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삶에서자격없는인간은없으며,
누구든당당히욕망해도된다
《실격당한자들을위한변론》김원영변호사의첫책
《나는차가운희망보다뜨거운욕망이고싶다》2019개정판
나는이제야장애도욕망도제대로주목하는방법을배웠다-요조
《실격당한자들을위한변론》으로2018년주요언론매체와출판인이뽑은‘올해의저자’로여러차례이름을올린김원영변호사가20대에쓴책《나는차가운희망보다뜨거운욕망이고싶다》가《희망대신욕망》이란제목으로새롭게출간되었다.《실격당한자들을위한변론》에서세상이‘잘못’태어났다고취급하는존재들의존엄함을‘변론’한김원영은《희망대신욕망》에서장애를가진자신의몸을끊임없이탐구하고,자신의삶을있는그대로내보이며자유와연대의힘을‘증언’한다.개정판에는서문과후기를추가하고장애문제를깊이이해하고싶어하는사람들을위해부록‘장애문제깊이읽기’내용을보완했다.
수시로뼈가부러지는골형성부전증을안고태어난김원영은방안에서할머니가사다준아이스크림을먹고,마당의강아지를바라보며무료한오후를보내고,누나의사회과부도에점을찍으며전세계를돌아다니는것이일상의전부였다.열다섯살이되어서야검정고시를보고,재활학교에들어가처음세상밖으로나간그는단지휠체어를탄다는이유로입학원서도팔지않았던일반고등학교의높은장벽을겨우넘어‘일반’의세계로들어간다.그뒤노력끝에서울대학교에입학해장애인인권운동에뛰어들고,로스쿨에진학한다.《희망대신욕망》은‘보이지않는존재’였던한유약한소년이세상이라는무대에등장하기까지를다룬한편의성장기다.하지만이책은‘인간승리드라마’와는거리가멀다.저자는오히려‘누구나의지만있다면어떤어려움도극복할수있다’는희망의서사를거부한다.
김원영은이책에서장애인을‘미물(微物)’취급하는사회의동정어린시선과차가운편견앞에서장애따위는아무것도아니라는듯‘쿨한’태도를유지하는대신,뛰고싶다고말하고,사랑하고싶다고말하며자신의욕망을긍정하고권리를당당하게요구하는,뜨거운존재가되자고말한다.이책이처음출간된2010년,“차가운희망보다뜨거운욕망이고싶다”는그의선언은장애인과비장애인모두에게많은지지를얻었다.그는치밀할정도로솔직하고촘촘하게써내려간개인적서사와풍부한사례를통해‘장애인은순수하다’,‘장애인은불쌍하다’등장애인개개인의개성을무시하거나,장애인은욕망이없는존재라고여겨왔던편견에당당하게마주한다.2019년,그의선언은여전히유효하다.
그래서나는쿨한게아니라‘핫한’장애인,‘야한’장애인이되었으면좋겠다.내몸이가진욕망과내몸에부여된운명,그모든것을쿨하게받아칠줄아는유쾌한인간또는고상한척,성숙한척하는인간이아니라좀구차하고미성숙하더라도뛰고싶다면뛰고싶다고말할수있는인간,죽음을앞두고있다면남은생을뜨겁게살고싶다고말할수있는인간.-262쪽
몸은바꿀수없지만사회는바꿀수있다
20대의김원영이온몸으로탐구한자유와연대
《희망대신욕망》은김원영을‘뜨겁고자유로운’인간으로변화시킨사람들,즉자유를온몸으로실천한사람들을위한증언이기도하다.세상의중심이라믿었던서울대학교에입학한그는휠체어로자유롭게이동할수없는계단과높은언덕앞에서좌절한다.당당한20대의에너지와벚꽃이캠퍼스에만개한그곳은진정그가원하던세상의중심이었지만,그가있을곳은없었다.강의실이동이어려워수업을마음대로선택할수없고,기숙사에서컵라면조차사먹을수없던그는현실의어려움따위는훌쩍뛰어넘는‘슈퍼장애인’되기를포기하고,장애인권연대사업팀에참여해장애학생이학교의‘손님’이아닌학교의주인으로서이동하고공부할수있게해달라고요구한다.‘슈퍼장애인’이되어현실을극복하고자했던,그를비롯한많은장애학생들은생물학적손상은결코‘극복’할수없으며,장애를극복한다는것은손상된몸에부여된사회적차별을극복한다는의미임을깨닫는다.저자는자신이‘그때야비로소장애인이되었다’고고백한다.
