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과 마른 나무와 검은색에 가까운 녹색의 (양장)

설원과 마른 나무와 검은색에 가까운 녹색의 (양장)

$12.00
Description
“캄캄한 삶 앞에 목이 멜 때”
"험난한 시대를 나는 자매들에게"
"슬퍼하세요, 살아가세요, 다시금 슬프더라도"

저자

하록

저자:하록
대전에서출생했고,홍익대학교시각디자인과를졸업했다.2024년『애지』로등단했으며,우리젊은시인들의존재론적위기와그절망을티없이맑고깨끗한‘신세대의감각’으로노래함으로써크게주목을받은바가있다.
하록시인의첫번째시집인『설원과마른나무와검은색에가까운녹색의』는김보나시인의표현대로,‘물뭍동물의캔버스’에그린시집이자“이시대의청춘에게시인이전하고싶은마법의물약이온몸을휘감아”도는시집이라고할수가있다.요컨대하록시인의첫시집인『설원과마른나무와검은색에가까운녹색의』는언어의혁명이자감각의혁명이며,우리한국현대시의경사라고할수가있다.

목차


시인의말5

1부

열심13
재14
밤에서15
미세먼지16
광물의은신18
실업자20
기대21
금연23
직사광선을피해서늘한곳에보관하시오24
탄생설화26
사소한사람들27
개인의사정28
남은무덤29
문어30
뱀의주인32

2부

바람의왕35
백색광선36
0으로나누기37
흰밤38
귀로39
주사40
소나기41
설원과마른나무와검은색에가까운녹색의42
그리기43
초대45
극야47
화장49
유실물50
주행부적합개체군51
자랑52

3부

뿌리55
내고양이56
아래층계단에서58
우리59
희망60
미끼62
루스63
고양이를안고누워65
이것도사랑이라면66
판도라68
자투리고백70
유성72
사막의추운얼룩74
빨래76
영영의주술77

4부

0519혜화81
눈부시도록83
그림자밟기84
프로포즈85
빵과장미87
항성의아이들89
제90
눈부시게맑은밤우리거기에91
직유와가정법93
마녀집회95
소성단97
저구석에대강밀어둔그때는결국98
빨간구두100
투명한사슴의탑102
산책하다103

해설|물뭍동물의캔버스|김보나107

출판사 서평

시각디자인과를졸업하고현재일러스트레이터로활동하고있는이력이말해주듯,하록의시에선다채로운색채와이미지가펼쳐집니다.
“직사광선을피해서늘한곳”에머물고싶은사소한존재들을도닥이고,그악의와실의조차꺼내어긍정하는시.결국“우리는모두사랑으로얽혀있다”고말하는시.이것이‘물과뭍’을오가는수륙양용의존재로서하록시인이써내려가고독자들에게건네려한미덕이라고저는믿습니다.그러니이작은시집을선뜻들어보세요.이시대의청춘에게시인이건네고싶은마법의물약이온몸을서늘하게휘감아돌테니까요.
-김보나,시인

인적드문풀밭에앉아
흐르는별을머금은빛나는물결을보며
총총수놓듯네가절망을말했을때
위로도동의도하지못하고
움켜쥐었던것은숨
한줌숨

침묵은더이상다정하지않고
포옹도더이상평화롭지않아
막다른곳에다다른우리는
막다른곳을뚫고넘어왔다고
어떻게설명할수있을까

한길은벼랑이고한길은절벽일때
나벼랑의바닥이궁금해
우리떨어지면어딘가닿기나할지
나절벽의속살이궁금해
우리부딪히면어딘가금이나갈지

떠도는별을잡아수호성을삼고
우리를지키는신이한존재라도빌어
그래도너서있노라
서있으라우리
-「눈부시게맑은밤우리거기에」전문

등단작「눈부시게맑은밤우리거기에」를펼칩니다.‘맑은밤’이라니,일견불가능해보이는조어가눈길을끕니다.‘흐르는별을머금은빛나는물결’이란문장은은하수를바라보는두사람의모습을어렵지않게상상하게하지요.혹은강물에비친밤하늘을바라보는것같기도하고요.그런데이것이도시라면,서울의강물이라면흐린하늘탓에별빛이비칠가능성은거의없다고봐야할것입니다.그렇다면지금강에비치고있는건인간의불빛인셈입니다.네온사인이나아파트의불빛을총망라한인간의불빛은물에비치는순간에야별처럼보이지않은가요.이러한아름다운역전은하록의시집곳곳에서일어나고있습니다.

가까운사람이‘한줌숨(한숨을고유한시선으로표현한말로읽힙니다)’을내쉬며느닷없이찾아든어둠을고백할때,우리는무엇을할수있을까요?‘침묵’을택하는건무책임하고‘포옹’이가져다줄평화도잠시뿐이기만할때,시인은한사람의곁에그저머물기를선택합니다.그리고함께있는두사람을한데묶으며이렇게말합니다.‘막다른곳에다다른우리’라고말입니다.

