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를 낚다 - 지혜사랑 시인선 273

바위를 낚다 - 지혜사랑 시인선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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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병연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인 『바위를 낚다』에서도 그의 시는 일관되게 인간의 가장 비근한 정한情恨에 근거하고 있다. 연인에 대한 연민, 어머니와 이웃에 대한 애정, 운명에 대한 순정. 비근하고 보편적인 제재가 그의 시 핵심 부분을 이루고 있다. 시에 대해 별다른 조예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런 게 시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과 그의 시가 딱 맞아떨어지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이병연 시인은 삶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탐구를 행하는 천성적 시인이다. 그의 시선을 거치면 어떤 밋밋한 풍경이나 하찮은 사물도 유의미한 삶의 징표가 된다. 그는 과장된 수사나 거친 목청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절박하고 처절한 삶을 재현해낸다. 첫 시집 이후 지속적으로 삶에 대한 끝없는 응시와 통찰을 보여주는 그를 깊이의 시인이라고 해도 좋겠다.
저자

이병연

이병연李秉姸시인은2016년계간지『시세계』로등단하였고,2018년시집『꽃이보이는날』,2020년『적막은새로운길을낸다』(2021년제16회한국창작문학상대상수상)를발간하였고,2023년『바위를낚다』(세종문화재단창작지원공모수혜)를발간했다.2023년서울시지하철시공모에「수박속」이란시가선정되었다.가곡으로「목련」등이있다.

이병연시인의세번째시집『바위를낚다』는김병호비평가의말대로인간존재와삶에대한정직한응시가우리의본질을투시할수있는힘을지니고있음을보여주고있다.시를읽는동안시적대상에대한집요한관찰과존재의‘깊이’에대한시인의성찰의역정을만날수있다.시인은이번시집에서자연과인간의삶을깊이있는시선으로응시하고통찰하여삶의본질이무엇인지서정적으로노래하고있다.힘든삶의여정에사랑과꿈을심어주고위로와위안을주는시들을선보인다.
자연의일부로서의인간,우주의한부분으로서의인간을자각하는시인의시선을따라가다보면,물질을중시하는피로사회를사는우리에게인간본래의가치를들여다보며삶의지향점을찾아보는의미있는시간을선물해줄것이다.이시인은충남공주에서태어나공주사대부고,공주사대국어교육과를졸업하고,공주대에서‘시에있어서의은유교육방법연구’로문학석사학위를받았다.중등학교국어교사(수성여중,공주여중,유구중,청양중등)로학생들을가르쳤고이인중학교에서교장으로2022년2월에정년퇴임했다.

애지문학회,충남시인협회,세종시마루,공주문인협회,풀꽃시문학회,고마문학회등에서활동하고있다.

목차


시인의말5

1부
마르지않는꽃

꽃의말12
고산가는길13
내안의역驛14
그녀의날개15
먼이라는말은16
바위를낚다18
장마에나리꽃은피고20
틀속의벌21
아버지의끈22
원대리자작나무숲24
수선집25
반죽반죽26
우유안부27
배낭에꽂힌파다발28
그늘막29
커다란양푼30
씨감자31

2부
아픈계절의젖은머리를쓸고

눈꽃여행34
지팡이35
이름석자36
자작나무숲으로가자38
구멍난양말39
달빛설화40
수다42
용수철43
몽고설산44
몽돌45
눈온다46
비맞은아이47
서천에온여자48
수박속49
때죽나무꽃50
오래된주문呪文51
진정한시인52

3부
산다는건눈먼몸부림그리고고요

기약54
여름한때55
섬56
자작나무숲에눈이내리면57
전지58
이별과제59
어느퇴직자의하루60
봄날에는61
뿌리의경고62
말구슬63
이호테우의일기64
매발톱꽃65
이별을타서마시다66
수련이핀연못67
슬픈유행어68
겨울비내리는날69
나무껍질경전70

4부
흐른날에도별이뜬다

누룽지를끓여먹는아침72
무결점하늘73
가시박74
꽃피는나목75
공기뿌리76
질척거리는네가부럽다77
노부부78
초록심지79
아름다운사람80
장군면한다리81
꽃진자리82
다시83
너는나의봄84
옥수수85
요산요수86
유화87
사구식물88

해설/응시와통찰로이르는투명한깊이의세계/김병호89

출판사 서평

낚싯대하나들고/제주바다를여러날거닐었다/수시로입질이왔다//질펀히내려앉은바위/이름없이산것들줄지어낚는다/널뛰는파도를품었다놓느라울퉁불퉁한데/움푹팬가슴엔/햇살과바람과눈물이머물러있다//허공에힘껏줄을던져/깎아지른절벽을낚는다/정을쪼듯내리치는물살에새겨진문신/상처가깊을수록/지느러미의골이빛난다//덜컥입질이왔다이번엔정말크고센놈이다/머리를하늘로치켜올리고기둥처럼떼로서있는놈/하늘이같이끌려온다/낚싯대가휘청인다/함께쉽게사는법은없어서/세로로그어놓은금이햇살에도드라진다//몸에새겨진저마다의사연/바다에서낚은것을바다로돌려보내고//당신의마음이닿지못하는날/바위낚시를떠나야겠다
―「바위를낚다」전문

객관적인시선으로차분히생을응시하는이병연시인의시적태도는,심화된시적성찰의경지로나아간다.작품내내내성적목소리로진술되다가“당신의마음이닿지못하는날/바위낚시를떠나야겠다”라는마지막연에서내면독백은보다객관화된다.이러한진술은내면독백이단순히감상적으로흐르는것을막고화자의내면독백이개인적삶의감정을넘어일반독자모두가흔히느끼는보편적감정으로확산되는역할을한다.“파도를품었다놓느라”“움푹팬가슴엔”“햇살과바람과눈물이”머문,바위에시인의시선이고정된다.“물살에새겨진문신”을보며시인은“몸에새겨진저마다의사연”에까지마음을밀어넣는다.하지만“함께쉽게사는법은없어서”당신의마음이닿지못한다.당신과나만의운명이아니라우리모두의삶이이런운명에놓여있다.

