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것에 대한 화해 (최윤경 시집)

지는 것에 대한 화해 (최윤경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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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최윤경 시인은 은둔의 시인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침묵의 시인이었고 고요의 시인이었다. 그러한 최윤경 시인이 시집을 한 권 내더니 버쩍 그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떠나 먼 길 위에 서고 있다. 아니, 그 길은 가까운 길, 오히려 내면의 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새롭게 떠난 그 길에서 시인은 ‘나’의 존재와 함께 ‘너’를 읽어내고 있다. 이것은 아주 작은 일 같지만 아주 큰 일이다. 외연의 확장은 물론이고 시야가 확 열리면서 세계가 새롭게 밝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인이든지 자기 샘물만으로는 평생 시를 쓸 수 없는 일이다. 때가 되면 타인의 물을 받아 내가 저수지가 되는 시기가 온다. 지금, 빠른 것 같기는 하지만 최윤경 시인은 바로 그 저수지의 시기에 이른 것 같다. 어디까지나 샘물을 잃지 않은 저수지여야 한다. 그러니까 ‘샘물을 품은 저수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로지 내 설움, 내 기쁨만으로 시를 이루는 건 아니다. 남의 설움, 남의 기쁨을 받아들여 내 설움, 내 기쁨으로 바꾸는 단계다. 그렇게 하는 동안 시인은 보편성이 무엇인가 그 아름다움을 깨닫게 될 것이고 세상에봉사하고 도움이 되는 시를 낳기도 할 것이다.
- 나태주(시인)
저자

최윤경

최윤경시인은대전에서태어났고,2004년『시와시학』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는『슬픔의무늬』와『오늘은둥근시가떴습니다』가있다.
첫시집『슬픔의무늬』에서“슬픔은사라지는게아니고문드러져뼈에스미는것”(「슬픔이슬픔에게」)이라는최고급의성찰과인식의깊이를보여주었던최윤경시인은그오랜절차탁마의과정끝에자아와자아,나와당신,그리고수많은사람들과의불화를다해소하고,“와스스무너지는꽃들의우레같은절규”를너무나도아름답고감동적으로받아들인다.
최윤경시인의세번째시집인『지는것에대한화해』는대화엄의세계이며,‘지는것이더욱더아름다울수도있다’는것을‘꽃들의우레와도같은절규’를통해보여준다.

목차

시인의말 5

1부

별 12
너에게하고픈말 13
눈발에찔리다 14
간절하게 15
독감앓이 16
허공에잠긴허공 17
느리거나더디거나 18
사랑,덧없는 19
지는것에대한화해 20
산사에서 21
바람의결 22
부드러운길 23
말못 24
바람이내린다 25
살아있다는건 26
불과며칠사이 27

2부

나는 30
뒷모습향기 31
해후 32
커피한잔의득음으로 33
희망과절망사이 34
노을눈빛에젖어 35
슬픔을치다 36
여름이매미에게 37
울고있는저여자 38
너라는꿈 39
가시장미 40
메밀꽃보면서 41
불꽃놀이그찰나의꿈 42
입관 43
저묾에비치는눈 44
친구의독백 46
절창 47

3부

내생각 50
가슴이두개인사람 51
갈대밭노을안에서 52
등이야기 53
꽃이란이름은 54
암시 55
새벽에 56
안개 57
나무가숲이되려면 58
노을에피는 59
봄꽃,그사이 60
엄마 61
봄은바람과함께 62
우리는 63
동백 64
매미가운다 66

4부

바람이지나간길 70
복숭아 71
길의뒷모습 72
마음길 73
적요 74
바다에오면보이는것들 75
기억은사랑이었다 77
간격 78
가끔이별 79
걸레의힘 80
깊어지기 81
나무가꽃에게 82
엄마의집 83
우기 84
여행 85
좋다 86
마음과마음이 87

해설
관계에대한탐구
-최윤경시집『지는것에대한화해』에붙여/양애경 89

출판사 서평

정이많고마음이여린사람일수록그정때문에앓는일도많아질수밖에없다.돌려받을것을생각하고정을주는것은아니지만,많이받고도돌려주기는커녕이미받은것은당연하고,작은서운한일에는날카롭게대응하는상대방에마음을다칠일이생긴다.그러면상대방을새롭게바라보게된다.

