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마중 - 지혜사랑시인선 279

물마중 - 지혜사랑시인선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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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유계자의 첫 시집 「오래오래오래」에서 “각각의 시어들로부터 퍼져나가는 정서적 울림의 동심원들이 서로 부딪치고 겹쳐지면서 시인만의 아련하고 쓸쓸한 내면의 시적 공간을 구축”하였고, 두 번째 시집인 「목도리를 풀지 않아도 저무는 저녁」은 그가 철저히 체득한 본질적인 경험을, 상상력으로 삶의 밑바탕을 되짚어내며 경험과 상상력의 밀접한 연결고리를 형성해내고 있는 반면에 세 번째 시집 「물마중」에서는 아날로그로 짚어내는 기억과 아포리즘을 통해 삶과 사람에 대한 신뢰와 진실을 진솔하게 들추어낸다. 또 기존의 시 형식과는 조금 다른 내용과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창작을 시도하는 그의 색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독자에게 관심을 줄 만한 일련의 작품으로는 「등꽃 목욕탕」, 「물의 둥지」, 「택배」, 개미와 칡」, 「한 번이라도」, 「접시꽃 급식소」, 「어머니를 대출합니다」, 「대나무집」, 「고드름」, 「포스트잇」, 「진주햄」 등이 있다.

그녀의 굽은 등에 파도가 친다

오롯이 숨의 깊이를 다녀온 그녀에게

둥근 테왁 하나가 발 디딜 곳이다


슬픔의 중력이 고여 있는

물의 그늘 속에 성게처럼 촘촘히 박힌 가시

물옷 속으로 파고드는 한기엔 딸의 물숨이 묻어있다


끈덕진 물의 올가미

물숨을 빠져나온 숨비소리가 휘어진 수평선을 편다


바다의 살점을 떼어 망사리에 메고

시든 해초 같은 몸으로 갯바위를 오를 때

환하게 손 흔들어 물마중 해주던 딸,


몇 번이고 짐을 쌌다가

눈 뜨면 골갱이랑 빗창을 챙겨 습관처럼 물옷을 입었다


납덩이를 달고 파도 밑으로 들어간 늙은 어미가

바다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테왁 같은 낡은 집이 대신 손을 잡는다


저녁해가 바닷속으로 자맥질하고 있다
- 「물마중」 전문

물마중은 먼저 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물밖에서 물속에서 물질을 하느라 지친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이나 그물망을 끌어내며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일종의 품앗이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지치고 고단한 몸과 마음을 서로 돕고자 하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유계자의 물마중은 물질을 끝낸 해녀가 아닌 “테왁 같은 낡은 집”으로 향하고 있다. “숨의 깊이를 다녀온 그녀”는 등이 굽었고 “물의 그늘 속”에서 “물숨을 빠져나온 숨비소리”에 “휘어진 수평선을 편다”. “끈덕진 물의 올가미, 물옷 속으로 파고드는 한기엔 딸의 목숨, 몇 번이고 싼 짐, 낡은 집” 등에서 그녀의 고단하고 녹록하지 못한 “시든 해초 같은” 삶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유계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사실은 아날로그도 아니고 디지털도 아니고, 레트로는 더더욱 아니다. 문제는 숨비소리가 휘어지도록 물의 올가미에 물숨을 쉬며 “바다의 살점을 떼어” “납덩이를 달고 파도 밑으로 들어”가는” 노동이다. 그녀의 노동은 딸의 물숨이 묻어있고 화자에게는 신선한 상상력을 자극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물숨”이 만들어낸 삶의 애착과 사랑의 여운이다. 행간의 이미지는 “굽은 등”과 “몇 번이고 짐을 쌌다가”하는 사이를 “물마중”으로 오고 가는 동시에 그녀의 물질을 하는 노동의 “물숨”이 “휘어진 수평선”으로, 그녀의 둥근 테왁이 삶 - 사랑 - 바다를 연계하게 된다. “습관처럼 물옷을” 입게 되고 테왁 같은 넓은 집이 손을 잡기도 한다. 아날로그적인 노동의 시간 사이를 시로 가로지르면서 유계자는 삶 - 사랑 - 바다를 심급에 닿을 수 있게 펼쳐 놓는다. 이와 유사한 작품으로는 「등꽃 목욕탕」, 「출근」, 「갈매기 찻집」, 「수련」, 「물의 둥지」, 「가을밤」 등이 있다.

