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피부 : 나의 푸른 그림에 대하여

여름의 피부 : 나의 푸른 그림에 대하여

$16.26
저자

이현아

에디터,아트라이터.
1990년충주에서태어났다.인터뷰,칼럼,에세이등예술에관한다양한글쓰기를한다.그
중에서2017년부터노트에쓰고있는그림일기를가장아낀다.매거진《어라운드》에서에디터로커리어를시작해퍼블리,젠틀몬스터를거쳤다.지금은IT회사에UX라이터로일한다.남산아래서남편과두고양이말테,미쭈와살고있다.

목차

작가의말:써내려간다는것

1장유년:새파랗게어렸던,덜익은사람

전봇대켜는아이
영원한상실의장소
진실의생김새
퇴근길의이영애씨
유년의재건축
우리의가장먼곳

2장여름:모든것이푸르게물들어가는계절

여름의피부
북향의블루,보나르의블루
작은망명
목적지는조지아오키프
잠으로낙하하는여자
여름의수행원

3장우울:사람의몸이파랗게변하는순간
죽음,병,멍,그리고우울

불안의잼
죽음의이미지
나에게서달아난자
빈잔의서사
뾰족함에대하여
모순의냄새

4장고독:비밀과은둔과침잠의색

어떤저녁식탁
어둠을만지는법
‘들어올림’에관한비밀
홈오브라벤더걸
1인용의순간
투명해진다
당신의호수에서서

출판사 서평

푸른그림을통해나와마주하는시간…
누구나겪을수밖에없는불확실한날들을향한위안

푸른색은그것이가진정서와이미지가정반대편에서움직이는독특한색이다.예를들면,몽상가적인,내밀한,고독한,멜랑꼴리한등의우울한감정의반대편에는파릇파릇하다,청량하다,시원하다,푸른바다,시린하늘등의싱그러운이미지가있다.푸른색은가끔은초록빛을띄기도한다.블루와그린사이에걸쳐진그오묘한색을에메랄드그린(에매랄드빛을띤아름다운녹색),청록색(푸른색을띤초록색),코발트블루(녹색을띤짙은파란색)등으로부르기도한다.초록색뿐이랴.보라색과회색그어느사이에서도푸른색은존재한다.

이런푸른색이가진오묘하고도복잡한스펙트럼은저자에게글을쓰는영감이자원천이다.이들푸른기운이생성해내는감정적충돌은다양한감정선을인정한다.하나의시선으로붙잡을수도없고,붙잡히지도않는감정들의다변화.일견모순적이고알듯말듯한푸른색은어쩌면가장불확실했던날들,가장고독했고결핍되었다고느꼈던그시간들이,나를돌아보고이해하는가장귀중한시간이었음을깨닫게만든다.저자가푸른그림을매개삼아들려주는이야기들역시우리가어렴풋이느꼈던,제대로형언하지못한답답한감정들을소회하게돕는다.실타래처럼꼬인마음의퍽퍽함을누군가는알아주었으면하고바라는모순된그마음들….저자는이런마음을,꼭이해하는사람이다.

1장<유년,새파랗게어렸던,덜익은사람>은유년기에겪었던상실,그리움,애도의시간들,그리고어린시절배워몸에꼭익힌태도와습관의기록이다.에드바르뭉크,발튀스,호아킨소로야,던컨한나의그림에서찾은푸른그림들이작가의유년시절편린을불러낸다.누군가를좋아할수록내가싫어지는감정들,가진적없지만마치가진것처럼꾸며대는어른아이의이야기가펼쳐진다.

“어떻게하다가내가전봇대를켜는일을맡게되었는지는모르겠다.나는그아래푸름을익혔다.거기서서불을밝히는법을,바라보는법을,기다리는법을배웠다.그모든것들이푸름속에서일어나고또내안에있다는걸느꼈다.”/유년‘전봇대를켜는아이’중에서
2장<여름,모든것이푸르게물들어가는계절>에선여름이주는청량감,홀가분함,뜨거움과서늘함의대치가푸른그림에담겨있다.나신이된자신을내려다보는루치타우르타도(‘여름의피부’75쪽)의그림에서비로소나로살아가는생의기쁨을,보는이마저깊은잠으로초대하는것만같은푸른여인의모습은피에르본콩팽(‘잠으로낙하하는여자’118쪽)의그림을통해만날수있다.이외에도이어지는글과그림을읽고감상하다보면태양이내리쬐는어느해의여름,‘여름의수행원’(122쪽)자격으로이름모를나라의미술관을돌아다니는저자와함께양지와그늘을옮겨다니며푸른그림을감상하는기분을만끽하게된다.

