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유계자의 첫 시집 「오래오래오래」에서 “각각의 시어들로부터 퍼져나가는 정서적 울림의 동심원들이 서로 부딪치고 겹쳐지면서 시인만의 아련하고 쓸쓸한 내면의 시적 공간을 구축”하였고, 두 번째 시집인 「목도리를 풀지 않아도 저무는 저녁」은 그가 철저히 체득한 본질적인 경험을, 상상력으로 삶의 밑바탕을 되짚어내며 경험과 상상력의 밀접한 연결고리를 형성해내고 있는 반면에 세 번째 시집 「물마중」에서는 아날로그로 짚어내는 기억과 아포리즘을 통해 삶과 사람에 대한 신뢰와 진실을 진솔하게 들추어낸다. 또 기존의 시 형식과는 조금 다른 내용과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창작을 시도하는 그의 색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독자에게 관심을 줄 만한 일련의 작품으로는 「등꽃 목욕탕」, 「물의 둥지」, 「택배」, 개미와 칡」, 「한 번이라도」, 「접시꽃 급식소」, 「어머니를 대출합니다」, 「대나무집」, 「고드름」, 「포스트잇」, 「진주햄」 등이 있다.
그녀의 굽은 등에 파도가 친다
오롯이 숨의 깊이를 다녀온 그녀에게
둥근 테왁 하나가 발 디딜 곳이다
슬픔의 중력이 고여 있는
물의 그늘 속에 성게처럼 촘촘히 박힌 가시
물옷 속으로 파고드는 한기엔 딸의 물숨이 묻어있다
끈덕진 물의 올가미
물숨을 빠져나온 숨비소리가 휘어진 수평선을 편다
바다의 살점을 떼어 망사리에 메고
시든 해초 같은 몸으로 갯바위를 오를 때
환하게 손 흔들어 물마중 해주던 딸,
몇 번이고 짐을 쌌다가
눈 뜨면 골갱이랑 빗창을 챙겨 습관처럼 물옷을 입었다
납덩이를 달고 파도 밑으로 들어간 늙은 어미가
바다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테왁 같은 낡은 집이 대신 손을 잡는다
저녁해가 바닷속으로 자맥질하고 있다
- 「물마중」 전문
물마중은 먼저 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물밖에서 물속에서 물질을 하느라 지친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이나 그물망을 끌어내며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일종의 품앗이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지치고 고단한 몸과 마음을 서로 돕고자 하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유계자의 물마중은 물질을 끝낸 해녀가 아닌 “테왁 같은 낡은 집”으로 향하고 있다. “숨의 깊이를 다녀온 그녀”는 등이 굽었고 “물의 그늘 속”에서 “물숨을 빠져나온 숨비소리”에 “휘어진 수평선을 편다”. “끈덕진 물의 올가미, 물옷 속으로 파고드는 한기엔 딸의 목숨, 몇 번이고 싼 짐, 낡은 집” 등에서 그녀의 고단하고 녹록하지 못한 “시든 해초 같은” 삶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유계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사실은 아날로그도 아니고 디지털도 아니고, 레트로는 더더욱 아니다. 문제는 숨비소리가 휘어지도록 물의 올가미에 물숨을 쉬며 “바다의 살점을 떼어” “납덩이를 달고 파도 밑으로 들어”가는” 노동이다. 그녀의 노동은 딸의 물숨이 묻어있고 화자에게는 신선한 상상력을 자극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물숨”이 만들어낸 삶의 애착과 사랑의 여운이다. 행간의 이미지는 “굽은 등”과 “몇 번이고 짐을 쌌다가”하는 사이를 “물마중”으로 오고 가는 동시에 그녀의 물질을 하는 노동의 “물숨”이 “휘어진 수평선”으로, 그녀의 둥근 테왁이 삶 - 사랑 - 바다를 연계하게 된다. “습관처럼 물옷을” 입게 되고 테왁 같은 넓은 집이 손을 잡기도 한다. 아날로그적인 노동의 시간 사이를 시로 가로지르면서 유계자는 삶 - 사랑 - 바다를 심급에 닿을 수 있게 펼쳐 놓는다. 이와 유사한 작품으로는 「등꽃 목욕탕」, 「출근」, 「갈매기 찻집」, 「수련」, 「물의 둥지」, 「가을밤」 등이 있다.