나는슈퍼맨이되고싶었다.지체1급장애인으로서서울대를졸업하고보란듯이성공하는것.삶을극복하고,장애를극복하고,희망과기적을말하는사람이되고싶었다.그러나‘기적'을만들기위해서는기적을일으키는동안타야할대중교통이필요하고,기적을위해읽어야할책이필요하며,기적을만들어내는동안먹어야할컵라면도필요하다.결국장애인권연대사업팀에참여하지않을수없었다.내게는꿈과희망보다당장앞에놓인계단과턱을제거하는일이필요했기때문이다.나는세상에뛰쳐나온그시점의중증장애인들처럼선택의여지가없었다.-159
그가“나는장애인이다”라고커밍아웃하도록용기를준사람들은“지하철을타고싶다”고외치며선로위에스스로몸을묶어전동차를멈춘,중증장애인들이었다.그들은2001년오이도역에서일어난장애인추락사고를계기로엘리베이터설치를요구하며선로로내려갔다.‘대중’교통수단인지하철을이용할수없었던장애인들의오랜욕망이지하철을멈춘것이다.저자는당시폭발적으로전개된‘장애인이동권운동’의배경이된‘장애의사회적모델’과그에관한여러사회과학적연구를소개한다.청각장애인비율이높아수화를일상적언어로쓰는‘마서즈비니어드섬’,조선시대에는시각장애인의사회적지위나삶의질이훨씬높았다는연구등흥미로운사례를따라읽으면“개인이생물학적‘손상’을입었다고해서필연적으로사회로부터배제되는‘장애’를갖게되는것은아니다”라는장애문제를보는새로운시각을얻게된다.
칸트를읽는,구걸하는장애인
정상세계와비정상세계는어떻게이어지는가
갑자기인파를헤치고한할아버지가다가왔다.내앞에선그는천천히주머니를뒤지더니(나는불안해지기시작했다),꼬깃꼬깃구겨진천원짜리지폐를한장꺼냈다.내불길한예감이서서히들어맞는듯싶더니할아버지는이내내손에그지폐를꼭쥐어주었다.내얼굴은순식간에붉게물들었다.구겨진지폐에그려진퇴계선생의기다란눈동자가세상사람들의모든시선을흉내내는것만같았다.아마지금의나라면퇴계의얼굴을확인한순간“이왕이면만원짜리로좀……”이라며능청을떨었을지도모르겠지만,처음지하철에올랐던어린날의나는지폐를받은순간어떻게반응해야할지전혀알수가없었다.할아버지는좌절하지말고열심히살라며어깨를두번두드렸다.나는좌절했다.-32쪽
한손에는법전을,다른한손에는행인이쥐어주고간천원짜리지폐를들고서있는저자는그두세계가어지러이뒤섞인채살아온자기몸의역사를돌아보며,장애인에관한일반적인인식과장애인이실제로처한현실사이의간극을극명하게보여준다.그가열다섯살까지방안에서만살았던것처럼,대부분의장애인들은평생을수용시설이나작은방안에서지낸다.최소한의교육만받고,동료장애인과자원봉사자들이외에는어떤의미있는인간관계도맺지못한채,남성이나여성으로서의욕구도무시당하며하루하루를살아간다.
추하고손상된외모를가진인간은착하거나그렇지않다면적어도개인적인욕망을드러내지않아야했다.그러한욕망은드러나는순간“병신육갑한다”라는저오래된언명앞에철퇴를맞았다.-247쪽
저자는재활학교에다니던시절자신에게학비를후원해주던‘저명인사들’옆에어머니와함께앉아말없이전시되는경험,그가다니던고등학교예배시간에희귀병에걸려꼼짝도못하는남자가침대에누운채전시된경험을들려준다.지하철역에서리프트를타기위해서〈즐거운나의집〉을배경음악으로모든사람의시선을한몸에받는민망함,혜택을받는대신“꽃동네같은곳에가서봉사활동좀하고오세요.그럼내삶에대해진짜감사하게된답니다”라며자신을영혼정화의방편으로삼는이들에게무감각해져야하는경험은어떤가.그는정상세계의거주민이자신보다열등하다고생각되는비정상세계의거주민을통해자기존재의우월감을확인하는,그끔찍한현실을정면으로비판한다.
