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 경전이 되기까지 (강우현 시집)

죽, 경전이 되기까지 (강우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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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몸과 마음과 말이 분리될 수 없듯 자연과 사람이, 물질과 정신이, 삶과 죽음이 서로 한 몸일 수밖에 없음을 시인은 역설한다. 효율성과 생산성의 테제에서 한 걸음도 비켜서지 못하는 톱니바퀴 같은 사회의 병폐를 진단하고 그 징후들을 복기하는 것이 시작의 동기라면, 근원적인 삶의 의미를 사유함으로써 죽음을 초월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시의 지향점이다. 시인에게 시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미학적 수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핍진한 삶에 대한 부름이고 응답인 것이다.
저자

강우현

강우현시인은경기광주에서태어났고,2017년{애지}로등단했다.{竹,경전이되기까지}는그의첫시집이며,‘자연’은그의생명의원천이자생활의터전이라고할수가있다.그의시는자연으로부터수신되고다시자연으로발신되어돌아간다.그에게자연은인공과대비되는개념으로서완전하고이상적인이데아다.자연은생명,환경,생활,생산,순환,재생등의의미를섭렵하는유기적이고총체적인것으로정의된다.

목차

시인의말 5

1부

그녀와의내통 12
봄의급훈 14
도마의일기 15
1+1을사랑한게 16
꽃눈이자라는골목 18
소파노파파파 20
꽃들의중독 22
꽃패 23
모네의비둘기 24
메쉬펜스의방식 26
몰래몰래 28
그리움의무게 30
로만칼라 31
칼에대한자세 32
딱! 34
이팝나무식당 35
생각이혼자 36
물탑 37

2부

소울음값
당신한삽
들깨밭
꽃무늬양산을접고
봉선사가고싶다
비를해독하다
竹,경전이되기까지
지칭개의본능
복숭아통장
호박꽃
불청객이오셨다
능소화,그오르는것은
부레옥잠
궁금한안부
다시매미로회화나무에
경포대에서
장수커피

3부

모래
웃음블록
그럴테니까
낙엽의생각
오카방고삼각주그리고
서리태의꿈
화살나무
푸른모과
붉은화산석
벚나무강의
수세미어미
풀벌레기도원
호수위의밥상
마디
도장
덕담
꽃무릇

4부

어느가장
초리가흔들리다멈출동안
12월
조화의계절
원판변형의법칙
폐허의경고
다시라는도시
안개보고서
시간을허물다
가로등
쓸쓸한수다
모래의나라
바람바람바람
꿈뜰
종이컵
탁탁
밑불
염소를기르는여자

해설ㆍ닳아버린지문으로타전하는바람의경ㆍ신수진

출판사 서평

똑,
똑,
똑,
하늘의문자가찍힌다
누구에겐웃음이나
누구에겐기다림,눈물로읽히는내용들
손을내밀어닳아버린지문으로
당신이내게보내는부호를해독하고
나는눈시울이붉어진다
-「비를해독하다」전문

비가오는일상적인장면은똑,똑,똑,‘나’의닫힌문을두드리는하늘의메시지로화한다.뜻밖의방문을받은‘나’는“손을내밀어닳아버린지문으로”당신의부호를해독한다.자아와세계는이토록깊고내밀하게연루되어있다.단몇번의빗방울소리로도‘나’는웃음,기다림,눈물을경유하는외부와내부의공유지대를확보하고“눈시울이붉어”지는이해와교감을타전한다.그런차원에서이시는본시집의서시로읽힌다.서시는시집의문을열고들어갈수있게해주는열쇠이자시집전체를통찰할수있도록해주는시인의자화상이기때문이다.

