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말 없이 (김길중 시집)

군말 없이 (김길중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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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길중 시인이 눈길을 주는 대상은 세상의 주류에서 소외된 주변인들이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나 화려한 도시의 세련된 인물이 아니다.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지닌 청춘도 아니다. 작고 초라하거나, 늙고 가난한 존재이다. 시인이 이러한 주변인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에 대한 단순한 동정이나 연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간의 현실을 새롭게 해석하고 확장하는 창조적 동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중심이 아닌 곳에서의 경험과 감정은 기존의 질서나 가치관에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삶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시적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김길중 시인이 그들을 시의 중심으로 끌어들여 따뜻하게 환대하는 이유이다.
저자

김길중

김길중시인은대구에서출생했고,경북대학교문헌정보학과을졸업했다.2023년계간『애지』로등단했고,현재애지문학회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
김길중시인의첫번째시집인『군말없이』는‘타자를환대하여나를풍요롭게하는시편들’이라고할수가있다.시인은타자를의식하고받아들이는과정에서자기성찰과더불어자아와타자의유사성을탐색하면서인생을보는눈을확장한다.이러한타자를노래하는시는주변의존재,나와다른것을배척하거나부정하지않는다.오히려그러한존재들을배제하려는폭력적동일성의논리를비판하면서타자의목소리와경험을시에적극적으로도입한다.

목차

차례


시인의말 5



1부

人 12
심줄 13
꾹꾹누른다 14
컵라면 15
뿔 16
숨을쉰다는것은
살아있음에대한경이로운몸짓이다 18
맨발 19
그레이스켈리 20
뻥! 22
부끄러움 23
하차벨 24
삼강주막 26
군말없이 28
두부 29



2부

알람소리 32
간이역 33
충전 34
뭘까? 35
순리順理 36
구멍 38
八字 39
예방 40
날아오르려는것들에대하여 41
유전자 42
주름 43
관성의법칙 44
땡그랑! 45
문득 46



3부

코리언드림 48
추모공원에한번다녀와야겠다 50
이모티콘 51
보시布施 52
에덴의동쪽 54
희생 56
관세음보살 57
뜸 58
악! 59
줄 60
토吐 62
알솎기 63
원기소 64
쑥국 65



4부

욕쟁이할머니 68
가라루파 69
회룡포연가 70
가방끈 72
역지사지易地思之 73
석송령 74
동안거 76
골타기 77
봉덕동 78
빨랫줄 79
몰염치 80
닮은꼴 81
거인 82
그런줄알았다는듯 83


해설/타자를환대하여나를풍요롭게하는시편들/이형권 85

출판사 서평

점심때지나
노부부가곰탕집으로들어선다

할아버지가
햇살드는창가쪽테이블로가더니
의자를빼주자할머니가당연하다는듯앉는다

김이모락모락나는곰탕이나오고
할아버지는곰탕을뜨면서도연신할머니를바라본다

먼저수저를놓은할아버지가
할머니의곰탕뚝배기를두손으로기울이자
이번에도당연하다는듯할머니는마지막국물까지퍼드신다

할아버지가평생받아온기울임을
이제되돌려주는모양이다

곰탕그릇을깨끗이비우고
노부부가손잡고곰탕집을나간다

사람人字다
-「人」전문


이시의주인공인“노부부”는연령이나계층으로볼때변두리의존재이다.때늦은점심식사를위해“곰탕집”에들어서는모습은“노부부”의그러한위상을암시해준다.하지만이들이연출하는풍경은포근하고따뜻하다.우선식사를위한장소인“햇빛이잘드는창가쪽테이블”이그렇다.“할머니”를위해“의자를빼”주는“할아버지”의행동도그러한풍경과잘어우러진다.“할머니”가“당연하다는듯앉는다”라는것은그러한행동이오랫동안이어온배려의습관임을알수있다.“김이모락모락나는곰탕”이나오고“연신할머니를바라보”는“할아버지”의행동도포근하고아름답다.더욱이“할머니”가“마지막국물까지퍼드시”도록“곰탕뚝배기를두손으로기울이”는“할아버지”의모습은배려과사랑의극치를보여준다.거룩한성사와도같은점심식사후“노부부가손잡고곰탕집을나”서는모습은평화롭고아름답다.시인이이러한모습을보고“사람人字다”라고한것은“노부부”의모습에서인간의본질적속성을발견한것이다.“人”이라는한자가인간과인간이서로를지탱하는형상에서왔듯이,인간은서로를배려하면서더불어살아갈때아름답다는점을강조한것이다.이따뜻하고아름다운,그리고의미심장한시적풍경을만든시인의연출솜씨가범상치않다.
노부부의일상에서함께살아가는삶의지혜를발견한시인은,이제우리사회의변두리에서살아가는가난한노인으로시선을옮긴다.이시선에는가난하고고달픈삶을살아가는노인을향한연민의마음이담겨있다.