‘너’라는한글자에손을내밀어‘우리’라는두글자로만들기.저는여기서말문이막히는막막함앞에선한사람을껴안아‘우리’로만드는젊은시인의씩씩함을봅니다.‘우리는막다른곳을뚫고넘어왔다’라니,이어지는말은더용감하지요.막다른곳에다다랐다는현실을인식하기-이를뚫고넘어왔다고말하기.어쩌면막막한현실에언어로서길을내는것이하록고유의어법아닐까요.동시에이는하록시인이시를쓰는이유와도닮아있을거라확장해볼수있겠습니다.

‘한길은벼랑이고한길은절벽’같은청춘에게시인은“나벼랑의바닥이궁금해”라고말합니다.우리좀더알아보자는것,떨어지고부딪히는일을피할수없다면차라리‘궁금해’하자는것이신예시인하록의태도입니다.

다른시에서더알아보겠지만,이시집에등장하는이들은일종의‘굴파기’행위를지속하고있다고보아도무방합니다.끊임없이막다른곳을마주하고,이를뚫으며존재한다는점에서그러합니다.
이러한나아감에힘입어,시의말미에서는‘수호성’의가호라도받은듯마법이펼쳐집니다.‘너서있노라/서있으라우리’.너에서우리가되는것,한사람이두명모여우리가된다는것.그것은우리가삶에서너절한운명을피할수없어서혹은오히려피할수없기때문에발현가능한신비일지도모르겠습니다.

떠나는모든것들에감사하라
떠나간모든것들을감사하라
상실을쌓을수있다는건
한때는기쁨을모았다는것

소망하세요
절망하세요
소망하세요
책임질수없어도
그저달콤한말이라도

「그리기」의화자는누군가혹은무언가를잃고좌절속에중얼거립니다.‘떠나간것에감사하라’라는말이주문처럼반복되는가운데,저는시의4연에주목하고자합니다.‘소망하세요/절망하세요/소망하세요’.하록은이러한반복을통해절망의다른뜻이‘소망’인것처럼의미를펼쳐나갑니다.무언가바라고있다는것은그것을소유할수없다는뜻이지요.그것을갖게되면그것을소망할필요가없어진다는점에서,소망은절망의다른말이라는의미로확장되는것입니다.
「주행부적합개체군」시에서시인은이렇게말합니다.“나는말소되고싶어”그러나이는생이지속되는한이뤄질수없는소망이며,그런점에서절망의다른말처럼작동합니다.이러한아이러니는‘그만~했어요’형태의어구가반복되며독특한리듬을형성하는시「빵과장미」에서도두드러집니다.

죽는것이두려우니더는죽지않겠어요
사는것이막막하니이젠살지않겠어요
먹을것이절망뿐이라그만먹어치웠어요
입을것이경멸뿐이라그만차려입었어요

‘그만차려입었다’라는말은차려입기를멈추었다는걸까요,그만차려입고말았다는것일까요?이러한중의적문장은화자가택할수있었을두가지선택지모두를보여주면서도,화자가어느쪽을골라도차이가거의없는방식으로작동한다는점에서흥미롭습니다.
-「해설」발췌

침묵을쥐고떠오른
나는다정함의다른이름
밖에나선뒤에야맨발임을알았고
덜컥맞은뒤에야맨손임을알았지
-「설원과마른나무와검은색에가까운녹색의」부분

“침묵을쥐고떠오른/나는다정함의다른이름”은나에게는다정한이름이없다는것이되고,“나를찾는없는소리”는나를찾는사람이없다는것이된다.요컨대이시구들은‘나는냉정한,또는싸늘한사람이다’라거나‘나를찾는사람이없다’라는말을은폐하기위한말장난이며반어법에지나지않는다.아주추운설원속의맨발과맨손이그것이아니라면무엇이고,또한“부름을따라갈곳이없어”라는시구가그것이아니라면무엇이란말인가?
나는늘혼자이고,나를찾는다정한사람은어느누구도없다.하록시인의“부끄럽다고/부끄럽다고/쩌렁쩌렁삭아가는/태연한피로”는그어느누구도찾지않는‘겨울산장’(「설원과마른나무와검은색에가까운녹색의」)에서의독백과절규의풍경이라고할수가있는것이다.설원은동토이고,마른나무는죽은나무이고,검은색에가까운녹색의는채꽃이피기도전에이미다“쩌렁쩌렁삭아가는”이21세기의우리젊은이들의운명을뜻한다.

하록시인은2024년에「눈부시게맑은밤우리거기에」외4편으로등단한신진시인이지만,그러나이상李霜시인이후대한민국의최고의천재시인임을너무나도신선하고압도적인충격으로인식시켜준다.홍익대학교에서시각디자인을공부한만큼시의언어와미술의언어(색채)를상호중첩시키는언어사용능력과함께,그의언어를아주짧고간결하게사용하면서도해학과풍자,또는반어와말놀이를병치시키는기법은신기에가깝고,그리고설원의아름다움과설원의차가움(비정함)을통해존재론적성찰을해나가는앎의깊이는하록시인이이상시인이후,대한민국최고의천재시인임을증명해준다.
하록시인의등단작,「눈부시게맑은밤우리거기에」외4편이외에는그어느지면에도발표한적이없는전작시집(『설원과마른나무와검은색에가까운녹색의』)이며,그신선한충격과감동은천재는태어나는것이아니라느닷없이출현한다는사실을증명해준다.
-반경환,애지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