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것들의 이름 불러보면 (박주용 시집 | 양장본 Hardcover)

지는 것들의 이름 불러보면 (박주용 시집 | 양장본 Hardcover)

$10.00
Description
지는 것들의 이름 불러본다

지는 것들은 멍으로 지는 것이어서 그림자도 피멍 들어 있다 멍은 스스로를 색으로 떨구어 목덜미 물린 목련은 하양 지고, 철 내내 심장 터진 철쭉은 빨강 진다 장독대 옹기종기 피어있는 작은 이끼도 하늘의 크기는 같아 파랑 진다

이름 부를 때마다 짙어지는 멍, 새기는 일보다 지우는 게 힘들 때가 있다

지는 것들은 한세상을 지우며 지는 것이어서 화장 지운 민낯에도 멍의 흔적 남아 있다 화장터 옆 오동꽃은 딸랑딸랑 보라 물결, 상여길 이팝꽃은 나풀나풀 하양 물결, 이승 지는 것들의 행렬에는 멍의 물결 흐르고 있어 손수건이 촉촉하다

지는 것들의 이름 불러보면 멍은 더욱 눈가를 맴도는 것이어서 세상은 지독하게 습하다.
- 시 〈멍〉 전문
저자

박주용

박주용시인은충북옥천청산에서출생했고,충남대국어국문학과와건양대교육대학원을졸업했다.2014년매일신문신춘문예로등단(시부문)했고,시집으로는시집『점자,그녀가환하다』가있다.현재화요문학동인,시산맥특별회원,계룡문인협회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
"지는것들은멍으로지는것이어서그림자도피멍들어있다","이름부를때마다짙어지는멍,새기는일보다지우는게힘들때가많다","시퍼렇게멍들어도어쩔거여허옇게살아야지"라는박주용시인은'멍의시인'이며,그의두번째시집인{지는것들의이름불러보면}은'멍의사회학'을서정적인아름다움으로노래한다.삶은멍이고,상처이다."장다리꽃시리고","쉿,우주의꽃봉우리열반중이다.

목차

시인의말 4

1부

붉은수수 12
참깨를털며 13
뻐꾸기가정오의문을열때 14
내삶에무꽃이피었다하여텃밭에나가보니 15
달의화분 16
꽃불신호등 18
꽃의계절 19
금낭화 20
칸나 21
묘목을키우며 22
압화전을보며 24
감꽃 25
시월의은행나무 26
오동꽃 27
꽃신 28
나무 29
감성의집 30

2부

묵묘 32
작정한다는것 33
동자승 34
터널을지나며 35
잠 36
묵언수행 37
누군가를부를때 38
상생 40
세상살이 41
무릎을굽다 42
개가죽나무 44
멍 45
봄이접히다 46
회개 47
서랍을열며 48
올빼미 49
코끼리둥구나무 50

3부

카푸치노 54
사량도 55
유월을만나다 56
만수산횟집 58
삼월 61
덕종이 62
지심도 63
오타루에서 64
황산벌에서 66
사랑·1 67
자전거를타며 68
사계고택 70
무상사가는길 71
사랑·2 72
짝사랑 73
변기를교체하며 74
팥죽을먹으며 76

4부

쌍둥이별자리 78
개화·1 79
나의풍금씨 80
스크래치 82
개화·2 83
콩의꿈 84
수목장 86
보내기번트 87
빨래풍경 88
할아버지와누에 89
청산장터 90
소래갯재아이들에게 92
젓가락의감정 96
어머니의연못 98
시골집 100
고백 102

해설목숨있는약한것들에대한
애정과연민양애경 104

출판사 서평

시〈멍〉은죽음을제재로한다.시인은지는꽃에서부터죽음에대한사색을시작한다.꽃은지상의생명중가장화사한것이기때문이다.며칠또는몇시간동안눈부셨던꽃은물기가가시기시작하면서멍이들고마침내는땅에떨어져목숨을마치게된다.물론시인은여기서꽃에대한이야기만하는것은아니다.이시에서꽃은태어나존재하는모든생명을상징한다.존재의성격은모두다르기에죽음을맞는모습도모두다르다.‘목련은하양지고,철쭉은빨강지고,이끼는파랑진다’.
꽃이든,사람이든,나의부모와혈육이든간에죽음앞에선모든존재가평등해진다.죽는다는것은의미있는한생애가사라지는일이기에,이시인이노래했듯,‘지는것들은한세상을지우며지는’것이다.여기에이르러독자는착잡해지며많은생각을하게된다.‘민낯에멍의흔적남아있’다는것은,하나의존재가죽음을맞기까지겪은고통스러운과정의흔적을말한다.‘멍’은이시집에서출현빈도가매우높은시어이다.‘상처’,‘고통’의뜻을가지고있는이‘멍’은생명있는것들이죽음으로향해가는과정을상징한다.

