을보기힘든세상의우뚝한실천행동의전범(典範)이라하겠다.

다음으로는이번시조집에는시인의예리한붓터치를통해그의필생토록갈구해온인간애가드러나있다는점을들수있다.사람의얼굴에는그가지나온시간의기록들이나타나기마련이다.피부색이나표정,주름살과같이밖으로나타나는외장하드뿐만아니라행복과불행,기쁨과슬픔을겪어낸정신의반응기록이고스란히내장되어있다.얼굴은지나온과거의현재모습인동시에미래로가는출발점이기도하다.세상그어디에도같은얼굴이없으며같은행동반경을지니지못한다.그독자적이고다양한모습으로축약된우주질서의천차만별한모습앞에서망백에이른이상범시인은사람의존재에대한근원적인물음과만나게된것이다.

물론이번시조집『새』는〈자서〉에서밝힌대로고독과불행,설상가상으로맞닥뜨린코로나19의위기를딛고일어서기위한극기의한방편으로나선산책으로부터비롯된다.노구를끌고몇시간을걷자면의당쉼터가필요하기마련인데그는주로차한잔마시면서다양한사람들의휴식이공유되는카페를택해공동체로서의인간애에합류한것이다.
또다른하나는그림에남은대상물을소재로확장하고상상력을궁구하여장르간의조화를이루었다는점도빼놓을수가없다.이는그가이미여러권의디카시조집을통해서확보한독자적인사고의배양과이념의확장이라는성과에힘입은결과라하겠다.오늘날의현대적인미의식이고스란히노정된첨단패션과화장술,시대의기운이여지없이투영된물상이야말로얼마나귀한시적동기이었으랴.
거기에더하여이번에선보인42편의시조가지닌굳건한정형성의질서를주목할필요가있다.자유시의유입과맞물린현대시조는불필요한형식실험등의핑계로적잖은정형성의훼손을감내하지않으면안되었다.시조를시조의정체성으로접근하지못하고자유시와비견하려는사시(斜視)로접근한까닭이다.시력60년이넘는시인의경우그간형식에관한한,일고의의구심이나흔들림을보여준적이없었다.익숙한것과지루한것을구별하지못하고서구미학에노정된젊은이들이자유시의배행법이나행갈이에흔들리는혼란스러움에도말없는본보기를제시해온것이다.
어떤의도나욕심을가지고사물을바라보면사물의본디모습을놓치기가쉽다.붉은색안경을끼고푸른바다를읽어낼수없는것과같은이치일것이다.긍정과부정,이기심과이타심의경계에서읽어내는대상과몸짓,표정의현재는과연어떤존재론적의미와가치로비쳐졌을지궁금하다.

그가그린그림가운데서도시조를곁들인데에는나름의기준이작용하였을것이다.여기서는다만그가운데무작위로몇편을골라시인이읽어내고자한시간에대한해석,존재에대한의미와사색,시대의미의식탐구라는잣대로접근해보고자한다.

지난가을밤엔
초록별도많이쏟아져
지금도옷섶엔
별이아직남아있다

몇광년가야할초록별
마스크속까만별
-「까만별」전문

이작품에곁들인그림에는검은종이에흰색펜으로그린초록별상의에마스크를한여인이그려져있다.〈시인의말〉에서언급한대로비교적이번시리즈의초기작에해당되는케리커쳐이다.눈동자만빠끔히내놓은채큰마스크로복면처럼감싸고‘코로나19’로차단된세상을풍자한포스터같지만,제목은「까만별」이다.
하지만‘까만별’이라는생뚱맞은제목도제목이거니와초장부터“지난가을밤엔/초록별도많이쏟아져”로시작하여종장의“몇광년가야할초록별”까지의무한대의시간과공간을통할하는우주질서에접근하고있다.‘초록별’,‘별’,‘초록별’,‘까만별’등단시조한편에등장하는별의이미지는각각다르면서도“마스크속까만별”로종결되는현상적순간과그한계에초점이맞춰져있다.한반도라는지엽적인한계,21세기라는시간대와코로나라는불가역적재앙,생명의유한성까지가짧은단시조의행간에암호같은추상적메시지를상감해둔시편이다.
-민병도시인작품해설중에서


