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에 모란꽃 피면 평양 가겠네

모란봉에 모란꽃 피면 평양 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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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세기의 한반도, 대공황기의 아메리카에 새겨진 ‘한흑구 아리아’ 93편!
‘단 한 편(片)의 친일문장도 남기지 않은 영광된 작가’를 위한 Aria 93편!
한흑구 탄생 115주년을 맞는 2024년 늦봄, 한흑구의 문학적 일대기를 93편의 작은 이야기로 엮어낸 책이 나왔다. 편마다 인용한 작품과 그 상황을 통찰한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면서 마치 해설을 곁들인 아리아 93곡을 감상하듯이 읽을 수 있다. 〈Han’s Aria 한흑구 아리아〉라는 부제가 붙은 신간 『모란봉에 모란꽃 피면 평양 가겠네』이다. 저자는 포항 출신으로 『박태준 평전』도 쓴 이대환 작가(66세)다.
저자

이대환

1958년영일만바닷가(현포항제철소)에서태어났다.초등학교6학년때‘흐름회’백일장에서받은상장의‘한흑구’라는이름을기억하고있다.중앙대문예창작과와대학원석·박사과정을졸업했다.
1980년(대학4학년)국제PEN클럽한국본부주관장편소설현상공모에당선해소설가로출발하고졸업과함께귀향하여십여년간교사와대학강사로교편을잡았으며,1989년선배들과포항지역사회연구소를결성하고종합지《포항연구》를창간해통권55호까지발행했다.‘지구적으로사고하고지역적으로행동하라’는말을좋아하고,“시민단체는자기세대에걸맞은새로운탄생이바람직하다”며시민단체대물림에는반대했다.
1989년《현대문학》지령400호기념장편소설공모에당선해연재하면서1990년가을호《창작과비평》에중편소설「철의혀」를발표한뒤부터전업작가로지내기도하며십여년간소설창작에열정을바쳤다.평전과소설에힘을기울이며드문드문칼럼을쓰는현재도서른살언저리에깨달았던‘이념이인간조건을창조하는것이아니라,인간조건이이념을창조한다’라는것을변함없이진리로생각하고있다.
평전『박태준평전』,『청년의꿈박태준』,소설집『조그만깃발하나』,『생선창자속으로들어간詩』,장편소설『말뚝이의그림자』,『새벽,동틀녘』,『겨울의집』,『슬로우불릿』,『붉은고래』,『큰돈과콘돔』,『총구에핀꽃』,산문집『프란치스코교황과무지개』,『하얀석탄』등을펴냈으며,『포항사회의진단과전망』,『누가어떻게포항지진을만들고불러냈나?』,『포스코는국민기업이다』등을엮어냈다.

