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의 귀지를 파내다 (이영선 시집)

모과의 귀지를 파내다 (이영선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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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영선 시의 비루함 역시 비극을 근간으로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시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시의 언어는 삶의 비루함과 치욕이라는 진짜 모습을 보여주며 진정성 있는 삶을 우리 앞에 부려놓아야 하는 법이다.
저자

이영선

이영선시인은김천에서태어났고,2024년『애지』로등단했다.이영선시인의첫번째시집인『모과의귀지를파내다』는비루한삶의한가운데를관통하는기록이자고백록이며,다른한편,객관적거리를통해주관적판단을생략하고다양한층위에서수많은사건과현상들을제시한다.이영선시인의첫번째시집인『모과의귀지를파내다』는그야말로잘짜인시의집이고,이영선시인은그의일관된시론속에시를축조하는빼어난건축가라할수있다.

목차

시인의말 5



1부

가지사이에서자란작은새처럼사람들이 12
황금박쥐를찾아서 14
감단근로직 16
소리들 18
차르륵차르륵 20
화면속 21
달그락달그락 22
공용터미널 24
여우비 26
장날2 28
까치 30
오리야,오리야 32
새해첫날 33
기억속으로 34
지하도시 35



2부

안개 38
결혼이라는상자 39
등이결리다 40
슬픔은왼쪽으로기운다 41
나비가정물이되는5초 42
불을끄고TV를켜다 43
얼굴을벌거벗고 44
문득, 45
실눈뜨고구름을보다 46
모과의귀지를파내다 47
입춘지나고 48
거짓말게임 50
반계리은행나무 52
시글시글끓다 54
클로즈업 55



3부

초파리의하루 58
창밖에는쉴새없이 59
빗물이산딸나무꽃잎에머무는동안 60
그사이창밖은환해지는데 62
이팝나무를스적거리며 63
그림을그림으로가리다 64
정방사가는길 66
노이즈캔슬링 67
접싯물에빠져도재수없으면죽는다 68
사바이가든 69
오후두시 70
길 72
저기,저국화꽃잎에 73
켄터키치킨 74
그풍선인간에대하여 76



4부

장바구니 78
누군가카메라셔터를누른다 80
그저녁나는 81
그리고,잠시멈춤 82
붉은,단상 84
112-1 86
西向 87
곰배령의겨울 88
2월 90
장날오후 92
월악로6길,카페탄지리 94
봄비 96
치과에서 97
아무도눈치채지못하게
나는그흑백의풍경속에서있었다 98
그림자공동체 99



5부

저,하얀관능이 102
이사 103
뿌리의집 104
홍시 106
카푸치노 107
거기 108
쓸쓸함혹은 109
화살나무 110
야간산행 112
12월 114
기억속으로난길로자꾸가면 115
그녀 116
달맞이꽃 118

해설/비루한삶을견디는날들에대하여-이영선시집,『모과의귀지를파내다』의시세계/조동범 119

출판사 서평

이영선시의비루함역시비극을근간으로우리의폐부를찌른다.시는그런것이어야한다.시의언어는삶의비루함과치욕이라는진짜모습을보여주며진정성있는삶을우리앞에부려놓아야하는법이다.

이도시의밤은붉은십자가에먼저도착한다
그다음기다렸다는듯러브모텔의네온사인이깜빡깜빡거린다
서쪽에는왼팔이잘린십자가가서있다

그뒷골목에있는화가의작업실에가본적있다
창과창사이에낀홍매화꽃잎이파르르흔들리는데
무엇을그렸는지덕지덕지덧칠해진그림위로
붉은나비한마리날고있었다

천왕선녀점집붉은불빛이사직산로아래까지번져간다
이혼하고싶다고주저앉아우는여자,사업망하고허구한날술만마시는데어디가야귀인을만나냐고다그치는남자,
그들의눈을마주하고천왕선녀가술술주문을외우면신이접신하여
호통치고겁박하고얼래고달래고한다는데영험하다는소문에굿판도자주벌이고날마다방울속놋쇠부딪히는소리가골목을돌아다닌다는데
지금막내림굿을끝냈는지마당한편에떡이며과일그득하고
무의를입은여자가검은철제대문을비죽이열고나간다
대문앞을기웃대던노인이검은비닐봉지를들고골목길을올라간다
-「가지사이에서자란작은새처럼사람들이」부분

비루한삶은음험하고불온한밤이순식간에공중을장악하며도래하는것처럼이도시에도착한다.도시속“왼팔이잘린십자가”는더이상신성의상징일수없다.도시는“러브모텔의네온사인이깜빡깜빡”거릴뿐이고,그곳에는술마시며우는사람들뿐이다.이영선시인이펼친풍경화는아무것도아닌듯무심하게다가오는삶이근간을이룬다.그것들은보잘것없으며남루하고비루하다.시인은그런것이바로진짜삶이라는듯집요하게파고들며그것들을탐문한다.그러나그삶에특별한사건이나사고는없다.다만그곳에는하루하루견디며버티는사소함이존재할뿐이다.
하지만여기에도이런삶을벗어나고싶은욕망은존재하는법이다.“귀인을만나”고싶은이들은“영험하다는소문에굿판”을벌이기도하지만그런일은쉽게벌어지지않는다.내림굿이끝난뒤의세상이바뀌지않았음을이미알고있는것처럼일상은다시반복될뿐이다.“대문앞을기웃대던노인이검은비닐봉지를들고골목길을올라”가는무심한풍경은우리가삶을견디는모습이기도하다.굿판의음식을싸가지고갔을것임을짐작할수있는대목에서일용할양식의애잔함이느껴진다.이영선시인은시의외부에서시적세계를집요하게관찰하고자한다.그럼으로써그는사소함의미학을시의한극단까지밀어붙이려고한다.

