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어제와 오늘 사이 신호등이 있나요』의 표제작인 어제와 오늘 사이 신호등이 있나요은 상반되는 둘을 연결해 주는 “사이”에 관한 사유를 보여준다. 이 시는 “나”가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버스정류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정황을 배경으로 한다. 그가 타고 올 “38번 버스”는 곧 도착한다고 “알림판”에 떴으나, “5분 10분 가을이 지나도 오지 않고” 있다.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주술을 걸어”보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사람”은 오지 않는다. “알림판”에 의하면 “그 사람”을 태운 “버스”는 곧 온다고 하는데 왜 오지 않을까? 이유는 “알림판이 고장 났”다는 사실이다. 이때 “알림판”은 “지수화풍” 혹은 우주적 생명의 원리를 망각한 인간이 맹신해 왔던 현실적 원리이다. 현실의 원리는 만남과 이별을 역설적, 순환적 관계가 아니라 배타적 대립의 관계로 봄으로써 “그와 나 사이의 길이 연기처럼 사라지”게 한 것이다.
“나”는 “그 사람”과의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지수화풍의 원리를 탐구한다. 지수화풍의 원리는 세계에 대한 역설적 인식과 맞닿는다. 하여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즉 만남이 곧 이별이고 이별이 곧 만남이라는 인식을 추구한다. 이 시의 배경인 “여명과 저녁노을”은 밤과 낮 혹은 낮과 밤의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으로서 상반되는 둘을 하나로 잇는 상징적인 의미를 띤다. 이 시간은 “어제”와 “내일”, “하지와 동지”, “차안과 피안”, “밀물과 썰물”, “무덤과 자궁”이 순환하면서 끝내는 하나로 공존하는 지수화풍의 원리가 작동하는 때이다. “나”가 시의 제목에서 “어제와 오늘 사이에 신호등이 있나요”라고 묻는 것은 그러한 시간을 지향하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이러한 인식은 “그와 나 사이의 길”을 만듦으로써, 결국 “나”는 현실의 이별을 극복하고 이별과 만남이 하나라는 더 큰 원리 속에서 “너”를 만나게 해 준다.
지수화풍의 원리에 의하면,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은 이항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끝없이 순환하고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그것은 지수화풍 즉 흙, 물, 불, 바람으로 상징되는 모든 존재가 돌고 도는 것이라는 인식과 연관된다. 그러한 인식은 아래의 시에서 말하는 사계절의 순환 원리와 유사하다.
“나”는 “그 사람”과의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지수화풍의 원리를 탐구한다. 지수화풍의 원리는 세계에 대한 역설적 인식과 맞닿는다. 하여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즉 만남이 곧 이별이고 이별이 곧 만남이라는 인식을 추구한다. 이 시의 배경인 “여명과 저녁노을”은 밤과 낮 혹은 낮과 밤의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으로서 상반되는 둘을 하나로 잇는 상징적인 의미를 띤다. 이 시간은 “어제”와 “내일”, “하지와 동지”, “차안과 피안”, “밀물과 썰물”, “무덤과 자궁”이 순환하면서 끝내는 하나로 공존하는 지수화풍의 원리가 작동하는 때이다. “나”가 시의 제목에서 “어제와 오늘 사이에 신호등이 있나요”라고 묻는 것은 그러한 시간을 지향하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이러한 인식은 “그와 나 사이의 길”을 만듦으로써, 결국 “나”는 현실의 이별을 극복하고 이별과 만남이 하나라는 더 큰 원리 속에서 “너”를 만나게 해 준다.
지수화풍의 원리에 의하면,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은 이항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끝없이 순환하고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그것은 지수화풍 즉 흙, 물, 불, 바람으로 상징되는 모든 존재가 돌고 도는 것이라는 인식과 연관된다. 그러한 인식은 아래의 시에서 말하는 사계절의 순환 원리와 유사하다.
어제와 오늘 사이 신호등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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