큐빅이 빠진 브로치

아무리 화려해도 꽂을 수 없다
- 「지나간 사랑」 전문

아마도 유계자의 시 중에서 가장 짧은 시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사랑에 대한 시다. 유계자는 사랑 시를 잘 쓰지 않는 시인이다. 언젠가 한 번쯤 쓴 시를 시집에 묶을 요량으로 내놨다 치더라도 그가 바라던 의도는 조금은 달성하였다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시제가 “지나간 사랑”이다. 사랑에 관한 시는 화자의 기대감이나 대리만족으로 쓰거나 약간의 보복심리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상대방이 보든지 말든지 화자 자신이 만족하든지 말든지 그 양극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희열이나 진정제 역할을 해 온 보이지 않는 감정의 집단이 형성되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화자는 “큐빅이 빠진 브로치”를 보며 “지나간 사랑”을 떠올린다. “큐빅이 빠진 브로치”는 브로치로서의 가치나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다. 화자는 큐빅을 일종의 투명한 사랑으로 보고 불투명하고 그 존재성을 잃어버린 브로치에서 사랑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사랑”이기 때문에 “아무리 화려해도 꽂을 수 없다”라고 단정한다. “지나간 사랑”은 예전의 시간으로 돌아간다하여도 지금보다 화려하지 않는 “큐빅이 빠진 브로치”처럼 어디인가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게 사실이다. 유계자가 이 시를 통해 지적하고자 한 것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불가분 관계에 있는 삶과 사랑을 향한 경건함에 무게를 더 두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이 시에 사람을 향한 사랑, 또는 사랑하는 법과 믿음을 전제로 “지나간 사랑”에 대해 “큐빅이 빠진 브로치”를 들고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딱 한 번 뜨거웠으면 됐다


딱 한 번 입맞춤이면 족하다


딱 한 번 채웠으면 그만이다


할 일 다 한 짧은 생


밟히고 찌그러져도 말이 없다
- 「종이컵」 전문


유계자는 과거에 경험했던 것들을 철저하게 시로 잘 그려낸다. 그래서 그림을 보듯이 잘 읽어지고, 의미도 남다르게 넓고 깊다. 시가 쉽다고 해서 시 이해가 쉬운 게 아니고, 시가 어렵다고 해서 시 해석이 어려운 게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짧고 쉬운 시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유계자의 「종이컵」이 그러한 작품이다. 읽고나면 가슴이 막히고 답답한 게 왠지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밀려온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일회용 노동자로,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긋난 사랑으로, “종이컵”이 다른 대상으로 대치가 된다 해도 결과가 똑같은 값이 나온다는 생각에 현대사회의 만연한 부조리가 스쳐 지나간다. 짧지만 강렬하고 많은 뜻을 내포한 시여서 대하기가 더 경외감이 든다. 어쩌면 그 경외감 너머로 유계자는 부조리한 삶과 일회용으로 사는 노동자들을 사랑하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그런 본바탕이 좋은 시를 만들고, 좋은 시인을 또 만들어 낼 것임을 필자도 믿는다. 이와 유사한 시로는 「기적」, 「애완의 날들」, 「택배」, 「착각」, 「개미와 칡」, 「소라게」, 「회색은 없다」가 있다.
저자

유계자

유계자시인은충남홍성에서태어났으며2016년『애지』신인상으로등단했고,2013년웅진문학상수상,2021년애지문학작품상수상,시집『오래오래오래』,
『목도리를풀지않아도저무는저녁』이있으며2022년두번째시집은중소출판사출판콘텐츠에선정되었다.
유계자의세번째시집인『물마중』은아날로그로짚어내는기억과아포리즘이갖는삶의교훈과그가추구하고자하는근원적인시의힘들로가득히구성되어있는것으로읽힌다.거기에는그가추구하고지향하는젊고신선한아날로그에서추려낸삶과사람들이그중심에들어차있다.유계자는더나아가삶의여러방식과형태,그리고그러한것들을삶의바탕으로살아온사람들의땀과눈물에대해사유의세계를증폭시키는아포리즘으로천착시킨다.