벙거지모자를푹눌러쓴노인이
생의마지막자존심처럼접혀진박스를차곡차곡펴
리어카에싣고언덕을오른다

숨을몰아쉬는리어카의굵은바퀴자국이
노인의이마에패인주름살처럼깊다

도심뒷골목의분주함이
가난한슬픔으로조각조각부서져
그가난을주우려온종일두바퀴에매달려가는노인

리어카가무거워지면마음이가벼워지고
리어카가가벼워지면마음이무거워지는

저녁때가한참지난시간
어두컴컴한골목에서어둠보다더짙은어둠이웅크리고앉아
컵라면에물을붓는다

리어카에는
호된오늘이착착접혀실려있고
노인은컵라면의마지막국물을들이켜고있다
-「컵라면」전문
이시에등장하는“노인”은종이“박스”를모아생활하고있다.“박스”를실은“리어카”를끌고“언덕을오르”는“노인”의모습은현재그가처한생활이얼마나곤궁한지를암시해준다.또한,짐을실은“리어카의굵은바퀴자국”을“노인의이마에패인주름살”에비유한것은,“노인”이처한그러한상황을자연스럽고도참신하게드러내준다.무거운“리어카”를끌면서,그힘겨움에온갖인상을찌푸릴때마다“리어커의붉은바퀴자국”처럼굴곡진“주름살”이잡히는얼굴을연상한것이다.이“노인”은아마도자식들기르느라노후준비를전혀하지못했을터이다.자식을위한희생이후에남은고독과가난은온전히노인혼자만의몫이되었다.그리하여“리어카가무거워지면마음이가벼워지고”반대로“리어카가가벼워지면마음이무거워지는”삶을살수밖에없다.“저녁때가한참지난시간”이되어서“컵라면”으로끼니를때우는“노인”은작고초라하다.시인은이처럼“어둠보다더짙은어둠”처럼“웅크리고앉아”서“컵라면”을먹고있는“노인”에게연민과공감의시선을보낸다.그시선은“노인”의피곤한몸을녹여주는“컵라면”국물보다따뜻하다.
노인의소외는물질적인데서만오는것이아니다.인간관계에서의소외역시노인의삶을피폐하게만든다.인간은늙어가면서세상의중심에서멀어지면서다른사람과의관계에서도소외된다.인간은본래“뫼비우스띠같은인연속으로들어가/가볍게야위어지”(「간이역」부분)는존재이다.시인이이런현상에주목하는이유는인간존재의본질을회복하고진정한관계의가능성을모색하기위한것이다.


한할머니가유모차를밀며가고있어슬쩍들여다보니몹시마르고어딘지불편해보이는반려견한마리보인다산책을나선모양인데반려견은물기마른코를연신벌름거리고할머니는마치손자라도태운듯가뿐가뿐하다할머니의걸음도약간절룩였지만그걸음이안단테보다모데라토에가까웠다반려견이유모차밖으로목을내밀자어디선가다리불편한할머니가늙은강아지를태우고가네라는소리가유모차바퀴에부딪쳐같이구른다그러거나말거나할머니가유모차를열심히밀고간다

갓난아기를태운신형유모차하나옆으로빠르게지나가고
-「충전」전문


이시의“할머니”는“반려견”을“유모차”에싣고“산책”하고있다.“반려견”은마치늙은“할머니”의모습과흡사하다.“할머니”는“약간절룩”거리는걸음걸이로걷고있고,“유모차”안에는“몹시마르고어딘지불편해보이는반려견”이있다.그런데“할머니는마치손자라도태운듯가뿐가뿐하다”.주변사람들이“다리불편한할머니가늙은강아지를태우고가네”라고비아냥거려도아랑곳하지않는다.“그러거나말거나유모차를열심히밀고간다”.시인은이광경에대해어떠한논평도하지않는다.그저“할머니”의“유모차”곁을스쳐지나가는“갓난아기를태운신형유모차”만을제시한다.이는“할머니”에게는“늙은강아지”가“갓난아기”와다르지않은존재라는점을암시해준다.인간관계에서소외된“할머니”에겐“늙은강아지”가인간이상의존재이다.그리하여“할머니”는“늙은강아지”를연민하고,시인은“할머니”를연민의시선으로응시하는것이다.인간과동물을넘나드는따뜻한연민이주변적존재들의공허한마음을“충전”해주고있는광경이다.
연민(Compassion)은타인의고통이나자신의고통에민감하게반응하면서그고통을덜어주고자하는마음이다.심리학적으로도연민은단순한동정(sympathy)과구별되는타자에대한적극적인수용태도를의미한다.가령,“군에서잃은아들을보러매달온다는부부”를위해“국수가락보다더긴/보시”(「보시」부분)를하는봉사자의마음과다르지않으며,“주인할머니가내뱉는욕에서푹우려낸따순마음같은구수함이느껴졌다이진한욕이있는한이식당은주인할머니가왕이겠고욕도때론정이되겠구나”(「욕쟁이할머니」전문)라고할때의“할머니”의마음도비슷하다.“오늘밤당신에게막걸리한잔따르고싶”(「삼강주막」부분)은마음도마찬가지다.이시집에자주등장하는이러한연민의마음은공감과동일시의시심을실천하는일과맞닿는다고할수있다.이렇듯김길중의시는세상의주류에서소외된존재들을위한따뜻한연민과공감을통해이기적이고삭막한현대사회에따뜻한온기를불어넣어주는역할을한다.

아내가
된장찌개를끓인다

뚝배기에된장,무,파,두부,버섯과갖은양념을해끓여내는아내의된장찌개맛이어느날은짜고어느날은싱겁다

간에대해무뎌진건지
그날그날의기분에따라간이달라지는건지

신혼초
식탁위사소한다툼도
한세월지나오며우리를숙성시켜
지금은우리가잘숙성된된장맛처럼깊어진것같은데
아내의입맛은점점변하고있다

오래전부터
음식맛은사람맛이반이라했지만
내겐사람맛이전부라서
아내의간을따른다

군말없이
-「군말없이」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