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를통해보는꽃밭/유언을말하는아내처럼/꽃잎입술이바람에떨린다//자궁을닮아부푼씨방/노랗게익은씨앗주머니/큰기침한번에//사방으로튀어나간/사리알같은/작은씨앗//마당에핀봉선화처럼/움직임이없는/병실의아내/여름과가을/계절옷을갈아입어//봉선화씨앗주머니가터지듯/아픈아이들에게/씨앗을나눈꽃씨여인//내사랑/
꽃씨여인떠난뒤,/내머리카락에서리가내려하얗다
-꽃씨여인전문
전금란은“마당에핀봉선화”에서“병실의아내”그리고“내머리카락에내린하얀서리”의정경을존재론적시선으로자의식을잘정치하여빚어낸다.특히“유언을말하는아내”에서“자궁을닮아부푼씨방”의부분에이르러서는아내의병이위중함을의식하게해준다.머지않아아내는“봉선화씨앗주머니가터지듯”떠나갈것이고화자는그런“꽃씨여인”을바라보며삶의존재를새삼되새기는자의식의내면과마주치게된다.우리가알고있는삶과죽음에대한의미는사람마다다를것이다.그것은각자의가치관이나사유하는세계가다른데서관계가깊은연유에서다.
화자는“창가를통해보는꽃밭”에서봉선화를보고있지만“꽃잎입술이바람에”떨리고“큰기침한번에//사방으로튀어나간/사리알같은”불안한징조에직면하게된다.“움직임이없는/병실의아내”와언제터질지모르는“아픈아이들에게/씨앗을나눈꽃씨여인”을안타깝게바라보는시선은머리카락에서리가내릴정도로이타적인자의식으로가득차있기까지하다.이러한자의식은“계절옷을갈아”입고“씨앗을나눈꽃씨여인”에서“내사랑/꽃씨여인떠난”것으로각인시켜내고있다.
바람에떠는꽃잎입술,노랗게익은씨앗,아픈아이들,내사랑,꽃씨여인등의이미지들은화자가지적하고자한궁극적인자의식의내면이다.떨리고,터지고,튀어나간작은씨앗등은개별성을가진자의식으로화자의본모습뿐만아니라현재를살아가고있는우리들의삶과동떨어지지않는실제적인모습이라는점에서이시가풍기고있는의미가남다르다고할수있다.이외에도“바닥에닿는순간야생마처럼”(사랑은봄비처럼)튀는봄비소리나“빨갛게터져버린나팔꽃”(아가미가꽃으로핀다)을통해전봇대를타고오르는생명의살랑거림을응시하는행위나혹은“캔버스안에서살랑거리는/키큰가을상형문자”(코스모스소녀)에서수채화처럼활짝피어한들한들흔들리는코스모스의몸짓을통해일상적인삶의장면을환기시켜자의식에대한깊은성찰과비애를감각적으로들춰내고있다.
이번에상재한전금란의시집<벚꽃칸타타로떨어지는봄을본다>는타나토스나코나투스중어느한방향으로치우치지않고균형을잘맞춘위치에서자의식을인식한다는데서그의미를찾을수있다.그래서그의시세계는비관적이나부정적이지않고그가지닌개별적인자의식으로시를더깊고내밀하게한다.화자나시인이이러한세계관이나사유하는인식의폭에따라시를대하는방식이나방향이다를수밖에없다.전금란의시에서는세상의모습이문명의이기나폐해로얼룩지는면도없지않게지적하고있으나거개의작품은화자로전이된대상을통해살갑고진정성있는내밀성으로통찰하기도한다.그일례로꼽을수있는작품이<어머니항아리>이다.
어머니돌아가신날부터/매일항아리를닦는다//함박꽃무더기옆장독대/외할머니가어머니에게주신/씨간장을품은항아리//안개와뒤엉킨먼지묻은표면/알몸의항아리아침마다닦으면/떠오르는어머니얼굴//투박한손등같은뚜껑을열자/항아리속깊은눈매/
동그랗고새까만눈동자/어머니눈동자와마주친다//어머니눈동자가‘간장주랴’라고말한다
-어머니항아리전문
화자가바라보는“어머니항아리”는안타까운외할머니의죽음과매일항아리를닦는어머니사이에서비롯되는어머니와외할머니의삶과무관하지않다.사람이사람과맺는관계는많은대화와몸짓에서우러나는소통에서이루어진다.시는시인의감각과정서를나타내는것이기도하지만화자의메시지나코드를독자에게전달하여감동시키는것과마찬가지로타자나사물에서비롯된사유를획득하는기능을갖게해준다.
전금란의시에서는시의미학보다는정서나사건으로인한비애나회한을자의식으로잘걸러내고있다.어머니의항아리는시의슬픈전개가애잔하게드러나고있으며,시속의이미지를진지하게그려내어배치시켜놓는다.그런데이시를좀더자세히들여다보면“어머니”가중의적인의미로존재하는“어머니”라는사실을알수있다.하나의어머니는어머니의어머니인외할머니이고다른하나의어머니는화자가부르는어머니이다.“어머니돌아가신날부터/매일항아리를닦는”어머니의모습에서화자는어머니의어머니인즉,씨간장을어머니에게주신외할머니를떠올린다.그리고“안개와뒤엉킨먼지묻은표면”을아침마다닦는어머니의모습에서외할머니의얼굴과어머니의얼굴을동시에연상시킨다.이러한일련의행위와사유는항아리뚜껑을열자“동그랗고새까만눈동자/어머니눈동자와마주”치는장면에서정점을찍는정경으로나타난다.머지않아잠재적인어머니가될화자자신의눈동자와어머니의눈동자가마주치는서정을아슬한자의식으로잘획득해낸다.
그대와의만남을아는지
마른가지에스치는봄바람
닿는곳마다
전주를알리는음이
조금씩열린다
리듬을머금은둥근음표가
꽃잎샹들리에로펼쳐지는봄날
바람의손가락이
하얀건반을건드리자
시작된봄변주곡
나뭇가지오선지에서나비같이
가벼운칸타타로내려앉는벚꽃,
꽃잎음표한장한장
향기머금은숨결로
노래를부르는거리사이렌목소리를닮은걸까
지나는발걸음멈춰
귀기울이는유혹의칸타타
흩날리는벚꽃선율따라
흐드러진향기
허공에서스텝으로
눈꽃같은춤을춘다
--[벚꽃칸타타]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