목차

애인보다가까운조지훈과함께다시모란봉에올라보고싶지만.13
아버지는창끝에찔려넘어졌고나와동무는도망하여나왔노라.18
함박눈내리는날지게꾼이오고어머니는소리없이울었네.21
‘Highthinking,plainliving’을책상앞에붙여놓고‘혜성’을결성해문학의길로.26
‘봄비’에촉촉이젖고‘국경의밤’을가슴에묻고.29
《진생》에처음시를발표하고경성가는야간열차에오르다.32
「인력거꾼」으로남은경성의봄날에누가해학미를살리라고요구하는가.36
한나무의두줄기로어우러져우람한거목으로자라날작가정신.40
세광(世光)이문학인흑구(黑鷗)로거듭나는태평양횡단과검은갈매기.43
시카고에서아버지와13년만에재회하여더홀가분하게문학의길로.47
시카고의동포들과눈물로맺어준파인김동환의시한편.50
시카고의괴테여,고향의봄은언제오겠소?.52
명예와세력의노예가되지말고한깃발아래서고함소리를합하자.55
미시간호반을대동강처럼헤엄치는‘누런’피부색과“헤이몽키!”의떨어진포크.59
노스파크대학영문학과에들어가월트휘트먼과칼샌드버그를만나다.62
이악착한세상에서나는시를쓰는사람이되었노라.67
258번째흥사단단우한흑구의고언(苦言),“수양을넘어실제적진취로나아간다면!”.71
인간사회의모순을수술하려는우리의수술대에환자를눕혀놓고.74
정열의시인바이런의기백으로1931년새해의먼동을맞다.78
나이아가라폭포의위대한진리는흐르고모이는합(合)이거늘,동지들이여!.83
‘고(苦)’를‘학(學)’하는고학의볼티모어에서조선문단에시인으로이름을올리는계절.90
낟가리쌓은들판의북풍을생각하며송곳하나꽂듯이필라델피아템플대학으로.95
이민문학의효시‘강용홀의소설『초당』’,이를비판하는청년한흑구의새맑은민족적자존.98
한국문학사에최초로흑인문학을올려놓으니조선문단은데면데면엑조티시즘으로여기고.103
국제학생회에조선학생대표로나가침묵부터5분간하는한흑구.109
도산안창호체포소식의충격과첫단편소설「호텔콘」.113
감옥같은조선땅에서배움에목말라왔건만민주주의여,자유와평등은어디있느냐?.118
녹슬은군국주의의창끝은부러지고새로운조선의들판으로달려가리니.122
갈곳잃은안익태가첼로만들고필라델피아한흑구의셋방에들다.126
걸음에도리듬을타는빈털터리안익태는밤낮꼬박첼로만켜고있는데.132
커티스음악학교장학생선발시험후울지않은안익태는어디로?.136
한흑구의주선으로템플대학음악과에들어가고커티스음악학교짐바리스트의지도를받는안익태.139
한흑구-반하우스목사-윌리부부,그리고안익태의‘코리아판타지’서곡.143
1933년여름을미시간호반여관에서지내며넥타이파는한흑구와첼로켜는안익태.149
안익태의시카고대학독주회때복도에홀로서서눈물짓는한흑구.155
뉴욕에서눈물로작별한안익태와한흑구,이들은언제다시만나려나?.160
1934년카네기홀에서〈코리아판타지〉를직접지휘로초연한안익태.165
안익태의‘고립’을넘어선런던편지와‘독립’을이룩한연미복의지휘봉.170
한글시200편과영시(英詩)100편을쓴청년시인이최초로필명‘흑구’를《신한민보》에올리고나서.175
‘심장의노래’를다짐한청년시인의귀국소식을《조선일보》가크게특필하다.180
식민지조국에돌아와문학의길로정진하겠다는한흑구의자화상.184
‘헐어지는집’에돌아와휘트먼을호출하고16만평양시민의종합지《대평양》을창간하다.188
심장에‘님’의조각으로‘영원’을새겼으니젊어서죽거든내무덤에비석을세우지말라.194
암탉이달걀을품듯이소설을창작하며다시‘황혼의비가’를듣다.198
일제의검열이만주산허리를갉아먹고사는백의인(白衣人)의유랑생활은잘라버리고.202
어머님의마지막눈물을닦아드리고당신의정령은내가슴으로.206