“여름에는새로운단어를껴안을수있는몸을갖게된다.여름이나를통과했으면좋겠다는마음으로,어떤것이든안으로흘러들어와나를간지럽히도록내버려둔다.눈꺼풀위로,손톱아래로,등줄기로,양뺨으로.”/여름‘여름의피부’중에서

3장<우울,사람의몸이파랗게변하는순간(죽음,병,멍,그리고우울)>에서는가장잘알려진푸른색의상징성‘우울’에관해이야기한다.우울증을앓았던저자의고백에서독자는현대인이겪는불안감을마주한다.나,자신에게서도망치려는자의자리가어색하게느껴지지않은것도저자가겪은경험이우리의상황과그리다르지않아서다.폴델보(‘나에게서달아난자’151쪽)의그림에서알수있는건,도망자의자리는어느누구의자리도아닌우리모두의자리라는것이다.

“어쩌면나는다른무엇도아닌나에게서도망치고있는지도모른다.한참내달리다뒤를돌아보면그곳에는나에게서달아난나외에는아무것도없다.오로지나밖에없는풍경은폐허나다름없다.”/우울‘나에게서달아난자’중에서

4장<고독,비밀과은둔과침잠의색>은고독에관한내밀한이야기다.독립해자신만의방을꾸린저자의친구‘홈오브라벤더걸’(198쪽)에게는소박하게나마자신의고유성을지켜나가는안정적인고독감이,저자가브루클린의어느숙소에선잠시맞이한혼자만의시간(‘1인용의순간’204쪽)에는은밀하고비밀스러운고독감이배어있다.성실하게자신의세계를일궈낸사람만이뿜어낼수있는풍요로운고독감은어떤가.‘어떤저녁식탁’(175쪽)은오래도록자기자신으로살기위해노력한한사람이뿜어내는우아한고독감이곳곳에스며있다.이들이어째서존경심과미래에대한희망을한꺼번엔불러일으키는지빌헬름하메르스회의그림을빌어알려준다.

“내가그식탁에서배운것은어떤종류의풍요로움이었다.많은세계를품어본사람만이,또여성만이가질수있는것.금전적인부유함이아니라지적인윤택함으로빛나는것.그날이후좋아하는사람들을만날때면이저녁식사를떠올린다.온기와냉기가적절히오가고,단정한음식과와인이오르고,내가아는세계로타인을가두지않고,가본적없는곳으로도멀리멀리데려가는장면을그린다.언젠가는그식탁을관장할수있는사람으로늙고싶다는소망도슬쩍올려두면서.”/고독‘어떤저녁식탁’중에서

에드워드호퍼,조지아오키프,던컨한나,빌헬름하메르스회등
화가들의그림에서만나는가장따뜻한색,블루(…)

저자는자신이사랑하는블루를이렇게정의한다.

“나는그림을볼때마다푸른기운을감지한다.그것은자신안으로한발짝물러나있는자의시선에서비롯한다.앞이아니라뒤로발걸음을디딜때생기는약간의공간과그늘.그물러남의태도가발하는색.그것이내가사랑하는블루다.”

푸른색은복잡하다.가끔은속내를비치지않는미지의인물을보는듯해속상한기분도든다.저자의말처럼(말없이)“투명하게사라(져버린)다.”은둔과비밀의색이지만한편으론가장투명하다.우울한색이라고들하지만가장깊고따뜻한색이기도하다.푸른그림들만모아놓은《여름의피부》를읽다보면아이러니하게도이런복잡한색의균열이오히려우리내면의혼란스러움을인정하고위로를건넨다.푸른색의기운을잘이해하고해석한저자가푸른그림의바닥에서부터써내려간이야기가우리의불안과고독을다독여주기때문이다.

화가피에르보나르는늘관찰자로서일정한거리를두고대상을살피며어느누구의것도아닌자신만의블루를완성했다.‘가장고독하고고독한자’라고불리던독일의화가카스파르다비드프리드리히는작품안에자기만의서늘한푸른세계를건설하고,고유한초상을만들어냈다.저자는“나이와상관없이여전히모난구석을가진사람들.뾰족함을연마하거나닳지않도록애쓴이들.그런예술가들이좋아서,이들이지켜낸뾰족함으로무언가를꿰뚫는송곳을만들었으면해서,그들에대한글을계속쓰고싶은걸지도모른다”(168쪽)라고썼다.《여름의피부》는그런예술가들을이해하고,또강퍅한삶에위안을건네는가장내밀한색‘블루’를이해하려는시도다.그중‘푸른그림’에관한가장첫번째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