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것들과 함께 (이창윤 시집 | 양장본 Hardcover)

쓸모없는 것들과 함께 (이창윤 시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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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번 시집 『쓸모없는 것들과 함께』는 이창윤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며, 이 시집에는 오랜 세월을 의사로서, 재미 한인으로서, 시인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살아온 노시인의 상상이 자유롭게 펼쳐져 있다
저자

이창윤

이창윤시인은1940년대구에서태어났으며1964년경북대학교의과대학을졸업했다.김춘수시인,박목월시인의추천으로1966년『현대문학』시추천완료로등단했다.첫시집『잎새들의해안』을출간하고미국으로건너왔다.의학수련후,산부인과전문의,MaternalFetalMedicine의특수전문의가되어1974년핸리포드병원의산과책임자로HeadMaternalMedicine과미시간대학의과대학부교수를겸직했다.1988년HurleyMedicalCenter로옮겨DirecterMaternalFetalMedicine과미시간주립대학의과대학교수를겸직했다.환자치료와의학연구에열중하던20여년간은거의시를쓰지못했다.
시집으로는『잎새들의해안』,『강물은멀리서흘러도』,『다시쓰는봄편지』,『내일은목련이지는날아닙니까』가있고재미시인상,미주시인상(전미주시학상),해외문학상,가산문학상,미주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차례
시인의말 5

1부
쓸모없는것들과함께

쓸모없는것들과함께 16
헐거워진저녁 17
저녁이말했다 19
마음의지평선 20
저녁노을을머리로들이받은새 21
바다의지붕 22
세월을본다 23
갈대밭을지나가다 24
가을의뒷모습 25
봄꿈 26
철새들을기다리던시절 27
푸성귀를키우며 28
가을의손 29
봄날의아득함으로 30
우연한음악이은혜에기대다 31
껍질째먹는농담 32
내시의독자는 33
가끔,시를쓰는일은 35
시베리안아이리스 36
해안선위에걸린달 37

2부
내영혼이쓰는시

첫눈의예감 40
북쪽마을에두고온낙원 41
시골교회뒷마당에서있는 43
상처입은나무들과함께 44
당나귀편에서보다 45
낙타가되는꿈 47
산을위한추천서 48
못다쓴편지 49
흔들리는봄날 50
우습지만슬픈농담 51
나를기다리게해주는것들 52
무화과의계절 53
행복해지기쉬운날 54
멸치국물그맛의오솔길 55
웨일워칭투어시즌 56
엉겅퀴란말은욕설이아닙니다 58
봄볕아늑한날에 60
능금,그향기의무게 61

3부
무엇으로흔들리는가

그물빛 64
애리조나주의밤하늘 65
푸른별 66
섬 67
따스했던그해의겨울 68
낙타의눈물 69
무엇으로흔들리는가 70
무화과나무앞에다시서보다 72
아직도시를쓰나요? 73
잔디밭을맨발로걸어보라 74
이상한말을하고있다 76
시조새의화석을본다 77
아내의어깨위에손을얹고할말 78
아득함이데려다주는새벽 79
문이말한다 80
그리움의세계가따로있다 81
푸른하늘 83
아마존강 84
반도네온이한번더울었다
-배정웅시인을추모하며 86

해설/아득하게흔들리는저녁을위한시
-쓸모없음의쓸모에관한상상들/이형권 89

출판사 서평

아무짝에도,정말아무짝에도/쓸모가없기때문에시를쓴다고적었다/좀더어리석어지고싶어서/엉뚱해지고싶어서시를쓴다고한적도있다/아내는성경이나읽으라고하겠지만/내어리석은마음의뒤뜰에/풀벌레몇마리를놓아기르고있었다/여름이지나가는동안무성한풀잎들을/제맘대로뜯어먹게하다가/목놓아가을을울고가게했다/그들의세대가해마다바뀌어가는동안/내시도나처럼어리석고엉뚱해져서/내생각의어깨위에손을얹고/버러지한마리도위로하지못하고/이세상을살고갈수는없지않느냐고/나를위로해주기도하는것이다/남들보기에는아무일아닌듯해
-「쓸모없는것들과함께」전문

