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엔 옥금 씨가 더 행복하다

토요일엔 옥금 씨가 더 행복하다

$12.00
저자

박경분

박경분시인은2019년계간『에세이포레』(수필부문)과2025년계간『애지』(시부문)를통해등단을했다.
『토요일엔옥금씨가더행복하다』는박경분시인의두번째시집이며,그는『토요일엔옥금씨가더행복하다』라는시집을통해서‘이야기시’의진수를선보이고있는데,그것은그가오랫동안이세상의삶과사물의이치를연구하고시를써왔다는것을뜻한다.“북태평양물살을가르는명태의힘찬지느러미질처럼푸른물이뚝뚝돋는옥금씨의싱싱한전화목소리”의표제시와‘부재의존재에대한소통과공감의시학’이라는황치복교수의글이그것을증명해준다.

목차

차례


시인의말 5



1부

굴밤묵 12
오래된소파 14
닭간 16
분꽃이낮에는입을다무는이유 18
아마도 20
안경을닦을시간 22
오촌아줌마 24
위하여 26
냉이 28
양파모종을고르는저녁 30
목공이씨설날 32
잡초 33
밥 34
묵정밭에서 36
청마리에가면은 38



2부

우채꽃당신 42
2월초하루 44
점하나 46
적화시기 48
토요일엔옥금씨가더행복하다 50
그대로멈춰라 51
하다가도하다가도 52
붕붕카 54
산에는웃음꽃이산다 56
엉터리셈법 58
밤뻐꾸기 60
있는데없는 61
보끈땅콩2되 62
수족관서점 64
아버지의물꼬 66



3부

알고있지엄마는-뻐꾸기는그냥우는거란다친구야 68
옥수수 70
월동준비 72
이제야알았네 74
이형사댁 75
일갈 76
이남자 77
잡초라불리는것들 78
팔수없는무게 80
엄마의겨울채비 82
한치걸러두치 83
사백살의느티나무 84
화장을하다 86
핑계 87
낙숫물소리 88



4부

고추 92
누군가왔으면 94
다시접시꽃이피었다 96
행운 98
라면팔기 99
言 100
라임라이트 102
분꽃인사 103
아우들 104
오래그리운사람 106
쉼표 108
다녀오마 109
분홍금낭화 110
마당쓸기 112
녹차우리기 113


해설┃황치복
부재의존재에대한소통과공감의시학-박경분의시세계 115

출판사 서평

건강검진받아보면
여기저기어느정도흠집나있는남편처럼
함께늙어온거실의가죽소파
새소파의반들거리던윤기는
군데군데버짐으로피고
좀이슬고
우리의목주름과바래가는자신감처럼
가상사리가너덜하다
요즘엔또어디가탈이나려는지
소파에앉고일어설적마다
삐이걱
헐거워진소리를낸다

노사연의만남노래가사마냥
아무리늙어가는것이아니라익어가는것이라
외쳐대도
커간아이들의그림자길이만큼
늙어온것도사실인것을
아이들은
세대가바뀌는걸인정하라는듯
소파를바꾸자고보채지만
아직은쓸만하다고
우리가아직은버려질때가아니라고
좀더둬보자미련을두며
짙은화장으로얼굴한쪽에돋는검버섯을감추듯
덮개를교체하고
삐걱거리는무릎에인공관절을박는양
신문지한장착착접어소파다리아래괴어본다
-「오래된소파」전문


오래된소파가낡았다는것,그래서“반들거리는윤기는/군데군데버짐으로피고/좀이슬고”“가상사리가너덜하다”는것,그리고이제는“삐이걱/헐거워진소리를낸다”는것등의관찰사실을상세히알려주고있다.시적화자가이처럼“오래된소파”에대해세밀한사실을알려주는것은그만큼그것에대해애착을느끼고있으며,그래서안타까운심정에사로잡혀있기때문이다.오래된소파에대해이처럼애착을느끼는것은“우리의목주름과바래가는자신감처럼”이라든가“우리가아직은버려질때가아니라고”라는구절에서알수있는것처럼시적화자가낡아가는소파에대해서동병상련의공감대를형성하고있기때문이다.
낡아가는것에대한시적화자의이러한공감은물론“함께늙어온거실의가족소파”와같은표현처럼함께세월을같이해왔기때문이다.그러니까함께한시간은정이들게하고,파괴적인시간앞에서있는운명공동체로서결속과유대를형성하게된것이다.그렇기에“검버섯을감추듯/덮개를교체하”거나“삐걱거리는무릎에인공관절을박는양/신문지한장착착접어소파다리아래괴어보”는행위는낡아가는것들에대한시인의헌사와연민의발산과다르지않다.낡아가는것에대한시인의애착은“세대가바뀌는걸인정하라는”아이들의주장에담겨있는엄연한자연의질서에대한유한한인간으로서의어쩔수없는한탄이자유정함이라고할만하다.다음작품역시그렇다.


