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긍
지은이:오긍(吳兢)
당고종3년(670년)변주?州준의浚儀(지금의허난성카이펑)출신으로어려서부터경사經史에조예가깊었다.무측천대에위원충魏元忠,주경칙朱敬則의추천으로사관이되어국사편수에참여했고이후중종,예종,현종을거치며4대동안거의40년가까이사관으로재직하며직필과직간으로명성을날렸다.오긍은내직사관으로재직할때나외직지방관으로근무할때를막론하고역사편찬임무를소홀히하지않았고,임금의잘못과국가의오류를바로잡으며‘동호직필董狐直筆’의전통을계승했다.정사와개인기록을통틀어모두24종941권의역사저작에참여했고,이중단독으로저작한것이16종216권에이른다.천보8년(749)향년80세로자택에서세상을떠났다.
옮긴이:정연우
1932년,충청남도부여생
1956년,성균관대학교국어국문학과졸업
1974년,민족문화추진회국역연수원수료
1997년,공립고등학교교사정년퇴임
2014년,옛어른들의이야기문집<설_이야기>번역발간.
=권1=
*제1장군도(君道)
임금이해야할도리를밝히다
*제2장정체(政?)
정사政事의요체와방도를말하다
=권2=
*제3장임현(任賢)
어진신하에게직무를맡기다
*제4장구간(求諫)
신하가간쟁諫諍하여주기를바라다
*제5장납간(納諫),직간(直諫)
신하의간언을받아들이다
(맞대면하여간하다)
=권3=
*제6장군신감계(君臣鑒戒)
군신이서로비추어보며경계하다
*제7장택관(擇官)
관리에임용할만한인재를간택하다
*제8장봉건(封建)
여러창업의공신들을공후에봉록하다
=권4=
*제9장태자제왕정분(太子諸王定分)
태자와여러왕자들의직위신분을한정하다
*제10장존경사부(尊敬師傅)
태자는사부를존경하다
*제11장교계태자제왕(?戒太子諸王)
태자와여러왕자들을가르치고훈계하다
*제12장규간태자(規諫太子)
태자에게바르게간언하다
=권5=
*제13장인의(仁義)
학인에게인의를권면하다
*제14장충의(忠義)
신하에게충의를권면하다
*제15장효우(孝友)
백성에게효도와우애를권면하다
*제16장공평(公平)
치우침없이공정하게행하다
*제17장성신(誠信)
정성스럽고참된마음으로행하다
=권6=
*제18장검약(檢約)
검소하고절약은생활의기본
*제19장겸양(謙讓)
겸손과사양은예의禮儀의기본이다
*제20장인측(仁惻)
불상히여기는마음을품다
*제21장신소호(愼所好)
좋아하는것을삼가다
*제22장신언어(愼言語)
말을삼가다
*제23장두참사(杜讒邪)
참소와간사를막다
*제24장회과(悔過)
잘못을뉘우치다
*제25장사종(奢?)
사치를마음대로함을금하다
*제26장탐비(貪鄙)
탐내는비루함을멀리하다
=권7=
*제27장숭유학(崇儒學)
유학을숭상하다
*제28장문사(文史)
인문과사학을중흥하다
*제29장예악(禮樂)
예와음악을장려하다
=권8=
*제30장무농(務農)
농사에힘쓰게하다
*제31장형법(刑法)
형법을공정히적용하다
*제32장사령(赦令)
사면하라는영을내리다
*제33장공헌(貢賦)
공물을바치고,부세를거두다
*제34장변흥망(辨興亡)
흥망의원리를판별하다
=권9=
*제35장정벌(征伐)
군사를내어토벌하다
*제36장안변(安?)
변방을안정시키다
=권10=
*제37장행행(行幸)
임금이지방을순행하다
*제38장전렵(?獵)
임금이사냥을나가다
*제39장재변과길상(災變과吉祥)
재변과길상을따지다
*제40장신종(愼終)
초심으로시종여일하게하다
당태종은신하의간쟁·간언을얻기위해먼저진언하기쉬운환경을조성하였다.
태종자신의용모가삼엄해서신하들이기가죽는다는사실을알고는진언자가주눅들지않도록하기위해반드시온화한표정을지어신하의의견을들었다.(구간편)
또관리들을교대로궁중에숙직시켜서,늘가까운곳에그그들의자리를마련해주고함께의론하는중에정치교화의득실을알고자했다.
신하들도이에호응해태종에게자주간언을올렸는데,태종이지나치게시행하는일에대해서도직언을서슴지않았다(납간편),
태종이공주를시집보내는혼수가매우사치스럽다는것까지지적했다.(위징의간언).
