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의 강 (김형식 시집)

무아의 강 (김형식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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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형식의 시집 『無我의 강』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자연과의 깊은 교감을 통해 이 허정虛靜의 세계에 도달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 시집의 시들에서 시인은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 속에서 깨달음을 찾아가는 구도자적 면모를 드러내며, 자연과 인간, 존재와 무無, 허무와 고요라는 대립적 개념들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한다.


제1대구치가 부러졌다
거친 생각 씹다가
그만 허방을 씹고 말았다

인프란트해야 한다

마취 끝내고
잔인한 발치소리
인공치아 심을 때까지
욱신욱신 아려오는 환상통幻想痛

삼시 세 때 씹는 일은 빙산의 일각
자나 깨나 초원을 날뛰는 말의 코 꿰 잡아 길들이는 치아의 하루

음식 잘못 씹으면 소화불량에 그치지만 생각 잘못 씹어 뱉어 놓으면 흉기가 되어 내 목을 베고 독사가 되어 기어 다니는 말, 말의 세상

공자도 씹고
니체도 씹고
십자가도 돌부처도 씹어
곱게 갈아 내뱉어 놓은

말몰이 침묵
- 「말몰이 침묵」 전문


시인은 이가 부러진 일상적 사건에서 언어의 본질을 성찰한다. 첫 연 “제1대구치가 부러졌다/ 거친 생각 씹다가/ 그만 허방을 씹고 말았다”는 구절은 말 이전의 내면 행위, 곧 ‘사유’를 ‘씹는 행위’의 미숙함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제1대구치’는 사람의 어금니 중 가장 중요한 치아로, 생각과 감정을 숙성시켜 언어화하는 역할의 비유로 읽을 수 있다. 즉, 말은 단순히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갈리고 다져져야 하는데, 그 과정의 실패가 치아의 파열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말하기 이전의 고통, 혹은 잘못된 말의 결과로서의 상처를 상징한다. 그래서 결국 시인이 도달하는 것은 “말몰이 침묵”이다. 말語을 말馬처럼 길들여 침묵에 이르고자 한다. 그런데 여기서 침묵은 단순한 무언이 아니라, 수많은 말을 내면에서 곱씹고 길들인 끝에 도달하는 긍극의 경지이다. 침묵은 말의 무력함이 아니라, 오히려 말의 위험과 가능성을 인식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고요한 통제라는 것이다. 즉, 말은 길들여져야 하고, 그 길들임의 끝에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 자의 침묵이 존재한다.
「말 그 너머에」라는 시에서도 같은 주제가 이어진다. 롯데월드타워라는 현대 문명의 상징 앞에서 시인은 “진리는 말 밖에 있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부처님의 법문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는 금강경의 구절은 현상 너머에 존재하는 진리를 추구하는 시인의 의지를 대신한다.
이 시집의 표제작 「無我의 강」에서 시인은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집착에
삼 씨三時 갈아
허공에 난을 친다

時香도
내 것이 아닌데
난향은 늬것이란 말인가

나그네
천강을 걸어
바다로 가고 있다

배타적인
배타적인
배타적인 강물의 숨소리

존재는
피었다 지는 꽃
제행무상諸行無常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변하는 것’뿐

뗏장에
새싹이 돋고
다시 죽어 오고 간다

나그네
파도 속에
여장旅裝을 푼다

가노라
가노라
이 사바세계를 떠나
저 피안의 언덕으로 가노라
- 「無我의 강」 전문


이 시 「無我의 강」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자아의 해체와 무無의 경지를 지향하는 사유의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시적 화자는 ‘무아無我’의 강을 건너는 ‘나그네’로 형상화되며, 시간과 존재, 변화와 소멸 그리고 무소유의 철학을 막힘없이 관통한다. “時香도 / 내 것이 아닌데 / 난향은 늬것이란 말인가”에서 ‘시향時香’과 ‘난향蘭香’은 아름다움 혹은 정신의 향기 같은 비물질적 속성을 가리키는 동시에, 소유에 대한 집착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조차 ‘내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있다. 또한, 시인은 자신을 ‘나그네’로 지칭한다. “천강을 걸어 / 바다로 가고 있다”는 구절은 윤회와 생멸의 흐름 속을 부유하는 무상한 존재의 자각을 의미한다. ‘천강’은 천 개의 강이기도 하고 하늘의 강이기도 하다. 즉 모든 강이 결국에는 바다로 흘러가듯이 모든 존재는 사라져 하늘로 올라간다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조건에 대한 시적 이미지이다. 이 모든 흐름을 지켜보는 나그네인 시인은 더 이상 자아에 갇히지 않고 나를 버린 무위無爲 존재이기를 꿈꾸고 있다.

김형식 시인의 『無我의 강』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얻은 허정虛靜의 세계를 형상화한 주목할 만한 시집이다. 시인은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에서 깊은 지혜를 찾아내고, 자아를 비우는 과정을 통해 참된 고요에 이른다.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자연의 삶에서 얻게 된 삶에의 성찰이 김형식 시인의 시적 출발이지만, 그의 자연 인식은 단순한 서정적 감상을 넘어 존재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이어진다. 이 시집에서 인생은 끊임없는 여행이며, 그 여행의 목적지는 무아의 경지이다.


길 아닌 길은 없다
파랑새 한 마리 꺼내 들고 날려 보낸다

3조 승찬대사와 마주한다
- 「길」 부분

시인은 “길 아닌 길은 없다”고 선언하며 승찬대사와 마주한다. 이런 시인의 모습은 자연 속에서 도를 깨닫는 구도자의 모습 다름 아니다. 승찬대사는 선불교의 3조이다. 시인이 시를 통해 길 아닌 길을 찾아 마침내 찾은 곳은 바로 그를 만나는 깨달음의 지점이다. 거기에서 시인은 나를 비워 무아와 고요의 경지에 도달한다. 이렇듯 허무와 고요는 이 시집의 핵심 정서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망적 허무가 아니라 모든 집착을 버리고 도달한 적극적 무의 경지이다.
김형식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린 고요와 성찰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문명 속에서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일상의 작은 깨달음들을 소중히 여기며, 궁극적으로 그는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無我의 강』은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