“판사여,법률의눈에서내가과연산사람이냐?”영국실직자의질문과함께산문시대로.209
암흑시대의등불‘백광(白光)’을켜고굳건히지켜내기위해서라면!.215
파인김동환의《삼천리》와최정희의애수그리고한흑구의휴머니즘.221
낙엽을태우며《백광》에는수필만넘겨주고평양냉면을싫어한소설가이효석.226
일제검열관이빨갛게지워버린방송원고와노총각의결혼.229
아버지와아들이안창호와함께끌려간‘수양동우회’사건.233
생선가시같은나뭇가지의마지막한잎은내마음의한조각.236
새벽세시에일어나고눈감지못하는‘동면’의나날들.241
칼을차고찾아오는마츠다(松田)와대작해주고어린장남과나란히낚시를드리우며.244
‘단한편(片)의친일문장도쓰지않은영광된작가’가마침내「닭울음」을펜으로듣다.248
나라가패망한일본인노부부는숨어지내고나라가동강난한흑구가족은고향을탈출하고.251
어머니의품과같은나무묵상하는시인과같은나무.258
문학의장르로서수필의독자적가치와양식을한국문학사에개척하고정립하다.264
해방공간의한흑구가서울에서대작한대주가(大酒家)급문인들.271
한흑구의영혼에‘생명의서’를새기고‘바위’로남은청마유치환.274
푸른자기(磁器)의선(線)에서슬픈역사를읽어낸지훈이여.280
“한형,나아직주정안했지?”하고히히웃는‘귀촉도’시인.284
미군정청통역관한흑구가진정으로기원한시인베네의유언같은자유와평화.289
포항시남빈동의낡은집을둥지로삼는검은갈매기.294
내머리위엔감투가아니라태양의따뜻한볕이필요하니.300
포항에정착해번역시집『현대미국시선』을출간하고월트휘트먼과흑인시인의비명(碑銘)을되새기다.304
길가의다복솔아,우리가죽어가도너만은푸른빛을잃지말고.309
폐허의포항시가지에멀쩡히남은너무낡은‘평화의집’으로.313
학도병47명의넋이모란꽃처럼떨어진포항여자중학교부터재건하다.317
영일만이무기를잡았으니용왕님께용서를빌자는‘포항사람한흑구’.320
모든고초와비명을다마친성자인양기도드리는‘보리’.326
새벽이오기전이제일어둡다,어서우리의밤이다해지기를!.331
땅은좁고,농민은많고,먹을것은적으니우리가어떻게해야살아나갈까.336
마음은평양의고향집을더듬고심야의기차는포항으로달리고.339
불타는눈망울로의혈과환희의4월을보낸장남과함께포항으로.343
쇼팽은망명길에폴란드흙을봉투에넣었는데안익태너도언젠가조국의흙과만나기를.349
가을의흘러가는소리는인생을불러가는하느님의말씀인지모르니.354
아들뻘문학청년들과술벗으로지내며포항에서문학을일구고가꾸기.358
‘청포도다방’살롱시절에서한흑구중심의‘흐름회’시절로.362
갈매기,너는한낱슬프고험하고기막힌방랑자이니.368
까다롭지만자진종생의귀양살이라도능히해낼묘한은둔의사색가.372
김녹촌과함께떠난호남순례여정을작전지도처럼그려둔한흑구.376
빈곤의골짜기에서풍요의지평으로건너가는철교(鐵橋)건설을축원하며‘사농공상’을비판하다.381
노년에는인생의주석을단다는쇼펜하우어를생각하며오랜만에낚싯대의먼지를털다.385
운명의슬픔을아프게생각하는것보다도저노목의그늘드리우는사명을부러워한다.389
정년을기념하듯『인생산문』을준비하며‘한오라기의허구없이’죽마고우안익태를회고하다.393
허허,새도못주워먹는것을어찌버릴수있겠나?.396
“내고향으로날보내주”,모란봉에모란꽃이핀다면.401
꽁꽁봉인해둔침묵의향수(鄕愁)에속절없이그만실밥이터지고.404
수구초심이‘평양지도’를그려놓는데고향산천은유구할것인가.409
갈매기같이살겠다며마지막으로도산안창호를호출한‘검은갈매기’.413
흰갈매기의울음소리를들으러검은갈매기는영일만바닷가흙속으로.419
작가의말.3

