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의 밑바닥 (이선희 시집 | 양장본 Hardcover)

소금의 밑바닥 (이선희 시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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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소금을 녹이니/ 바닥에 가라앉은 뻘이 보인다/ 순백색 소금의 몸에 뻘이 들어있었다니/ 짜디짠 정신으로/ 까칠하게 각을 세우고/ 세상의 간을 맞추던/ 그 정신의 기둥이 뻘이었을까// 뻘을 품고/ 더 단단한 결정이 되어갔을 소금은/ 한번도 뻘을 인식하지 못하고 평생을 살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뻘과의 관계를 조금은 부끄러워했을지도 모른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뻘처럼/ 어느 날 치매 병동에서 본 얌전하고 곱던 할머니/ 세상의 온갖 욕을 종일 읊조리고 있었는데// 내가 녹아버렸을 때/ 나를 지탱하던 그 무엇의 모습이/ 문득 궁금하고 두려워지는 것이다/
----이선희 시집 {소금의 밑바닥}에서
저자

이선희

이선희시인은충남공주에서출생했고,2007년{시와경계}로등단했으며,첫시집{우린서로난간이다}(2014년세종도서선정)를출간한바가있다.
이선희시인은상징주의자이며,은유적인기법을매우아름답고탁월하게사용하는시인이라고할수가있다.이선희시인의두번째시집인{소금의밑바닥}은각각의시작품이만들어낸시집이아니라서로다른작품들이유기적으로연결고리를형성하여빚어낸소중한의식의결과라할수있다.또한시집의출발은자서에서시작해서자서로결말을짓는다.그리고익숙한것에서더익숙한것으로변형을추적하는단독자의길을걸어오면서이선희만의시세계를구축하고있음을감지할수있다.

목차

시인의말

허공만들이받다
자진해서부러지던뿔

언제부턴가속으로각을만들어
자꾸무너지려는나를지탱시키네

시는나의뿔세상에각을세우네

2020년4월
이선희

출판사 서평

이선희시인은상징주의자이며,은유적인기법을매우아름답고탁월하게사용하는시인이라고할수가있다.기호는사물을지시하고,상징은인간의정신을지시한다.은유는할머니(어머니)를뻘로표현하는것처럼유사성법칙에의한최고급의수사법이며,이은유적인기법을통해서아주일상적인것이낯선것으로변용되며,그결과,전인미답의새로운세계가열리기도한다.“소금을녹이니/바닥에가라앉은뻘이”보이고,이순백의소금에뻘이들어있었다는것은이선희시인의마비된의식에충격을가한다.천일염을생산하는염전의토대가마사분과점토가혼합된뻘밭이었던것이고,따라서소금의결정체에는어느정도의불순물(뻘)이섞여있을수밖에없었던것이다.이자그마한놀라움과충격은“짜디짠정신으로/까칠하게각을세우고/세상의간을맞추던/그정신의기둥이뻘이었을까”라는역사철학적인인식으로발전을하게된다.그렇다.짜디짠정신으로까칠하게각을세우고세상의간을맞추던그정신의기둥이뻘이었던것이지만,그러나우리는그사실을전혀인식하지못하고한평생을살아왔던것인지도모른다.아니,사실은,좀더솔직하게고백한다면,자기자신의부모님과집안의형편을숨긴채소위‘성공신화’를연출해낸어느유명인사처럼“어쩌면뻘과의관계를조금은부끄러워”했고,또,그것을숨기고싶었던것인지도모른다
소금에서뻘을발견하고그충격으로뻘과나와의관계를밝힌첫번째반전이후,제3연과제4연에서는두번째의반전이일어난다.소금과뻘의관계가나와어머니(할머니)의관계로확대되며,최고급의인식의제전이펼쳐지게된것이다.“어느날치매병동에서본얌전하고곱던할머니”는“밑바닥에가라앉은뻘”이된것이고,그불순물답게“세상의온갖욕을종일읊조리고”있었던것이다.온몸으로,온몸으로모진불볕과바람을견디며지극정성으로가르쳤던아들과딸들이버린어머니,천하제일의영양분이다빠져나간불순물의신세일수밖에없는어머니----.그렇다,우리는모두가다같이영양만점의소금으로왔다가더없이더럽고추한불순물(뻘)로돌아가게되어있는것이다.“내가녹아버렸을때/나를지탱하던그무엇의모습”은더이상궁금할것도없고,이미우리가태어나기도이전에우리들의운명은결정되어있었던것이다.
이선희시인의[소금의밑바닥]은소금과뻘의관계를딸과어머니의관계로변주시킨인간존재론이며,그의‘상징주의시학’의결정체라고할수가있다.어머니는소금이빠져나간뻘이되고,딸은뻘을숨긴(품은)소금이된다.어머니는사용가치와교환가치를상실한뻘이되고,딸은사용가치와교환가치를지닌소금이된다.하지만,그러나인간과비인간,또는상품과불량품의관계는상호대립적인관계가아니라근본적인관계인것이다.어머니와딸도하나이고,소금과불순물도하나이며,우리는모두가다같이생물학적으로한가족이었던것이다.
우리는어디에서와서어디로가는가?뻘밭에서태어나뻘밭으로돌아가는것이다.소금은어머니의초상(상징)이며,딸의초상이고,우리모두의초상인것이다.우리는그모든것을다주고,더러는아들과딸들을향해욕설도퍼부어대며,또다시뻘밭으로돌아가야할존재들이었던것이다.

