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사는 고래 - 지혜사랑 시인선 277

거실에 사는 고래 - 지혜사랑 시인선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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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옥엽

조옥엽시인은전남구례에서태어났고,순천대학교대학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였다.2010년계간『애지』로등단했으며,시집으로는『지하의문사』와『불멸의그여자』가있다.
조옥엽시인의세번째시집인『거실에사는고래』의매혹은아무것도아닌삶의순간을포착하는데있다.그것은어쩌면매혹의반대지점에놓인것들이라할수있지만,시인은그것으로부터미적감각을길어올린다.그리하여무심한듯던지는시인의시선은가장치열한삶의한가운데를관통하며나아간다.거실에서자고있는남편으로부터시작한세계는바다로이어지며원형과맞닿은세계로확대되기에이른다.잠이라는사소한일상과바다라는원형적삶이이어지며시적세계관은보다넓은지평을갖게된다.

목차


시인의말5

1부

대파꽃12
사람만13
자문14
명절의인사16
사과꽃17
일그램의무게18
가난한시19
지동설20
단한사람21
발굴22
칼의출근길24
겨울밤의맛25
폭설26
비상한재주27
명자꽃28
고두밥과진밥29

2부

침묵으로가는계단32
이름붙이기34
거울속의여자35
뻥가게의물음표들36
어미의저울37
습38
아들의사다리39
큰병원40
집게벌레42
성찬43
달래44
홍당무45
핀잔46
후후후호호호47

3부

찰시루떡50
이장51
만월53
아침은또찾아오고54
집으로돌아오는길56
열애57
집요한싸움58
죄와벌59
서울가는길60
다음에봅시다62
먼나무아래주검63
그럭저럭64
허울링65
빙글빙글뱅글뱅글67
또하나의근심68

4부

자조72
가을73
재생74
고래75
둔감77
4월의아침78
답을찾아라80
강아지와물음표82
합장83
바지락85
너는누구냐86
약속87
그밤89
숲속우체통90
이름91

해설/사소한삶과죽음을이해하기위하여/조동범93

출판사 서평

남편이거실에서자고있다
오늘은어느바다를헤엄치다가
귀향했는지탈탈거리는엔진소리가
한밤의멱살을잡고흔든다
몸누일둥지를틀고
식구를먹여살린다는건
거친바다에몸을던지는일
어둠을뚫고용케
어리바리한물고기몇마리
건져올려하루를접고짠물에
절은삭신막걸리몇잔으로
달래바닥에눕히고잠든남편
잠결에도압박감에짓눌려
바다와교신중인지간간이
미간을찌푸린다
하루치의엔진오일을
보충하고소진하는과정으로
수수년이어져온생
숱한고비들을넘기고다시
이어지는날들이기적같은데
충전을다마쳤는가
뱃고동소리내뿜던거실은고요해지고
나는주유기를빼제자리에
돌려놓고정적이주는평화를
양손에꼭쥐고돌아눕는다
―「고래」전문

희극이나비극이나그작품의구성원리상,필요이상의미화나과장은필수적인요소일수도있다.희극의주인공은실제보다더바보스럽거나우스꽝스럽게표현할수도있고,비극의주인공은실제보다더고귀하고뛰어난인물로묘사함으로써극적인효과를노릴수도있다.조옥엽시인의「고래」는비극의주인공이고,그는일상생활에서피곤하고지친사람의모습으로등장하지만,그러나생사를넘어선혈투에서수많은기적을연출해낸개선장군과도같다고할수가있다.남편이조업을마치고돌아와술몇잔마시고쓰러진모습에서“오늘은어느바다를헤엄치다가/귀향했는지탈탈거리는엔진소리가/한밤의멱살을잡고흔든다”는시구도탁월하고,“식구를먹여살린다는건/거친바다에몸을던지는일/어둠을뚫고용케/어리바리한물고기몇마리/건져올려하루를접고짠물에/절은삭신막걸리몇잔으로/달래바닥에눕히고잠든남편”의모습도탁월하다.“잠결에도압박감에짓눌려/바다와교신중인지간간이/미간을찌푸린다”라는직업의식도탁월하고,“하루치의엔진오일을/보충하고소진하는과정으로/수수년이어져온생/숱한고비들을넘기고다시/이어지는날들”의“기적”도탁월하고,“나는주유기를빼제자리에/돌려놓고정적이주는평화를/양손에꼭쥐고돌아눕는다”라는아내의소명의식도탁월하다.

시는기교가아니고,기교는시를질식시킨다.자기자신의꿈,즉,고래의꿈을위하여그직업의식에투철하고그어떤위험과고통도마다하지않는다는것,바로이삶의태도와시인정신이기교를낳고그아름다운삶의극치를이룬다.앞으로도,뒤로도물러설수가없고,한걸음만삐끗하고균형을잃으면그의삶이끝나는줄타기의인생과도같다.

