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난날 기억들

나의 지난날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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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는 1943년, 함경남도 흥남에서 태어났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만 일곱 살이었다.
유엔군의 흥남철수작전이 벌어졌던 그해 12월 어느 날,
나보다 두 살 아래인 여동생과 함께 부모님을 따라 흥남부두에서 미국 상선을 타고 남한의 거제도로 피란을 갔다.

거제도의 피란민 수용소.
추운 겨울철,
벌판에 세워진 수십 개의 미군용 대형 천막 안에서 바닥에 가마니, 판자 등을 깔고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았다.
먹을 것, 입을 것, 약품 등이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벼룩, 이 등을 매개로 발생되는 발진티푸스, 오염된 물로 인한 장티푸스와 이질, 감기, 폐렴 등의 전염병들이 수용소를 휩쓸어 많은 피란민들이 사망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여기저기에서 곡소리가 울려 퍼져 나왔고, 남자들이 들것에 죽은 사람을 싣고 산에 가서 파묻었다.
그 와중에 나의 아버지도 피란민 천막촌에서 돌아가셨고, 나의 여동생도 연초리 냇가의 풀과 나무와 판자와 흙벽돌로 지어진 움막집에서 살다가 모기가 매개된 뇌염에 걸려 많은 피란민 어린이들과 함께 죽었다.
남은 가족은 어머니와 나 둘뿐,
어머니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야전잠바, 바지, 통조림 등을 치마 속에 감춰 입거나 들고, 먼 시골 혹은 부산 등지로 가서 파는 행상을 하였다...
그런 슬프고, 쓰라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83세가 된 지금까지도 ‘거제도’란 말만 들어도 나의 눈엔 금방 눈물이 가득 고인다.
그런데 우연히 6,25 관련 기사들을 검색해 보다가 ‘한국(韓國) 전쟁(戰爭)의 숨은 영웅(英雄) 조지 라워’를 발견했다.
그는 미국인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장진호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혼자 남아 중공군을 향해 엄호사격을 함으로써 위기의 동료 병사들을 살렸다.
그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의 전쟁 실록을 이 책의 ‘제1화’에 담았다.
저자

최선권

1943년, 함경남도 흥남에서 출생,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해인 1950년 12월,
연합군의 〈흥남 철수 작전〉때 일곱 살의 어린 나이로 부모님을 따라 흥남 부두에서 미국 상선을 타고 남한의 거제도로 피란을 갔다.
미군용 대형 천막으로 허허벌판에 급히 세워진 거제도의 피란민 수용소.

겨울철,
추운 그곳에서 바닥에 가마니 등을 깔고, 먹을 것, 입을 것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나, 약품 등이 전연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폐렴 증세를 보인 아버지가 약 한 첩 못 써보고 돌아가셨다.

몇 달 후, 피란민 수용소를 떠나 살게 된, 연초리 냇가의 풀과 나무와 판자와 흙벽돌로 지어진 작은 움막집에서 여동생 선옥이 다른 많은 피란민 어린이들과 함께 뇌염에 걸려 죽었다.
이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옷과 통조림 등을 치마 속에 감춰 입거나 들고, 멀리 부산 등지로 가서 행상을 하는 어머니와 단둘이 어렵게 살고 있다가 1953년 7월 27일, 남북 간 휴전 협정이 이루어져서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중동고등학교 2학년 말기 때인 1961년 2월 10일,
전국 자립경제추진위원회 주최의 전국 고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자립경제건설 방안 논문 모집〉에서 〈자립경제를 위한 생활 태도의 개선〉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고등부 최우수상 (부흥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1966년 7월 23일,
육군에서 병장으로 만기 제대,
1966년 10월 9일, 총무처에서 실시한 5급 을류(현 9급에 해당) 운수직 국가 공무원 공개 경쟁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철도청, 충청북도 제천역 전철원으로 발령이 나서 1967년 1월 6일부터 철도청 소속 공무원이 되었다.
1978년,
중앙선의 능내역 역장 재직 시 대한적십자사의 〈이산 가족 수기 모집〉에 〈차례상 앞의 눈물〉을 응모, 가작으로 입선되었다.
이 〈차례상 앞의 눈물〉은 kBS에서 20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동년 8월 12일, 방영하였다.
2001년 6월 30일,
이문역 역장을 마지막으로 철도공무원을 정년퇴직하였다. (옥조근정훈장 수상)
이후,
2001년 9월 1일부터 학원 차량 운전 1년, 아파트 경비원 8년, 학교 경비원 5년 등을 하다가 2020년 8월 31일, 직장 생활에서 완전 은퇴하였다.

저서 : 〈열차에서 웃고 울고〉, 〈내 삶의 흔적들〉,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의 지난날 기억들〉