출판사 서평

20세기의한반도,대공황기의아메리카에새겨진‘한흑구아리아’93편!
‘단한편(片)의친일문장도남기지않은영광된작가’를위한Aria93편!

한흑구탄생115주년을맞는2024년늦봄,한흑구의문학적일대기를93편의작은이야기로엮어낸책이나왔다.편마다인용한작품과그상황을통찰한저자의안내를따라가면서마치해설을곁들인아리아93곡을감상하듯이읽을수있다.〈Han’sAria한흑구아리아〉라는부제가붙은신간『모란봉에모란꽃피면평양가겠네』이다.저자는포항출신으로『박태준평전』도쓴이대환작가(66세)다.

1909년평양에서태어난한흑구(본명세광,世光)는숭인학교를나와1929년2월보성전문학교상과를중퇴한데이어5년여미국유학을하고시인,소설가,수필가,번역가로서1934년봄날에평양으로돌아왔다.신문은커녕잡지하나없는‘조선제2도시인구16만평양’의전근대적현실을개탄하며종합지《대평양》,《백광》창간과발행을주도하고왕성하게활동하는가운데1937년안창호,이광수,주요한,한승곤(아버지)등과‘수양동우회’사건으로고초를겪었다.그뒤부터평양을떠나평남강서군산골에칩거하며일제의회유와압박을거부하고“단한편의친일문장도쓰지않은영광된작가”(친일문학연구자임종국)로남았다.그러나해방된고향(평양)이적도(赤都)로바뀌자생명의위협을느끼고38선을넘어1945년9월서울문단에합류했다.미군정청통역관으로지내다대한민국정부출범직후인1948년늦가을부터세속적명리와등지고일가친척하나없는영일만바닷가포항에정착하여인생후반기서른한해에걸쳐갈매기와바다의언어를영혼에담는‘은둔의사색가’로서문학적정혼을수필창작에기울였다.그의바람대로포항제철(포스코)이‘조국의번영’을이끄는‘영일만신화’를완성한즈음인1979년11월,70세일기로자택에서고요히영면에들었다.

책제목은첫번째아리아〈애인보다가까운조지훈과함께/다시모란봉에올라보고싶지만〉의한문장에서따왔다.1950년8월15일,광복5주년에41세한흑구는아내와같이어린자녀넷을데리고포항에서출발해꼬박한주일을걸어부산의동래다리밑에닿았다.몸도마음도지칠대로지친피난의고행이었다.하지만곧바로수영비행장에주둔한미군지휘부의통역관이되어공초오상순,조지훈,청마유치환등종군문인들의저녁술자리를책임지는임무에충실히나선다.그해10월국군과유엔군이평양을수복하고문인대표들도평양으로날아가게되자조지훈은평양토박이한흑구에게동행을강권한다.이때그가사양하는말이이랬다.“나는모란봉에모란꽃이피면평양에가겠네.”이장면을저자는이렇게읽어낸다.

그날부터한흑구는평양을영혼으로만살아가야했을까.모란봉에는모란꽃이피지않는다.모란이없기때문이다.한흑구는현실에서평양으로돌아갈수없는운명이었다.하지만모란봉에는언제나모란꽃이피어나는중이다.모란봉이란피어나는모란꽃을닮아서매겨진이름이라니!

두번째아리아는〈아버지는창끝에찔려넘어졌고/나와동무는도망하여나왔노라〉이다.한흑구가열살때(1919년)경험한3·1운동을24세의미국유학생이되어1933년3월9일《신한민보》에발표한시「3월1일」을인용하고있다.세번째아리아는〈함박눈내리는날지게꾼이오고/어머니는소리없이울었네〉로,한흑구가일곱살이었던어느날에아버지(한승곤)가중국(상하이)을거쳐미국으로망명떠나는장면이다.이후로는그의유년시절부터1979년11월그의임종과장례를담은아흔세번째아리아〈흰갈매기의울음소리를들으러/검은갈매기는영일만바닷가흙속으로〉까지가시계열에어긋남없이빠짐없이그의작품을현장의증언처럼인용하면서정연하게이어진다.

한흑구의문학적일대기는네번째아리아〈‘Highthinking,plainliving’을책상앞에붙여놓고/‘혜성’을결성해문학의길로〉의소년한흑구에서부터1934년봄날에어머니의병환을돌보기위해미국유학을그만두고샌프란시스코에서태평양횡단여객선‘후버’호에오르는서른일곱번째〈한글시200편과영시(英詩)100편을쓴청년시인이/최초로필명‘흑구’를《신한민보》에올리고나서〉,평양자택에도착한한세광(흑구)의소식을알려주는서른여덟번째아리아〈‘심장의노래’를다짐한청년시인의귀국소식을/《조선일보》가크게특필하다〉,서른아홉번째아리아〈식민지조국에돌아와/문학의길로정진하겠다는한흑구의자화상〉까지는주로그의시를불러들이고,마흔번째아리아〈‘헐어지는집’에돌아와휘트먼을호출하고/16만평양시민의종합지《대평양》을창간하다〉부터는주로그의산문을불러들인다.한흑구의문학이귀국,귀향을계기로산문시대로넘어간것이다.

