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옥시인의열번째시집인{다시돌아나올때의참담함}은이세계의혼합물과그부식腐蝕의세계에대한비가悲歌라고할수가있다.
그러니까내뜻없이이사람과저사람이/합해내가되었으니나는혼합물인셈이지/나는나인줄알았는데나인것은하나도없었어/그러니까이혼합물과저혼합물에부대낀다는것/
그건비애였지/이곳에서멀리도망친날들을손꼽아봐,/그곳에서엄청나게푸근한다름이펼쳐질줄알았지/그러니까터벅터벅,다시혼합물의세상으로/돌아와야한다는것그건비정함이지/그토록애쓰며살아야겨우산다하는이곳,/그러니까한풀껵여그렇게한풀,한풀,/풀이거의죽은뒤에야끔찍한나로돌아오지/사람들은그후에야사람답다고말해주지//
나는내자신을말해야될때/그러니까를앞세워,모든일은중간쯤에막히는지몰라/생각할시간을좀더많이벌기위해/반듯이그러니까를쓰고있어/무언가를알아듣게부연해줘야하는게지겨워/여전히도망치고만싶은여기혼합물의,/그러니까아직도나는그러니까에근접해있어/그래서지금도중간쯤에멈춰,/생각할시간을좀더벌기위해/그러니까를아직도내앞에세우고있긴해
-「그러니까에대한반문」,전문
시적메시지는매우선명해서“나는혼합물인셈이지”라는구절에모든함의가응축되어있다.그러니까나라는존재자도혼합물이며,나를둘러싼모든것이혼합물이라는것,그래서우리는혼합물로서혼합물에둘러싸여있다는것이다.시인에게이런상황이문제가되는것은고유한“나인것”이“하나도없”기때문이며,그렇기때문에고유한나의삶을살수없으며타자들사이에끼인삶을살수밖에없다는점이다.시인에게고유한삶이란시적인삶을의미할것인데,“이곳에서멀리도망친날들”이시의영역에해당될것이며,“다시혼합물로돌아와야한다는것”은세속적삶의영역에속할것이다.
고유한‘나’라는것은처음부터없고,나라는존재자는타자들의혼합에의해서구성되었다는것은포스트구조주의시대에하나의명증한명제와도같은것이다.하지만시인은그러한현실을수용하는것을거부하는데,“그건비정함이지”라든가“풀이거의죽은뒤에야끔찍한나로돌아오지”와같은표현들이그러한세계가얼마나속악하고냉혹한것인지를대변해준다.이러한세계에서시인이살아가는방식,그러니까처세술과같은것이“그러니까”이다.‘그러니까’라는말은“내자신을말해야될때”,즉자신을주장하고자신을내세워야할때사용하는것인데,“나인것은하나도없”는세계에서자신을설명해야하는딜레마를함축하고있는것이다.
나라고할수있는것이하나도없는세계에서나에대해서“무언가를알아듣게부연해줘야하는”상황에서시인이내세울수있는것이‘그러니까’라는말인셈인데,그말은어떤근본적인해결책을제시하기보다는“중간쯤에멈춰”서있는어정쩡한상태,이도저도아닌애매한포즈와곤경을함의하고있다.그러니까‘그러니까’라는말도또한어떻게보면혼합물의세계라고할수있으며,자아와타자사이에서그들을연결해주면서도또한어떤소통도차단하는애매한매개물인셈이다.이러한구도는시인이세계를어떻게이해하는지를설명해주는데,고유한개체들은존재하지않으며그들사이를연결하는어떤매체도유효하지않다는것이“혼합물”이라는시어에집약되어있다.섞이고결합된혼합물이존재자들의본질인셈인데,그것또한불완전하다는것이시인의진단이다.