플라스틱통에붓자
꽃이울며자란열매는때글때글여무는것이라며
잠언이쏟아진다

봄이노트에써가던푸른문장과
연보랏빛행들은모두한가지
바람과볕과비를정독해서쭉정이되지말자는
푸른각오였다
-「서리태의꿈」부분

이시는평범한생활속사물을시적인순간으로고양시키는착상능력이돋보인다.예컨대마트에서산“서리태”는“단단한말씀한봉지”가되어화자의삶을지지하고고무한다.손질하려고쏟아둔콩에서“꽃이울며자란열매”가“여무는것”이라는잠언을듣고는시쓰기를통해생에임하며“쭉정이”가되지는않겠다는“푸른각오”를하는것이이시에서꾸는꿈이다.
여기에는“바람과볕과비”와같은우주적지각변동뿐아니라그야말로콩한쪽에서도계시를듣는물활론적세계관이충만하다.또한친환경적인자연의요소들특히식물적상상력이충만하게동원됨으로써때묻지않은시의정신을보다더맑고청량하게구축하는데기여한다.무엇보다모든것이숫자로환산되는소유의시대에가난한문학의길에존재하겠다는미련한고집과정직이내포되어있다는점에서시인이지향하는미래를짐작해볼수있게한다.
약삼천년전황하강유역의노래를편찬한공자의?시경(詩經)?은가장오래된중국의시집으로서선비들이등용을위해필히읽어야했던유학의교과서다.300여편에달하는이고전시문학에는민중의생활과사상뿐아니라지배층의착취와전쟁같은사회적모순이있다.시경은고대중국의역사·문화·철학의결정체로서시학계보의전범이요원형이다.
?논어(論語)?‘양화(陽貨)’편에서공자는말한다.“너희들은어찌시를공부하지않느냐?시를배우면뜻을일으키고,감흥을불러일으킬수있고,풍속의성쇠를살필수있으며,정사의득실을비판할수있다.또한가까이로는어버이를섬기고,멀리는군주를섬기며,새와짐승과초목에관해서도알게된다.”한편시경을‘사무사(思無邪)’로정의한저유명한‘위정(爲政)’편에서는“시경삼백편을한마디로개괄하면생각에사특함이없음이다”라고했다.

원뿔을올리면
설계가끝난것,
그들의계획이진행되는신호다
대물림한유전자에
온도나습도가맞아떨어지고
비바람에도끄떡없는기초공사가마무리된것

눈부신지상을뚫는일이
어디만만한가
정확한위치와문의크기를표시해
스케치한몸을대보고
바람의속도까지계산한도면대로
눈을질끈감고한판붙는일이다

그늘이마음놓고지경을넓히는곳이면
휑한허공은모두길이되어
하룻밤키에도물이오른다
어디서정점을찍을지밤새도록별은깜박거리고
바람을껴입는댓잎은초록으로흔들린다

뿌리를뻗는것들은흙의자식,
단단한집을짓고나온기억으로
치솟으며마디마디바람의경을필사한다
-「竹,경전이되기까지」전문

?시경?‘위풍(衛風)’편에나오는「기욱(淇奧)」은이러하다.“기수라저물굽이바라보니푸른대나무무성하네.고아한군자가바로거기있도다.깎고갈아낸듯쪼고다듬은듯장중하고위엄있는모습이여.아름다운우리님을끝내잊지못하겠네.”대나무가우거진충만한풍경을군자의공과덕으로비유하여칭송하는시다.대나무는이렇게고금의문학에서인격화된모델로추앙되고정형화되어왔다.
대나무를경전으로삼고있는시인은시집에서대나무를비롯해이땅의꽃과나무들을통해물활론적세계관과식물적상상력을부려놓는다.다양한종과이름을지닌식물들은자연그자체이기도하지만세속을비판하고인품을본받으며삶을통찰하도록하는대상이다.옛성현들이대나무를특별히사랑했던것은외형적아름다움뿐아니라그것의생래적특징에서기인한상징성때문이다.속이빈내부는사리사욕을용납하지않는결벽과청렴을,눈속에서도홀로푸른위용은절개와지조를,곧고바른수직상향의자태는이상과실천을상징하는것으로서,이러한대나무의구조와속성은유교의윤리규범에완벽히부합하는기표였던것이다.
시인은대나무의외연이정신을반영하는설계와구축이라고여긴다.그렇게구축한대나무의육체는“눈부신지상을뚫”기위해온몸으로육박해오는승부에“눈을질끈감고”제모든것을건다.한그루의대나무는제몸의마디마디를갱신하며기도하는사제처럼없는사다리를딛고하늘로오른다.그때“허공은모두길이되”고“어디서정점을찍을지밤새도록별은깜박거”린다.“바람의경을필사”하는대나무의정진은그렇게투신을통해거듭난다.광야의전개도에서벌어지는싸움의의의는무한한실패에도불구하고망설임없이벼랑끝으로다시향하는그활공의결의에있다.물러섬없는건곤일척의정신이야말로시의배후이며내적근거임을시집은일관되게증거한다.
몸과마음과말이분리될수없듯자연과사람이,물질과정신이,삶과죽음이서로한몸일수밖에없음을시인은역설한다.효율성과생산성의테제에서한걸음도비켜서지못하는톱니바퀴같은사회의병폐를진단하고그징후들을복기하는것이시작의동기라면,근원적인삶의의미를사유함으로써죽음을초월하고극복하고자하는것이시의지향점이다.시인에게시란관념적이고추상적인미학적수사가아니라어디까지나핍진한삶에대한부름이고응답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