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초장 - 지혜사랑 시인선 282

어초장 - 지혜사랑 시인선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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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탁경자 시인의 첫 시집 「어초장」은 시와 삶,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사랑의 자세를 반듯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 그의 시작법은 시를 위한 시를 억지로 치장하는 가식이 아닌, “누군가의 그림자에 불과한”(「물집」) 삶과 그리고 “먼바다를 가기 위해/ 그물에 탑을 달고”(「바다의 노인」) 있는 사람에 대한 진지한 접근에서 비롯되고 있어서 시가 가볍거나 추상적이지 않다. 더 나아가서는 서사의 한 축을 서정의 진경으로 확장시켜 시의 의미를 걸러내는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와 삶, 그리고 사람을 근본적으로 사랑하는 탁경자 시인이 “시의 추를 던지며/ 별을 낚는” 「어초장」의 시집에서 “새벽을 수선하고 있는 수선화/ 꽃이 세상을 피우고 있는 거다”(「수선화」)와 같은 수준 높은 작품들이 “끙”하고 시의 무게를 내려놓는 것을, 때로는 편하게 때로는 아프게 획득해낸다는 사실을 마주치게 된다.
- 권혁재, 시인
저자

탁경자

탁경자시인은전남광양에서출생했고,중앙대학교예술대학원전문가과정을수료했고,2017년계간시전문지『애지』로등단했다.
상징과은유는최고급의수사법이며,깊고뛰어난성찰과인식의힘이없으면그수사법은이미그효과를발휘할수가없다.탁경자시인의첫시집인『어초장』은상징과은유의수사법을가장잘활용하는시인으로서,이형권교수의표현대로“이세상의삶의상처를위한응시와역설의노래”라고할수가있다.

목차

자서5

1부

詩12
선운사에서13
독감14
섬유근육통16
못17
애월에서18
구찌의눈물19
연서20
어초장21
밥그릇무덤22
수선화23
석류나무관절통을앓다24
낡은집25
불면증27
당신28
그녀의항아리29
상수리나무에바람이불면31

2부

물집34
바다의노인35
도라지꽃37
독을깨다38
틈39
도마40
불새41
시의물에빠진파리42
거푸집44
사랑도저만큼은45
폐업46
행운목47
덤48
수요일의이팝나무49
청풍댁50
섬진강51
거미줄52

3부

동행54
감나무에걸려있는전화기55
진달래꽃56
아버지의강57
빈집58
105호병실59
신발장60
제라늄전언62
네가주인63
인연64
손녀165
손녀266
무궁화호열차안에서67
순천만갈대숲에서68
사과나무귀69
후박나무아래서70
회의중71
물꽃72

4부

끙74
반달76
그녀의라디오77
쌀독78
엄니꽃79
계란노른자80
웅덩이81
어느봄날82
그믐83
유월의붕어빵84
동백85
한페이지사이에서86
바람난포도87
봄비89
가을을사세요90
계단92
고양이와달94
페루커피를마시며95

해설/삶의상처를위한응시와역설의노래/이형권97

출판사 서평

탁경자의시집「어초장」은삶의상처를극복하기위해,일차적으로그상처를응시,성찰하면서그것을극복하기위해역설의세계로나가는시편들로구성되었다.이시집에서상처의응시는개인적인것에서부터사회적,역사적,이념적인차원에서다양하게이루어진다.시인은상처를극복하기위해새로운생명혹은심미의세계를상상하는데,그결과로폐허속에핀꽃이나물속에피어나는꽃의이미지가탄생한다.한편,시인이상처를극복하는또하나의방식은세상너머의고요한자연의세계를그리는것이다.자연은고요한장소로서세상의소란스러움과대비되는세계로서,인간마저도자연의일부가되는고요의풍경속에마음의평화를얻을수있는곳이다.그곳은“새벽강가에서/꽃을깨우고있는것은새떼다/새떼가어둠에키를꽂고/햇살을사방으로풀어놓고있는거다/수런수런번지며/새벽을수선하고있는수선화/꽃이세상을피우고있는거다”(「수선화」부분)라는자연처럼,“새떼”와“햇살”과“수선화”가하나로화합하면서아름다운풍경을탄생시키는장소이다.자연은항상“새벽”처럼상처의“어둠”을물리치고밝은세상을꽃피우는세계인것이다.그곳에서는인간도자연과하나가된다.
-이형권,문학평론가,충남대교수