무엇과섞이기전에는시멘트라부르고/섞이고난후에는콘크리트라부르지요/거기에철근까지끼워넣는다면/이좋은배합,이같은다정함이어디있나요//그러나이좋은관계도점점부식될때가//세상에서아무리다정하게합해져도/그저한때의후광이었다는거/내게단한사람으로까지지칭되던그도/그저한순간의후광이었다는것을/남들보기엔완벽해보이는이물질들도/서서히상해가는과정을비껴갈수없듯//가을이잠깐생각할여분을보태주어//이리와봐,여기벤치에등을맞대고앉아/왜이렇게덧없는후광속에제몸을/보태줘야하는지는잠시만접어두고/그저뜻없이불어오는건들바람에게/당분간만맡겨봐요//누구와혹은무엇과도섞이기전의나로/남아있게혹은그것에못지않게/그러면내가담쟁이덩굴의몸체같이/휘둘려쓴삶을알아들을수는있을까요
-「콘크리트에관한굳은생각」,전문
철근과시멘트가결합된콘크리트(concrete)는그어휘자체에단단히결합되어있다든가웅결되어있다는의미를함의하고있다.단단함과굳어짐에대한대표적인물질이콘크리트인셈인데,시인은“이좋은관계도점점부식될때”라든가“서서히상해가는과정을비껴갈수없듯”이라고하면서해어지거나부식되는것을피할수없음을강조한다.그러니까콘크리트란단단히결합된혼합물이라고할수있지만,그것은세월의파괴적힘에맞서싸울힘이없으며퇴락하고부패할수밖에없음을직시하고있는것이다.
물론여기서혼합물은한개체를구성하는요소들의결합을의미하는것은아니며,개체들사이의관계와유대의끈끈한결합을의미하는것이다.그런데페시미스트적인시각을지닌안정옥시인은이러한유대라든가관계또한매우불완전하며한시적인것에불과하며,오히려개인의진정한삶을방해하는요소로간주하고있다는것이다.“그저한순간의후광이었다는것을”이라는표현이라든가“왜이렇게덧없는후광속에제몸을/보태줘야하는지”등의구절들을보면,타인과맺는관계라는것이상대적이고가변적인것이어서결코거기에의존할만하지않다는생각을분명히한다.
시인이이처럼타인과의유대와관계를부정하고폄하하는것은그것이“누구와혹은무엇과도섞이기전의나”를상실하고망각하게하기때문이다.시인의이러한의식의흐름을지켜보면,시인의삶의지향이불교에서말하는본래면목(本來面目),즉모든사람들이본디부터지니고있는자연적이고천성적인본성을향해있는듯한생각이들기도한다.모든인위적이고조작적인것이없는타고난본래대로의모습으로돌아가는것,하나의페르소나를강요하는상징계적질서의안으로들어오기전의상태인실제계로돌아가는것이시인의궁극적인지향으로보인다는것이다.거기에는아무런억압과강요도없고,불만과스트레스가없으며,도덕적판단과가치도없을것이다.하지만시인은상징계를살아가고있으며,더구나다음시에서처럼타락한혼합물의세계에거주하고있다.
내가흔들릴때조차도혼자는못하지
사방이푸근한당신에게들러붙어
당신이먹을밥에몰래숟가락질해가며
잔뜩기대어이세상가볍게조금만,
아니엄청많이편하게살려는
내마음을숨길수가없다는뜻이겠지
당신의발밑에서숨듯
꽃피우는,당신이있어내가있는
그게바로나지담뱃대더부살이야
속은더없이화려하지그게바로나지
-「억새였어,당신은」,전문
“담뱃대더부살이”는억새뿌리에달라붙어살아가는기생식물로담뱃대를닮아서그렇게이름붙여졌다한다.그러니까담뱃대더부살이는지금까지의시적논리에의하면하나의혼합물로서억새라는다른혼합물과단단히결합된혼합물이기도하다.그런데담뱃대더부살이가억새와하나의혼합물을이루려는것은억새에기대어“이세상가볍게”,“아니엄청편하게살려는”욕망때문이다.물론여기서담뱃대더부살이는시인자신의욕망을대변해주는은유물이며,그러한점에서이시는혼합물인자신에대한냉철한반성과성찰의시라고할수있다.“속은더없이화려하지그게바로나지”라는대목을보면,자신의처지와본성에대한냉혹한판단과평가를내리고있음을확인할수있다.
세계를구성하는주체들은모두혼합물의존재자들이며,세계또한관계라는혼합물의세계라는것,그런데그혼합물들은퇴락하고부식하고있으며어떠한혼합물도온전히그결합을유지할수없다는것,더구나그러한혼합물은한개체의본래면목을해치고가리며,그로인해서삶의방향감각을상실케한다는것등의시적인식을볼수있었다.더구나혼합물의세계에참여하고있는시인자신또한그러한혼합물을통해서좀더안락한삶을꿈꾸는지극히속악한본성의소유자라는인식에이르면안정옥시인이지닌페시미즘의근원을확인할수있는듯하다.그렇다면이러한속악한세계속에서시인은어떻게살아가야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