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하는 꿈 (이선희 시집)

환생하는 꿈 (이선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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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저승에는 문이 두 개 있었다

일반으로 들어가는 문과 시인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죽어서도 시인인 것을 기뻐하며 시인의 문으로 들어갔다

문 안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부유해 보이는 세상이 있었다

사람들은 천천히 산책하고 먼 곳을 보며

움직임도 이야기도 조용조용했다

익숙한 모습의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기형도 시인이 잠시 바라보았지만 인사를 못 했다

서정주 시인도 저쪽에서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고

천상병 시인의 웃는 모습도 보였다

머뭇거리는데 윤동주 시인이 다가왔다

주변을 둘러보며 여기는 시인들의 세상이라고 했다

전생에서 쓴 시가 이곳에서는 재산이라고 했다

꿈인지 망상인지 문득 깨어나니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신다

아직 나는 이 세상에 있었다

써 놓은 시가 부족해서 뒤돌아온 것만 같았다

이생에서 슬프고 외롭게 시를 쓰는 일이 복을 쌓는 일 같았다.
-「환생하는 꿈」 전문

이선희 시인의 말에 따르면, 저승에는 두 개의 문이 있었고, 일반인들이 들어가는 문과 시인이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고 한다. 이선희 시인은 죽어서도 시인인 것을 기뻐하며 시인의 문으로 들어갔고, 그곳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부유해 보이는 세상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천천히 산책을 하고 먼 곳을 보며, 움직임도, 이야기도, 늘, 항상 사유하며 생각하는 사람들답게 조용조용했던 것이다. 기형도 시인이 잠시 바라보았지만 인사를 못했고, 서정주 시인도 저쪽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천상병 시인의 웃는 모습도 보였고, 주변을 둘러보며 머뭇거리는데 윤동주 시인이 다가와 여기는 시인들의 세상이라고 했다고 한다. 전생에서 쓴 시가 이곳에서는 재산이 된다고 했는데, 꿈인지 망상인지 문득 깨어나 보니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셨고, 나는 아직도 이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선희 시인의 「환생하는 꿈」은 오매불망, 꿈에도 그리던 ‘시인의 천국’으로 들어갔지만, 전생에서 쓴 시가 부족해 되돌아 온 안타까움이 배어 있는 시이며, 이제는 더욱더 온몸으로, 온몸으로 고귀하고 거룩한 시를 쓰겠다는 ‘자유 의지’가 돋보이는 ‘명시’라고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복된 직업이 시인이고, 이 세상에서 더없이 슬프고 외롭게 시를 쓰는 일이 가장 복된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

이선희

출간작으로『환생하는꿈』등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5

1부

현관의센서등 12
바퀴달린가죽가방 13
사각의마음 14
함정에빠진소 15
애드벌룬 16
마른미역 17
내가죽은날 18
엄마의칼 19
시든채소처럼 20
가시많은물고기 21
저녁의확대경 22
딱따구리식당 23
장미의의도 24
파킹의늪 25
나무수도승 26

2부

물의관에서 28
파 29
실의날 30
재개발지구집들 31
구워지는생선 32
참외의조건 33
미안한사이-칼랑코에에게 34
치킨의부위 35
연습용화살 36
그럼에도불구하고 37
신혹은신발 38
자화상-신종백치아다다 39
빨래일가족 40
시계경전 41
조약돌가족 42

3부

딱딱한캔디 44
어떤명상 45
비석 46
불편한바게트 47
쌀의일생 48
책장 49
가을비에젖은낙엽 50
두더지여자 51
통하는시간 52
오래된성곽 53
매실담그기 54
콩 55
벙어리시인 56
오렌지부처 57
깔끔한각오 58

4부

실직후 60
마음세우기 61
환생하는꿈 62
나비의세상 63
뚜껑들 64
마음공장 65
코로나,그해봄 66
박태기 68
양파의혁신 69
유리는관계다 70
양수한그릇 71
사다리의유언 72
지독한진보 73
사진관풍경 74
줄-그네위에서 75

해설
진실혹은지혜의생생한형상들
-이선희의시세계/이은봉 77

명시감상
이선희의시「환생하는꿈」,「현관의센서등」,
「애드벌룬」에대하여/반경환 95

출판사 서평

시는열정이고,열정은에너지이고,에너지는불꽃이다.어제도,오늘도수많은시인들의몸과마음이불타오르고,이예술적인아름다움이전인류의마음을사로잡으며대대로이어진다.기형도시인에게로이어지고,서정주시인에게로이어진다.천상병시인에게로이어지고,윤동주시인에게로이어지고,그다음에,이선희시인에게로이어진다.

시와생명은하나이고,시와생명의불꽃은이세상에서가장아름다운명예의불꽃으로타오른다.이선희시인의「환생하는꿈」은낡디낡은시인의탈을벗고고귀하고거룩한시인으로탄생하는기적의순간이자,그고귀하고거룩한시인들에게‘하늘의축복’이쏟아지는너무나도아름답고멋진명시라고할수가있다.

저승은지옥이아닌축복의땅이되고,고귀하고거룩한시인들의열정으로전인류의지상낙원인‘시인의천국’이펼쳐진다.

