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비스마르크 (전환의 시대 리더의 발견)

지금, 비스마르크 (전환의 시대 리더의 발견)

$19.00
Description
전환의 시대, 리더의 발견
정치 리더의 역할은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 사회는 포스트코로나라는 시대적 불확실성에 놓여있다. 또한 올해와 내년, 두 차례의 굵직한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바야흐로 대전환의 시대다. 이러한 시점에 역사적으로 회자되는 성공한 해외의 정치 리더를 살펴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지금, 비스마르크》는 19세기 독일 통일을 이룩하고 복지국가의 기틀을 다진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일대기를 다룬다. 이 책에서 저자는 비스마르크라는 인물을 재해석한다. 그는 통념과 달리 전쟁이 아닌 평화를 추구했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상황에 따른 유연한 해법을 제시한 실용주의자였다. 무엇보다 비스마르크는 정통 보수주의자였지만 이데올로기에 천착하지 않았다. 당면한 현실에 발맞춰 그때그때 적절한 해법을 제시한 리더였다는 점에서 현실주의자였다. 당시의 독일과 현재의 한국이 처한 국내외적 상황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정치 리더는 물론 ‘의사결정자’들을 위한 지침서를 제공해줄 것이다.

북 트레일러

  • 출판사의 사정에 따라 서비스가 변경 또는 중지될 수 있습니다.
  • Window7의 경우 사운드 연결이 없을 시, 동영상 재생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어폰, 스피커 등이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 하시고 재생하시기 바랍니다.
저자

에버하르트콜브

1933년생의독일역사학자다.쾰른대학교교수로활동했으며현재는명예교수이다.1960년괴팅겐대학교에서독일국내정치의노동자문제를주제로박사학위를취득했다.콜브교수는특히바이마르공화국전문가로명성을쌓았다.콜브교수는1870년에서1871년까지벌어졌던독일과프랑스의전쟁과관련한기록들을철저히분석,오토폰비스마르크가프랑스로하여금선전포고를하도록도발했다는역사의통설을정면으로부정하는주장을해학계에충격을안겼다.콜브교수는1998년부터‘오토폰비스마르재단’의상임이사로재직하며비스마르크의자료를편집·출간하는일을주도해오고있다.모두아홉권의저서를썼으며,다수의책을편집·출간했다.

목차

추천의말

프롤로그
빠르게변화하는시대를주도하다

I.알트마르크융커의젊은시절(1815~1847)
II.영주에서정치가로(1847~1851)
III.프랑크푸르트,상트페테르부르크,파리의외교관(1851~1862)
IV.위대한프로이센과제국창설자(1862~1871)
V.제국의안정화와평화수호(1871~1890)
VI.권좌에서물러난후(1890~1898)

에필로그
논쟁의대상비스마르크

옮긴이의말
연표
원전목록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독일통일의새시대를열다!
평화외교,강한국가,국민복지
이념을넘어‘국가리더’의표준이된비스마르크

《지금,비스마르크》는19세기독일통일을이룩하고복지국가의기틀을다진철혈재상비스마르크의일대기다.이책은방황하는청년기를거쳐영주에서정치가,탁월한외교가이자통일제국의창설자로비스마르크가변모해가는과정을다룬다.분열된독일을프로이센중심으로통합한비스마르크가없었다면오늘날독일은어떤모습을하고있었을까?독일역사의중요한정치가중한명인비스마르크가독일에남긴정치적유산을살펴보며우리는성공한지도자에게필요한것이무엇인지이해할수있다.

눈부신외교력으로독일을통일하고
유럽의균형과평화를추구하다

19세기유럽은역동적인변화의시절이었다.정치를비롯한경제와기술발달이숨가쁜시기였다.당시독일은두개의강대국(프로이센,오스트리아)을중심으로여러개의제후국으로분열돼있었다.이러한변화와혼란의시기한가운데,오토폰비스마르크는프로이센의귀족가문의넷째로1815년4월1일태어났다.방황하는젊은시기를거친비스마르크는,36세의나이로외교관이되자마침내그정치적재능을꽃피운다.그는프랑크푸르트,상트페테르부르크,파리등유럽의주요도시를거치며국제정세를읽는안목을길렀다.