이시에서“쓸모없는것들”은바로시를의미하는것인데,일평생시와함께살아온시인이시를그렇게표현하는것은낯설다.그런데이낯섦은러시아형식주의자들이말하는낯설게하기와닮았다.낯설게하기란일상적언어를벗어나새로운언어를구사하기위한문학적표현을일컫는것이다.시인이‘시는쓸모가많다’라고말하는것은매우낯익은표현이므로,그것은시에관한표현이기는하지만시적이라고말할수는없다.반면에‘시는쓸모없다’라는말에는시에관한역설적인식,즉시적인인식이담겨있다.이시에서는“정말아무짝에도/쓸모가없기때문에시를쓴다”라고표현된다.이말속에는시는타락한현실의기준으로볼때는아무런쓸모가없지만,인간의정신과영혼을드높이는데는쓸모가많다는의미가숨겨져있다.시는“내어릴적뒤뜰에/풀벌레몇마리”에기억처럼,각박한현실너머의아름다운서정을마음속에키우는역할을한다.이마음을우리는시심(詩心)이라할수있을것이다.
실제로문학은“삶자체”를위해유용한도구가되지못한다.문학으로현실을지배하는어떠한권력을가질수없으며,문학을통해경제적인풍요를일구는것도도저히불가능한일이다.그러나우리현대문학사가증명하듯이지적인능력이뛰어난사람들이문학에헌신하면서살았다.도대체무슨이유인가?사람들은오늘도권력도안되고돈도안되는문학에왜그토록열정적인가?그것은현실의쓸모보다더나은쓸모를알고있기때문이다.시가추구하는꿈꾸기,정갈한영혼,진실한사랑,진정한자아의발견,타인과의공감등이세상에서현실의쓸모있는것들보다훨씬더쓸모가있다는것을알아차린셈이다.또한“내시는나처럼어리석고엉뚱해져서”는“나를위로해주기도하는것”이다.이처럼시는물질이나권력이할수없는,인간적삶에서꼭필요한것들이다.시가물질과권력으로할수없는,인간다운삶을위한많은것들을제공해주니이얼마나쓸모있는것인가?하여시인들은현실의성공욕망을물리치고자발적가난과자발적고독의길에기꺼이들어서는것이다.
시가쓸모없음의쓸모라고말할수있는것은그것이꿈의일종이기때문이다.시는강퍅한현실을벗어나아름다운세상을꿈꾸기위한언어활동이다.꿈의형식과언어의형식은다르지않을터,압축과전치를통해시에인간의정신과세계를반영한다.꿈꾸기혹은시쓰기는비정한현실과운명을넘어서기위한정신적,정서적실천행위라고할수있다.

십여년만에모국에들렸을때의일이다/누군가읽다가공항의자위에두고간신문/시인마을란에실린시를읽었다/낙타가죽으로만든구두를신고낙타의/질긴슬픔으로모래의흐느낌을듣고싶다는/한여성시인의시였다/그날밤나는낙타의행렬에함께걸어가는/꿈을선물로받았다/여자가행렬에참가할수있었는가하는나의의문에/낙타가죽으로만든구두를신고있는여자라고했다//꿈은당신의영혼이쓰는시입니다/꿈의언어는상징과은유로되어있다는/조금은낭만적인해설에말려들어/내가이시를쓰는오늘밤에는낙타가되는꿈이/찾아올지도모른다는엉뚱한생각이떠오른것이다/부자가되는꿈은진작버렸으니까바늘귀는문을/활짝열어그리로낙타를통과시킬지도모를일이다/그러면낙타는꿈에서깨어커피를끓이는아침에/내영혼이쓰는시를한번더읽어보게될것이다
-「낙타가되는꿈」전문

이시는“낙타가죽으로만든구두”를매개로한꿈에관해노래한다.잠시모국을방문하면서읽은“낙타의질긴슬픔으로모래의흐느낌을듣고싶다”라는어느여성시인의시구가“나”를꿈꾸게한것이다.그꿈의구체적인장면은“낙타의행렬에같이걸어가는”것인데,이처럼“낙타가되는꿈”은인간이짊어진운명에대한성찰과관련된다.등에는항상큰짐을지고일평생거친사막을뚜벅뚜벅걸어가야하는“낙타”처럼,인간은본래적으로비루하고속악한현실을벗어나서살수없는존재이다.꿈속에서나마“낙타의행렬”에기꺼이동참한다는것은인간의운명에대한정직한인식에동참하는일이다.이꿈은“부자가되는꿈”과는전혀다른,인간영혼의울림에귀를기울이는일이다.이는2연의첫시구에서“꿈은당신의영혼이쓰는시”라고하는정의와맞닿는다.시는현실에서는쓸모가없지만,인간의영혼을성찰하는데아주쓸모가있음을말해주는것이다.이는시인은“삶자체의조건에쫓기는동물과다르게인간은유용하지않은것처럼보이는것을꿈꿀수있다.”(김현,「한국문학의위상」에서)라는문장과부합한다.이창윤시인은시를쓴다는것이“유용하지않은것처럼보이는것을꿈꾸”는일임을인식한것이다.
이제‘시는쓸모가없다’라는문장은‘시는정말쓸모가많다’라고고쳐써야한다.시는현실에서는쓸모가없지만,현실너머에서는그무엇보다도쓸모가많기때문이다.시가현실에서의자본이나권력을획득하는데는아무런쓸모가없지만,인간의진실을탐구하고자아를성찰하고마음의빈틈을만드는데많은쓸모가있다.이쓸모는현실에서괴물과같이쓸모가큰자본이나권력으로대체할수가없다.인간의정신이나영혼을자본이나권력의힘으로좌지우지할수없기때문이다.이창윤시인이이시집에서시의중요성을반복적으로강조하고있는것은시의이러한쓸모를일찍이간파했기때문이다.그에게시를쓴다는것은꿈을꾸고이상을추구하는일,아득함과흔들림을통해현실너머의세계를지향하는일,이민자의고달픔을위무하고자아를성찰하는일과다르지않다.이얼마나큰쓸모인가?하여당연히그가세상에서아무쓸모없는시를일평생쓰고있다는잦은고백은역설적이다.
이창윤시인은이제맑고깨끗한산정에서발원한영혼의물줄기가골짜기를고쳐작은시내가되어흐르다가굴곡많은인생의강을지나드넓은바다에다다르고있다.그바다는지금까지살아온삶,지금까지써온시보다더넓은세계를의미한다.

