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잘 지내지? (김영식 시집)

안녕, 잘 지내지? (김영식 시집)

$10.02
Description
피어나는 일이나, 떨어지는 일에 매이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피어나는 이치와 떨어지는 이치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김영석의 시는 무엇보다 자연에 드리워진 이러한 역설을 눈여겨보는 데서 비롯된다. 자연 현상만 이런 게 아니다. 우리네 삶 자체가 그렇다. 태어나는 일은 늘 죽음과 이어져 있고, 죽는 일은 늘 태어남과 이어져 있다. 삶과 죽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지 않으면 생명 순환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넌 떨어져 봤니?”라는 시인의 질문에는 모든 자연 사물을 관통하는 생명 이치가 스며들어 있다. 모든 사물이 피어나는 자리에서 모든 사물은 떨어지고, 모든 사물이 떨어지는 자리에서 모든 사물은 피어난다.
저자

김영석

김영석시인은서울에서출생했고,2021년『시문학』으로등단했다.2020년‘중원문학상’(시부문)을수상했으며,충북충주에서활동하고있다.충북문인협회회원,사람과시동인이고,현대동양대학교재직중이다.
『안녕,잘지내지?』는김영석시인의첫시집이며,‘까만시간을품은사물의시학’으로잘축조되어있다.

목차

시인의말 5

1부
하늘이뚝떨어지면

하늘이뚝 12
모네의탁자 13
직하폭포 14
가을바위낙지 15
목어木漁 16
동량역東良驛 18
황태의반란 20
올무 22
마음껏피기 24
복어꽃 25
용대리겨울직포 26
마음바쁜그때, 27
첫비는내리고 28
도벽盜癖 29
채송화 30
너를 31
외끝사랑 32
단풍 33
석종石鐘 34
늦가을초겨울 35
정말? 36




2부
별일없지?

안부 38
목종 39
무인역달천 40
석상 42
견고한저녁 43
취몽醉夢 44
그이름은명태 46
신천옹神天翁 48
속빈나무 49
하나카써비스센타 50
삼탄역2季 52
찾아가는길 54
금연부스 55
문-영혼의무게21g 56
가면이였어 58
온가슴쳐대는 59
나뭇가지위의새 60
어느날 61
풀의영토 62
늑대와개의시간,항구 64
참아둔한 66
구인사내려가는길 67
멈추지않는 68
내치질內痴疾 69


3부
어상천가는길

어상천가는길 72
참빗살나무 73
싸리나무그믐날 74
그애를보면 75
파꽃 76
봄날 77
지방도532조동리 78
라면먹기 79
담장안풍경 80
우리둘은 82
이사전날 83
이북,겨울국수 84
형수취수제 85
루암리고분 86
청매 87
방파제끝 88
끝물 89
분꽃 90
축제 91
도화꽃 92
장선리느티나무 93
요선암돌개구멍 94
한강수질관리사 95
관음촌판각8년차 96
산사내려서면 98

해설/까만시간을품은사물의시학-김영석의시세계/오홍진 99

출판사 서평

노란은행잎하늘에서뚝떨어졌다
떨어질준비를한다
가을을떨구는샛노란바람
몸뚱이는풍장되는거지
알맹이는조장되는거지
이파리는화장되는거지
밟히고나뒹굴고썩어가고매장되는거지
낙엽타는냄새
가을이뚝떨어진다
파란하늘이뚝떨어진다