오늘날예술의당위는무의미해보이는것의의미를포착하는것으로부터비롯된다.작가는평범한삶에가치를부여하고그것에미적의미를덧붙여작품화한다.‘사건’을통해작품을전개하는방식보다‘사건’이없는세계를통해작품속의미를파악하고자한다.책상위에놓인펜이나해변의작은돌멩이와같은것들로부터이야기가전개된다.이와같이등장하는작품속이야기는때로쓸모없어보이기까지한다.시역시마찬가지다.거대담론조차일상의사소함을통해말하는것이시를포함한오늘날예술의발화방법이다.조옥엽의시역시그렇다.

조옥엽시의매혹은아무것도아닌삶의순간을포착하는데있다.그것은어쩌면매혹의반대지점에놓인것들이라할수있지만,시인은그것으로부터미적감각을길어올린다.그리하여무심한듯던지는시인의시선은가장치열한삶의한가운데를관통하며나아간다.거실에서자고있는남편으로부터시작한세계는바다로이어지며원형과맞닿은세계로확대되기에이른다.잠이라는사소한일상과바다라는원형적삶이이어지며시적세계관은보다넓은지평을갖게된다.언뜻보기에“절은삭신막걸리몇잔으로”달랜남편이바닥에잠든,아무것도아닌모습을제시하고있지만「고래」에등장한잠의깊이와너비는남다르다.잠을통해우리앞에당도하는것은바다와같은확장된사유의지점이다.시인은사소함을말하지만그안에담긴것들은결코사소하지않다고할수있다.그것은초저녁잠을형상화한다음작품에서도여지없이드러난다.

초저녁에책을읽다가/나도모르게잠이들었다/눈을뜨니불빛이환한방에/음악만이구름처럼떠다니고있다/앞으로내게얼마의시간이/남아있는지나는모른다/그러나앞으로도쭉이렇게/책을보다잠깐잠이들었다/다시깨책을읽거나/혹은생각의꼬리를따라/근심을키워나가거나그걸/덜어갈묘수를생각하면서/살아갈것이다/잠들고깨는일을거듭하다/언젠가는발끝을드러낼생/음지에드문드문남은/잔설같은슬픔이/하얀비말을일으키며차오르는데/건조한방에미니가습기는/여전히제역할에충실/수증기를뿜어내고있다//
―「습」전문

시인은삶이사소하다고말하고싶은것일지도모른다.“초저녁에책을읽다가”잠이든모습은지극히평범한삶의순간이다.잠이들었다깨다를반복하며책을읽거나생각을하는것에‘사건’은존재하지않는다.텅빈방에는그저“수증기를뿜어”내는가습기만있을뿐이다.아무런사건이없지만「습」을읽는이들이라면이것이야말로우리삶의진짜모습임을깨닫게된다.더구나조옥엽의시는‘사건’없는일상을제시하고그것으로부터의미를말하는데그치지않는다.시인은평범한삶의끝에죽음이있음을인식하고그것을말함으로써삶을완성하려고한다.

삶의끝에는죽음이놓이기마련이다.그래서인지조옥엽시인역시죽음으로서의삶의모습을시집곳곳에배치하고있다.시집전체분량중에죽음을다룬작품은많지않지만죽음이시집전반을장악하는주요한정서임은부인하기힘들다.이시집에서죽음은다양한양상으로재현된다.개인적죽음은물론이고사회적죽음을다루고있을뿐만아니라삶의마지막에맞닥뜨리는죽음과함께오래전의죽음을담담하게말하기도한다.이처럼죽음은다양한양상으로다가오며삶이후의문제를탐문한다.

공적인죽음을끌어안은조옥엽시인의시선은이제“지구저쪽”지진으로“수천명이죽어나간다는”곳으로까지이어진다.시인의주된관심사는일상의영역인것처럼보이지만그렇다고그것이개인적인관점에만머무는것은아니다.바로여기에서세계에대한조옥엽시의지향의지와태도를엿볼수있다.그것은나로부터시작하여“남들의불행”으로나아가고자하는의지이며,내부에서외부로나아감으로써보다큰세계에닿고자하는시인의확고한신념이기도하다.여기에이르러놀라운것은시전반에걸쳐나타난사소한삶의국면을바탕으로개인적차원을넘어서는,‘사건’으로서의죽음을이끌어낸다는점이다.조옥엽시의죽음은점층적인양상으로전개된다.삶의사소한지점으로부터전개된죽음은일상속장면에서시작되지만이내확장되어사회적죽음으로까지나아간다.
―조동범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