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을 위하여 (박방희 시집 | 양장본 Hardcover)

생활을 위하여 (박방희 시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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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박방희의 시 가운데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대개 길이가 짧고 이미지가 선명한 특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비행기가 하늘에 줄 하나 쳐 놓고 갑니다/ 허기진 낮달이 그 줄을 간신히 넘어 갑니다”(「낮달」)라는 시를 보자. 이 작품은 마치 무채색 배경의 캔버스에 비행운과 낮달이 그려진 단정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라는 동양의 시화상합론(詩畵相合論)이나, “시가 말하는 그림이라면, 그림은 말 없는 시다.”라고 했던 고대 그리스 서정시인 시모니데스의 말은 시와 그림의 친연성을 드러내는데, 박방희의 시 세계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이미지의 무진장이다. 시에서의 이미지란 세상을 모사하거나 시인의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 일조하거니와, 박방히 시의 이미지는 상처 입어 훼손된 세상을 치유하는 자연을 닮아 있다.

미루나무 식당에는 미루나무가 있다/ 그 아래 개울이 있고/ 미루나무 우듬지로도/ 한 줄기 푸른 강이 흘러/ 징검돌로 놓인 까치집과/ 오가는 사람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며/ 깍, 깍, 호객하는 까치가 있다/ 미루나무 식당에는/ 소주 백세주 동동주 산머루주에/ 요강 뚫는 복분자주/ 자주 몽롱해지는 안개주/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 파전에/ 매미소리로 무친 도토리 묵채/ 개울물 소리로 다갈다갈 볶은/ 닭찜이 나온다/ 저녁이면 배고픈 별들 모여드는/ 미루나무 식당에는 / 언제든 따르릉 전화가 있고/ 불 켜진 간판의 그림 닭이/ 낮에 죽은 닭들을 대신해 한 번씩 / 꼬끼오! 하며, 운다
-「미루나무 식당」 전문
저자

박방희

박방희시인은1946년성주에서태어났고,1985년부터무크지《일꾼의땅》《민의》《실천문학》등에시를발표하며등단.시집『불빛하나』,『세상은잘도간다』,『정신은밝다』,『복사꽃과잠자다』,『나무다비』,『사람꽃』,『허공도짚을게있다』와시조집『너무큰의자』,『붉은장미』,『시옷씨이야기』,현대시조100인선『꽃에집중하다』외『참새의한자공부』,『참좋은풍경』,『판다와사자』등여러권의동시집이있다.방정환문학상,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한국아동문학상,(사)한국시조시인협회상(신인상),금복문화상(문학부문),유심작품상(시조부문)등을수상하였다.
박방희시인의{생활을위하여}라는시집은‘무위자연의삶’을노래한시집이며,‘입신入神의경지’오른시인의역작力作이라고할수가있다.“조실스님방/댓돌위에//구름이신고가다/벗어놓은//하얀고무신/한켤레//나절볕이/만선이다”라는[만선滿船]처럼,더이상더할것도없고,뺄것도없다.시가삶이되고,삶이예술이되고,이아름다운삶이‘만선의꿈’처럼고대오후의행복으로빛난다.

목차

시인의말 5

1부

밥 12
냉이 13
2월 14
새벽의儀式 15
아직 16
난전의꽃분 17
오리 18
낮달 19
피어있는나절 20
더불어살다 21
고추잠자리 22
빈들 23
문바르기 24
밥솥 25
사랑채이야기-할아버지추억 26

2부

눈길 28
저녁연기 29
왜가리 30
성주대교 31
출근 32
군복속아버지 33
어떤웃음 34
사진첩을보며 36
버스타는중년 37
새들의노숙 39
지상의방한칸 40
슬픈호황 41
오월 42
초록,시멘트를깨고일어서다 43
꽃피는봄 44

3부

立秋 46
만선滿船 47
토요일 48
연밥 50
나무옮겨심기 51
가을 54
풀잎속으로 55
방-도둑일기 56
소주燒酒 57
미루나무식당 58
금호평야 59
물결을잡다-김품창화백 60
바람벽 62
우박사과 63
저녁의슬픔 64

4부

개미이사 66
못 67
국밥 68
조약돌 70
오리나무에앉은새 71
저작은풀꽃들의몸짓을 72
늙은사내 74
이발소 75
백화수복白花壽福 76
넘어진의자 77
저녁국수 78
잠-술꾼과술병 79
저녁비둘기 80
휴식 81
까치밥 82

