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칠 수 없다면 (김새하 시집)

도망칠 수 없다면 (김새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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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새하의 이번 시집에서 ‘너’라는 존재는 자주 화자에 의해 호출되어 시적 무대 위에 놓인다. 대개의 경우 ‘너’는 이미 사라진 상태이며, ‘나’는 그런 ‘너’를 향한 그리움을 여러 오브제를 통해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위의 시도 마찬가지인데, 거기에는 현실의 일상적 피로를 토로하며 “도망가고 싶다고 눈빛을” 맞추던 연약한 존재로서의 ‘너’가 등장한다.
‘나’는 그런 ‘너’를 현실로부터 지키지 못했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며, 그렇기에 돌아올 수 없게 된 존재 ‘너’를 끝없이 기다리며 “밤낮을 채운다”. 이 속에서 ‘나’가 느끼는 것은 고양이의 존재 양태로 비유되어진 “무엇에 매달려야 할까”라는 불안의 정서이다.
저자

김새하

김새하시인은경남마산에서태어났고,2017년계간『시현실』에서신인문학상을수상하고같은해최치원신인문학상을수상하면서계간『시작』으로등단하였다.경남문협,창원문협,민들레문학회회원으로활동하고있고영남시동인이며문예지『시인들』에서이사로활동하고있다.
사랑을만나지못하고,꿈도이루지못하고,무릎을꿇고사는아찔한절망감이김새하시인의첫번째시집인『도망칠수없다면,』의주조음이된다.그의시는비가悲歌가되고,“눕지못하고잠든밤”처럼“서있는아침을산허리에서만난다.”눈을뜨고있을수록의식은몽롱해지고,이몽롱한의식을자유로운상상력을통해꿈과현실을오고가는언어의유희를펼쳐나간다.서정과반서정,이성과반이성,자유와구속,기지와역사철학적인지식등을통해매우아름답고독특한시세계를구축해나간다.

목차

시인의말 5

1부

아힘사 12
육식주의자를위한변명 14
환상인것처럼, 15
달의귀 17
케이크를먹는이유 19
시소 20
뚜껑별꽃 22
요정의이야기 24
창문이견딘이유 26
학림도 28
마카롱 30
꽃이피기위해 32

2부

아레스 36
피부기묘증 38
별이빛나는밤에 40
청새치한마리 42
사치 44
고등어 45
새벽이면 47
당신의개 49
그림자놀이 51
안개에적힌기억 53
상자안을맴돈다 55
무한반복 57

3부

런던비를파리에서맞는다 60
아름다운전당포 62
잠금장치 64
우주소년 66
Y와C 68
가끔아카시아잎을떼고싶다 70
신발이좀크긴해 72
사랑은관념적이라서말이죠 74
백만송이장미는분홍장미 76
도망칠수없다면, 78
잔인한바깥 80
12월의키스 82

4부

아쿠아글라스 86
맑은밤-사랑에대한작은증명 88
식물의동물적본능 90
월요일 92
고양이를찾습니다광고지만들기 94
파프리카,파프리카 96
기다리는詩·間 98
별,수없는오후 100
변명을듣기위한사변 102
철길에기댄아파트 104
뭉쳐진것들 107
채식만할까 109

해설/현재속에서과거를구출하기/임지훈 111

출판사 서평

네무릎에꽃을심고/나를길러내려했던일은/햇빛몰아낸안개숲에서일어난일//우리는어두웠다//숲이빗소리를훔치면/넌내귀를씹는다//어둠을둘러쓰고꽃을/더크게피우는데열중했지만/무릎은계속넘어졌다//새가날아오기를기다리는나무는/더운날을못이기고쉬어버렸다//꿈을깨면처음으로돌아갈까/속눈썹끝에서오고있는너에게/침묵한다//발이차가운날/검은가지가맞닿기위해서로를찾고/하늘이찌푸린만큼밤도찌푸렸다//눕지못하고잠든밤/서있는아침을산허리에서만난다//
-「도망칠수없다면,」전문