구경하는자들,즉정상세계의거주민들은끊임없이전시되는비정상시계의거주민들을필요로한다.꽃동네에가서봉사활동을하고와야지만비로소자신의‘정상성’에안도할수있듯이,정상성은‘비정상’을규정하면서성립되기때문이다.-213쪽
그는이책에서이렇게우리사회곳곳에스며들어있는모욕은기본적으로장애인을의식주만해결해주면되는존재,욕망없는존재,깊은사고나격렬한감정과는거리가먼존재로치부하기때문이라고말한다.장애인화장실을남녀공용으로만들고,첫생리를한장애인여성에게“주제에여자라고”라는등의반응을보이는것도그런맥락에서발생하는일들이다.그러나저자를비롯해그가소개하는,인간으로서의권리를찾기위해버스와지하철을세우고다섯시간동안기어서한강대교를건너는중증장애인들의모습에서우리는장애인역시인간적인욕망을가진존재이며,‘자아’와‘사회’에대해치열하게고민하고분노하는존재임을확인할수있다.
김원영에게는“괜히나서지마,나서면더추해”라고말하는대신“무대에올라가,그게더섹시해”,“글을써,네이야기를글로쓰면자유로워질거야”라며그를세상밖으로이끌어준가족,동료,친구가있었다.정상세계와비정상세계,분리된두세계가운데서있는그는두세계가동정과시혜또는부정이아니라진지한연대,즉‘함께비를맞는연대’로하나가되기를희망한다.
‘소확행’시대에‘욕망’을꿈꿔야하는이유,
우리는우리의꽃을피우기위해욕망을가져볼필요가있지않은가
20대의김원영은‘88만원세대’이기도했다.무엇을잘못했는지모르겠지만사회에나갈기회조차주어지지않는20대의삶은무력했고,그가대학생활을할때서울대에서는2년간10명이자살했다.그는당시이책에서‘아무리노력해도세상에등장할기회를주지않는사회에끓어오르는분노를과감히드러내야한다’고제안했다.
‘야한’장애인,‘뜨거운’장애인을선언하며같은나이의친구들에게연대의손길을내민20대청년은30대변호사가되었다.기초생활수급자지위에서벗어났으며,한권의책을포함해많은글을썼다.저자는지난몇년간장애인을포함한사회적소수자의삶에과거에비해훨씬비중있게다뤄지고,소수자들이본격적으로자신의‘욕망’을드러내며연대하는등사회가변하고있지만노골적인차별과혐오,대립은2010년보다오히려더심해졌다고말한다.또한덧없는욕망보다소소하고확실한행복을추구하고,욕망이든희망이든대다수사람들이무언가를꿈꾸기어려운사정에처해있는이시대에그는《희망대신욕망》이던진주장이여전히유효한지스스로질문한다.
그는장애인,노동자,대학생,여성,남성,청소년,난민,성소수자,노인등이각자의차이를직시하고,그에가해지는차별과억압에솔직하게맞서고,각자의욕망을드러내는과정에서‘새로운연대’가이어진다고말한다.그가말하는욕망이란‘내가가장숨기고싶고,피하고싶었던,그러나동시에그자체로공동체내에서진심으로수용되고포용받기를원했던특정한상황과조건을그대로인정받고,한사람의개인으로꿈꾸고사랑하고일하고여행하다죽는삶에대한열망’이다.
이책은우리가‘욕망’마저차별해온것은아닌지,우리스스로‘욕망’을갖기를주저해온것은아닌지돌아보게한다.각자가가진욕망을인정하고,누구든당당히욕망해도된다는사실을인정할때,우리사회는한발짝앞으로더나아갈수있을것이다.김원영개인의성장기이자사회적연대에대한증언이기도한이책이4월20일장애인의날에앞서다시주목받아야할이유다.
그럼에도불구하고이책에서내가말하고자한바는,“네주제에남들하는대로다하고살려고욕심내면안된다”라는말을직간접적으로들어온사람이라면,이세속적이고덧없는욕망을품어보는일이야말로전복적이고저항적인행위라는것이다.바로그“모든것을다해본후에삶이덧없음을깨닫는”일이야말로우리사회모든구성원에게고르게배분되어야할귀중한삶의기회가아닌가?-13쪽
[책속으로이어서]
장애인운동은실제‘하늘이준불운’의영역에속하던많은것들을‘사회적불운’으로이동시켰고,그과정은성공적이었다.사회적불운으로이동한우리의문제들은이제해결가능한과제가되었다.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