목차

시인의말5

1부
햇살이꽃뭉치샤워기를틀어놓는다

출근12
가을밤13
물마중14
수련15
지나간사랑16
택배17
갈매기찻집18
개미와칡19
등꽃목욕탕20
소라게21
기억나니22
물의둥지23
애완愛玩의날들24
기적25
난청인가요26
종이컵27
착각28
회색은없다29

2부
거울을다시들었다

한다발의봄32
하현달33
사월34
접시꽃급식소35
못이빠져나간자리36
분장이필요해37
소문38
미루나무편지39
책장을정리하다가40
세송이피었어요41
가을한권42
겨울양식43
처서44
한손을잡는다45
진실46
열쇠47
한번이라도48

3부
꽃빛이환할수록걸음이더디다

어머니를대출합니다50
풍어51
아버지52
존재53
고드름54
꼬리55
무성한고민56
목단꽃할머니를찾습니다57
에움길58
홍시59
훔쳐봤기로서니60
바다를데려오는남자61
시클라멘62
이치63
점화하다64
풋감의얼룩65
대나무집66

4부
또다른행운이진열을기다린다

그네68
구절초69
봄강70
신성新星71
나팔꽃피면72
봄비73
보라의계절74
삼월의수채화75
포스트잇76
유세77
두손으로받는다78
귀가열리는길79
공주princess80
진주햄81
행운의목82
무르지않는것83
구간84
소낙비는내리고86
물의길87

해설/아날로그로짚어내는기억과아포리즘,그시의힘들/권혁재89

출판사 서평

그녀의굽은등에파도가친다
오롯이숨의깊이를다녀온그녀에게
둥근테왁하나가발디딜곳이다

슬픔의중력이고여있는
물의그늘속에성게처럼촘촘히박힌가시
물옷속으로파고드는한기엔딸의물숨이묻어있다

끈덕진물의올가미
물숨을빠져나온숨비소리가휘어진수평선을편다

바다의살점을떼어망사리에메고
시든해초같은몸으로갯바위를오를때
환하게손흔들어물마중해주던딸,

몇번이고짐을쌌다가
눈뜨면골갱이랑빗창을챙겨습관처럼물옷을입었다

납덩이를달고파도밑으로들어간늙은어미가
바다를끌고집으로돌아오면
테왁같은낡은집이대신손을잡는다

저녁해가바닷속으로자맥질하고있다
―「물마중」전문

물마중은먼저물질을마친해녀들이물밖에서물속에서물질을하느라지친해녀들이채취한해산물이나그물망을끌어내며도와주는것을말한다.이것은일종의품앗이처럼자연스러운것으로지치고고단한몸과마음을서로돕고자하는행동에서비롯된다.그러나유계자의물마중은물질을끝낸해녀가아닌“테왁같은낡은집”으로향하고있다.“숨의깊이를다녀온그녀”는등이굽었고“물의그늘속”에서“물숨을빠져나온숨비소리”에“휘어진수평선을편다”.“끈덕진물의올가미,물옷속으로파고드는한기엔딸의목숨,몇번이고싼짐,낡은집”등에서그녀의고단하고녹록하지못한“시든해초같은”삶을유추할수있다.