세면장에서비누를질기게갉아먹는생쥐/바닥을기어다니는개미떼//가르랑거리는소리는/화장대를딛고쌓아놓은빈상자를지나/창틀을딛고선다//어느날의밤까지만해도J는쾅쾅거리는소리에/머리가아프다고집안을서성였었다/숲속처럼고요한내눈속으로/도망가고싶다고눈빛을맞췄었다//J는물속으로꽃잎속으로/아니면단지아주먼곳으로//부드러운가슴털에손을묻으면/새소리와눈이오는소리가들린다고/했었다그렇게사라진J//하늘과지상어디에도속하지못하고/창틀에앉아있는고양이한마리/위자료로받은도시풍경을함께볼/필요나이유가없는누군가를기다리는것으로/밤낮을채운다//지루한털은고양이가되어여기와저기로떠돈다/무엇에매달려야할까
-「창문에서는이유」전문

김새하의이번시집에서‘너’라는존재는자주화자에의해호출되어시적무대위에놓인다.대개의경우‘너’는이미사라진상태이며,‘나’는그런‘너’를향한그리움을여러오브제를통해감각적으로전달한다.위의시도마찬가지인데,거기에는현실의일상적피로를토로하며“도망가고싶다고눈빛을”맞추던연약한존재로서의‘너’가등장한다.‘나’는그런‘너’를현실로부터지키지못했음에죄책감을느끼고있으며,그렇기에돌아올수없게된존재‘너’를끝없이기다리며“밤낮을채운다”.이속에서‘나’가느끼는것은고양이의존재양태로비유되어진“무엇에매달려야할까”라는불안의정서이다.
얼핏보기에이시는단지상실한대상에대한우울감으로충만한것처럼보인다.그도그럴것이,화자는‘너’인“J”가“물속으로꽃잎속으로/아니면단지아주먼곳으로”사라졌다고기술하고있으면서기약없이‘너’를기다리는것으로자신의하루를채우고있기때문이다.그렇기에이처럼기다림으로채워진‘나’의삶은한편으로무기력하고수동적인것으로느껴지지만,여기에서도김새하의시는전혀역설적인효과또한이끌어낸다.그것은이와같은기다림이시적무대위에이미사라진존재인‘너’를존재하게만든다는사실이다.즉,현실에서사라진‘너’는이와같은‘나’의기다림과시적호명속에서다시금모습을드러내며자신의존재를유지하게되는것이다.그렇다면이와같은기다림을과연마냥무기력하고수동적인것으로이해하는것은결코타당하다고말할수없다.오히려이기다림과수동성이란의지적인것으로서현실속에서사라진‘너’를과거로부터구출해현재에존재하게만드는행위라할수있다.바로여기에김새하가쓰는시의독특한미감과개성이존재한다.
인간이라는존재가완전함에대한믿음과그리움이내재된불완전한대지에놓여있으며,그렇기에시인은필연적으로서로다른두풍경을눈에새긴채살아간다.이것을시인의보편성이라말할수있을텐데,때문에대개의시인은완전성이손짓하는그리운과거와불완전함에내맡겨진불안한현재속에서,과거에무한한지위를부여하여현재를비판적으로바라보는시적태도를견지하곤한다.물론그와같은태도를좋다/나쁘다와같은이분법적으로말하기는힘들것이다.하지만이러한세계에대한관점이다수를이루고있다는점을생각해보자면,그것이결코참신성을내포하고있다말하기엔저어되는것이사실일것이다.
그런의미에서바라보자면,김새하가이와같은시편들을통해산출해내는이중적인효과는조금더주목을요한다.예컨대,그또한과거에보다높은지위를부여하면서현실의비정함에대해말하고있기는하나,그로부터역설적으로미래를향한의지를강력하게피워올린다는사실이그것이다.오히려이와같은김새하의진술법이란과거를회고하며돌아가자손짓하는일련의서정시인들과는달리,비참하고잔인한현재속에서과거를구출해내고자시도하고있다고평해볼만하다.즉,조화로웠던나날이이제는돌이킬수없는과거라고부정하는것도아니며,그러니과거로돌아가자는회고주의적성격을띄는것도아닌,현재속에서쪼그라진과거를미래의지점으로부활시키는것이다.그것이바로「요정이야기」에서시적화자가드러낸의지적인어투이며내용과배치되는「아힘사」라는제목이만들어내는효과이자「창문에서는이유」의기다림이만들어내는효과라고할수있다.

