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정의 칼 - 지혜사랑 시인선 300

포정의 칼 - 지혜사랑 시인선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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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우종숙

저자:우종숙
충북청주에서태어났고,한남대학교사회문화,행정복지대학원을졸업했다.2001년『애지』로등단하였으며,현재애지문학회,한남문학회,그리고작가회의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
우종숙시인은그의첫번째시집인『포정의칼』에서극한의고통을품은‘포정의언어’로자기만의독특한시세계를일구고있다.칼로몸을도려내는아픔의언어는동시에사물을온몸으로끌어안는사랑의언어로도구현된다.사물을사랑하고,그속에서새로운생명을창출하는우종숙의시작詩作은이렇게사랑과아픔이하나로어울리는‘몸칼’의시학으로거듭난다.

목차

시인의말5

1부

태양하나를낳았다12
네궁에들고싶다14
바퀴벌레15
주름하나없는길16
장미와고양이18
돌개바람19
밥20
산21
내장22
틈24
옥수리느티나무26
저소리가슴속을날아다닌다28
내가사라졌어요29

2부

의자32
해년年을쓰다33
바퀴34
바위와진달래35
나무36
성에38
내일39
살구나무40
그녀42
잘다녀가세요44
목련이피어45

3부

흰그림자48
말을삼키다49
몸속에말이있다50
수런거리다52
몸의말53
말을베어버렸다54
말55
천개의나56
초록의말57
귀소의칼58
발달린페가수스59

4부

닭백숙62
프로크루스테우스의침대63
호세64
작은꽃65
끄트머리66
꽃67
아지매보리밥집68
대중목욕탕69
비빔밥을비비다가70
접시의불문율71

5부

은행나무74
없다75
횡단76
바퀴없이78
깍두기80
체,이름을잃어82
우종숙84
사람의소리86
포정의칼87

해설/온몸을벼린칼의언어가이른곳―우종숙의시/오홍진89

출판사 서평

어스름저녁의빛을점점한수묵이라고하자그밝은것과어두운것이섞이는시간같은언어가나의짝다리언어다둘이껴안는시간처럼나무들이반쯤합쳐지는시간처럼우주가실눈을깜박하는순간처럼그러나어둠이스미는건지밝음이스며안기는건지

끄트머리가사라졌다
-「끄트머리」부분

취나물을넣고비빔밥을비비다가당신이계란후라이를곁들이듯나도당신이준참기름을곁들인다

갔다할수없는봄처럼가고있는봄처럼왔었나싶게간당신이먼저떠오르는것은왜일까

당신을불러본다이름붙일수없는당신이라서

오는듯가는봄처럼환한한때의오후처럼애틋한체온처럼당신은마음속에서시도때도없이저홀로피고진다

이름지을수없는당신을불러본다
-「비빔밥을비비다가」부분

동네를안고있는낮은산발치아래진또배기같고물고운에미치맛자락같다하늘땅이어주는신의큰손바닥되어천공아래있다지붕위에막앉으려고나래접는새처럼해의끈을놓지않는다선조들이지키려했던족보처럼먼신화를만들어내며세월그언저리이야기무성하다주술같은힘으로땅신의혼불을뿜어낸다어제의내력을받아들고알알이넋을토한다가지마다내려앉는햇살이되레새파랗게놀란표정을짓는다막바지수행중이다
-「은행나무」부분

사물을직접표현하는글자들은어디서오는것일까?시인은기억속에서빛나는어떤세계들에주목한다.「끄트머리」에는밝은것과어두운것이섞이는시간의언어가“어스름저녁의빛”으로나타난다.밝은것과어두운것이겹치면서미묘한시간의흐름이표현된다.그것은“나무들이반쯤합쳐지는시간”으로드러나기도하고,“우주가실눈을깜박하는순간”으로표출되기도한다.밝음속에어둠이스미고,어둠속에밝음이스미는이시간의결을따라가다보면,우리는시간의‘끄트머리’와마주하게된다.끄트머리라고했지만,시간의끄트머리는늘또다른시간의시작점과이어져있다.그것은뫼비우스의띠와같아서한참달리다보면우리는반복되며흐르는시간의어느한지점에서있는것을문득발견한다.

물론시간의반복은같은것의반복이아니다.같으면서도다른것들이끊임없이반복되며이세계를이룬다.우종숙이길어올린사물의언어는바로여기서비롯된다.저먼기억속에은은하게남은그무언가를‘감각’이라고말해도무방할것이다.감각은하나로환원되지않는맥락을항상그안에품고있다.감성이이성의통제를따른다면,감각은이성의통제를따르지않는다.문득떠올라우리네마음깊숙한자리를울리는기억을떠올려보라.그기억은내리누른다고사라지지않는다.그러기는커녕내리누를수록더욱더살아남아우리네삶에깊은흔적을남긴다.감성의언어가아닌감각의언어를산출한다.

「비빔밥을비비다가」에나타나듯,비빔밥을먹는날이면시인은어김없이당신을떠올린다.이름을붙일수도,이름을지을수도없는당신은“오는듯가는봄처럼환한한때의오후처럼애틋한체온처럼”시인의마음깊이스며있다.비빔밥에참기름을곁들일때도시인의뇌리에는어김없이당신이펼쳐진다.당신은지금이곳에없지만,당신과함께했던그날의감각은지금도살아있다.이감각을시인은과연어떤언어로표현할수있을까?그무엇으로도표현할수없기에시인은오늘도가만히당신을불러본다.이름지을수없는당신의이야기는「은행나무」에서도그대로이어진다.“하늘땅이어주는신의큰손바닥”이라는시구에암시된바,시인은은행나무가품은“족보처럼먼신화”에주목하고있다.