큐빅이 빠진 브로치
아무리 화려해도 꽂을 수 없다
- 「지나간 사랑」 전문
아마도 유계자의 시 중에서 가장 짧은 시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사랑에 대한 시다. 유계자는 사랑 시를 잘 쓰지 않는 시인이다. 언젠가 한 번쯤 쓴 시를 시집에 묶을 요량으로 내놨다 치더라도 그가 바라던 의도는 조금은 달성하였다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시제가 “지나간 사랑”이다. 사랑에 관한 시는 화자의 기대감이나 대리만족으로 쓰거나 약간의 보복심리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상대방이 보든지 말든지 화자 자신이 만족하든지 말든지 그 양극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희열이나 진정제 역할을 해 온 보이지 않는 감정의 집단이 형성되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화자는 “큐빅이 빠진 브로치”를 보며 “지나간 사랑”을 떠올린다. “큐빅이 빠진 브로치”는 브로치로서의 가치나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다. 화자는 큐빅을 일종의 투명한 사랑으로 보고 불투명하고 그 존재성을 잃어버린 브로치에서 사랑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사랑”이기 때문에 “아무리 화려해도 꽂을 수 없다”라고 단정한다. “지나간 사랑”은 예전의 시간으로 돌아간다하여도 지금보다 화려하지 않는 “큐빅이 빠진 브로치”처럼 어디인가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게 사실이다. 유계자가 이 시를 통해 지적하고자 한 것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불가분 관계에 있는 삶과 사랑을 향한 경건함에 무게를 더 두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이 시에 사람을 향한 사랑, 또는 사랑하는 법과 믿음을 전제로 “지나간 사랑”에 대해 “큐빅이 빠진 브로치”를 들고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딱 한 번 뜨거웠으면 됐다
딱 한 번 입맞춤이면 족하다
딱 한 번 채웠으면 그만이다
할 일 다 한 짧은 생
밟히고 찌그러져도 말이 없다
- 「종이컵」 전문
유계자는 과거에 경험했던 것들을 철저하게 시로 잘 그려낸다. 그래서 그림을 보듯이 잘 읽어지고, 의미도 남다르게 넓고 깊다. 시가 쉽다고 해서 시 이해가 쉬운 게 아니고, 시가 어렵다고 해서 시 해석이 어려운 게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짧고 쉬운 시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유계자의 「종이컵」이 그러한 작품이다. 읽고나면 가슴이 막히고 답답한 게 왠지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밀려온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일회용 노동자로,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긋난 사랑으로, “종이컵”이 다른 대상으로 대치가 된다 해도 결과가 똑같은 값이 나온다는 생각에 현대사회의 만연한 부조리가 스쳐 지나간다. 짧지만 강렬하고 많은 뜻을 내포한 시여서 대하기가 더 경외감이 든다. 어쩌면 그 경외감 너머로 유계자는 부조리한 삶과 일회용으로 사는 노동자들을 사랑하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그런 본바탕이 좋은 시를 만들고, 좋은 시인을 또 만들어 낼 것임을 필자도 믿는다. 이와 유사한 시로는 「기적」, 「애완의 날들」, 「택배」, 「착각」, 「개미와 칡」, 「소라게」, 「회색은 없다」가 있다.
그녀의 굽은 등에 파도가 친다
오롯이 숨의 깊이를 다녀온 그녀에게
둥근 테왁 하나가 발 디딜 곳이다
슬픔의 중력이 고여 있는
물의 그늘 속에 성게처럼 촘촘히 박힌 가시
물옷 속으로 파고드는 한기엔 딸의 물숨이 묻어있다
끈덕진 물의 올가미
물숨을 빠져나온 숨비소리가 휘어진 수평선을 편다
바다의 살점을 떼어 망사리에 메고
시든 해초 같은 몸으로 갯바위를 오를 때
환하게 손 흔들어 물마중 해주던 딸,
몇 번이고 짐을 쌌다가
눈 뜨면 골갱이랑 빗창을 챙겨 습관처럼 물옷을 입었다
납덩이를 달고 파도 밑으로 들어간 늙은 어미가
바다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테왁 같은 낡은 집이 대신 손을 잡는다
저녁해가 바닷속으로 자맥질하고 있다
- 「물마중」 전문
물마중은 먼저 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물밖에서 물속에서 물질을 하느라 지친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이나 그물망을 끌어내며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일종의 품앗이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지치고 고단한 몸과 마음을 서로 돕고자 하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유계자의 물마중은 물질을 끝낸 해녀가 아닌 “테왁 같은 낡은 집”으로 향하고 있다. “숨의 깊이를 다녀온 그녀”는 등이 굽었고 “물의 그늘 속”에서 “물숨을 빠져나온 숨비소리”에 “휘어진 수평선을 편다”. “끈덕진 물의 올가미, 물옷 속으로 파고드는 한기엔 딸의 목숨, 몇 번이고 싼 짐, 낡은 집” 등에서 그녀의 고단하고 녹록하지 못한 “시든 해초 같은” 삶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유계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사실은 아날로그도 아니고 디지털도 아니고, 레트로는 더더욱 아니다. 문제는 숨비소리가 휘어지도록 물의 올가미에 물숨을 쉬며 “바다의 살점을 떼어” “납덩이를 달고 파도 밑으로 들어”가는” 노동이다. 그녀의 노동은 딸의 물숨이 묻어있고 화자에게는 신선한 상상력을 자극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물숨”이 만들어낸 삶의 애착과 사랑의 여운이다. 행간의 이미지는 “굽은 등”과 “몇 번이고 짐을 쌌다가”하는 사이를 “물마중”으로 오고 가는 동시에 그녀의 물질을 하는 노동의 “물숨”이 “휘어진 수평선”으로, 그녀의 둥근 테왁이 삶 - 사랑 - 바다를 연계하게 된다. “습관처럼 물옷을” 입게 되고 테왁 같은 넓은 집이 손을 잡기도 한다. 아날로그적인 노동의 시간 사이를 시로 가로지르면서 유계자는 삶 - 사랑 - 바다를 심급에 닿을 수 있게 펼쳐 놓는다. 이와 유사한 작품으로는 「등꽃 목욕탕」, 「출근」, 「갈매기 찻집」, 「수련」, 「물의 둥지」, 「가을밤」 등이 있다.
