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수시집『거꾸로가는인생시계』
-시간을되짚는다정한기록,생활의빛으로빚은서정
박도수의첫시집은제목처럼‘거꾸로’흐르는인생의시계를붙잡고,지금-여기에서과거를더듬어현재의마음을정리하는회고의서정으로빛난다.시인은예순다섯의지점에서가족(부모·아내·딸·사위·손주),사랑,노동과휴식,병과노쇠,떠남과돌아옴을차분히응시한다.“부모의윤회”,“아픈손가락,첫손주”,“엄마의바다”에서드러나듯,이시집의핵은‘돌봄의시간’과‘대물림되는사랑’이다.사랑은화려한감정이라기보다“버거운기쁨,쓸쓸한선택”으로묘사되며,그짐을기꺼이지고건너는일상적숭고가조용한울림을만든다.
이시집1부는‘나’의내밀한생애사와가족사를통해삶의무게를더는동시에자신을다독이는시간이고,2부는연륜의시선으로‘풍경’을걷는다.나이아가라,코네티컷,공항,오래된골목과커피숍,비내리는창과서리끼는유리-지명과사물,기상과계절이하나의감각지도(Map)를이루며,그위에그려지는것은결국그리움의등고선이다.3부는다시‘처음의떨림’으로회귀한다.“설레임”,“그대라는문앞에서”,“밤의찬가”같은작품들은젊은날의감각을현재의체온으로재번역하며,사랑을감상적도피가아니라생을지탱하는마지막불씨로복권한다.
언어는장식보다명료를택한다.구어체와속담의결을살짝섞고(“사랑이라는전투”,“나이야가라”),일상의사물어(운동화,사진한장,국자,티라노장난감)를상징의축으로끌어올린다.그래서시는난해한은유대신‘보이는장면’으로설득한다.짧은행갈이,담백한서술,마지막행의절제된명제형문장이많아‘시적단문’을통해감정의여운을길게남긴다.유머와온기또한이시집의중요한색채다.“하버지티라노”,“박장금과의눈치전쟁”같은시편은현재삶의자기풍자와생활감각으로미소를건네되,그뒤에선희처럼서있는배려와연대의마음을놓치지않는다.
이미지의계열은일관된다.바람·빛·노을·별·비·바다·갈대·장미-자연물의스펙트럼이계절성과생애주기를비유하는매개로반복소환된다.‘바람’은관계의기류,‘빛’은기억의온기,‘비’는회한과씻김,‘사진’은남겨진사랑의증거다.이상징들이과도한신비화로흐르지않는것은,언제나현실의온도-병원,보험,분유,영상통화,공항이별-가함께배치되기때문이다.곧박도수의서정은‘상징의높이’보다‘생활의밀도’로서있다.
시적정조(情調)는따뜻함과쓸쓸함이맞물린‘melancholia’다.지구반대편에흩어진가족을향한그리움,영어앞에서의무력감,부모에게다못다한효에대한늦은후회가차례로지나가지만,시는체념으로마무리되지않는다.“행복은크게웃는날이아니라서로를기억하는조용한따스함”이라는통찰처럼,이시집은‘기억하는일’을곧‘살아내는일’로번역한다.그래서시집은애도의책이아니라,남은날들을더잘사랑하기위한생활의윤리를제안하는시집이된다.
요컨대『거꾸로가는인생시계』는‘회고의눈’으로‘일상의체온’을기록한다정한서정,그리고유머와절제가공존하는생활시의미학이다.독자는이시들을통해자신도모르게자신의시간을되짚고,누군가의얼굴-어머니의운동화,아버지의새벽,배우자의기침,손주의웃음-을떠올리게된다.그때비로소제목의역행하는시계가의미하는것,‘뒤돌아봄이곧앞으로걸음을내딛는힘’임을깨닫게된다.이시집은그렇게조용히,그러나오래가는방식으로위로한다.
이번시집『거꾸로가는인생시계』에실린몇편을소개한다.
연못가뒤뚱뒤뚱새끼오리들
엄마오리꽁무니를죽어라쫓는다
그모습이사랑스러워한참을바라보았다.
세상사자식을사랑하지않는부모가있을까
어릴땐아프지않길,
자랄땐바르게크길,
성인이되어선세상의중심에서주길바랐다.