태종은줄기차게올라오는신하들의진언과충고를매우기뻐하고,칭찬하였으며,잘못되었음을알면즉시고치거나하던일을당장중지시켰다.
이렇게허심탄회하게마음씀은우리가본받아야될일이아닐수없다
고려,예종임금이‘청연각’에서학사들에게베푼잔치에서,
“천하가태평하고집집마다사람마다넉넉하기만하다면,비록상서로운일이없다해도가히요·순에비길수있을것이지만,백성이넉넉하지못하고이적이침노하여몸과마음이허덕이는마당에,상서로운지초와봉황이나온들걸·주와다를것이있겠는가(但使天下大平,家給人足,雖無祥瑞,可比德於堯舜.若百姓不足,夷狄內侵,縱有芝草鳳凰,何異於桀紂).”라고한《정관정요》의이구절을읊조리며감동하였다고한다.
●정관정요해제
정관정요(貞觀政要)는당나라때에오긍이편찬했다고전하는당태종의언행록이다.
전10권,40편.
제목의「정관」은태종의연호,「정요」란‘정치의요체’라는뜻이다.당태종이신료들과정치에대해서주고받은대화를엮은책으로서예로부터‘제왕학(帝王學)의교과서’로여겨져왔다.당중종때에상정된것과당현종말기에그것을개편한것이있는데,양자를비교하면제4권의내용이서로다르다.현재전해지는것은원나라의과직(戈直)이송나라의구양수나사마광의평을교부해서정리한것을명나라때에발간하여증보된「과직본」과,당나라때에일본에수입된것으로보이는구본(舊本)의두가지가있다.
정관연간은당나라의전성기로중국의역사중에서도손꼽히는시기였기에,후대에서는이시기를칭송하여정관의치라불렀으며,중국이외에도한국과일본,여진,서하에전해져각국언어로번역되었다.한국의고려와조선에서는과거시험의필수학습도서였으며일본에서는지도층의필독서였다.군주의도리,인재등용,간언의중요성,도덕의표준,학술과문화,형벌과부역,조세등이당나라초기의정치와사회를이해하는데중요한자료로꼽히지만,당태종을지나치게미화했다는비판도있다.
●편찬배경
《정관정요》의편찬은당나라현종때의오긍에의해이루어졌다.이시기는태종사후40~50년이지난뒤로,측천무후가퇴위하고중종이복위하여,당왕조가재흥한무렵이었다.이전부터역사편찬에종사하여태종시대의치적을잘알고있었던오긍은중종의복위를몹시기뻐하고,정관지치라불린당태종시대의모습을올바른정치의표본으로삼고싶다는소원을담아,《정관정요》를지어중종에게바쳤다.그뒤현종시대의재상한휴(韓休)에의해이책은높은평가를얻어,후세의표본이되도록오긍에게명하여다시개편해올리도록했다.이로써《정관정요》가세상에나오게된것이다.
오긍이중종에게처음바쳤던것은중종개인을대상으로한것으로,천자가알아야할「보필편」(輔弼篇)이나「직언간쟁편」(直言諫諍篇)이있었고,현종에게바친것은후세의표본으로삼기위한목적하에태자나제왕에대한경고를담은편으로고쳐지게되었다.
●내용
주된내용은,태종과그를보좌한중신(위징·방현령·두여회·왕규등)45명과의정치문답을통해,정관의치라불리는태평성대를가져온치세의요체를다루고있다.태종이걸출했던것은자신이신하를훈계하고지도하는영명한군주였기때문만이아니라,신하의직언을기꺼이받아들이고항상최선의군주가되어야한다는점을매일자각하며노력했던점에있다는것이《정관정요》의주된내용이다.고대중국에는진나라이래로천자에게충고하고정치의득실에대한의견을말하는간관(諫官)이라는제도가있었는데,당나라때의간관에게는매달200장의용지가지급되어이것을통해간언을올리게했다(당나라이외에도역대왕조모두가이러한간관을설치했으나,태종처럼그충고를적극적으로들어주었던황제는몹시드물었고,천자의노여움을사서좌천되거나살해당하는일도많았다고한다).