큐빅이 빠진 브로치
아무리 화려해도 꽂을 수 없다
- 「지나간 사랑」 전문
아마도 유계자의 시 중에서 가장 짧은 시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사랑에 대한 시다. 유계자는 사랑 시를 잘 쓰지 않는 시인이다. 언젠가 한 번쯤 쓴 시를 시집에 묶을 요량으로 내놨다 치더라도 그가 바라던 의도는 조금은 달성하였다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시제가 “지나간 사랑”이다. 사랑에 관한 시는 화자의 기대감이나 대리만족으로 쓰거나 약간의 보복심리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상대방이 보든지 말든지 화자 자신이 만족하든지 말든지 그 양극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희열이나 진정제 역할을 해 온 보이지 않는 감정의 집단이 형성되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화자는 “큐빅이 빠진 브로치”를 보며 “지나간 사랑”을 떠올린다. “큐빅이 빠진 브로치”는 브로치로서의 가치나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다. 화자는 큐빅을 일종의 투명한 사랑으로 보고 불투명하고 그 존재성을 잃어버린 브로치에서 사랑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사랑”이기 때문에 “아무리 화려해도 꽂을 수 없다”라고 단정한다. “지나간 사랑”은 예전의 시간으로 돌아간다하여도 지금보다 화려하지 않는 “큐빅이 빠진 브로치”처럼 어디인가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게 사실이다. 유계자가 이 시를 통해 지적하고자 한 것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불가분 관계에 있는 삶과 사랑을 향한 경건함에 무게를 더 두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이 시에 사람을 향한 사랑, 또는 사랑하는 법과 믿음을 전제로 “지나간 사랑”에 대해 “큐빅이 빠진 브로치”를 들고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딱 한 번 뜨거웠으면 됐다
딱 한 번 입맞춤이면 족하다
딱 한 번 채웠으면 그만이다
할 일 다 한 짧은 생
밟히고 찌그러져도 말이 없다
- 「종이컵」 전문
유계자는 과거에 경험했던 것들을 철저하게 시로 잘 그려낸다. 그래서 그림을 보듯이 잘 읽어지고, 의미도 남다르게 넓고 깊다. 시가 쉽다고 해서 시 이해가 쉬운 게 아니고, 시가 어렵다고 해서 시 해석이 어려운 게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짧고 쉬운 시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유계자의 「종이컵」이 그러한 작품이다. 읽고나면 가슴이 막히고 답답한 게 왠지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밀려온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일회용 노동자로,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긋난 사랑으로, “종이컵”이 다른 대상으로 대치가 된다 해도 결과가 똑같은 값이 나온다는 생각에 현대사회의 만연한 부조리가 스쳐 지나간다. 짧지만 강렬하고 많은 뜻을 내포한 시여서 대하기가 더 경외감이 든다. 어쩌면 그 경외감 너머로 유계자는 부조리한 삶과 일회용으로 사는 노동자들을 사랑하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그런 본바탕이 좋은 시를 만들고, 좋은 시인을 또 만들어 낼 것임을 필자도 믿는다. 이와 유사한 시로는 「기적」, 「애완의 날들」, 「택배」, 「착각」, 「개미와 칡」, 「소라게」, 「회색은 없다」가 있다.
물마중 - 지혜사랑시인선 279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