프랑크푸르트와상트페테르부르크,파리에서프로이센의사절로보낸11년은비스마르크가외교관으로서인맥을넓히고정치분야전반에걸쳐많은경험을쌓은수련시절이다.이때그는무엇보다강대국과중소국가의이해관계를정확히읽어내는안목을키웠고,독일과국제정치무대에서중요한정치가들을만나며그들의성품과정치적목표,야망을두루꿰뚫었다.그래서비스마르크가1862년9월프로이센정부의수반으로부름을받았을때,그는독일과유럽을가장잘아는정치가였다.
-〈3장프랑크푸르트,상트페테르부르크,파리의외교관〉중에서

비스마르크는흔히외교의거장이라불린다.47세의나이로프로이센의수상이된시기,프로이센은영국,프랑스,러시아,오스트리아등강대국으로둘러싸여있었다.비스마르크는이러한강대국의틈바구니속에서프로이센의외교관으로서끊임없이국익을추구했고현상의변화를끌어냈다.그가궁극적으로추구했던목표는‘하나된독일’이었다.그러나주변의강대국들은독일의통일을바라지않았다.이러한녹록지않은상황속에서,그는‘통일독일’이라는전략적목표를설정하고방법의유연성을추구하며혼란에빠진국내외정치현실을극복해냈다.무엇보다방법의유연성에주목할만하다.그는오스트리아까지포함한대大독일통일을추구하지않았다.현실적인측면에서이는실현하기어려운과제였다.대신그는북부독일만이라도하나로통합하는최소한의목표,즉소小독일통일을지향했다.‘철혈재상’이라는세간의평가와는달리비스마르크는전쟁이라는수단을최선이라고여기지않았다.무엇보다대결노선을지양했다.그가추구한독일정책에서오스트리아와의무력대결을통해소독일민족국가를세우는일은어디까지나차선책에불과했다.오히려비스마르크는평화로운방법으로독일내권력을오스트리아와나누어가지고,상호균형을추구하는것을최선으로여겼다.

여러제후국으로분열돼있던독일을하나로통합한비스마르크는,이후평화주의자로서면모를보여준다.그는불가피한경우가아니라면전쟁보다는외교적방법을선호했고,세력균형을추구하며전쟁을억제하는‘평화의중재자’로서면모도보여준다.비스마르크는독일통일후에도최소20년동안유럽의평화를지켰다.이러한유럽의외교구도를‘비스마르크체제’라고까지부른다는점에서,그가유럽의평화에기여한바는적지않다.무엇보다그는‘예방전쟁’이라는수단을마지막까지지양하는원칙을준수했다.

1871년이후평화수호는비스마르크외교정책의최고목표였다.그래서그는‘예방전쟁’,곧적의공격이예상된다고해서가하는선제공격을1870년이전과마찬가지로철저히거부했다.그는기회가있을때마다이런견해를피력했으며,특히1887년1월11일의제국의회연설에서힘주어강조했다.“나중에불가피해지지않을까해서치르는전쟁,나중에불리한상황에서싸워야하는것은아닐까염려해서치르는전쟁은나와는거리가먼생각이다.그런생각을언제나철저히거부해왔다.…나는‘전쟁을치러야만하지않을까’하는생각으로전쟁을하자는충고는절대하지않을것이다.”
-〈5장제국의안정화와평화수호〉중에서


다만냉철한현실주의자였던비스마르크는평화가손쉽게올수있으리라고믿지않았다.평화정책의전제조건은,바로부국강병이었다.독일제국이충분히강한힘을갖추고서국제사회에서행동할때비로소평화가올수있다는것이다.

“전쟁이쉬워보일때커지며,전쟁이어려워보인다면사라진다.우리의힘이강하면강할수록,그만큼더전쟁은일어나기어렵다.”비스마르크는자신의생각을이런표현에도담아냈다.“언제라도전쟁할각오를보일때우리는평화를지킨다.칼을뽑을수있게칼집을풀어둔사람에게공격은쉽지않다.벽에확실하게걸어둔연습용칼을무서워하는사람은없다.”