1948년늦가을에세속적명리를멀리하는한흑구가솔가하여낯선땅포항에출현하는모습은예순한번째아리아〈포항시남빈동의낡은집을둥지로삼는/검은갈매기〉에담겨있다.포항에정착한그는월트휘트먼,칼샌드버그,랭스튼휴즈등미국대표시인들의시를번역해번역시집『현대미국시선』을펴내고(1949년,서울선문사),세계적음악가로애국가와‘코리아판타지’를작곡한안익태를가형처럼도와주며함께지냈던필라델피아템플대학유학시절을A와K라는주인공으로내세운장편소설「젊은예술가」도발표하지만(1961년《새길》,법무부간행),1955년4월18일《동아일보》에발표한시적수필의명작「보리」가보여주듯이문학적정혼을수필창작에기울이며《동아일보》《조선일보》《매일신문》《영남일보》《현대문학》《시문학》《수필문학》등다양한여러매체에많은수필을발표했다.그결실이회갑도넘겨1971년미당서정주시인의주선으로생애에처음펴낸작품집(수필집)『동해산문』과두번째수필집으로1974년에펴낸『인생산문』(서울일지사)이다.한편으로한흑구는포항수산대학교수로서후학을길러내며이명석,김대정,박영달,최성소,김녹촌,손춘익등지역문화예술인들과손을잡고전후의폐허를극복하는포항에서‘흐름회’를조직해학생백일장을주최하고황순원,이원수등친분이두터운문학인들을초청해문학강연회를개최하면서문학운동의활기를불어넣기도했다.

미국유학,일제강점기,해방공간에남겨둔한흑구의문학적자취에서독자의심금을울리는아리아는음악가안익태와함께보낸시간,최초로조선문단에올려놓은미국흑인문학과주목할수필문학론,그리고소설가이효석,시인유치환·조지훈·서정주등문우들에대한추억담이다.

‘청년시인한흑구와청년음악가안익태’는,1933년2월신시내티에서추방위기에몰린빈털터리안익태가첼로만들고돌아갈여비도없이필라델피아정거장에나타난장면을담은스물여덟번째아리아〈갈곳잃은안익태가첼로만들고/필라델피아한흑구의셋방에들다〉부터서른일곱번째이리아〈안익태의‘고립’을넘어선런던편지와/‘독립’을이룩한연미복의지휘봉〉까지내리이어진다.

한흑구는1930년대일제강점기조선문단에최초로미국흑인문학을올려놓았다.스물네번째아리아〈한국문학사에최초로흑인문학을올려놓으니/조선문단은데면데면엑조티시즘으로여기고〉에서그단면을알려준다.1932년2월호《동광》에한세광의이름으로발표한평문「미국니그로시인연구」가그것이다.앨런로크(AlainLocke)가편집한문학선집『뉴니그로』가그텍스트로,『뉴니그로』는‘니그로르네상스’촉발의한자극제가되었다는평가를받는다.미국흑인의상황에식민지조선인의상황을대입한한흑구는당시대표적흑인시인랭스튼휴즈의시‘우리는우리의해가돋는/우리의땅을가져야한다’라는「우리의땅」도번역해소개했다.하지만조선문단은‘미국니그로문학’을이국적인정서나정취에탐닉하는엑조티시즘정도로여겼을수있다.그러나한흑구는미국흑인의상황과그것을극복하려는흑인문학을일생동안가슴에간직했다.1937년5월《백광》에발표한그의단편소설「황혼의비가」에도흑인문제를포함한인종차별의현장이생생히등장한다.흑인을노예처럼동원한텍사스목화농장에서노동을팔아학비를준비하는한인고학생‘나(김)’와‘박’이겪은이야기를그려내는「황혼의비가」는마흔네번째아리아〈암탉이달걀을품듯이소설을창작하며/다시‘황혼의비가’를듣다〉에서들려주고있다.