이시집은시에관한고백으로시작한다.시집을열자마자맨앞자리에등장하는「시」는탁경자시인이오랜세월시의길을걸어온마음이어떠한지드러낸다.시의길은“보일듯아니보일듯/너는구불구불/너무멀리있었고/불현듯바람이불때마다/내길이아닌듯싶어//돌아오고싶더라/울고싶더라”(「시」부분)라고고백한다.“너무멀리있”는시의길은가도가도그실체를보여주지않아서,이지난한길가기를포기하고“돌아오고싶”었다는것이다.이것은시인이간직한시적자의식이라할수있을터,한시인으로서시에관한이러한생각은매우소중한것이다.시인이시에관해사유하는것은한시인으로서의자기정체성을확고히하기위한고뇌의과정이기때문이다.낭만적아이러니라는말도있거니와,시인은항상자신의시가불완전하다고생각하면서완전한시를향한열망으로시를쓴다.자신의시가불완전하다는인식은오히려더나은시를향한정신적에너지가되는것이다.탁경자시인이이시집의첫작품에서이러한인식을드러낸것은그만큼시를향한진심이깊다는것을뜻한다.가령“시를읽다/시를쓰다/죽어도좋을”(「시의물에빠진파리」부분)이라는시구는그러한진심을직설적으로드러낸다.이러한시적자의식이타인을향할때는시(인)에대한경외감으로나타나기도한다.

그녀의첫시집에서
시한작품이걸어나와
와인속으로들어가던밤
우리는마당에서모닥불을지폈다
하얀철문이건반이되어반짝이고
피아노소리가고샅길을따라
가는걸음으로길게걸어갔다
살구나무에걸려있는달
고양이가올라가
달을물고내려왔다
초겨울의별이잔물결로흐르고
고양이가달을삼키며사라졌다
밤은차고읽어가는시집은
절정의모닥불처럼뜨거워졌다
-「고양이와달」전문

시인은지금“그녀의첫시집”을읽고있다.“모닥불”과“와인”이등장하는것으로볼때몇몇지인들과함께시집발간을축하하는자리를마련하고있는듯하다.장소는“하얀철문”과“마당”이있는전원적인집이고,시간은“초겨울”의“달”이떠있는밤이다.“모닥불”을피우고“와인”을마시면서“시집”을읽는일은생각만으로도멋진일이다.이아름다운서정의시간에“살구나무에걸려있는달”을“고양이가올라가”서“물고내려왔다”가“달을삼키며사라졌다”라고한다.이때“고양이”는실제의동물로볼수도있지만,“고양이”모양의구름이“달”을가리어버렸다는뜻으로읽는것이바람직하다.“달”빛이가려지면서어두운하늘에는“별이잔물결로흐르”고있다고하기때문이다.아무튼“달”과“별”이빛나는“초겨울”밤에시의향연을통해“시집은/절정의모닥불처럼뜨거워졌다”라고한다.시에관한진심이드러나는대목이다.“달이섬진강/은어떼를몰고오면/강가에서/시의추를던지며/별을낚는다”(「어초장」부분)라는송수권시인에게관심을보이는것도그러한진심과관련된다.탁경자시인은이러한마음으로시의길을찾아간다.

달이섬진강
은어떼를몰고오면
강가에서
시의추를던지며
별을낚는다

그별손바닥에올려
心자를심으면
만장의문장들이
서정의잎새로그늘쳐오고
민초들의노래가돌고돌아
뻐꾹새피울음으로
능선을타고넘어오는
지필묵잃은어초장

언제쯤벗어놓고갔나
섬돌위밑창닳은신발위로
솔바람타고온새들이
한그림자를스치며간다
-「어초장」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