육중한장롱이쓰러졌다/굳건하게안방을지키던그가/아파트공터에아무렇게나뒤집혀있다//쓸모를다했다는표시로노란딱지도붙었다/누군가그를두드려본다뒤집어본다//목장갑낀손이이리저리쓰다듬는다/순간그가번쩍빛을발한다/폐품딱지붙은장롱어딘가로실려가며//마지막한소식전한다/덜컹!//세상참좋아져서/막바지로치닫던관계도/끝이다싶던상황도//덜컹덜컹/다시살아나기도했다.
-「덜컹」전문

이선희는시를쓰는데있어참으로다재다능하다.시의내용도그렇지만시를끌고가는힘이라든가주제의식을맺는방법에서도남다르다.아마도이선희가마주하는일상의모든대상들이시로보이거나시를쓸수밖에없게만드는촉매의덫에빠지게하는지도모른다.아니면그가취사선택을할수있는여지도없이“덜컹”,경계를넘어시로빠르게접속되었을법도하다.“털컹”이라는시도그렇게만들어진예가아닌가싶다.“덜컹”이라는음악적이미지에서“마지막한소식”에가슴을쓸어내리는“덜컹”으로가역을함으로써“다시살아나”는이미지로이접시키고있다.이러한데에는아파트공터에버려진장롱을폐품수거하는사람이어딘가로싣고가는일상의모습에서기인되고있음을알수있다.
경전은일상적인말과구별되는점에서시말과다르지않다.경전이구술로전해지다문자로정착되기까지의과정도시와별반차이가없다.이선희에게경전은“물이가득한논”에“한들한들붓을”갈기며경전의깨우침을위한“박히는글자들”(「계절의경전」)로묘사가된다.글이문장이라면이선희가시로드러내는경전역시자아와대상사이의간극을좁혀주는시라할수있다.그에게경전은남을위한것이아닌오직화자에서타자를꿰뚫어내는진실한자아에귀착되어있는것이다.그래서경전을통해자서를넓혀궁극적으로시의심급을확장시키고있다하겠다.

자신을조이려애쓰다마모된것인지
조여도조여도헛도는마찰력
암나사의나사산이무너지는순간
척추에박힌못이헐거워진것인지
-「나사조이기」부분

도시의긴건널목을꿈틀꿈틀기어가는지렁이
건장한어깨와날씬한정강이사이에서
육중한보행자의구둣발사이에서아슬아슬하다
-「지렁이건널목」부분

작품「나사조이기」에서보이듯헐거워지고마모되는나사의속성을경전의문장처럼빗대어잘내면화시켜내거나“육중한보행자의구둣발사이에서아슬아슬”하게“긴건널목을꿈틀꿈틀기어가는지렁이”를사실적으로드러낸「지렁이건널목」또한시멘트바닥을기어가는지렁이의만행이자천축을향한오체투지가빚어낸아슬한경전에다름이아니다.이러한양상은“순순히쏟아지는깨”를보며“소박하게침묵으로익어”오면서수난과축복을받은계절을통해“참으로이룩된경전”이라고파악해내는「깨를털며」에서도나타난다.이외에도“실직”이라는일반적인대상에서둥치가잘려나간가로수플라타너스를통해“발을빼지못”하거나“간격을조절하기위한구조조정”(「실직」)이라는극단적인표현으로“실직”에대한상황을더부각시켜내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