3연에서장례행렬의목적지인화장터와상여길옆에서흐드러지게피고지는꽃과아울러,사랑하는이와영영이별하는사람들의상처와슬픔이드러난다.‘지는것들의이름을불러보면’,시인이노래하듯‘세상은지독히습한’곳이되는것이다.
상처와죽음을다룬이계열의작품들로시〈꽃불신호등〉,〈봄이접히다〉,〈어머니의연못〉,〈할아버지와누에〉등이있다.선하고아름다운사람들과의인연의끝을노래한이시들은여리고절절하고아름다우며,인생이주는깨달음이담겨있다.
촉촉한감성의위시들과달리다소건조한어조로장례를다룬〈보내기번트〉는박주용시인의다른시들과시어의느낌이많이다르다.

야구방망이대신
꽃한송이들고들어선빈소
촛불이툭툭허리굽히며모션취하는순간
코끝찡하게어루만지며보내오는감독의사인
타석에들어서있는슬픔의볼카운트는
투스트라이크쓰리볼
문상끝낸사람들은저희끼리모여
베이스에진루해있는
주자의트레이드설에대해이야기하고있고
삼루쯤에서홈으로내달릴준비하는
영정속사내주위로
국화꽃하얗게피어나고있는찰나
지상의마지막호흡을모아
번트를댄다

사람보내는일,사람이하는일이었다.
-시〈보내기번트〉전문

장례식장에는가족과친족,그리고직장과관련된사람들이나거래처사람들등고인과여러갈래의인연으로만난사람들이모인다.고인과의감정적거리가저마다다르기마련이다.애절하게우는사람이있는가하면봉투를전달하는책무를마치고홀가분해진사람도있다.야구게임과장례의식을나란히놓은이시는객관적시점에서바라본고인과의이별을그렸다.그렇다고해서이시가죽음을희화적으로다룬것은아니다.고인은생리적으로는죽음이선고되었지만사회적으로는아직죽은것이아니다.장례식장에그를알던사람들이모여서그와의여러추억을회고하면서이별을완성했을때,즉고인을저세상으로고이보내주었을때죽음이완성된다.장례란결국‘사람이하는,사람을보내는일’이라는것이다.죽음에대한이러한해석에서는일종의철학적여유가풍긴다.삶과죽음에대해잘알게된나이의연륜있는사람에게만허락되는여유라고할까.
그리하여마침내시〈묵묘〉에이르면,시인은죽음을생명의종말이아니라,그자체로완성된우주의한존재라고해석하게된다.

알몸은봉긋했던봉분에밋밋한평지하나얹기까지수억의구름삼켰을터,절정의끝자락에잠자리한마리평온하게올리기까지수만의소지올렸을터

자작나무등걸도스스로의생각주저앉히고흘러내려시나브로이승지고있다

주저앉은것들,시간에깎이고다듬어져모난것이없다흘러내린것들,열두구비의생각도모자라웅덩이파놓고동안거들고있다

얼마나둥근묵언수행이기에가시나무도저렇게고요할수있을까

쉿,우주의꽃봉오리열반중이다.
-시〈묵묘〉전문

‘묵묘’란오래관리가되지않아둔덕인지무덤인지도구별이잘안되는상태가된무덤을말한다.봉긋했던봉분이평지에가까워지기까지오랜세월이지나갔다.그안에누운알몸의사람은이미골격도정념도다사라져버린상태가되었을것이다.버려지고잊혀진무덤이라고생각하면안쓰럽지만,박주용시인은이묵묘를다르게해석한다.수십수백년의‘묵언수행’을거친수행자인무덤의주인은,누구의자식누구의어버이어디의누구라는모든제한을넘어서서,‘우주의꽃봉오리로열반에든’초월적존재가되었다는것이다.
이렇게생각해보면어버이와자식,사랑으로맺어진인연들과그인연의끊어짐으로인한비탄,아름답고여린생명을가진것들이멍들고시들고죽어가는것을보는애달픔같은삶의고통도,우주의정상적인순환의한부분으로여기고의연해질수있을것같다.
여기까지철학적사색을계속해온시인은마침내생에대한다음과같은태도에도달하게된다.

시퍼렇게멍들어도어쩔거여허옇게살아야지

장다리꽃,시리다.
-시〈내삶에무꽃이피었다하여텃밭에나가보니〉전문

1행짜리2연으로이루어진이짧은시에시인이하려고하는말이요약되어있는듯하다.‘시퍼렇게멍드는삶이계속되더라도허옇게살아내야한다’는말이다.차가운밭에서노랗게피어나는장다리꽃이햇볕아래시리도록빛나보이는것은그러한삶의긍정적인의지를보여주기때문이다.고통스러워도,죽음이예비되어있어도,현재의삶에서강렬하게살아내는것이생의목적이되어야한다.이것이생에대한박주용시인의인식인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