그러나유계자가지적하고자하는사실은아날로그도아니고디지털도아니고,레트로는더더욱아니다.문제는숨비소리가휘어지도록물의올가미에물숨을쉬며“바다의살점을떼어”“납덩이를달고파도밑으로들어”가는”노동이다.그녀의노동은딸의물숨이묻어있고화자에게는신선한상상력을자극하게되는데,그것은바로“물숨”이만들어낸삶의애착과사랑의여운이다.행간의이미지는“굽은등”과“몇번이고짐을쌌다가”하는사이를“물마중”으로오고가는동시에그녀의물질을하는노동의“물숨”이“휘어진수평선”으로,그녀의둥근테왁이삶?사랑?바다를연계하게된다.“습관처럼물옷을”입게되고테왁같은넓은집이손을잡기도한다.아날로그적인노동의시간사이를시로가로지르면서유계자는삶?사랑?바다를심급에닿을수있게펼쳐놓는다.이와유사한작품으로는「등꽃목욕탕」,「출근」,「갈매기찻집」,「수련」,「물의둥지」,「가을밤」등이있다.

큐빅이빠진브로치

아무리화려해도꽂을수없다
―「지나간사랑」전문

아마도유계자의시중에서가장짧은시가아닌가싶다.그것도사랑에대한시다.유계자는사랑시를잘쓰지않는시인이다.언젠가한번쯤쓴시를시집에묶을요량으로내놨다치더라도그가바라던의도는조금은달성하였다고추측한다.왜냐하면시제가“지나간사랑”이다.사랑에관한시는화자의기대감이나대리만족으로쓰거나약간의보복심리로쓰는것이일반적이어서상대방이보든지말든지화자자신이만족하든지말든지그양극사이에는어느정도의희열이나진정제역할을해온보이지않는감정의집단이형성되었으리라믿기때문이다.

화자는“큐빅이빠진브로치”를보며“지나간사랑”을떠올린다.“큐빅이빠진브로치”는브로치로서의가치나그역할을제대로해주지못한다.화자는큐빅을일종의투명한사랑으로보고불투명하고그존재성을잃어버린브로치에서사랑의무의미함을깨닫고있다.그러나이미“지나간사랑”이기때문에“아무리화려해도꽂을수없다”라고단정한다.“지나간사랑”은예전의시간으로돌아간다하여도지금보다화려하지않는“큐빅이빠진브로치”처럼어디인가부자연스럽고불편한게사실이다.유계자가이시를통해지적하고자한것은“지나간사랑”에대한아쉬움을토로하는게아니라인간과불가분관계에있는삶과사랑을향한경건함에무게를더두지않나싶다.그래서이시에사람을향한사랑,또는사랑하는법과믿음을전제로“지나간사랑”에대해“큐빅이빠진브로치”를들고나온것인지도모른다.

딱한번뜨거웠으면됐다

딱한번입맞춤이면족하다

딱한번채웠으면그만이다

할일다한짧은생

밟히고찌그러져도말이없다
―「종이컵」전문

유계자는과거에경험했던것들을철저하게시로잘그려낸다.그래서그림을보듯이잘읽어지고,의미도남다르게넓고깊다.시가쉽다고해서시이해가쉬운게아니고,시가어렵다고해서시해석이어려운게결코아니다.오히려짧고쉬운시가이해하기어려울때가있다.유계자의「종이컵」이그러한작품이다.읽고나면가슴이막히고답답한게왠지알수없는불편함이밀려온다.노동자의입장에서는일회용노동자로,사랑하는사람의입장에서는어긋난사랑으로,“종이컵”이다른대상으로대치가된다해도결과가똑같은값이나온다는생각에현대사회의만연한부조리가스쳐지나간다.짧지만강렬하고많은뜻을내포한시여서대하기가더경외감이든다.어쩌면그경외감너머로유계자는부조리한삶과일회용으로사는노동자들을사랑하는신념을갖고있는것으로여겨진다.그의그런본바탕이좋은시를만들고,좋은시인을또만들어낼것임을필자도믿는다.이와유사한시로는?기적」,「애완의날들」,「택배」,「착각」,「개미와칡」,「소라게」,「회색은없다」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