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낭에 진실꽃 피엄수다 : 제주 4·3을 그리다

틀낭에 진실꽃 피엄수다 : 제주 4·3을 그리다

$20.00
Description
제주 4·3, 그 진실을 전하는 그래픽 다큐멘터리
비극의 현장, 폐허가 된 마을 터에서 자란 보리줄기에 진실의 그림을 그리다
‘속솜허라’(입 다물라)에 갇히지 않는다! 이제 4·3이 역사가 된다
‘틀낭’은 산딸나무를 부르는 제주 말이다. 한반도 중부 이남에 많이 자라고 특히 제주에 많다. 제주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산딸나무 열매를 많이 먹으며 자랐다. 4·3 당시 산으로 피신 간 사람들도 허기를 덜기 위해 산딸나무 열매를 먹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매달려 죽은 십자가도 산딸나무로 만들었다. 꽃받침이 지고 남은 열매는 꼭 심장 같기도 하다. ‘틀낭에 진실꽃 피엄수다’는 ‘산딸나무에 진실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말이다. 4·3의 진실이 마침내 피게 되었다는 것을 담은 제목이다.
이 책은 오래도록 국가가 숨기고 억눌러온 폭력과 야만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한다. ‘속솜허라’라는 제주 말은 ‘입 다물라’라는 말이다. 4·3에 대해 국가가 침묵을 강요하면서 제주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썼다. 하지만 결국 어떤 사람들은 끊임없이 진실을 찾고 그 이야기들을 세상에 더 큰 목소리로 돌려주려 했다. 많은 제주사람들이 ‘속솜허라’에 갇히지 않고 4·3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틀낭에 진실꽃 피엄수다》는 그런 목소리를 그림과 글로 담았다.
저자

박진우,이하진

제주4?3활동가.대학시절부터4·3을삶의화두로삼았다.2022년까지(사)제주4·3범국민위원회집행위원장을맡았다.2002년노무현대통령후보의4·3학살현장방문과2003년제주도에서의사과,2006년4·3추념식등‘노무현과4·3’의순간에늘함께했다.2017년부터청와대와행정안전부,국방부,국회등을대상으로「제주4·3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전부개정을촉...

목차

책을내며4

1부봄은왔지만9
2부꽃이파리가지는것처럼보입디다37
3부까마귀도모르는제사121

부록
제주4·3항쟁연표174
제주4·3희생자마을별분포지도183
참고문헌184
노무현대통령사과문186
추천사187

출판사 서평

“이수진의4·3보리미술은지금은사라진4·3희생자들을오늘에불러내진실을세우려는작업이다”

“이책을읽고나면이제제주의모든풍경이달리보일것이다.오르한파묵의말처럼〈모든풍경의아름다움은슬픔에있다〉.”

그래픽다큐멘터리로살피는4·3

2023년은‘제주4·3’이75주년이되는해다.또노무현대통령이4·3당시에자행된국가폭력에대해사과한지20주년이되는해이기도하다.1948년4월3일첫봉기의순간으로부터75년의세월이흐르고,또국가원수가명백한국가폭력에대해사과하고20년이지났어도4·3은여전히현재진행형이다.4·3은아직제대로된이름을갖고있지못하다.누구는사건이라하고누구는항쟁이라한다.4·3과정에서수많은희생이있었지만그희생의성격을무엇으로바라보고,그희생과피해에대해어떻게보상할지는지금도논란이되고있다.

『틀낭에진실꽃피엄수다』는4·3의진실을전하고,여전히남아있는문제들을살피는책이다.그림으로이야기를전하는‘그래픽노블’처럼『틀낭에진실꽃피엄수다』는보리줄기를사용해만든그림에4·3의결정적인순간들과비극적운명의사람들을소개하는‘그래픽다큐멘터리’다.이수진작가가보리미술로탄생시킨그림들은4·3당시사라져버린사람들과마을들의존재를증언하고,희생된이들의영혼을불러내진실의목소리로위로한다.이수진작가가소재로사용하는보리줄기는4·3때폐허가돼끝내재건되지않은마을들의옛터에서자란것들이다.작가는사라진사람들의혼이그보리줄기에깃들어있다고생각하며작품을만들었다.