《정관정요》에따르면당태종은신하의충고·간언을얻기위해먼저자신에게진언하기쉬운환경을조성하였다.예를들면태종자신의용모가엄하고딱딱하여신하들이겁을먹는다는것을잘알았던태종은진언하는백관들이압도되지않도록반드시온화한얼굴로신하의의견을들었고(구간편)관리들을교대로궁중에숙직시키며,늘가까운곳에그관리의자리를마련해두고정치교화의이해와득실에대해서알고자했다.신하들도이에호응해태종에게잦은간언을올렸는데,태종이지나치게음란하다며직언하거나(납간편),태종의딸을시집보내는과정에서그준비가몹시사치스럽다는것까지지적하였다(위징의간언).태종은줄기차게올라오는신하들의진언과충고를매우기뻐하고아주지당한말이라칭찬하며즉시수정하는등,여느군주들에게서는도저히찾아보기어려운태도를보였다.또한태종은검소,검약을장려하며왕공이하에게신분에맞지않는지출을허락하지않아,백성의재산은풍족해졌다.공경들이태종을위해피서용궁전을짓도록제안해도,태종은비용이너무든다며듣지않았다(태종을보좌한위징등중신들도오늘날각부처의장관에해당하는인물들로사리사욕을채우려면얼마든지그렇게할수있었음에도불구하고,그들의집에제대로된응접실조차없다고까지칭해지는검소한생활을하고있었다).
이러한당태종의국가와만민을위해성의를다한언행은유교정신에서비롯된것이었다고한다.중국에서는유교도덕에기준을두고황제는하늘의뜻을실행하여인자(仁者)의마음으로만백성을어루만져길러야한다는이념이있었고,신하에게도그들이섬기는천자를보필해이상적인성군으로만드는것을책무로여기는생각이있어,천자의정치에결여되거나모자라는부분이없도록자신의몸도돌아보지않고경우에따라서는죽음도각오해야했다.
본서는오랫동안교양인의필독서로서중국에서는당나라당대의헌종,문종,선종뿐아니라,이후의역대왕조의군주,즉송의인종,요의흥종,금의세종,원의쿠빌라이칸,명나라의만력제,청건륭제등이애독하였다.또일본에도헤이안시대에오래된사본이전해져,호조씨·아시카가씨·도쿠가와씨집안등정치중역에있던사람들에게애독되었다.
●한국에서의정관정요
《정관정요》가신라에전래된흔적은없다.한국의기록에서보이는《정관정요》의가장오래된출현기사는《고려사》세가의광종(光宗)원년(950년)봄정월조에,재앙을피하기위해왕이덕을닦아야한다는사천대(司天臺)의권고로광종이《정관정요》를읽었다는기록이며,최승로가성종에게올린시무28조에서《정관정요》를언급하고있다.예종도‘청연각’에서학사들에게베푼잔치에서《정관정요》의“천하가태평하고집집마다사람마다넉넉하기만하다면,비록상서로운일이없다해도가히요,순에비길수있을것이요,백성이넉넉하지못하고이적이쳐들어오는데상서로운지초와봉황이있은들걸,주와다를것이무엇이있겠는가(但使天下大平,家給人足,雖無祥瑞,可比德於堯舜.若百姓不足,夷狄內侵,縱有芝草鳳凰,何異於桀紂).”라는구절을극찬하면서김인존이나김연(金緣)·박경인(朴景仁)및보문관(寶文閣)의학사들에게《정관정요》의주해(註解)를지어올리게하였다는기록이《고려사》예종11년(1116년)12월갑신(25일)조및《고려사절요》에남아있다.고려말의문신박충좌(朴忠佐)는충혜왕과충목왕을상대로《정관정요》를강의하였으며,정당문학(政堂文學)권중화(權仲和)가우왕3년(1377년)10월에우왕에게《정관정요》를강의하였다는기록이있다.공양왕2년(1390년)과3년(1391년)에도《정관정요》를강의하였는데,정몽주에게《정관정요》의서문을강독하게했을때강독관(講讀官)윤소종이“중흥군주로서요순과삼대를모범으로삼아야지당태종은따를것이못된다.”며,《정관정요》대신《대학연의》(大學衍義)를읽을것을권했다는기록이《고려사》에전한다.
조선시대는고려시대와는달리유교정치의기준에서《정관정요》보다《대학연의》가더중시되었는데,그럼에도여전히경연에서《정관정요》는제왕학의주요교재로서채택되어,태조4년(1395년)에《정관정요》를교정해올리게하고,세조는왕자시절에단종의명으로《정관정요》의주해를맡았으며,즉위한뒤에다시집현전교리홍응과한계희를시켜《정관정요》의주석을명하였다.숙종원년(1675년)에승정원(承政院)에명하여《정관정요》를교서감에내려보내활자로간행할것으로명하였고,《정관정요》를경연에서자주읽었던영조는《정관정요》의후서(後序)를짓는가하면정조는자신이즉위한병신년(1776년)이래의《승정원일기》와각관사의《등록(謄錄)》의기록가운데정치와관련된일들을뽑아서《정관정요》나《태평요람》(太平要覽)의예를모방하여정리하여편찬할것을명하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