녹원이상범시인의상상세계

나는문학평론가이기에캐리커처에대해논평할자격이없다.다만캐리커처와관련된그의시조에대해간단한감상의글을쓰고자한다.그림과문학이접합하는독특한국면에관심을두고시인의상상력작동의특징과그것의결과적성과에대해간략히서술하려한다.그의시조가캐리커처를통해창출된것이지만그림은참조만하고시조의문학적성과를주로검토할것이다.독자들도이시집을읽으며그림을감상하면서작품을읽을텐데,그림과작품의상호관계도흥미가있겠지만,그림은고정되어있고시조는언어를통해연상작용을일으키기때문에시인이펼쳐내는상상세계에더관심을기울이게될것이다.그러니독자의작품이해를도와준다는뜻에서시인의상상세계를친절하게설명하려한다.

기다리는시간은
영오지않았다
풀향기같은가을
향내맡고살고싶다

풀벌레짧은삶이어도
더디사는법일러준다.
「더디사는법」전문

누군가를기다리는찻집의여성을보고그린캐리커처에부친작품이다.기다리는시간은희망과좌절의시간이다.누군가를기다린다는것은희망을전제로한다.그러나기다리는사람이오지않으면그시간은좌절의시간이다.그러니기다림속에는희망과좌절,기쁨과아쉬움이교차한다.“기다리는시간은/영오지않았다”라는말은시간이오지않았다는뜻이아니라기다리는대상이오지않았다는뜻이다.기다림의대상이나타나지않았으니기다리는시간자체가증발했다고본것이다.기다리는시간이오지않는다면희망도오지않을것이다.
그러나때는가을이라향기로운풀냄새가풍겨온다.부재의허전함을메우는풀향기가있다면기다리는시간이오지않아도,그시간이영원히사라져도견딜수있을것같다.풀잎사이에서풀향기가피어난다.향기에섞여풀벌레울음소리도들린다.소리는멈추지않지만,풀벌레의삶은길지않을것이다.풀이시들면풀벌레도사라질텐데그렇다하더라도지금이렇게풀향기를맡으며풀벌레울음소리를들으면시간이더디게흘러가는듯하다.심지어는시간이정지된듯한느낌도일으킬지모른다.만일시간이정지된다면기다리는시간이오지않는일도없고풀벌레가사라지는법도없다.우리는시간을초월하여영원을살것이다.이상범시인은이렇게누군가를기다리는여인의초상을통해시간을초월한영원의시간을상상해보았다.

숨소리만들리는듯
움직이지않았다
세상을꿀꺽삼킨채
삶을생각하게했다

태백엔부라리는독수리
응시하는동해저쪽.
「고요생각」전문

이번에도누군가를기다리는지꼼짝하지않고핸드폰만응시하는한여인의모습을그렸다.작품에는핸드폰을응시한다는말은없지만,여인의초상을보니핸드폰을들여다보고있다.핸드폰이있으니지루함없이몇시간이라도앞을응시할수있을것이다.미동도하지않고앞을보고있으니,숨소리도들리지않는것같다.마치세상을꿀꺽삼켜안으로집어넣은것같다.그렇다면그여인의삶은어디에있는가.핸드폰을바라보는여인에게있는가,여인이응시하고있는그핸드폰속에있는가.“모든것이이손안에있소이다”라고외친한명회처럼그여인도핸드폰속에서세상이돌아가는모습을알아차리는지모른다.
그여인을바라보는이상범시인도숨을죽이고관조할수밖에없었을것이다.관조하면서그여인의삶은무엇인지,자신의삶은또어디에있는지를묵상했을것이다.그런명상끝에시인은태백산봉우리를날아다니는한마리독수리를떠올렸다.독수리가큰눈으로응시하는대상은무엇인가.그여인의눈도독수리처럼커서숨을멈추고핸드폰깊은곳을뚫어져라,보는데마치독수리가태백높이떠서동해푸른바다를응시하는것같다.이렇게되면고요한정지의자태로전면을몰두하는그여인은태백에떠서동해를관망하는장엄한형상이된다.고독한관찰자가아니라큰포부를지닌견자(見者)가되어동해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