넌떨어져봤니?
-「하늘이뚝」전문


김영석시인은모든사물에드리워진자연이치에시적인관심을기울인다.이를테면첫시인「하늘이뚝」에서시인은시간이되면“떨어질준비를”하는은행잎에주목한다.샛노란가을바람이불면은행잎은“밟히고나뒹굴고썩어가고매장”된다.“낙엽타는냄새”가퍼지면드높았던가을하늘도“뚝떨어진다”.자연이치란이런것이다.피어날때는피어나고,떨어질때는떨어진다.피어남과떨어짐은하나로이어져있다.피어나면떨어지기마련이고,떨어지면다시피어나기마련이다.시인은파란하늘도뚝떨어지는이아름다운계절에우리를향해“넌떨어져봤니?”라고묻는다.노란은행잎은떨어진다는마음없이땅으로떨어져내린다.자연이치를자연이치로받아들인다는말이다.
피어나는일이나,떨어지는일에매이면아무것도할수가없다.피어나는이치와떨어지는이치는하나로이어져있다.김영석의시는무엇보다자연에드리워진이러한역설을눈여겨보는데서비롯된다.자연현상만이런게아니다.우리네삶자체가그렇다.태어나는일은늘죽음과이어져있고,죽는일은늘태어남과이어져있다.삶과죽음이하나로이어져있지않으면생명순환의기적은일어나지않았을것이다.“넌떨어져봤니?”라는시인의질문에는모든자연사물을관통하는생명이치가스며들어있다.모든사물이피어나는자리에서모든사물은떨어지고,모든사물이떨어지는자리에서모든사물은피어난다.
「직하폭포」에서시인은“끝을향해밑바닥을향해사정없이모두놓아두고”전속력으로떨어지는폭포를노래한다.모든것을놓아야폭포는비로소자유에이를수있다.절벽에서뛰어내리려면‘떨어지는’두려움을떨쳐내야한다.시인은“확놔버려라”라고외친다.머릿속생각으로두려움을떨쳐낼수는없다.머리가움직이기전에본능적으로모든것을내려놔야한다.내려놓아야뛰어들어갈틈이생기고,내려놓아야움켜잡을무언가가생긴다.두려움을떨쳐내고절벽아래로뛰어내리는이힘을시인은절박함에서길어올린다.절박함은죽음을각오하는마음과연결되어있다.폭포는죽음을각오하고까마득한밑바닥을향해뛰어내린다.밑바닥이란심연(深淵)과같다.살아남으려는욕망에매인사람이어떻게심연을가로지를수있을까?자기를내려놓은존재만이심연을거슬러오를수있다.
시인은심연을가로지르는폭포의이힘에“서늘한정신”이라는이름을붙이고있다.「용대리겨울직포」에나타나는폭포의서늘한정신은“고요속에격렬한울림”과밀접하게이어져있다.겨울폭포는찰나의순간에얼어버려“황태들이떼지어오르”는형상을내보이고있다.시인은폭포의얼음기둥이우르릉무너지며황태들이폭포를거슬러오르는순간을상상한다.황태들이살아있는한겨울폭포는늘봄을꿈꾼다.봄이오면폭포는다시절벽에서밑바닥으로뛰어내리는모험에거침없이뛰어들것이다.시인은가만히옷깃을여미며봄의정신을잊지않은겨울폭포의모습에허리숙여삼배를올린다.1950~60년대한국시를이끈김수영은「폭포」에서곧은절벽을무서운기색도없이떨어지는폭포를“고매한정신”으로표현한바있다.두려움에매인존재가어떻게서늘하고고매한정신과마주할수있을까?김영석시의밑자리를형성하는시정신이이러한폭포의정신을따르고있는것은분명해보인다.


반란을꿈꾸며먹태,백태,무두태
미이라처럼구부러지지도않는지느러미로
덕대에서내려선다
황태너는남아늙은시인의시가되어라
얼어버린강따라가다보면
바다만나리
몸서리치게그리운비린내맡으리
-「황태의반란」부분

오래도록우려낸침묵
맑고깊게퍼져서간다
그의두툼한손길닿는곳마다
새순불쑥키가커지고
왁자지껄떠들던버들치한박자숨소리낮추는것을
꽃들은자기만의색깔더하고
다늦은저녁
천년잠에서깨어난결고운돌무늬고요히눈을뜬다
-「석종(石鐘)」부분

여기에서걸어나갈수있다면
강물속에서뚜벅뚜벅
허기진나무밑으로걸어갈수있다면
내피가머루주처럼차가운돌덩이혈관
구석구석돌아철근같은무릎
후두둑떨쳐낼수있다면
끓어오르는피생명을꿈꾼다
-「석상」부분


「황태의반란」에는영하15도혹한에서도반란을꿈꾸는황태가나온다.황태의반란은말그대로죽음을삶으로되돌리는과정을통해펼쳐진다.죽음을삶으로되돌리는일은심연을가로지르는일과연동되어있다.반란을꿈꾸는황태는얼어버린강을따라바다에이른다.바다는뭇생명이태어나는모체(母體)와같다.그곳에서황태는“몸서리치게그리운비린내”를드디어만난다.‘비린내’로표현되는살아있음의감각은김영석이추구하는“늙은시인의시”를낳는원동력으로작용한다.영하15도의혹한을극복하는이힘이“서늘한정신”을낳고,그정신으로시인은“그리운비린내”가넘쳐나는시를쓴다.
생명의비린내를품은서늘한정신의미학은「석종(石鐘)」에도그대로이어진다.맑고깊게퍼지는종소리를시인은“오래도록우려낸침묵”으로표현한다.종소리가닿으면새순은불쑥키가커지고,왁자지껄떠들던버들치는한박자숨소리를낮춘다.꽃들은자기만의색깔을더하는가하면,돌무늬가천년잠에서깨어나고요히눈을뜨기도한다.오래된침묵에길든사물은석종이내는침묵의소리를온몸으로받아들인다.침묵속에서온전히눈을뜨는사물만이새로운생명으로뻗어나간다.“동그란원안으로들어와/골똘히제속들여다본다”라는시구를가만히음미해보라.오래도록우려낸침묵의소리는어찌보면생명과생명사이에서피어나는맑고깊은소리인지도모른다.생명과생명을하나로아우르는‘숨소리’라고말해도좋겠다.
석종(石鐘)에서울리는침묵의소리는「석상」에이르면“철근같은무릎”을떨쳐내고“끓어오르는피생명”을꿈꾸는석상의이미지로거듭표현된다.석상은돌팔한개쯤끊어내서라도누군가에게는한없이“고단한하루”나마얻고싶다.무엇이석상을이토록간절하게만든것일까?석상은생명이되어“뜨거운눈물”을흘리고싶다.석상이흘린눈물은강물이되어흐르다가어느날“모래가된다”.석상이모래로변하는그엄청난시간을묵묵히버틴존재만이비로소“끓어오르는피생명”이될수있다.얼어버린황태가비린내를품고,석종이생명을품으며,석상이생명으로거듭나는이간절함을품고시인은시를쓰는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