하늘을향해기둥처럼서있는바위의“움푹팬가슴”과‘깊은상처’“세로로그어놓은금”을바라보는시인의시선은,생을연상시키는구체적인자연물을통해한층진실되게전달된다.이작품은시인이궁극적으로‘바위’라는이미지표현에의해자신이생각하는삶을전달하는효과를갖고,그이미지표현이환기하는시적인정서가독자들의가슴에오래도록머물게한다.

삶과운명에대한시인의성찰은‘낚시’라는구체적행위를통해감상에빠지지않는객관적시선을확보하고,다시‘바위’라는구체적사물에대한이미지표현을통해보다진실한감동을주고있다.마치일기를쓰듯차분하게자신의삶을돌아보는시적태도,자신의내면을수사적으로장식하지않고,맑고투명한언어로고백하여진실한감동을주는시적표현방법은내성적인목소리와투명한서정의언어가어떻게시로완성되는지를보여준다.이병연시인은감상적으로치부되는감정에내재된소중한가치와의미를되새기는자신의시적능력을가감없이보여준다.

꽃은눈이멀도록눈부시게왔다간다//황홀한순간,/꽃은사진찍듯저장되지//세상이텅빈공갈빵같은날/오래된기억을클릭해//내가삭은식혜속밥알같은날/잊고지내던나를불러내//꽃은빛깔만고운게아니야/화심에맺은순정/부르기만하면잠근문을열고맨발로기어나오지//사는것잠깐이라/사랑을안고갔다는꽃의말//장롱에오래넣어둔옷처럼/접혔던꽃잎이허공을밀어내며피어나//한생이저만치갔다가돌아오는거야
―「꽃의말」전문

이병연시인은자신혼자만을위해감정을소비하는시인이아니라인간의보편적문제,생의본질을앞에두고고민하는시인이다.그래서그의시는항상삶의누추한변방을서성이면서도가장순수한영혼의바탕을유지하려고스스로를가다듬는다.특히이번시집에는‘꽃’‘벌’‘숲’‘바위’‘식물’등자연에대한관심이넓게분포되어있는데,자연자체의미감이나생명감을드러내기보다는‘자연’을통해인간존재의실존에대한물음을제기한다.시인은자연의순환구조처럼인간의육체성,삶또한순환되는자연의일부라는인식을가지고있다.그가보여주는존재탐구의상상력은,인간이자연의일부임을인정하는태도를그기저에깔고있다.꽃이빚어내는황홀한순간에대한인식역시자연으로서의인간,우주의한부분으로서의인간을자각하는것과동일한의미를지닌다.

작품의시작은시인(화자)의작은흥겨움이느껴지는읊조림과같다.작품을지배하는기조는일상의자잘하고기본적인욕망충족에서행복을느끼며사는현대인의소박한생활정서에근거한다.“세상이텅빈공갈빵같은”일상에서,‘나’는“삭은식혜속밥알”같은데,순정한‘꽃’이피고,꽃은내게황홀의순간을선사한다.

꽃의은유적의미는비단이작품에서만드러난것은아니다.“긴장마에빛나”는나리꽃(「장마에나리꽃은피고」)이나“검정배낭속에꽂힌파(꽃)”(「배낭에꽂힌파다발」),“눈이닿는곳마다/아픈땟물/죽죽빠져나”가는꽃(「때죽나무꽃」),“선홍빛백일홍”(「기약」),봄볕에“팝콘처럼펑펑쏟아져나온꽃”(「봄날에는」),“누군가할퀸적있다고귀띔하고싶”은매발톱꽃“(「매발톱꽃」)등구체적이미지로시집전반에두루활용되고있다.

시인이소박한생활인으로서내비치는발언들은아주평명(平明)한언어로표출되어시의표현과형상을위한별다른시적의장이구사되지않는듯하다.하지만이평명한언어들에내재된미묘한의미작용에힘입어,생기있는시의언어로거듭나는매력이있다.세상사는일은잠깐의순간이어서“사랑을안고갔다는꽃의말”은,꽃의말이아니라시인의말이다.구어체를적극활용하여사태의진술에의미를두기보다는느낌의중심이놓이기를의도하는화법은,독자에게각별하게호소된다.“잊고지내던나를”꽃이불러내는것처럼,새삼우리의삶을지배하는기본적인식의소중함을되돌아보게된다.

꽃이이세상에다녀가는황홀의순간대신사랑의영원을간직한다는것은,시인이우리의삶을어떤가치로바라보고있는지를극명하게보여준다.“한생이저만치갔다가돌아오는거야”라는읊조림의시구는의미의차원뿐만이아니라강한호소력까지겸비하게된다.사진을찍듯저장되고,클릭해서소환하는‘순간’대신,호명하면맨발로뛰어나오는‘순정’의가치를,시인은은은하고부드러운느낌으로생기있게환기한다.실제로시인이지닌이러한인식은“아름답게사라지는것들이/허무의몸집을키우네”라며“잠시왔던것들이돌아가는이승에서/눈꽃처럼아름답게반짝이다/예고없이녹아내”리는풍경을그린「아름다운사람」에서일관되게유지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