시인에게은행나무는하늘을향해솟은솟대의새(진또배기)와같고,물이고운어미의치맛자락과도같다.오랜시간전해온무성한이야기를가슴에품은은행나무는주술같은힘으로혼불을뿜어낸다.얼마나많은영혼이은행나무에스며들어있을까?“어제의내력을받아들고알알이넋을토”하는은행나무가지마다새파랗게놀란표정을짓는햇살이내려앉는다.은행나무에는한개인의내력뿐만아니라한마을,한나라의역사가아로새겨져있다.시인은헤아릴수없는시간을품은채“막바지수행중”인은행나무를들여다보며보이지않는시간의흔적을하나하나헤아린다.은행나무가되지않고어떻게은행나무의목소리를들을수있을까?시작(詩作)이란그런것이다.자기를내려놓고사물을온전히받아들이는데서시쓰기는시작된다.우종숙의시라고다르지않다.

자신을시적대상으로삼은「우종숙」이라는시에서시인은“편편히이어붙이는게나의말”이고“나”라고분명히선언한다.‘우종숙’이라는이름을사람들은자꾸만‘오종숙’으로듣는다.시인이“오가아니고우리할때우”라고해도사람들은자꾸만‘우’를‘오’로알아듣는다.‘우’가됐든,‘오’가됐든‘우종숙’이라는사람은달라지지않는다.그런데도우리는저마다잘못불리는이름에자꾸만매달린다.존재가이름을결정하는게아니라이름이존재를결정한다는통념에매여있다고나할까?이름에매일수록사물의본질은그만큼더멀어진다는점을우리는이미이야기했다.시인의말마따나“고양이는고양이은행나무는은행나무나는나”일뿐이다.인간이언어로규정할수없는자리에고양이가있고,은행나무가있고,내가있다.저만치달아나는말을따라간다고고양이가,은행나무가,내가확연히드러나는것은아니다.사물의언어에민감한시인이이점을모를리없다.

말을시퍼렇게갈고있다

단칼에베어아픔을느끼지못하도록떨어진제목을보고환하게웃을수있도록내말이바람처럼날렵해표정이베이지않도록포정의칼처럼평생을쓸말을갈고있다

모래에스미는물처럼파랗게벼리고있다

푸른하늘에나는새털처럼부드러운율동,빛과같은속도로꽂히는한마디화살처럼천리마가날고있다

그러나뒷모습만보이는말은자욱이먼지만남기고사라져버린다고삐를단단히잡지않으면굴러떨어지거나제멋대로날뛰기일쑤인말인것을,

말이나를베어버린다
-「포정의칼」전문

녹이슨칼로는단번에사물의목을벨수없다.시인은시퍼렇게간칼처럼날카로운말로사물에다가가려고한다.한없이민감한사물의언어와마주하려면그에걸맞은칼을지니고있어야한다.위시에서시인은그것을‘포정의칼’이라고이름붙인다.포정(?丁)은소를잡는백정이다.뛰어난솜씨로소를잡아당대에그재주를인정받았다.포정이날카로운칼로소를잡아재능을뽐냈듯,시인또한시퍼렇게간말로단칼에사물의목을베는꿈을꾸고있다.녹슨말을쓰면사물의진면목을표현하기도힘들뿐더러,사물에이런저런상처를내기마련이다.“바람처럼날렵해표정이베이지않는”말을갈고닦으려면사물저마다의특성을정확히알아야한다.사물을제대로표현하는시어는우연히얻어지지않는다.수많은시간을들여시인은사물을관찰했을테고,그과정에서사물과어울리는시어를발견했을테다.“모래에스미는물처럼파랗게벼”린칼과말을상상해보라.그런칼과말이어야포정처럼그무엇에도매이지않는시인이나올법하다.

시인이라면푸른하늘을나는새털처럼부드러운율동을꿈꾸고,빛과같은속도로꽂히는한마디화살처럼하늘을나는천리마를꿈꿀것이다.사물의언어로사물과하나가되는이꿈은그러나자욱한먼지만남기고저멀리사라지는언어처럼덧없는일이되어버린다.고삐를단단히잡지않으면사방으로날뛰는말을진정시킬수가없다.포정의칼은여기서빛을발한다.중요한것은,포정의칼이향하는대상은사물이아니라사물의사랑을갈구하는‘나’라는점에있다.“말이나를베어버린다”라는이시의결구를가만히주목해보라.말이나를수없이베어버려야나또한말을벨수있는포정의칼을더욱더날카롭게벼릴수있다.푸른하늘을나는새털이되려면그만큼가벼워져야하고,빛과같은속도로내달리려면그만큼연습하고또연습해야한다.그래야말이나를베는극한의고통을견딜수있다.

우종숙은극한의고통을품은‘포정의언어’로자기만의독특한시세계를일구고있다.칼로몸을도려내는아픔의언어는동시에사물을온몸으로끌어안는사랑의언어로도구현된다.사물을사랑하고,그속에서새로운생명을창출하는우종숙의시작(詩作)은이렇게사랑과아픔이하나로어울리는‘몸칼’의시학으로거듭난다.온몸을벼린칼의언어를무기로시인은사물과온전히소통하는시의세계를구축하려고한다.그리로가는길을꿈이라고말해도상관없다.시인이되어포정의언어를거침없이휘두르는게한없이중요한일이니까.사랑의희열은늘사랑의고통을동반하는법이다.희열없는고통이나고통없는희열은없다고말해도좋다.우종숙은시를쓰는일이그와다르지않다는점을그누구보다잘알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