10리터물통이온수기위에물구나무서서면벽하고있다
-이물아침에온건가?
거꾸로박힌물의시간을의심하는그가온수꼭지밑에
사발면을들이대고빨간코크를누른다
급히빠져나오려던물이물통속에서큰멍울로솟구치다가한사발만큼의물만빠져나간다
사발면이스티로폼그릇속에서탱탱하게부풀어오른다

라디오에서정오의음악이나른하게흘러나온다
쭈뼛거리며탕비실문을연물류기사가
-새벽같이달려도기름넣고할부내고나면굶어죽겠네
운임이적어도너무적어,커피한잔사마실돈이없네

일회용커피믹서에한잔의물이또빠져나간다
바닥에몇방울떨어진커피가말라가는사이
몇번의문이열리고닫히며몇사람이들락거리는사이
투덜거리던그가어느새
입에종이컵을새처럼물고
손을까딱까딱거리며17톤트럭에앉아있다
-「감단근로직」부분

역사는흔히사건을통해이루어진다고생각하는경우가많다.이에반해개인사는사소함의영역만으로치부되며역사로부터외면되기일쑤다.그러나쓸모없는것처럼다가오는사소함의순간들이야말로역사의대부분을이루는것이다.「감단근로직」에서처럼사발면을먹거나일회용커피를마시는일상은어떠한사건도되지못한다.그것은사소함이나무가치함으로치부되기쉬운삶의순간일뿐이다.그러나온수꼭지를눌러사발면을익혀먹거나일회용커피가담긴종이컵을입에물고17톤트럭에앉는일을사소함만으로치부할수는없다.더구나그것을무가치한것으로폄하하며아무것도아닌,쓸모없는것으로판단할근거는어디에도없다.오히려그렇게의미없이흘러가는것이야말로삶의진짜모습이다.시인은이러한삶의실체를정확하게파악하고있다.그리하여무감한순간을포착함으로써우리에게삶의진짜모습을보여주려한다.

운구차가횡단보도앞에멈춰선다
몇대의검은승용차가뒤따라선다
승용차사이로이륜차가위태롭게끼어든다

횡단보도건너편으로시퍼런배추한트럭이치렁치렁실려가고
떨어진배춧잎을*신선한아침우유가밟고가고
노란스포츠카한대가납작질주한다

구급차가요란한사이렌을울리며끼어든다
길을건너는남자의등산화한쪽끈이풀어져있다
운구차쪽으로고개를돌리던그가모자를꾹눌러쓴다
-「길」부분

객관적인거리를통해나타나는이영선시의미학은「길」에서도잘나타난다.「길」을비롯한이영선시인의작품은흡사오규원시의‘날이미지시’를떠올리게도한다.대상이지니고있는모습을가장객관적으로제시하고자하는시적의지가돋보인다.더구나오규원의‘날이미지시’가시적감흥의문제에직면한것과달리이영선시인의시는감각을통해감흥의문제를해소한다는점에서긍정적이기도하다.그의시는감각적인언어와정황을근간으로한다는점에서시적감흥을강렬하게내장하고있다.「길」은“운구차가횡단보도앞에멈춰”서고“몇대의검은승용차”는그뒤를따라선다.그리고“승용차사이로이륜차가위태롭게”끼어드는장면으로시작한다.이후에전개되는장면역시시적정황의상태와이미지에집중한다.시적수사를통해대상을꾸미기보다객관적인모습만제시한다.그럼에도불구하고시적정황은감각화된느낌을자아낸다.바로여기에이영선시의매혹이시작된다.그의시는대부분시인의눈에기대어언어화되지만언제나시지각의한계를뛰어넘는다는점에서특별한개성과깊이를확보한다.

모과에핀얼룩을손으로쓱쓱문지르니
점액질이끈끈하게배어나온다
얼굴에핀검버섯처럼
지워지지않는얼룩이반짝거린다

모과의귀에면봉을깊숙이넣으니
갈색의가루가묻어나온다

너는그것이벌레의똥이라고우기고
나는달빛을밟던고양이들의발소리라하고
천둥소리에놀라날아들던새의날갯짓소리라하고
새벽바람에잔가지서로부딪던소리라하고
첫서리내려앉던아침새끼고라니울음소리라하고

면봉으로조심스레그것들을끌어내니
온갖소리들잠잠하다
구멍이깊다

구멍속에서노란벌레한마리가
향내가득한사막을건너고있는것이보였다
-「모과의귀지를파내다」전문

여기모과가있다.모과라는대상은변함이없다.그러나모과를바라보는존재가무엇이냐에따라모과는전혀다른모습으로다가온다.그럼으로써하나의존재는서로다른것으로치환되며완전한타자로분리되기에이른다.「모과의귀지를파내다」는시적대상의본질에집중하고자하는시인의의지가드러난시이다.바라보는자의시선에따라변하는대상을제시함으로써주관적판단의문제를생각하게한다.그런점에서이시는시인의시론이라고할수있다.시인은스스로판단하려하지않는다.그것이“벌레의똥”인지“고양이들의발소리”인지,아니면“새의날개짓소리”나“잔가지서로부딪던소리”,“새끼고라니울음소리”인지알수없지만시인은그모든가능성을열어두고자한다.그럼으로써모과의실체에보다가까이다가서고자한다.이영선시인의첫번째시집『모과의귀를파내다』는그야말로잘짜인시의집이다.일관된시론속에시를축조하는빼어난건축가라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