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것들 (기에천 장편소설)

귀여운 것들 (기에천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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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잔잔한 장르문학판에 먼지바람을 일으킬 귀여운 것들이 찾아왔다! “우화와 괴담을 한 접시에 플레이팅한 어른을 위한 야식”(강지영 소설가) 같은 소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 속을 거니는 듯한 환상적인 느낌”(김희선 소설가)을 가진 소설이란 찬사를 받으며 야심 차게 등장한 ‘제11회 네오픽션상 우수상 수상작’ 『귀여운 것들』이다. 우리의 주변에, 사회의 작은 틈에 어쩌면 영사 중일지도 모를 작고 귀여운 것들의 치열한 생존 투쟁을 다룬 이 소설은 판타지와 호러를 잘 차려입은 ‘지금 현실’의 이야기다. 하찮고 우스운 사건들을 거닐며 순간순간 번뜩이는 쓰고 아릿한 기억들이, 읽는 내내 이 소설 심장부에 각인된 메시지를 선명히 드러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맹렬하게 뽀짝대는 이 세상 모든 귀여운 것들에 바치는 잔혹한 헌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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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에천

저자:기에천
인간이외의것만사랑하는지독한비인간주의자.그래서인지다시태어난다면꼭용이되고싶다.실험대상으로쓰이지않기위해사람들을잘피해다니겠다는허무맹랑한다짐을자주하는편이다.순수하게재밌어서소설을쓰기시작했고,운좋게도그런즐거움은현재진행형이다.

목차


도살자깔랑
그로테grote
어디든뼈다귀
대단해,곰사건!
이희지,그리고……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인형이인형답지않아진순간,
인형은생명력을잃는다는진실

여기교복입은한소녀가있다.이름은이희지.그녀에겐어릴때부터손에쥐고놓지않던애착인형이있었으니,보드라운파란양털과분홍빛의동그란코를가진맑은눈의토끼인형,이름하여‘깔랑’.이희지는어린시절깔랑을제신체의일부처럼여기며물고빨았지만,시간이지날수록깔랑은그녀에게그저수많은인형중하나가되었다.

‘나를잊었어?내가보이지않아?어떻게나한테이럴수가있어?우리는정말좋은친구였잖아.나밖에없다고그랬잖아!(21쪽)

깔랑은속으로외쳤지만이희지에게는닿을수없는마음이었다.하지만하늘은스스로돕는인형을돕는다고했던가.어느늦은밤,깔랑의다리에힘이생겼다.제의지로번쩍일어설줄알게되었고,도도도걸을수도있어졌다.깔랑이그즉시한일은다름아닌희지에게손내밀기.자기세상의전부인그녀를만지고싶었기에.하지만희지는깔랑의손이제얼굴에얹어진바로그밤,깔랑의귀를아무렇게나그러쥐고밖으로나가쓰레기처럼버려버렸다.작은토끼인형의절규에도희지는뒤도돌아보지않았고,깔랑은혼자가되었다……고하기엔너무나곧바로두번째주인이생겼다.그러나깔랑은얼마지나지않아금방알아차렸다.어쩌면차라리혼자인게나을수있었음을.

금기,어쩌면인간적이기의다른이름

새카만코트,새카만옷과구두,새카만머리칼.검은여자의집에는온갖인형이가득했다.조금특이한점이라면그것들은어딘가찢겼거나뚫렸거나떼어진,온전하지않은조각인형이라는것,그중지점토로만들어진웬덩어리가검은여자를향해엄마라고외쳐대는것,그소리에발작하듯검은여자가돌망치로수분기하나없는회색몸뚱이를으깨버린것정도랄까.가까스로다시뭉쳐진지점토인형은이전보다훨씬괴상한모습이었고,검은여자가자리를비우자본색을드러내기시작했다.한마디로정의하자면이렇게이름할수있었다.인형고문관.이집에온전한인형이없는이유이자새로입성한깔랑이위험한이유였다.검은여자가자기에게가한폭력처럼지점토인형역시다른인형들을찢어발기고있었다.대물림하듯,배운건그것뿐이라는듯,마치폭력이사랑의다른이름이라도되는듯.
손발이묶여아홉번째시침핀이깔랑의배에꽂히려던순간이었다.검은여자는또다시나타나지점토인형을괴롭혔다.자신을고문하던그를도울마음은1도없었지만,그의빌어먹을텅빈눈빛,제대로사랑받아본적없는서글픔담긴표정이깔랑으로하여금불쑥이희지를연상케했다.자신을버린주인이지만그녀를생각하며깔랑은몸을날려검은여자의눈동자에시침핀을박아넣었다.그렇다,자신의배에꽂혀있던그것이었다.