산딸나무에진실꽃이피었습니다:틀낭에진실꽃피엄수다

『틀낭에진실꽃피엄수다』는제주가품고있는,반세기이상국가가숨기고억눌러온폭력과야만의역사에관해이야기한다.제주는오래도록변방의섬으로역사의주무대에서떨어져있었지만,해방후이념전쟁에휘말려한국현대사에서가장큰비극의주인공이되었다.‘제주4·3’으로적게잡아도당시제주도전체인구10분의1을넘는,최소3만명에서최대9만명에이르는제주사람들이목숨을잃었다.또한그와중에살아남은이들과그가족들은수십년세월동안‘빨갱이’‘폭도’‘반역자’라는낙인과연좌제등불명예와부당함을참고견뎌야만했다.

제주에는‘속솜허라’라는말이있다.뭍의표준어로‘입다물라’‘아무말도하지말라’라는말이다.수십년세월동안4·3의진실을알리고자한사람들이있었고,그들을사랑하는사람들은행여4·3과같은국가폭력이또다시자행될까두려워‘속솜허라’‘속솜허라’라고말할수밖에없었다.수십년동안국가가강요하는침묵속에서살기위해어쩔수없는말이었다.하지만결국누군가들은끊임없이진실을찾아발굴하고그이야기들을다시세상에더큰목소리로돌려주려했다.많은제주사람들이‘속솜허라’에갇히지않고세상에4·3의진실을알리기위해목소리를높였다.『틀낭에진실꽃피엄수다』역시그런목소리중의하나다.

‘틀낭’은한반도중부이남에많이자라는산딸나무를부르는제주말이다.제주곳곳에산딸나무가많다.제주사람들은어려서부터산딸나무열매를많이먹으며큰다.4·3당시산으로피신간사람들도허기를덜기위해산딸나무열매를먹었다.산딸나무는예수그리스도가매달려죽은십자가를만든나무이고,또꽃받침이지고남은열매는꼭심장같기도하다.그런여러가지뜻을살려‘틀낭에진실꽃피엄수다’라고제목을지었다.‘산딸나무에진실꽃이피었습니다’로곧4·3의진실이마침내피게되었다는기원을담았다.

봄은왔지만…

『틀낭에진실꽃피엄수다』는제주사람들이척박한환경속에서살아가기위해이웃들과이룬공동체적관계인‘궨당’을소개하면서시작한다.이는4·3이라는역사적사건이사람을파괴하고,사람과사람사이를파괴하고,마침내궨당공동체를파괴하는과정이었음을예고한다.

1부‘봄은왔지만’은19세기말제국주의열강이세계각지를식민지로삼고,열강들끼리때로경쟁하고때로협력하며세계를게임판으로만들던과정에서한반도의운명이결정되었던것을앞세워이야기한다.이는1945년8월15일마침내맞이한해방때도마찬가지여서,한반도사람들의의사와상관없이38도선을경계로소련과미국이각각분할통치하는상황에맞닥뜨린다.제주에서미군정은해방자가아니었다.1947년3월1일,삼일절기념집회에서미군정은집회를불허하고,이에항의하는시위대를강경진압했다.이과정에서6명이죽고8명이중상을입었다.대부분의사람들이등뒤에서총을맞은것으로판명되면서(도망가는사람들을조준사격했다는말이다)제주사람들은3월10일총파업으로대응했다.일손을멈추고감자를쪄서나눠먹는평화로운파업이었지만미군정과경찰은여전히강경하게대응했다.제주도는‘빨갱이섬’이라는누명을썼고,‘반공투사’라자처하는서북청년단까지육지에서건너와갈등을키웠다.수많은사람들이체포되고고문당하고몇몇이죽음에이르렀다.제주사람들의억울함과분노가차곡차곡쌓여갔다.

꽃이파리가지는것처럼보입니다

1948년4월3일,섬곳곳에서싹터자라던민중의분노가마침내제주도전역에서붉은횃불로타올랐다.“경찰과서북청년단의탄압에대한저항!”“단독선거·단독정부반대,조국의통일독립!”4월3일봉기에서외친구호들은4·3의성격을잘말해준다.한편으로4·3은미군정과경찰이자행하던국가의폭력으로부터벗어나고자한열망이었다.또한편4·3은곧예정된남한만의5·10단독총선거를앞두고이에항의하는,반으로쪼개진나라대신온전한통일국가에서살고싶은제주사람들의염원이담긴제2의독립운동이었다.