강은바다에이르러흐름을멈추고잠시망설인다/ 깊이를감추고있는저검푸른세계로/스며들어사라지기전그망설임의물빛을/영산강하류에자리잡은어촌/강구마을에서보았다//오늘은벽난로위에놓인고려자기한점/아내가물려받은보물의먼지를닦아내다가/그망설임의물빛을다시보았던것이다//옹기가마의그뜨거운불길이어떻게물빛을/구워내었는지는알수없다하더라도/반복되는실패에도끝내좌절하지않았을/그도예공도어느강의하류에자리잡은어촌/강구마을에서자랐을지도모른다는생각이찾아와/나를아득하게하는것이다
-「그물빛」전문

시인은“강구마을”의풍경을떠올리고있다.강이바다와인접한곳에자리잡은“강구마을”에서“강은바다에이르러흐름을멈추고잠시망설이”는모습에주목한다.“깊이를감추고있는저검푸른세계”인바다로“사라지기전그망설임의물빛”을떠올린것이다.그“물빛”의이미지를“오늘은벽난로위에놓인고려자기”에서발견하고있다.“고려자기”의비취색에서바다로사라지기전의강물에서보았던“망설임의물빛”을본것이다.이“물빛”은삶과죽음혹은에로스와타나토스의경계에서빛나는불빛이다.그것은예술의상상력만이도달할수있는역설적상상력의표상이다.그것은“반복되는실패에도끝내좌절하지않았을/그도예공”의정신이다.그정신은저의생명을다하고죽음에도달한강물이한점도자기로다시생명을얻은예술혼과다르지않다.“강구마을에서자랐을”그“도예공”의눈빛과예술적재능에의해“망설임의물빛”이아름다운“고려자기”로승화된것이다.이창윤시인은“망설임의물빛”과도예공의눈빛을이한편의시에서동시에발견하고있다.이발견으로그는다시시적통찰의마음,즉“아득”한시심을얻은것이다.
“망설이는물빛”과도예공의예술혼으로시심을얻은이창윤시인은이제인생이라는강물의하구에도달했다.시간은저녁이다.인생의강물을흘러오는동안스스로포기한사람도있고나룻배가뒤집힌사람도있을것이다.그러나그는“나의흐름이어느기슭에닿아,누군가의/마음기슭에닿아서,함께흘러오지않았는가”,“용케도여기까지무사히흘러오다니/고마워,함께흘러주어서외롭지않았어”(「아내의어깨위에손을얹고할말」부분)라는고백은얼마나우리를얼마나아득하게하는가,또얼마나큰감동으로우리의마음을흔들리게하는가?이감동은시의쓸모없음을쓸모로만들기위해“잘길들여진지식과정돈되어/줄지어선생각들이비껴서서/보다어리석고엉뚱한생각에게길을내어줄때/마침내새로운오솔길이선뜻보였던것이다/뒤풀이한다,이늦은나이에도가끔은/어리석고엉뚱해지고싶어서시를쓴다.”(「이상한말을하고있다」부분)라는고백을생각나게한다.현실을지배하는“잘길들여진지식”과“줄지어선생각들”에저항하기위해자발적으로“어리석고엉뚱해지”는것은얼마나위대한일인가?그것은분명새롭고아름답고독창적인시와삶을위한일이었으니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