-〈5장제국의안정화와평화수호〉중에서

제국창설자비스마르크,
독일제국의초석을놓다

비스마르크가독일제국에남긴유산은외교분야에만그치지않는다.그는통일된제국을안정화하는데에도힘썼다.구체적계획을통해독일제국의근대화를추구했으며,연방정부차원의행정국가를수립했다.이중오늘날까지도회자되는비스마르크의주요업적은무엇보다독일이복지국가로나아가는데기틀을마련했다는점이다.저자는비스마르크가설계하고도입한사회복지법안이국내정치에서이룩한가장중요한성과였다고평가한다.비스마르크는그중요성을인식하고사회복지정치를추진했다.그는산업자본주의가만들어내는사회적폐해의심각성을간파하고,노동자의사회적이고경제적인위치를정부대책으로개선해줄필요성을인식했다.보편적국익에부합하는한에서노동자계층에희망을주고자한것이다.

비스마르크정부가1880년대에국내정치의가장중요한과제로삼았던것은입법과정이다.특히사회복지법안은오래걸렸으며,숱한난제를극복해야만했다.질병,사고,상해,노년등에따른생활고를덜어주고자전국차원에서도입하기로한첫번째사회보장제도는독일제국을“전세계에서사회보장의최신체계를발전시킨선구국가”로만들어주었다고게르하르트리터GerhardRitter(1929~2015)는평가한다.
-〈5장제국의안정화와평화수호〉중에서

다만비스마르크가국내정치에남긴유산은긍정적인면만있는것이아니다.저자는그가시도한모든것이성과를낸것은아니며,비판적으로검토해볼때그의선택이독일에남긴부정적측면도간과할수없다고주장한다.특히그는자신의정치적적대자인사회민주주의자와가톨릭세력을때로는단호하고무자비하게탄압했다.

비스마르크의국내정치가남긴유산을어떻게볼것인지하는문제는더어렵다.제국의수상은민주주의자가아니었다.그는자신이민주주의자라고주장한적도없다.독일민주주의는비스마르크를그조상이나후원자로섬길수없다.그가보여준국내정치행보는문화투쟁,보호관세관철,사회민주주의의무자비한탄압등거칠기만한저주로점철됐다.비록그때마다의회의지지를끌어냈다할지라도이런일을주도한결정적책임은분명그의몫이다.

-〈에필로그.논쟁의대상비스마르크〉중에서


저자는‘철혈재상’이라불린비스마르크의인간적인면모에도주목한다.그는수상으로재임하면서잦은질병과고독에시달렸고,권력에지나치게집착해20년가까이몸담은수상직에서깔끔하게물러나지도못했다.그는인생의말년에새로운카이저인빌헬름2세와의관계설정에실패했고,국내정치의세력구도를판단하는능력까지상실하는모습을보이기도했다.카이저와의불화로퇴임한후에도언론을통해지속해서영향력을행사하려했고,심지어의원직에까지출마해후배정치인들을당황케하는행동도서슴지않았다.

21세기의한국사회,
비스마르크를소환하다.

《지금,비스마르크》는전환의시대를살며유럽의체제는물론독일사회전반의깊숙한뿌리까지영향을미친인물인오토폰비스마르크를재조명한다.무엇보다이책을오늘날소환한이유는당시의유럽정세가오늘날한국의정세와유사한면이있기때문일것이다.

한국은중·러·일이라는강대국으로둘러싸인지정학적위치는물론,분단국가라는특성탓에국제적으로쉽게풀기어려운고차방정식과마주하는일이잦다.따라서한국의지도자는시시각각변하는냉엄한국제질서속국가이익을추구할탁월한외교역량과,이를힘있게추동할통합된국가여론을끌어낼리더십이요구된다.

비스마르크는두개의축(프로이센과오스트리아)으로분열돼있던독일을하나로통합해근대국가의초석을마련한국가지도자다.그과정에서주변정세를냉철하게판단하고,탁월한외교리더십을발휘해끊임없이국익을추구했다.냉엄한국제질서속실력을키우는나라만이국익을얻는다는비스마르크의철칙은,무엇보다평화를절실하게추구해야할한국의정치리더에게필수불가결한지침을제공해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