해마다운신이다르다는85세엄마와이모부간병에꼼짝하기힘든78세서울이모가조카결혼식장에서오랜만에만났다원래는보행의자밀고다니는데결혼식장에선예의가아니라며지팡이짚고한걸음한걸음걷는엄마

며느리와손주들앞에서
마음만은애들처럼
얘,
언니,
둘이애틋하다

로비에서헤어지며서울이모가아기보듯양손으로엄마를감싸고눈맞추며언니,더늙지말고꼭요대로있다가또봐하는데

내가어쩔것이냐
네가어쩔것이냐

밖으로나오니목련꽃뚝뚝지고있는걸
-「그대로멈춰라」전문


85세의엄마와78세의서울이모가조카결혼식장에서만났다는것,둘은여든의나이에도불구하고세월을거꾸로흐르게하여어린아이로돌아가있다는것,그래서“얘,/언니,”하면서애틋한혈육의정을나누는장면이정감있게묘사되고있다.하지만더욱시적인장면은서울이모가엄마의얼굴을감싸고하는말,“언니,더늙지말고꼭이대로있다가또봐”라는대목이다.파괴적인시간의힘앞에굴복할수밖에없음을알면서도이처럼미래를기약하고싶은것은연약한인간의마음일것이다.부질없는기대라는것을알면서도이처럼불가능한미래를기약하고싶은혈육의애틋한마음에서시적서정이흘러나온다.
시적인정서가폭발하는장면은“내가어쩔것이냐/네가어쩔것이냐”라는외침인데,이러한외침속에는흘러가는시간과낡아가는존재자의엄연한현실에대해인정하지않을수도없고,인정할수도없는유한성을지닌인간의딜레마상황이담겨있다.“밖으로나오니목련꽃뚝뚝지고있는”광경을보면서도자연이하는것을모두인정하기싫은삶의애착과미련이“그대로멈춰라”라는제목에투영되어있다.엄연한자연의질서를무시할수없다는것을알면서도그법칙의울타리밖으로벗어나고싶은것이우리같은어리석은중생들의삶이고바람일수밖에없다는것을암시하고있는장면이아닐수없다.그러나시간이흐른다는것이반드시“늙어가는것이아니라익어가는것”일수도있음을시인은잘알고있다.


처음에이남자주춤주춤게걸음으로다가와내가필요하다고단지필요하다고만했어필요하다는건서로등을기대는일이거나꽃으로치자면꽃과꽃받침으로남아도된다는것이니남자여자사랑따위는해지면사라지는그림자같은거라고생각했지그러니서로의필요에의한언약식인줄알았는데서른해넘도록이남자꽃받침으로낮게엎드려내가고개돌리는곳마다햇볕을물어나르고빗속을첨벙대다적셔온신발을말리며자장자장좋은꿈꾸어요재워놓고내가깰때까지기다리곤했지속도없이세월따위는모른다고아직도내발치에서이울기를기뻐하는이남자를나는이제야사랑하기시작했네
-「이남자」전문


“이남자”를시적화자가사랑하게된것은시간의힘때문이다.처음에이남자와시적화자는단지필요했기때문에서로관계를맺었다.하지만이남자가꽃받침으로낮게엎드려내가고개돌리는곳마다햇볕을물어나르”기도하고,“빗속을첨벙대다적셔온신발을말리며자장자장좋은꿈꾸어요재워놓고내가깰때까지기다리곤”하는모습을보고시적화자는사랑에빠진다.물론이남자가시적화자에게보여주는행위는사랑의행위이며,진정성있는마음에서우러나는배려와보살핌이기에감동적이기도하다.하지만시적화자가진정으로사랑에빠지는것은“속도없이세월따위는모른다고아직도내발치에서이울기를기뻐하는이남자”때문이다.
그러니까이남자가시적화자에게보여준사랑의행위는일회성에그치는것이아니라지속적이었다는것,그리고그러한행위의누적이곧감동의원천이되었다는것인데,이울어가는이남자를보면서시적화자는유한한인간으로서동정과연민의감정도느꼈을것이다.결국사랑의행위가쌓이고쌓여서마음을움직인셈이며,따라서이러한변화는세월의더께가쌓이고쌓여서만들어낸결과인셈이다.시간의누적이어느덧형질변화를일으킨것이며,마음의미세한움직임을일으킨것이라는점에서시간의흐름이곧시적서정의원천으로작동하고있는셈이다.다음작품도시간의누적이초래하는서정적인변화를보여준다.