목차

ㆍ제01화 한국(韓國) 전쟁(戰爭)의 숨은 영웅(英雄) 조지 라워
ㆍ제02화 남(南), 북한(北韓) 포로교환(捕虜 交換)
ㆍ제03화 아이젠하워 미국대통령의 한국 방문
ㆍ제04화 담배 끊는 재미와 꽝 안 닿는 재미
ㆍ제05화 신동파 선수와의 잊지 못할 만남
ㆍ제06화 어려웠던 시절의 한국군
ㆍ제07화 다시 듣게 된 30개월 전의 그 노래
ㆍ제08화 돌아갈 집이 없었던 안(安) 일병(一兵)
ㆍ제09화 “축구(蹴球)는 과격(過激)한 운동(運動)입니다.”
ㆍ제10화 남 잘되는 것을 싫어하는 세상인심(世上人心)
ㆍ제11화 떠나간 신입(新入) 철도원(鐵道員)
ㆍ제12화 연탄(煉炭)가스가 앗아간 젊은 생명 (生命)
ㆍ제13화 의리(義理)와 도리(道理)가 꽃피던 시절(時節)
ㆍ제14화 병문안(病問安)에서 만난 뜻밖의 기회(機會)
ㆍ제15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結果)
ㆍ제16화 위기(危機)를 면(免)한 두 이야기
ㆍ제17화 결과(結果)없이 끝난 폭로(暴露)
ㆍ제18화 승차권(乘車券) 예매(豫買) 전쟁(戰爭)
ㆍ제19화 신문과 주간지(週刊紙)에 실리지 못한 원고(原稿)
ㆍ제20화 직장(職場) 일에 2% 모자라는 직원(職員)
ㆍ제21화 담배 한 가치 때문에 일어난 사건(事件)
ㆍ제22화 사람 공해(公害)
ㆍ제23화 나의 목소리
ㆍ제24화 때를 놓친 여름 휴가
ㆍ제25화 그녀가 흔들리는 이유
ㆍ제26화 어떤 계기(契機)
ㆍ제27화 자장면(炸醬麵) 한 그릇의 보답(報答)
ㆍ제28화 들불처럼 번진 민주화(民主化) 시위(示威)
ㆍ제29화 10원짜리 동전(銅錢) 확보에 애를 먹던 철도역(鐵道驛)
ㆍ제30화 노래자랑에 1등을 준 까닭
ㆍ제31화 등수(等數)를 정할 때는 객관적(客觀的)인 심사(審査)를
ㆍ제32화 무너지는 새 아파트의 꿈
ㆍ제33화 희망(希望)이 보이는 돌출(突出) 결정(決定)
ㆍ제34화 담배꽁초에서 시작된 이웃과의 악연(惡緣)
ㆍ제35화 두 번이나 퇴짜맞은 미술교습소(美術敎習所) 이름
ㆍ제36화 나를 의지(依支)했던 그녀
ㆍ제37화 가정(家庭)을 버린 직원(職員)
ㆍ제38화 남을 배려(配慮)하는 마음
ㆍ제39화 변(變)해버린 국수역(菊秀驛)의 주위 환경(周圍 環境)
ㆍ제40화 신고(申告)로 시정(是正)된 두 가지의 일
ㆍ제41화 향나무에 제초제(除草劑)를 부운 역무원(驛務員)
ㆍ제42화 10cm 때문에 불인가(不認可)된 미술교습소(美術敎習所)
ㆍ제43화 미궁(迷宮)으로 끝난 직원 가족 무임승차권 분실 사건
ㆍ제44화 안전(安全)이 제일이라는 시어머니의 본심(本心)
ㆍ제45화 학부모(學父母)가 직접 해결(解決)한 학폭사건(學暴事件)
ㆍ제46화 1년 넘게 휘경역(徽慶驛)이었던 안내방송(案內放送)
ㆍ제47화 분쟁(紛爭)의 필수조건(必須條件)
ㆍ제48화 소리 없이 나를 격려(激勵)해 준 상사(上司)
ㆍ제49화 하수구(下水口) 덮개가 수해를 키웠다
ㆍ제50화 오르지 않은 주가(株價)
ㆍ제51화 따뜻한 마음
ㆍ제52화 오해(誤解)를 살만한 행동(行動)
ㆍ제53화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
ㆍ제54화 보람 있는 대무(代務)
ㆍ제55화 전기장판(電氣壯版) 연기(煙氣)의 경고(警告)
ㆍ제56화 친화적(親和的)인 대인관계(對人關係)
ㆍ제57화 변(變)해가는 세상(世上)에 적응(適應)하려면
ㆍ제58화 비겁(卑怯)한 노인(老人)
ㆍ제59화 한일교회(韓一敎會) 친목(親睦) 마당 이야기
ㆍ제60화 나의 소망(所望)
ㆍ제61화 〔단편소설〕 그날의 자장면(炸醬麵)
ㆍ제62화 〔단편소설〕 보복(報復)보다 가정(家庭)을 지키기 위해
ㆍ제63화 〔단편소설〕 보복(報復) 결혼식(結婚式)
ㆍ제64화 〔단편소설〕 이런 결혼(結婚)
ㆍ제65화 〔단편소설〕 똑, 똑!
ㆍ제66화 〔단편소설〕 피격(被擊)과 반격(反擊)
ㆍ제67화 〔단편소설〕 내 마음속의 여인(女人)
ㆍ제68화 거제(巨濟) 포로수용소(捕虜收容所)
ㆍ〔사진으로 보는〕 거제포로수용소

출판사 서평

▶6.25 전쟁이 할퀴고 갔던 유년 시절,
영화 〈국제시장〉처럼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흥남 부두에서 피난 배를 탔다.
그리고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를 거쳐 서울에 정착했다.
어릴 때 책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으나, 먹고살기에 힘든 시절이라 엄마의 반대로 책 읽기와 글쓰기가 포기되었다.
글쟁이는 굶어 죽기 딱 좋은 직업이라는 인식이 그 당시 사회 풍조였다.
결국 안정적인 직장으로서 철도원이 되었고, 퇴직 후에서야 이야기꾼으로서의 한풀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옛날 못다 한 이야기와 잊지 못할 추억들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