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구봉집 (하) (개정판)

국역구봉집 (하) (개정판)

$30.00
Description
구봉집(龜峯集) 초간본을 발견해 일독하고자 복사본을 만들어 두었으나 겨우 시집만 뽑아 구봉한시상고(龜峯漢詩詳考)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펴내고 후편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다른 일에 묻혀 잊고 있다가 다시 작심하고 2년여 타이핑과 편집·교정작업하여 이번에 완간하는 감회가 한량없이 기쁩니다.
구봉의 직 후손이신 송기철(1932~2015)님께서 방후손 한학자 송동기(1919~1991)님과 함께 국역본을 시작하여 거의 마무리단계에서 끝을 내지 못하고 작고하셨기에 뒤늦게 필자의 미력으로나마 마무리를 짓게 되어 감계가 무량합니다.
구봉선생께서는 사승한 일이 없이 타고난 재주에다 근면성을 더해 거의 독학으로 학문을 성취하셨고 성리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태극론이라 할 수 있는데 태극문(太極問)을 문답식으로 이해하기 쉽게 해설하셨으며, 철학의 경지에서 요순의 도(道)를 실천하며 사셨던 도인(道人)이셨습니다.
구봉(龜峯) 우계(牛溪) 율곡(栗谷) 3현(賢)은 동시대 파주에 세거하며 삼십여 년이 넘도록 주고받은 편지글(삼현(三賢)수간(手簡))이 국가보물 1415호로 지정되면서 더욱 새롭게 알려져 후학들의 연구와 학문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오롯이 전해진 공의 문집과 삼현수간은 후학들에게 학습과 학문연구의 소중한 자료로 쓰일 것임에 큰 보람과 감사함을 느끼며. 이 소중한 자료들이 사계(沙溪) 후손들의 꾸준한 노력과 대대로 전해왔던 종가들의 보전으로 후세에 전하게 되었습니다.
저자

송익필

송익필(宋翼弼)(1534(중종29)~1599(선조32))의자는운장(雲長),호는구봉(龜峯),시호는문경(文敬)이다.본관은여산(礪山)이며,아버지는판관(判官)송사련(宋祀連)이고어머니는연일정씨(延日鄭氏)이다.어렸을때부터신동으로이름나젊은나이에향시(鄕試)에합격하였다.그러나할머니가노비출신이었던관계로금고(禁錮)를당해더이상과거를보지못하고고양(高陽)의구봉산(龜峰山)아래로옮겨가살았다.21세때이이(李珥),성혼(成渾),정철(鄭澈)을만나도의지교(道義之交)를맺었으며,학식과인품이뛰어나다는소문을듣고찾아오는제자들과함께학문을연구하면서지냈다.1586년(선조19)동인들로부터‘서인의모주(謀主)’라는무함을받아노비신세로전락하게되자성과이름을바꾼채도망쳐숨어살았다.1589년정여립(鄭汝立)의모반사건이일어난뒤정철의도움으로천인신분에서벗어났으나,정철이실각한뒤에는다시도피생활을하다가자수하여평안도희천(熙川)으로유배되었다.임진왜란이일어난뒤에석방되어이곳저곳을떠돌았으며,1596년충청남도당진(唐津)의마양촌(馬羊村)에우거하면서학문을강론하다가1599년66세를일기로졸하였다.그뒤1625년(인조3)천적(賤籍)을씻었으며,1751년(영조27)지평(持平)에추증되었다.송익필은노비출신이라는신분적제약과동인과서인이대립하는붕당의폐해로인해,자신의경륜을펴지못한채도망자신세로떠돌다가일생을마쳤다.그런가운데서도송익필은좌절하지않고학문에몰두하여성리학(性理學)과예학(禮學)분야에큰업적을이루었을뿐만아니라,문학에도큰성취를이루었다.이로인해송익필은이이ㆍ성혼과함께‘파주삼현(坡州三賢)’으로,최경창(崔慶昌)ㆍ백광홍(白光弘)등과함께‘팔문장(八文章)’으로,김시습(金時習)ㆍ남효온(南孝溫)과함께‘산림삼걸(山林三傑)’로칭해졌다.

목차

발간사
축간사

가례주설家禮註說(1)
가례주설家禮註說(2)
가례주설家禮註說(3)
부록附錄(1)
구봉연보龜峯年譜
목판원본木版原本

출판사 서평

조선전기의학자구봉(龜峯)송익필(宋翼弼)선생의문집이다.

그간구봉(龜峯)할아버지의저서는시집등여러종류로발간되었으나오류가있는부분도있었기에송남석선생이수년간갖은고생끝에전체3권으로발간하려고준비하셨으나투병끝에출간직전에타계하셨다.이에봉용(鳳容)윤재남(尹在男)선생이유지를받들어출간하게되었다.책을통해송익필연구의새로운전기가마련될것이며,더나아가16세기정치와사상및예학과문학을연구하는데큰도움이될것이며그정신으로그도학(道學)을배워구봉할아버지같은대성인(大聖人)이많이배출되기를간절히바라며마음이다.

책속에서

구봉집5책11권이국역구봉집3권으로재탄생하게됨을축하드립니다.대종회편집주간족질남석님의각고의노력으로마무리지어졌고이에후손들의학습에도큰도움이되게하였으니여산송씨전종원의경사가아닐수없습니다.
구봉선생은조선을통틀어유가에서가장내공이높았던도인이었다하고율곡우계송강과한시대를도의지교의외우로살아가셨으며그의성리학에대한높은성취는퇴계이황과함께한국성리학의양대기둥으로추앙받는기호학파의터를닦았으며율곡이이가조선에서성리학을논할만한사람은오직송익필한필형제뿐이라고극구칭송할정도였습니다.
도학의의를몸소수양에옮겨요순의도를실천한학자로제갈량을뛰어넘는선풍도골의학자로조선중기의명문장가요시3걸에서예에도달통하였고교육자철학자경세가책략가이며어떤작가는조선의숨은왕이었다고칭찬하는학덕을겸비한진유(眞儒)의도학자(道學者)였습니다.
-축간사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