깔랑은금기를깼다.인간을다치게했기에더이상누군가의인형으로살수없게되었다.하지만슬프고후회되는표정을짓지는않았다.오히려자유롭고당당한얼굴이었다.
“주인따위필요없어.”(64쪽)

더는부드러울필요도,귀여울필요도없어진깔랑은드디어기회가주어졌다.어디로가야할지스스로생각할기회가.

당신이아는그로테스크와
그로테스크라일컫는것들의간극

내이름은그로테.그로테스크라는영어단어에서가져왔어요.
‘괴기스럽고끔찍하다’는뜻이랍니다.
이름이라는건꽤중요한역할을합니다.어떤것의정체성은이름에서나타나니까요.아,징그럽고괴기스러운성질이나의정체성이라는사실이억울하지않느냐고요?전혀요.속
상하다고느껴본적도없는걸요.사실,이이름은내가지었거든요.(67쪽)

그로테는팔이네개나달린불량품인형이다.폐기될위험에처한그를공장에서구해준주인은그로테에게있어봄날의햇살이었다.이집에도이상한인형들이가득했는데,멀쩡한인형을해치는검은여자의집과는경우가달랐다.일종의장애가있는인형을골라모아안전하게지켜주는안식처였다.그런따스한주인의곁에서그로테는주체적이고용감한인형으로지냈다.그래서주인의죽음은그로테에게엄청난충격일수밖에없었다.
주인은외로운인간이었다.비정상적인인형들과실험용(으로쓰이고버려지기직전주인이주워온)쥐들만이곁에있었다.생전천사같던인간이돌연좀비가되어기행을저지르는꼴을보고만있을수없었다.죽은주인의명예를지키는일은,그간사랑받아온그들의몫이었다.
혹난쥐도그중하나였다.고름이가득한혹을턱에매달고다니면서도주인을위해희생을마다하지않는그는타의모범이되는쥐였다.그로테가비겁한스스로를내던지고용기내끝내주인을지키게한역군이었다.그러다가털이다빠져도,뼈만남아도괜찮았다.그럼그냥뼈다귀로살면되는거니까.

죄없는동물을유기하는인간
작디작은몸으로친구를지키는동물

쥐가,그것도뼈밖에남지않은치면부러질까불면날아갈까걱정되는그것이고양이를지킨다면어떻겠는가.여기고도3동놀이터에서실제일어난일이다.
뼈다귀가건어물말리듯햇살아래몸을늘여놓은어느오전,한수상한인간이놀이터에들어오더니벤치아래깊숙이가방하나를밀어넣고사라졌다.참,이런말을남겼다.

“로얄,여기에서기다려.”(108쪽)

가방에담긴것은풍성한흰털과겁먹은까만동공을지닌,곱게자란것이분명한고양이였다.버려졌지만그것을인정하기엔고양이의몸엔아직고고함이가득배어있었다.매끄러운마루나보드라운양탄자가아니면밟지도않겠다는듯가방속에서나오지도않았다.인간의거짓을믿고싶어하는고양이와그런고양이를지켜주고싶은뼈다귀는수없이투닥대며대립하지만,매서운현실앞에동맹을맺고함께어려움을극복해간다.그러던중뼈다귀의일방적인보호아래있던고양이가각성하는사건이일어나고,뼈다귀가그랬던것처럼고양이는뼈다귀를구하기위해제목숨을기꺼이내놓는용기를발휘한다.인간의손길만타던곱게자란고양이가온털에피를묻히고살점이떨어져나가는수치와고통을이겨내다니.유기된로얄에서벗어나진정한‘흰털’이되는순간이었다.엉망이된몸으로어쩌면더건강하게살게된순간의시작이었다.

가장낮고작고여린시선으로보내는
가장높고크고단단한외침들

이렇듯귀엽고안타깝고용감한비인간들로가득한이소설속에는인형이나동물을손쉽게버리는인간의매정함은물론,아동학대와납치,감금,착취,외모지상주의등등이시대의사회적문제가고스란히담겨있다.특히작고여리고인간의손이필요한개체의시각에서사건이진행되는만큼,읽는이로하여금낮은시선의입장을생각하게한다.늘위에서내려다보는,마음대로주물거리는입장이던우리가작고여린존재가되어보는것이다.이『귀여운것들』과만난이후작은골목끄트머리에덩그러니놓인인형이,집근처를어슬렁거리는고양이가,하수구근처에쌓인낙엽이예전처럼보이지않을것이다.작고말없는것들의안위가신경쓰일것이다.마음의날선부위가조금은뭉툭해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