가정을이루고나선손주를안겨주길바라고
그손주또한무탈하게자라길바란다
부모의마음은계절따라멈춤이없다.
이제손주를돌보는내나이에야안다.
인생은잡으려할수록멀어지는바람같고,
간섭은의미없다는걸.
그럼에도덜굽고,덜고단한길을
내자식이걷길바라는마음
그것이부모의마지막욕심일까.
자식들은내말을흘려듣고
나는서운하지만탓할수는없다
결국그들의인생은그들의것
나는잠시그림자되어함께걷는길손일뿐.
허나죽는날까지자식잘되길바라는
이우둔한사랑은멈추지않겠지
그래서부모란,참으로답답한축복이다.
-‘그들의인생,나의기도’전문
이시는인생의순환속에서부모의사랑이어떻게변함없이이어지는지를섬세하게그린작품이다.
첫연에서‘연못가의새끼오리들’을바라보는시인은자연의한장면속에서인간의보편적사랑을발견한다.뒤뚱거리며엄마오리를따르는새끼오리의모습은순수하고본능적인사랑의상징이며,시인은그광경을통해자신이걸어온부모로서의세월을떠올린다.이장면은자연속한폭의풍경이지만,동시에인간존재의깊은정서적근원을비추는거울이된다.
이어서부모의사랑이어떻게시대와세월을넘어이어지는지가성찰된다.‘어릴땐아프지않길,자랄땐바르게크길’이라는구절은부모의기도가단순한바람에서인생의철학으로확장되는과정을보여준다.사랑은조건이없지만,그속에는수많은기대와염려가뒤섞여있다.자식이가정을꾸리고손주를낳을때까지이어지는바람은,부모의마음이결코멈추지않는‘계절없는시간’을살아간다는사실을상징한다.이는인간의사랑이생물학적관계를넘어세대간영적유대의형태로지속된다는점을시적으로드러낸다.
마지막연에서는부모의사랑이얼마나순환적이면서도숙명적인지를깨닫는통찰이드러난다.‘그들의인생은그들의것’이라는인식은내려놓음의지혜이자,인간이성숙해지는순간의고백이된다.그러나‘죽는날까지자식잘되길바라는이우둔한사랑’이라는표현에서보이듯,그지혜조차사랑의본능을완전히끊어내지는못한다.시인은부모의사랑을‘답답한축복’이라명명함으로써,그사랑의역설적본질-간섭과염려,기다림과기도의교차-을정직하게표현한다.결국이시는한인간이부모로서,또자식으로서,생의흐름속에서사랑의숙명을받아들이는과정에대한아름답고도겸허한기도문이된다.
누굴만날까,인생의또한페이지가펼쳐진다
여행은떠나기전부터,내안의기대를깨운다
낯선길위,잊혔던나를다시만나는시간.
이번여행지기는어떤인연의바람을데리고올까
스쳐가는발걸음속,우연처럼스며드는이름들
때론예고없이다가와,삶의결을흔든다.
처음마주한눈빛의낯섦도이내잔잔해지고
우린서로의하루를조금씩물들어간다
인연은늘머물지않기에,바람결에스며드는
꽃가루처럼지나간뒤에야더욱짙어지는것.
잠시머물다간그사람의온기와풍경은
내마음한켠에서오래도록꽃잎처럼피어난다.
-‘인연의길위에서’에서전문
이시‘인연의길위에서’는삶의여정을‘인연’이라는주제로풀어내며,만남과헤어짐속에서인간이겪는내면의성장과따스한여운을노래하고있다.
첫연에서시인은‘누굴만날까’라는설레는물음을던지며,인생의또한장이열리는순간을여행에비유한다.여행은단순한이동이아니라,자신안의기대와기억을깨우는내면의여정으로그려진다.낯선길위에서‘잊혔던나를다시만나는시간’이라는구절은,타인과의만남이곧자기자신을되찾는과정임을암시한다.이처럼시의출발은외부로향한발걸음이지만,그실상은내면으로의회귀이다.
두번째연에서는‘인연’이라는주제가본격적으로전개된다.