가끔너에게서짙은안개를본다
너는없고안개만자욱할때있다
안개걷히고나면
다그자리그모습인데
문득문득네가낯설다
너를낯설어하는나를느끼며
너도나에게서
그까마득한안개를봤을까
-「안개」전문

내마음같은줄알고대하다가,어느날요즘아이들말로‘현타’가올때가있다.‘안개’는무슨생각을하는건지도무지이해할수없는너와나의관계에서피어오른다.그럴때오래사랑하던사람이낯선타인처럼보인다.내가너라고생각했던것은누구이고진짜너는대체누구인가.한번그렇게낯설어보이고나면다시는원래대로돌아가기가힘들다.이쪽도더는상처입고싶지않아서방어하게되는것이다.그런내마음을너도느꼈을까하고시인은독백한다.

사람과사람사이
간격과간격넓히고싶을때있다
손멀리마음껏뻗어도
절대로닿고싶지않을때있다
-「간격」부분

그래서시인은애써상대와거리를두고싶어진다.시「간격」에서,시인은마음에서상대방을멀리멀리밀어낸다.상처주는너를내게서멀리해서상처를더받지않으려는것은물론이고,네게도나와멀어지는고달픔을느끼게해주고싶은것이다.소극적인복수다.그것도상대가나를사랑하지않으면아무효과가없는일이건만.

사람이사람에게차가운등을보이며떠날때는
이미늦었네
안보고살겠다는뜻이네
등을보이며떠나는사람과
등을보며보내는사람의마음은똑같이아프다네
그사이엔원망이있고후회가있고눈물이있다네
등은연민이네
슬픈용서의마지막몸짓이네
등이사라지기전에
뜨거운가슴보여야겠네
-「등이야기」전문

관계에대한전문가다운말이다.사람이사람에게차가운등을보이며떠날땐,이미관계를회복하긴어려울때라는것이다.그만안보고살겠다는마음.그런마음이되기까지에는많은과정이숨겨져있다.원망,회한,용서,분노,눈물,체념,결심….돌이키기엔너무먼길을온것이다.그렇지만시인은아직마지막기회가있다고말한다.떠나는사람도보내는사람도고통스러우므로,상대방에게보이는등은‘연민’인것이다.연민이남아있는한,그를붙들어서뜨거운가슴을보인다면아직희망이있다.관계를포기하지않을의지가필요하다.
그래서시인의마음은‘지는것에대한화해’에이르게된다.표제시가된이작품은시인의마음이현재있는위치를말해준다.

꽃잎떨어진다
마치봐달라는듯
오래눈맞춰달라는듯
떨어진모습속간절함으로
내가있다
분명피어있었음에도핀줄도모르고
지는것만보이던나는
지는꽃보다가
날보다가절절아프다
와스스무너지는꽃들의우레같은절규
나이렇게슬픈걸보니
아직은남아있구나
아직은살아있구나
꽃잎줍다가
금세사르르녹아버리는한잎
툭놓아버린다
아직은뜨겁게살고싶은나와
종종사는거에대해싸늘해지는내가
부딪치며화해하며온건히살고싶어졌다
-「지는것에대한화해」전문

우수수떨어지는꽃잎을보며시인은지는꽃과자신의모습을겹쳐본다.피는것과지는것.사람들은대개꽃이피어나는것을더좋아하지않는가.왜나는꽃잎이질때가되어서야꽃을바라보는걸까.슬픔으로세상을보는삶의자세때문이아닐까하고독백한다.시인은지극한슬픔을느낄때,오히려‘내가아직살아있구나’라는실감을하는사람이다.그러면서,‘아직은뜨겁게살고싶은나와종종사는거에대해싸늘해지는나’가충돌한다.그렇지만이제원숙해졌다.부딪치면서도화해하며온건하게살겠다는의지가생겼다.슬픔과의화해라할수도,슬픈자신과의화해라할수도있는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