조그만섬이/손을잡을수있다는공문서받았다/외롭게떠있는섬이아니게되고/바라만보던입장을변경하고//기다림의끝이있을줄몰랐지만/짐작못한일이벌어지는것은/일년에두어번오는태풍보다설렌다//잡히지않는물고기를잡지못할거라생각하면서잡고있는일/운동화를걱정하면서파도가까이발을옮기는일/섬에서차빼달라는전화를받는일//바지락이띄엄띄엄박혀있다/하나또하나둘셋//갈매기의눈을꿴가로등이빛을흘릴때/귀를막은이어폰/호주머니에찌른손/까딱거리는머리/흔들리는어깨//걸음만큼멀어지는/노래처럼흩어지는/끊임없이잊어야하는그런일들//밤바다사진속네개의불빛/비슷한위치에비슷한크기지만/둘은꺼지고켜지기를반복하고/둘은새벽만기다린다/둘은배를기다리고/둘은길을비춘다//바다건너바다로/기다림에끝이있다는소식이온다
-「학림도」전문.

과거를구출하여미래의지점으로전환시키는것.우리는이것을너무나손쉬운일이라착각하곤한다.그러나이를위해수반되는기다림이란존재에게너무나도많은에너지를요구한다.예컨대기다림이란과거가되어버린존재를미래에다가올사건으로재구성하는일이고,이를위해서는필연적으로기다리는자의현재를기다림이라는행위를위해온전히걸어야한다는대가를요구한다.이것은단지추상적인이야기가아니라,아주현실적인층위에서벌어지는일이다.기다림이란단지내가여기에버티고있는것만으로이루어지지않으며,소망하는대상이언제고이곳에다가올수있도록그를위한빈자리를마련하는진행형의과제이기때문에,기다리는자는그를위해늘빈자리를마련해둔다.이와같은빈자리는그자체만으로‘나’에게유구한에너지를요구하는한편,그대가로상실을끊임없이상기시키며그로인한통증을발생시킨다.그러니기다림이란결코수동적인것이아니라,그와같은상실의고통을기꺼이감내하는능동적인행위라할수있다.
김새하의시「학림도」의마지막구절“바다건너바다로/기다림에끝이있다는소식이온다”는것은이와같은유구한기다림이전제될때비로소들려오는아스라한사건의예감이다.그것을위해김새하의시적화자는늘현실을걸고과거를구출하기위해투쟁한다.그러니이시집에서우리는조화로운과거로말미암은슬픔을느끼며,비정한현실이배태한잔혹성에슬퍼하면서도,다만그것에머무르는것이아니라현재에의해구출되는과거를비로소목격할수있게되는것이다.어쩌면이것이바로김새하가거듭시를써나갈수있는,잔인하고비정한현재의시간과겨뤄나갈수있는원동력인것일지도모르겠다.즉,과거를다만과거인채로내버려두지않고언제고다시다가올미래의사건으로서구출해내고말겠다는의지말이다.그러니우리는그의시를읽으며다만언제고이기다림이끝나리라는것에만주목해서는안될것이다.여기에는늘현실적존재의희생과통증의역사가함께하고있으며,그러한한에서만과거는다시구출되어우리의눈앞에모습을드러낼것이기때문이다.바로그것이현재속에서과거를구출하는방법이며,우리의미래가마냥슬픈것만은아님을예감할수있는유일한길이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