‘어떤인연의바람을데리고올까’라는표현에서보이듯,인연은인간의의지로통제할수없는자연의바람처럼그려진다.시인은스쳐가는사람들속에서우연히스며드는이름들을통해,삶이예고없이변화하는섬세한결을포착한다.‘삶의결을흔든다’는구절은타인과의만남이단순한사건이아니라,존재의깊은층을진동시키는경험임을보여준다.결국인연은‘머물지않기에’더욱짙어지는것이며,덧없음속에서비로소그소중함이드러난다.
마지막연은이별의여운과그로인한정서적성숙을담고있다.
‘잠시머물다간그사람의온기와풍경은/내마음한켠에서오래도록꽃잎처럼피어난다’는구절은,인연이비록짧았더라도그흔적이영원히내면의풍경으로남는다는깨달음을전한다.떠나간사람의흔적이슬픔이아닌‘꽃잎’으로변하는순간,인연은완성된다.이시는결국만남과헤어짐이반복되는인생의길위에서,우리는서로의하루를물들이며살아간다는사실을잔잔하고도서정적으로일깨운다.
비내리는밤이면차마못전한마음
종이위로스며든다.
쑥스러운말들에피식웃고
지우고또지운다.
결국구겨진편지한장
버렸으나작은불씨는남는다.
그온기가빗소리따라
그의곁어딘가를걷는다.
말하지못한편지한통
내마음을비추는작은거울이된다.
그래서
이비오는밤이좋다.
-‘편지’전문
이시는비내리는밤이라는감성적배경속에서,말로다전하지못한사랑의마음이편지라는매개를통해조용히드러나는순간을그린작품이다.
시인은비를바라보며과거미완의감정을떠올린다.‘차마못전한마음’은말로표현되지못한사랑의망설임을상징하고,‘종이위로스며든다’는표현은그감정이조용히,그러나진하게마음깊은곳에배어있음을보여준다.지우고또지우는반복적인행위는마음을다듬는과정이자,감정의진폭을줄이며체념과그리움사이를오가는내면의심리를드러낸다.
그러나시의마지막으로갈수록시인은그미완의편지를단순한후회로남기지않는다.
‘버렸으나작은불씨는남는다’에서보이듯,그감정은사라지지않고마음의따스한잔향으로남아있다.결국‘말하지못한편지’는시인에게아픔이아니라‘내마음을비추는작은거울’이된다.전하지못한사랑이오히려자신을성찰하게하는계기로바뀌는것이다.그래서시인은마지막에“이비오는밤이좋다”고고백한다.그것은그리움의완화이자,감정의성숙을받아들이는평온한인정으로읽힌다.
노을물든산중턱
기쁨에겨워나는달려갑니다
뭉게구름속스민그대얼굴
다시금보고싶어져서.
마음한켠숨긴꽃
언제이슬맺고피어날까
구름에얼굴가린채
애태우는마음.
해질녘연기처럼
그대사라질까두렵고
무심함에가슴저려도
하늘뜻은거스를수없네.
이밤,그대꿈언저리
한송이바람꽃되어스며듭니다.
-‘노을빛그대에게’전문
노을빛그대에게’는‘노을’이라는시간적배경을통해사랑과그리움,그리고이별의아련함을서정적으로표현한작품이다.
시인은‘노을물든산중턱’을향해달려가며그리운이를떠올린다.‘뭉게구름속스민그대얼굴’이라는표현은현실과환상의경계에있는사랑의이미지를그리며,만나고싶은마음이자연의풍경속에녹아든다.시속의자연은단순한배경이아니라,그리움의감정을담는그릇이된다.‘마음한켠숨긴꽃’은아직피어나지못한사랑의상징이며,시인의내면깊은곳에서간직한애틋한감정이기도하다.
시의후반부로갈수록,시인은사랑의유한성과그로인한두려움을고백한다.
‘해질녘연기처럼그대사라질까두렵고’는노을이사라지는순간의덧없음을사랑의불안으로치환한표현이다.하지만시인은결국그두려움을받아들이며,이별의순간마저자연의순환속일부로받아들인다.마지막연의‘그대꿈언저리한송이바람꽃되어스며듭니다’는시인의사랑이소유가아닌존재의여운으로변모했음을보여준다.이시는결국,사라짐속에서도지속되는사랑의기도이자,이별이후에도마음속에남는한사람의따뜻한흔적에대한노래가된다.
어둠은조용히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