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허이서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고, 2022년 계간 『애지』(「욕 한 마리」 외 4편)로 등단했다. 허이서 시인의 첫 시집 『내 안에 욕 한 마리 산다』는 「욕 한 마리」의 길들이기와 「○○○네」의 꽃 가꾸기가 서로 닮아있는 것처럼, 이 ‘세상 너머를 꿈꾸는 시혼의 언어’로 구축되어 있다고 할 수가 있다. 현실을 덤덤히 감당하면서 여백의 미를 갖게 하는 시를 허이서는 매순간 길어 올린다. 아울러 따뜻한 공감 능력과 함께 예리한 직관력을 동원하여 표피적 정서를 뛰어넘는 심층적 정서를 선보인다. 현실이라는 ‘먹구름’ 속에서도 “30년 전 죽은 음계”마저 “차르르 차르르” 미학적으로 펼치려는(「푸른 첼로를 펼치다」) 자세와 시에 혼을 담아 영혼이 녹지 않는 시를 쓰려는(「시혼」) 자세로 언어의 꽃을 피워 시의 꽃밭을 가꾸어 나간다.
내 안엔 욕 한 마리가 산다 어린 강아지처럼 귀엽던 그 녀석 내 나이만큼 자라서는 언제 물어뜯을지 모를 사나운 짐승이 되었다
조용히 잠자는 듯하다가 누구라도 침범하면 으르렁 컹컹 짖어댄다 버릴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도 여전히 녀석을 데리고 산다
내가 힘들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나를 핥아주는 욕 한 마리 위험에 닥쳤을 때만 짖으라고 오늘 나는 그 녀석을 길들이고 있다 - 「욕 한 마리」 전문
공황장애가 다녀간 날엔 꼭 바다에 빠지는 꿈을 꾸었다 푸른 목도리를 감고 푸른 해변에서 나는
스카이 블루가 나의 피예요 프러시안 블루가 나의 혈관이래요
푸른 해변을 헤매다 나는 물가에서 물끄러미 서 있었다 물빛은 꼭 나의 피부 같아 톡톡 톡 투명한 물빛이 나의 심장으로 흐르고
날개를 줄래요 파란색으로 나는 푸른 목도리를 했어요 뭉텅뭉텅 잘려 나가는 깃털에도 파란색을 칠했어요
나를 먹먹한 파랑이라 부를 테지만 부러진 날개를 주워 묻어두겠지만
나의 푸른 목도리는 나만의 것이죠 오롯이 나 혼자일 때 점점 더 목을 조여 오는 - 「블루스크린」 전문
눈앞의 적막은 눈물을 담은 그릇이었다 발목들이 자주 와 울곤 했다
오래전 어린 딸을 키우던 엄마가 모든 것을 내던지고 싶던 그날도 생의 수단이던 리어카에 무거운 삶을 싣고 산 아래 저수지까지 올랐다 물 언저리까지 다 다다랐을 때 털썩 주저앉아 긴 울음을 울더니 리어카에서 돈을 꺼내 던졌다 자신도 꺼내 던졌다 아이도 꺼내 던졌다 호수에 비명이 떨어졌다 모든 걸 수장하고 싶었던 엄마는 그날 이후 빛을 잃고 안구건조증에 시달렸다
그날 엄마가 물속으로 밀어 넣지 못한 것은 리어카가 아니라 어린 딸이었다는 걸 물의 눈들은 알고 있다 엄마는 죽을 때 저수지에 뿌려달라 했다
어린 나는 계속 물가에 있다 엄마의 눈은 늙지도 않고 토닥 토닥이듯 윤슬을 내보낸다 - 「저수지의 눈」 전문
거울 속에 야구장이 보였다 아빠와 강아지가 응원을 하고 있다
사소한 기척에도 짖어대는 강아지 마을 사람들 참견에 못 이겨 성대 수술을 시켰다 이물이 걸린 강아지 소리가 거울 속에 쌓였다 바람 소리가 궁금한 아이가 동네를 휘저었다 작은 마을에서 내는 소음에 중심 없이 흔들리는 집 아이의 걸음도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와글와글 라일락꽃이 환호를 내지르며 피었다 성년이 되어서도 소리를 만지면서 거울 속에 있었다
바깥을 감당하기엔 거울이 좁아 보인다 라일락을 꺼내려고 거울 속에서 손을 내밀었다 문은 안 보이는데 자물쇠만 가득 잠겨 있다 돌멩이로 내리쳐 보지만 깨지는 건 거울뿐 거울은 깊은 터널처럼 보인다 빠져나오고 싶어 이사를 해도 등 뒤로 따라온다
홈런을 만지지 못한 아빠는 집에서 사라진 지 오래 나는 지금도 거울 속에 살고 있다
환한 마당이 보이는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친다 - 「라일락을 꺼내려고 거울 속에서 손을 내밀었다」 전문
내 안에 욕 한 마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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