손귀한집큰며느리로들어와암짝에도소용없다는딸셋내리낳고해보고도빌어달보고도빌어천금보다귀하게얻은우리엄마옥금씨의아들이장가를가아이를낳고차로삼십여분거리로분가해살면서아버지돌아가신후로는일곱날중하루토요일엔어지간하면안빠지고엄마한테들러잠을자고가는데철따라엄마입맛다실것빼놓는법없다고지금은겨울이라붕어빵을사오는데식지말라고옷속에품어오고뜨끈한순대도국물까지얻어가지고와서는엄마가끓여주는동탯국에마른콩을갈아넣은잡곡밥을고봉으로퍼줘도땀까지철철흘려가며잘먹는다고잘먹어잘먹어내가해주는건뭐든맛있다고아주잘먹어말하고있는

북태평양물살을가르는명태의힘찬지느러미질처럼푸른물이뚝뚝돋는옥금씨의싱싱한전화목소리
-「토요일엔옥금씨가더행복하다」전문


토요일에옥금씨가행복한것을물론사랑스러운아들이방문하기때문일것이다.“나말고도살아있는게또있으니/참좋다고”하는엄마이니살아있는것중에서눈에넣어도아프지않을아들이찾아와서하룻밤을자고가니이보다더좋을수없을것이다.더구나어렵게얻은그아들은효심이가득해서“철따라엄마입맛다실것빼놓는법없다고지금은겨울이라붕어빵을사오는데식지말라고옷속에품어오고뜨끈한순대도국물까지얻어”오니그지극정성이감동적이기까지하다.
하지만정작엄마가좋아하는것은그사랑스러운아들이“엄마가끓여주는동탯국에마른콩을갈아넣은잡곡밥을고봉으로퍼줘도땀까지철철흘려가며잘먹”기때문이다.아들이엄마를봉양해서좋은것이아니라엄마가아들에게밥을해줄수있는기회를주어서행복하고,자신이해주는밥을너무잘먹기때문에그것을보는엄마가행복한것이다.“잘먹어잘먹어내가해주는건뭐든맛있다고아주잘먹어”라고되뇌는말속에는엄마의마음속풍족함과감사함이배어있다.엄마는아들을먹이고,아들의먹는모습에서생의활력을느끼는데,“북태평양물살을가르는명태의힘찬지느러미질처럼푸른물이뚝뚝돋는옥금씨의싱싱한전화목소리”속에그생의환희와기운이담겨있다.아들이잘먹는모습에서행복을느끼고그것을바라보면서삶의자양분을발견하는엄마의삶이란곧타자의행복에서자신의행복을발견하는성자의그것이라할만하다.시인은부재의존재감을통해서타자와소통하고공감하는시적지향을추구해왔는데,이러한시의식은바로엄마의삶을보면서배양된것이라여겨진다.
지금까지박경분시인의두번째시집의시세계를살펴보았다.무엇보다간결하고담백한시상속에시적인것을포착하여감동적인울림을자아낼수있다는것을확인할수있었다.시인이이번시집에서번잡하거나까다롭지도않은소박하고수수한시상의전개를통해서깊은울림을자아낼수있었던것은꾸밈과거짓이없는진실한마음으로시작에임했기때문일것이다.물론이러한작시술의근원은모든낡아가는것들에대한연민,그리고부재의존재에대한형언할수없는안타까움과위로의마음이라고할수있을터인데,이러한시심은어머니의삶에대한관찰과체험에서우러나오는것처럼보인다.이러한시심이더욱깊어지고넓어져서서두에서말한바보이면서성자의반열에오른시인들의계보를잇는시인으로더욱그윽해지기를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