해설시는자연처럼,삶은시처럼신상조 84

출판사 서평

「미루나무식당」의큰그림은개울과미루나무가있는곳에위치한식당의풍경이다.술과안주를전문으로파는이식당의하루와그주변을시각적으로포착하는시인의섬세한언어는천진한상상력으로써싱그럽게살아있는언어를건져올린다.위로푸른하늘은지상의개울에대응하는강물이되고,미루나무우듬지에지어진까치집은천상의강물과한몸으로결합해서징검돌이된다.여기에시인은“깍,깍,호객하는까치”,“다갈다갈볶은닭찜”,“매미소리”“따르릉전화”,“꼬끼오”라는청각이미지를덧붙인다.그러나‘다갈다갈’은개울물과인접한사물인관계로자갈돌이구르는소리와구분되지않거니와,전화기소리인‘따르릉’역시도기계자체로호환되는‘의미의감각화’를이루며역동성을창출하는시적장치로기능한다.인접한기호와기호의자의적교섭은이시의역동성을유발하는요인이다.
시인은기존에존재하는소리이미지를상상력으로새롭게변형하여시각이미지와적절하게배합한다.식당안과주변에자리잡은평범한사물들이어우러져밝고따뜻한화음이만들어진다.시각에서청각으로,청각에서다시시각으로이어지는이미지의연쇄속에서미루나무식당은,사람들이현실의고단함을잊고잠시나마쉬어갈수있는자연그대로의휴식공간으로탈바꿈한다.현대문명에지치고병든세상을자연상태로되돌아가게만드는박방희시의풍경은때로소년처럼순수한활기로가득하다.다음의시는자연을지향하는시인의시작(詩作)을엿보게만드는작품이다.

화가는
바닷가로이사해
한폭캔버스에
바다를담으려했다
보고또보고
담고또담고
봄이가고
여름이가고
가을겨울이갔다
다시봄이오고
다시봄이오기를
수도없이했을때
그의캔버스에는
바다가담겨지고
하얗게머리센화가는
찰랑거리는바다를메고
마당으로들어서며외쳤다
“물결을잡았다!”
“물결을잡았다!”
마을사람들이
그물도없이잡은
물결을보러오자
그에게잡힌물결들이
자르르,자르르
캔버스에서풀려나며
화가의집을섬으로만들었다
-「물결을잡다-김품창화백」전문

김품창은제주도에살고있는작가다.그는주로제주의푸른바다와하늘과공기를그린다.그의그림속바다는물을뿜는남방고래와,고래등에올라탄아이,만선의기쁨에취한배등이한데어우러져넘실거린다.그림의대상들은누구라할것없이자연의거대한흐름속에서하나로연결되고지속되며,끊임없는생명력으로환호하는듯싶은정서를만들어낸다.현실과상상과꿈의경계를자유롭게넘나드는김품창의그림을놓고시인은,“그물도없이”물결을잡는다고표현한다.지시하는대상과실재하는대상사이의위계가무화된자리에사물과사물은그자체로현존하는것이다.요컨대박방희의시가자연을쉼과생명의알레고리로사용하는맥락도이와무관하지않다.
박방희시의상당부분을차지하는자연이미지를이해하는일은,시인의세계관이나가치관등상상력의토대를밝히는일과동궤를이룬다.다시말해시인에게삶과자연은하나다.그의시에서자연을그리는마음은‘도시벽을허물고콘크리트맨가슴에초록움을돋게’(「초록,시멘트를깨고일어서다」)한다.“세상모든휴식”은“해질무렵잔디밭/그투명한푸름속”(「저녁답」)에있고,‘까치밥’은꽃이아니라“마음이켜놓은燈”이자“배고픈날짐승이꿈꾸는마지막희망”(「까치밥」)이라고시인은이야기한다.
자연은남의것을빼앗고더많은것을가지려고노력하는문명과반대된다.자연을추구하는삶이란이치에따라겸손하게생각하고성실하게살아가기를꿈꾼다.이는그의시가“교묘하게꾸미고그럴듯하게표현”하려는노력으로부터먼이유이다.박방희의시가드러내는바는언제나단순한형상속에서드러난다.“시행간에여운을깊게하는것이어렵다.”라고했던다산의가르침과그의시는반대되지않는다.
시인의상상력은문명과역방향에있는자연의아름답고여유로운이면을만진다.그의상상적촉수가뻗어나간곳에서우리는한바탕웃음을터뜨리게된다.이를테면오리의저한없이바지런하고낙천적인유영에서,삶에대한희망의단초를발견못할이유가어디에있단말인가.

오리가꽁지를곧추세우며물고기를쫓아자맥질한다

오리의똥꼬가
하늘을향해열리며
한송이꽃으로피자
언저리가환하다

ㅡ오늘도양식을주셔서감사합니다!

발름발름
똥꼬는기도하고
주둥이는고기를물어올린다
-「오리」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