반경안으로들어와움직이는것들에만반응하는습성이있다//반경안으로들어오는것들이한정되어있어밝아지는일은드물다//가끔헛것을보고밝아지고/착각으로밝아지기도한다/반경안에들어와팔을휘젓는물체를보지못하는경우도있다//필요없이반응을하거나너무늦은반응으로자주의심을산다//혼자켜지고꺼진다/울다가웃는다혼자//좀처럼반경안으로들어서려하지않는물체를기다리며/오래전부터준비완료상태로늙고있다
-「현관의센서등」전문

이선희시인의「현관의센서등」은자연과학적인냉멸동물이면서도,아주정서가불안한치매환자(정신병자)와도같다.이선희시인은첨단과학의산물인‘현관의센서등’에인간성을부여하고,그것의양면성을극사실적으로묘사해낸다.“반경안으로들어와움직이는것들에만반응하는습성이있다”,“반경안으로들어오는것들이한정되어있어밝아지는일은드물다”라는「현관의센서등」의기능을발견하고,그러나그기능을극적으로반전시켜,“가끔헛것을보고밝아지고/착각으로밝아지기도한다/반경안에들어와팔을휘젓는물체를보지못하는경우도있다”라는시구나“혼자켜지고꺼진다/울다가웃는다혼자”라는시구에서처럼바보천치와도같은인물로희화화시킨다.스티븐호킹같은천체물리학자(냉혈동물)가바보천치가된것이고,이바보천치는아주오래전부터영원히불가능한‘불로장생의꿈’으로늙어버린치매환자라고할수가있는것이다.

건강한몸에건강한정신이깃들듯이,모든시인들은이제부터라도자연과학의멱살을움켜쥐고제정신을차리게하지않으면안된다.산다는것은죽는다는것이고,죽는다는것은산다는것이다.하루바삐‘인생70’의‘인간수명제’*를실시하여지구촌을더욱더젊고푸르게가꾸지않으면안된다.

어느누구도이선희시인의「현관의센서등」처럼,또는고독사하는늙은이나요양병원의환자들처럼살고싶지는않을것이다.모든인간들을행복하게할수는없지만,아름답고멋진죽음,즉,전인류가참여하는‘존엄사’는얼마든지가능한것이다.이선희시인은‘일인다역의모노드라마’의주연배우이며,대단히뛰어나고훌륭한시인이라고할수가있다.


줄하나만있으면하늘/끝까지도오를수있겠다/기회만되면붕붕떠오르는가벼움/줄하나에의지해오만과탐욕과/착각을가득끌어안고부풀어오른다/얼마후에찌그러지겠다는/꼬리표가속절없이펄럭인다//굳세게땅을딛고살려고/

발바닥은굳은살박아가며단단해지는데/내어디에생긴구멍들일까/수시로들락거리는헛바람/어디서불어온헛된망상일까빵빵한기대/아무리꽁꽁동여매도빠져나가는탱탱한生//허공에떠있는찌그러진애드벌룬/질기디질긴줄에매달려뒤뚱뒤뚱/목을끊을수도/줄을끊을수도없다
-「애드벌룬」전문

이선희시인의「애드벌룬」는권력욕망과성적욕망위에기반을둔상승욕망이며,그욕망이애드벌룬처럼전혀터무니없고허무맹랑한헛된망상으로부풀어있다는것을뜻한다.“굳세게땅을딛고살려고/발바닥은굳은살박아가며단단해”지지만,“내어디에생긴구멍들일까/수시로들락거리는헛바람/어디서불어온헛된망상일까빵빵한기대/아무리꽁꽁동여매도빠져나가는탱탱한生”이라는시구에서처럼,‘빵빵한기대’,‘탱탱한生’,즉,‘헛된망상’을떨쳐버리지못한다.산다는것은욕망을갖는다는것이며,욕망을갖는다는것은높이높이,하늘높이날아오른다는것이다.날아오른다는것은추락한다는것이고,추락한다는것은인간의욕망이실패를한다는것이다.

줄하나만있으면하늘끝까지날아오를수있다는욕망,기회만되면붕붕떠오를것같은가벼움,모든욕망은상승욕망이고,이상승욕망은애드벌룬과도같다.기회만있으면하늘끝까지날아오를것같지만,그러나애드벌룬은줄에묶여있고,“얼마후에찌그러지겠다는/꼬리표”처럼속절없이추락하고만다.천제가될수만있다면도덕과윤리와정의와사랑과우정을다버리고언제,어느때나배신을때릴준비가되어있지만,그러나이천제의꿈은중력의법칙에구속되어있다.줄의한쪽은상승이고,줄의한쪽은추락이며,이상승과하강은우주의역사가종말을맞이할때까지결코깨어지지않는다.줄의한계를벗어나려면오만과탐욕의죄가씌워지고,줄의한계에서벗어나려는욕망이없으면생존만이최고인이세상의어중이떠중이들의삶에지나지않게된다.

우리인간들의삶은애드벌룬과도같고,이애드벌룬과도같은삶은줄(중력의법칙)에묶여있다.바람이채워지면부풀어오르고,부풀어오르면찌그러진다.기대,욕망,희망,꿈등은부풀어오르고,상심,절망,오만,탐욕등은찌그러진다.이선희시인의「애드벌룬」는상승과하강의변증법을통하여‘애드벌룬’과도같은삶을매우날카롭고예리하게파헤치며,그어릿광대와도같은인간을자기자신만이아닌우리인간들의초상으로변모시켜놓는다.

천제,황제,대왕,왕등은결코신이될수없지만,그러나우리인간들은전지전능한신에대한욕망을버릴수가없다.“허공에떠있는찌그러진애드벌룬”처럼“질기디질긴줄에매달려뒤뚱뒤뚱”거리면서도,“목을끊을수도/줄을끊을수도없다.”

천제와어릿광대는둘이아닌하나다.천제에강조점을두면비극이되고,어릿광대에강조점을두면희극이된다.이선희시인의풍자와해학은냉소,조소,조롱,야유에기반을둔희극이지만,그러나그는천제의꿈을버릴수없는어릿광대와도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