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자시인은충남공주에서태어났고,2025년『애지』로등단했다.『식장산』은정순자시인의첫번째시집이며,‘일상에서피어나는사랑의시심詩心’이라고할수가있다.
정순자시인은순간순간펼쳐지는일상사에시언어의힘을불어넣는다.언어가이토록아름다운세계를만드는게아니다.이토록아름다운세계가언어를통해표현될뿐이다.유모차안에서방긋웃는아이들의얼굴을떠올려보라.언어로표현되기이전의세계가거기에는스며있다.
집거실에앉아
마주바라볼수있는식장산
어느날에는반가움을
어느날에는그리움을
어느날에는사랑스러움을
어느날에는비에흠뻑젖은애처로움을주는식장산
오늘은어제보다더붉게물들었고
산그늘또한연인끼리마주한듯아름답다
한번도
한눈팔지않고
무던하게그자리에있어주어
내가안기고싶은따스한품속같다
나또한이사할생각을
1도하지않았다
―「식장산」전문
한국의백두산,중국의태산,일본의후지산,그리스의올림프스산,이탈리아의알프스등은그민족의명산들이고,그들은모두가다같이그넓고큰명산의옷자락에안겨산다.산은모든문명의발상지이며,모든영웅들의마음의고향이라고할수가있다.“집거실에앉아/마주바라볼수있는식장산”,“어느날에는반가움을”안겨주고,l“어느날에는그리움을”안겨준다.“어느날에는사랑스러움을”을안겨주고,“어느날에는비에흠뻑젖은애처로움을”가져다가준다.산의시간은‘느림의시간’이며,따라서‘식장산의무대’는어진사람의무대이며,자본에의하여정복당하지않은산이라고할수가있다.사시사철,사계절의변화에따라서반가운사람과그리운사람과사랑하는사람과애처로운사람을생각하며,그들과영원히함께살아가게된다.“오늘은어제보다더붉게물들었고/산그늘또한연인끼리마주한듯아름답”기만한산,“한번도/한눈팔지않고/무던하게그자리에있어주어/내가안기고싶은따스한품속”같은식장산----.
오늘날은거대한것은금은보화와도같고,빠른것은돈쌓이는속도와도같지만,그러나정순자시인의「식장산」은‘느림의시간’이며,우리들의어머니와도같은산이라고할수가있다.‘만인대만인의투쟁’이사라지고,개인으로서의나와시민으로서의나와그리고국민으로서의내가영원불멸의삶을살며,우리한국어와우리한국인들의영광을위해시를쓸수있는곳이바로「식장산」이라고할수가있다.
꿀고구마를굽는다리빙웰통속에서온도와시간을잘견뎌낸고구마는껍질이약간탄듯거무잡잡해도속에는꿀이흐른다손자와며느리가좋아해서아들집에갈때도고구마를굽고시어머니생전에잘드셨기에산소에갈때도고구마를굽는다오늘은간신히죽드시는95세되신어머니를뵈러요양원에가기위해고구마를굽는다노릇노릇잘익은고구마속에는꿀이흐르고내눈에는눈물이흐르고
―꿀고구마전문
집도필요없소/옷도필요없소//춘하추동알몸으로/흙속에안거든지렁이//닭이보면닭의먹이가되고/새가보면새의먹이가되는/그래도살다가죽으면/개미에게알리는
―보시(報施)전문
유모차에손자태우고강변을걷던당신이잠시강변에서서물수제비를뜨자작은돌멩이가사뿐사뿐고양이발로가는듯하다가퐁당물속으로빠지자강물은은빛꼬리를흔들며경쾌하게반짝이고갈대들은재밌다고온몸을흔들어대
유모차안의쌍둥이손자들도/연신짝짜꿍짝짜꿍
―짝짜꿍부분
식장산에서피어나는다양한얼굴은꿀고구마에서는고구마를굽는시인의눈물로변주되어표현된다.생전의시어머니는고구마를좋아했다.그런시어머니를위해시인은산소에갈때마다고구마를굽는다.손자와며느리도고구마를좋아해아들집에갈때도그녀는고구마를정성스레굽는다.요양병원에있는95세어머니를위해서도고구마를굽는시인의이마음을우리는어떻게받아들여야할까?시인은“눈물”을말하고있다.고구마를구우면서시인은산자와죽은자를아울러만난다.죽은자를그리며시인은고구마를굽고,산자를향한사랑으로시인은고구마를굽는다.고구마를굽는일하나에서도피어나는시간의향기를가만히맡아보라.정순자는이향기를언어로표현하는데진력한다.그립고아름다운사람에게서피어나는사랑의향기라고말해도무방하겠다.
보시에이르면,시간속에서피어나는생명의향기를시인은보시하는마음과연결하고있다.보시하는마음은“춘하추동알몸으로/흙속에안거든지렁이”에게서구체적으로나타난다.지렁이는집도옷도필요없다.사방에널린흙속이곧집이다.닭에게는닭의먹이가되고,새에게는새의먹이가되는지렁이의삶을엿보며시인은‘보시’라는말에드리워진의미를되새긴다.보시는생명을향한자비심을가리킨다.조건없이베푸는환대의의미도지니고있다.한생을마친지렁이는죽으면이내개미의먹이가된다.그렇게태어나그렇게살아가는게지렁이의운명아니냐고물을수있다.시인이이것을모르고지렁이의보시를얘기하지는않았을것이다.보시는보시하는마음조차도내지않는상황에서펼쳐진다.자기를내세우지않는데서보시하는마음이펼쳐진다는말이다.
자기를내세우지않는사람은늘타인의시선으로세상을볼준비가되어있다.자기를중심으로바라보는세계는늘이것과저것으로나누어져있다.이것이옳으면저것이그르고,저것이옳으면이것은그르다.이런마음으로세상을보는사람은절대로시를쓸수가없다.시심은이것과저것을나누는분별심과는다른맥락에놓여있다.짝짜꿍이라는시를가만히들여다보라.유모차에손자를태우고강변을산책하던시인이,강변에서서물수제비를떴다.작은돌멩이가사뿐사뿐고양이발로물결위를튀더니이내퐁당물속으로빠진다.순간강물은은빛꼬리를흔들며경쾌하게반짝이고,그장면을본갈대들은재밌다며온몸을흔들어댄다.유모차안의쌍둥이손자들역시연방손뼉을치며짝짜꿍,짝짜꿍흥겹게논다.이런세계를무엇이라표현하면좋을까?
정순자의시는은빛꼬리를흔들며경쾌하게반짝이는강물과닮았고,짝짜꿍,짝짜꿍손뼉을치며노래하는쌍둥이손자들의무구한웃음과도닮았다.일상에서숱하게벌어지는일들이그녀에게는시를낳는원천으로작용한다.누구나일상을산다.일상을살며그들은누군가를만나쉬이끊을수없는인연을만든다.정순자는순간순간펼쳐지는일상사에시언어의힘을불어넣는다.언어가이토록아름다운세계를만드는게아니다.이토록아름다운세계가언어를통해표현될뿐이다.유모차안에서방긋웃는아이들의얼굴을떠올려보라.언어로표현되기이전의세계가거기에는스며있다.정순자는이런세계를향해묵묵히걸어가고있다.사물자체를온전히들여다보는시심으로그녀는이것과저것을분별하지않는세계로가만히다가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