4·3이일어나자국가는무자비하고끔찍한폭력으로대응했다.국제연합(UN)이금지시킨초토화작전이광범위하게실행되었다.마을이불타고,무장대가아닌사람들―특히어린아이들과노인들까지가리지않고학살됐다.여자들은성폭행을당하고학살되거나끌려가거나했다.자세히적을수없을정도로끔찍한일들이태연하게벌어졌다.토벌대는사람들을파괴한것만이아니라사람들사이를파괴했다.나대신죽을사람을지목하게하는‘손가락총’은제주도를갈가리찢어분열시켰다.137개의마을이폐허가됐고,그중많은마을은아직까지폐허로남아‘잃어버린마을’이되었다.희생자의수는아직도논쟁중이다.적게는3만,많이는9만명이라한다.희생자의90%가토벌대,국가가자행한폭력의희생자들이었다.아이라고봐주지않았고,종교인이라고넘어가지않았다.열여섯명의스님이희생됐고,서른다섯곳의절이불태워졌다.오래도록제주사람들의믿음의장소이자제주불교의상징이었던관음사역시불태워지고말았다.

가해자들은뻔뻔하고당당했다.미군정의진압책임자로스웰브라운대령은“(4·3의)원인에는흥미가없다.나의사명은오직진압뿐!”이라고공언했고,토벌대지휘관이었던박진경대령도“제주폭동사건을진압하기위해서라면제주도민30만명을다희생시켜도괜찮다.”라고말하였다.하수인뿐만아니라단독정부수립이후초대대통령이된이승만도가차없었다.그는국무회의에서“지방토색반도및절도등악당을가혹한방법으로탄압하라.”라고지시했다.
국가폭력은잔인하고끈질겼다.1950년6월한국전쟁이발발하자‘예비검속’이라는명분으로또다시학살이자행됐다.죄를지을가능성이있을것같은사람을미리찾아내조치를취한것인데,사실상빨갱이가될가능성이조금만있어도미리찾아내가두고죽이는게목적이었다.

학살과정을목격한사람들은평생정신적,육체적고통에시달렸다.지금은아름다운풍광을자랑하는대표적여행지인정방폭포나성산포터진목등제주도곳곳에학살과희생의기억이남았다.정방폭포의학살을목격한생존자는사람들의손과손을묶은뒤총을쏘아죽이거나죽창으로찔러죽인후아득한폭포아래로떨어뜨렸다고했다.증언자는그장면을이렇게아프게기억한다.“사람들이팔랑팔랑떨어지는것이꼭꽃이파리가지는것처럼보입디다.”

까마귀도모르는제사

제주말에‘가메기모르는식게’라는말이있다.까마귀도모르는제사,라는말이다.언제죽었는지도확실하지않고,심지어뼈들이뒤엉켜누가누구인지도모르는죽음이너무많았다.맘놓고이들에대한제사를지낼수도없었다.비밀리에기도를올리고비밀리에제사를지내야했다.슬픔을가슴에묻고지내야했다.살아남은사람들에게는‘연좌제’가기다리고있었다.죽은사람들,혹은감옥에갇혔다돌아온사람들의가족들에게는성공할수있는사다리가치워져버렸다.‘속솜허라’,입다물라,아무말도하지마라,라는말만남았다.

그래도사람들은역사의진실을전하기위해노력했다.생존자들의증언을수집하고사건의진상을추적하며4·3이우리역사에서제자리를찾을수있도록목소리를높였다.국가권력이여전히침묵을강요하는데도희생자들의죽음의흔적을수습하고,발굴된진실들을세상에더큰목소리로돌려줬다.김대중대통령시절이던2001년1월,4·3이후최초로「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제정,공포됐다.그리고2003년10월31일,노무현대통령이제주도민들에게4·3에대해정부차원의공식사과를했다.대한민국국가원수로서최초의사과였다.2021년‘4·3특별법전부개정안’이국회를통과하면서,4·3전개과정에서빚어진인명피해등에대해국가차원의피해보상을할수있는근거가최초로마련되었다.또영문도모른채군경에끌려가억울한옥살이를했던4·3수형인들의명예도회복할수있게됐다.제주섬은이제4·3을통해배운평화와인권의가치를세계에전하기위해목소리를내고있다.4·3의진실과정면으로마주하는것이야말로진정한화해와상생을실현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