한흑구는일제강점기한국수필문학의선구자로서특히영미에세이의역사와작품들을일목요연하게통찰한지식을바탕으로단단한‘수필문학론’을피력했다.쉰아홉번째아리아〈문학의장르로서수필의독자적가치와양식을/한국문학사에개척하고정립하다〉에서그진면모를확인할수있다.

또한한흑구아리아에는가까이지낸문인들과의농후한추억들이담겨있다.마흔아홉번째부터예순네번째사이의〈낙엽을태우며《백광》에는수필만넘겨주고/평양냉면을싫어한소설가이효석〉,〈일제검열관이빨갛게지워버린방송원고와/노총각의결혼〉,〈해방공간의한흑구가서울에서대작한/대주가(大酒家)급문인들〉,〈한흑구의영혼에‘생명의서’를새기고/‘바위’로남은청마유치환〉,〈푸른자기(磁器)의선(線)에서/슬픈역사를읽어낸지훈이여〉,〈“한형,나아직주정안했지?”하고/히히웃는‘귀촉도’시인〉등이그것이다.

마흔살을앞두고솔가하여포항에정착한한흑구는‘향수’에휘둘리지않는모습으로일관했다.전후폐허의포항을재건할때는미군의도움을불러오는일을조용히해내고,다시일어서는포항의기상을전국에알리는글을쓰는가하면,문학적으로척박한터전에씨앗을심고밭을가꾸는일에도앞장서는가운데,일찍이1935년7월《조선중앙일보》에‘수필문학론’을분재한당시에“나는조선문단에수필문학의새기운을촉진하고자한다”라고밝혔던자기다짐을실천하는길로나아가시적수필의명작으로빛나는「보리」,「노목을우러러보며」등을남겼다.

그러나70세에다가서며생의종점을예감하는한흑구는가슴깊이봉인해둔향수주머니의실밥이터져버린다.그래서글로만든‘평양안내지도’라불러도손색없을「모란봉의봄」같은수필을쓴다.아흔번째아리아〈꽁꽁봉인해둔침묵의향수(鄕愁)에/속절없이그만실밥이터지고〉이다.저자는이렇게읽어낸다.

자주말하는애절한그리움도있을수있다.길게말하는애절한그리움도있을수있다.그러나안으로안으로우겨넣으며깨물고또깨물어견고한침묵속에봉인해두는애절한그리움이있다.이것이한흑구의‘평양향수’였다.그러나애절한그리움을완벽하게봉인해줄침묵이어찌있을수있으랴.봉인의실밥이속절없이터져버리는찰나를맞는수밖에없는것이다.

포항바닷가를거닐며황혼의시간에쓴수필「나는한마리갈매기요」에서한흑구는스스로‘갈매기’로등장하여드디어갈매기는떠돌이방랑자가아니라터를잡고정착한새라고불러준다.그가발표한마지막글은1979년10월《샘터》에실린「신용이광고다」이다.마지막으로도산안창호정신을선양한것이기도했다.아흔두번째아리아〈갈매기같이살겠다며마지막으로/도산안창호를호출한‘검은갈매기’〉가그것을담고있다.

그리고한흑구는1979년11월지상의마지막음식으로냉면을맛보고나서자택에서숨을거두었다.유택자리는영일만바다가한눈에내려다보이는포항시죽천리언덕이었다.아흔세번째아리아〈흰갈매기의울음소리를들으러/검은갈매기는영일만바닷가흙속으로〉이다.겨울을예감하는하늘이눈시리게푸른빛으로고스란히내려앉은영일만바다,잔잔히일렁이는물결위로는갈매기들이꺽꺽한소리로서로를부르며마치오랜친구와영영헤어지는영결의슬픔을나누는것같은그때,음유시인의풍모를갖춘대중가수최백호의노래〈영일만친구〉는‘수평선까지달려나가는젊은날푸른가슴’과가슴을타고이나라방방곡곡‘갈매기나래위에시를적어띄우는’중이었다.갈매기나래위에인생과문학과세계에대한사유의언어를띄우고띄우고또띄운,최초의진정한‘영일만친구’는필생의그과업을내려놓았고…….

이대환작가는한흑구의문학적일대기를세상에내놓으며이렇게말했다.
“지금여기는저명작가마저상업적,정파적이유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