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으로도달하는아름다움의윤리
정문선시집『내사랑하는님은』은개인의생애사,신앙,이민의시간,가족서사가서로를비추며하나의‘기도의연작’을이룬다.이시집의가장두드러진미덕은삶의고통을미화하지않으면서도끝내품위있는아름다움으로이끄는시적태도에있다.상실,노쇠,병,이별같은소재는자칫통속적비애로기울수있으나,시인은이를기도·향기·빛·자연이미지로여과해연민과절제의정서로승화한다.“모두비우고남김으로아름다울”이라는역설적문장은이시집전체를관통하는미학적선언으로작동한다.비움은결핍이아니라남김의방식이며,삶의마지막국면에서야비로소도달하는윤리적아름다움이다.
이러한비움의미학은노년과모성의형상에서특히선명해진다.자카란타나무,국화,낙엽,촛불같은상징들은소진과헌신의이미지를담아내며,‘좋은것은자식에게주고’남은것을태우는존재의모습은모성의숭고함을과장없이드러낸다.시는고통을웅변하지않고,남겨진숨결과잔향만을남긴다.그절제된언어가오히려독자에게더깊은울림을준다.
감각과장소가엮는삶의지도
정문선의시세계는이미지의결이매우촘촘하다.꽃과나무,눈과바다,재와소금같은물성의이미지,묵주·성체·십자가같은신앙의사물,전화·창문·머리핀·워커같은일상의사물들이서로얽혀하나의‘감각지도’를형성한다.이지도는공간적으로서울,진해,LA,데스밸리,캐나다록키로이어지고,시간적으로는유년과청년,모성의세월,노년의회한을관통한다.이민자의시선은원거리에서고향과공동체의비극을응시하며,개인의슬픔을사회적애도로확장한다.
여행시는풍경의장엄함을과시하기보다그앞에서작아지는인간의겸허를노래한다.광활한자연은정복의대상이아니라기도의배경이며,인간은그속에서자신을낮추고세계와의관계를다시배운다.동시에숭례문화재같은공동체적재난은태평양을건너온‘속보’로전달되며,이민자의몸과마음에동일한붕괴의감각을일으킨다.이처럼시집은개인사와공동체사,사적기억과공적사건을자연스럽게교차시키며삶의스케일을유연하게확장한다.
기도로완성되는모성과신앙의서정
이시집의심장부에는모성과신앙의축이자리한다.「드릴수없는기도」,「엄마왜울어」,「엄마의눈」등에이르는시편들은사랑의절정이때로‘해줄수없음’앞에서무너진다는사실을정면으로응시한다.딸의고통없는죽음을빌어달라는요청앞에서멈춰서는기도,들어줄수없기에더욱잔혹한사랑의윤리는신앙을위로가아닌질문의자리로돌려놓는다.신앙은모든고통을해결해주는해답이아니라,인간이감당해야할한계를함께견디게하는힘으로제시된다.
언어의태도역시이러한윤리를뒷받침한다.짧은행과담백한문장,과장되지않은감정표현은기도문처럼반복될때가장큰울림을낸다.산문시와자유시의경계를넘나드는형식,영화적몽타주처럼매끄러운장면전환속에서도정조는흔들리지않는다.시인은삶을기다리기보다걸어가며배우고,아픔을단정히받아적는다.그단정함이바로『내사랑하는님은』의품격이다.
결국이시집은상실과병고,이주와애도의시간을‘견딤’이아닌‘돌봄’의언어로번역한사려깊은기록이다.읽고나면마음속에작은촛불하나가켜진듯,슬픔은덜어지고숨은감사가떠오른다.비움으로남긴것들,기도로건너온시간들이조용히삶의아름다움으로귀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