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속죄의 저편 (정복당한 사람의 극복을 위한 시도)

죄와 속죄의 저편 (정복당한 사람의 극복을 위한 시도)

$18.86
Description
“나는 원한을 품었다 … 원한을 떨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파국의 기억과 화해하지 않는, 스스로의 살을 도려내는 필사적인 글쓰기
《자유죽음》의 저자이자 아우슈비츠 생존자 장 아메리. 그가 살아남은 자로서 쓴 수기인 이 책에는 자신이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파국의 체험과, 그것이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하고 박탈하는지의 기록이 건조한 문체로, 그러나 괴로울 만큼 또렷이 담겼다. 그는 진술한다. “고문에 시달렸던 사람은 세상을 더 이상 고향처럼 느낄 수 없다.” 이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더욱 곪게 하는 것은 수용소의 기억만이 아니다. 생존자들이 상흔을 채 극복하기도 전에, 그 고통을 직접 겪지 않았던 이들이 가해자들에게 내미는 용서와 화해의 손길이다. 그것이 생존자들의 고통과 분노에 유죄판결을 내렸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안일한 용서는 부도덕하기에, “근본적으로 잘못된 화해” 대신 그는 택한다. “열등한 자들의 도덕”인 원한과 분노를 간직하기를, 자신의 고통과 타협하지 않기를. 그럼으로써 인류 최악의 죄에, 살아남은 자로서 저항하기를. “나는 저항한다. 나의 과거에 대해, 역사에 대해 불가해한 것을 냉동시켜 버리고 화가 치밀 정도로 왜곡시키는 현재에 대해서.” 자신보다 먼저 화해한 세계에 단절감을 느끼던 그는 결국 스스로를 세상에서 지우길 택했으나,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얽매는 불가능성을 극복하기 위해 있는 힘껏 몸부림쳤던 한 인간을 본다.
저자

장아메리

JeanAméry

1912년오스트리아빈에서태어났다.아버지는유대인이었지만,어머니에게가톨릭식교육을받으며자랐다.대학에서는문학과철학을공부했다.1938년벨기에로망명해레지스탕스활동을하다가1943년게슈타포에게체포되어고문을당했다.이후유대인으로‘강등되어’아우슈비츠와부헨발트,베르겐-벨젠강제수용소에서수감생활을했다.전쟁이끝난뒤브뤼셀에정착하여작가로활동했다.본명은한스차임마이어HansChaimMayer이지만,1955년에성‘Mayer’의철자를뒤섞어아메리Améry로개명했다.1966년강제수용소에서겪은파국의경험을담은《죄와속죄의저편》을발표해동시대지식인들에게충격을주었고,1976년에는《자유죽음》을출간해논쟁을불러일으켰다.1978년잘츠부르크의한호텔에서수면제를먹고‘자유죽음’을택했다.오스트리아빈의중앙묘지에안장된그의묘비에는출생및사망연도와함께아우슈비츠수감번호‘172364’가적혀있다.

목차

옮긴이의말
1977년판서문
1966년초판서문

정신의경계에서
고문
사람은얼마나많은고향을필요로하는가
원한
유대인되기의강제성과불가능성에대해

옮긴이해제
장아메리연보

출판사 서평

프리모레비,빅터프랭클…그리고마침내,‘자유죽음’의장아메리가증언하는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생존자장아메리.그는자살을인간존엄의문제로이야기한《자유죽음》의저자이자,그자신이평생토록고문후유증에시달리다스스로‘자유죽음’을선택해생을마감한작가로국내에알려져있다.그러나생과존엄에대한그의냉혹하리만치철저한태도를이해하기위해반드시읽어야할또한권의책이바로이책,《죄와속죄의저편》이다.아우슈비츠생존자로서의고통스러운체험이생생히담긴《죄와속죄의저편》은《자유죽음》과더불어장아메리사상의정수가새겨진책이다.총다섯편의에세이가담긴이책은고문의고통,지식인의무기력,고향의상실,희생자의원한과아우슈비츠를서서히망각하려는독일에대한비판등이담겼다.여기에는《자유죽음》에서도논의되는인간존엄과자유,언어화할수없는고통의문제가씨앗을틔우고있다.그는테오도어아도르노와한나아렌트등을언급하며,망명에성공해“유리로된새장”으로아우슈비츠를본그들이이야기하는개념어가거기서생긴파국을전혀설명하지못하리라고비판한다.장아메리는단순히자신의기억과체험을증언하는것에서넘어,당대독일의동시대사에서그것이어떻게기억되거나혹은망각되는지를치열하게파고든다.그는아우슈비츠의상흔이아직독일에남아있고,자신을비롯한누군가가그상흔을견디고있다는것을처절하고도강렬한문체로증언한다.바로이점이《죽음의수용소에서》의빅터프랭클이나,《이것이인간인가》의프리모레비등다른아우슈비츠생존자들의글에더해그의글을읽어야하는이유다.프랭클이나레비의수기가인간성을박탈당한극한의상황에서도인간의의미와가능성을모색한다면,장아메리의수기는인간성을박탈당함으로인한철저한의미상실과불가능성을직시하고증언함으로써그기억의가장어둡고고통스러운밑바닥을낱낱이드러내보이기때문이다.

파국의기억을영원히남기고자하는필사적인글쓰기
장아메리는1977년《죄와속죄의저편》의개정판을내며쓴서문에서“어쩌면1964년에치유될수있었던상처가다시금곪아터지고있”다라고이야기한다.이는1976년아메리가《자유죽음》을쓴직후고,어쩌면그에게는죽음을앞둔시기라고볼수있다.그는당시독일의좌파청년이“현실을단지조악하게생각해낸이데올로기의잣대”로만성급히파시즘을이야기하는것을경계하며,그들의사유를회의적인시선으로본다.그는이책이“실제적파시즘과일회적인나치즘이무엇이었는지에대한증거일뿐아니라,독일젊은이들에게그것에대해스스로생각하도록촉구한”다고이야기한다.장아메리가나치즘의실체가서서히잊히고정치적상징으로만남기시작한시대에다시자신의고문후유증을증언하기시작한것은의미심장하다.그는계몽을“공감(Empathie)과이성의한계에접근하기위한의지와능력을포함한”것이라고이야기한다.계몽은과거를여러이론으로해명하거나,“나의과거에대해,역사에대해불가해한것을역사적으로냉동시켜버리고,그렇게해서화가치밀정도로왜곡시키”는것에그치지않고,열정적으로그사실에대면하고그고통을이해하는의지에서나오는것이다.《죄와속죄의저편》은그러한의지에서시작하는책이다.파시즘으로인한인류의절멸을이해하고자하는필사적인글쓰기가이책을탄생하게한셈이다.아메리가다루는여러주제들은이러한열정을담는다.지식인이지니는언어가파시즘을설명하는데에아무쓸모가없을지도모른다는불안을안고가면서도그는영원히곪고있는상처를독자에게한껏드러낸다.

지성의언어가무기력화되는지옥,아우슈비츠
장아메리가아우슈비츠에서가장먼저체감한것은,아우슈비츠에서는어떠한지식도통용되지않는다는냉혹한진실이다.그는“지식인이란넓은의미에서정신적인준거체계(Referenzsystem)속에살고있는사람”이라고이야기한다.문학이나철학,역사의범주안에서잘정리된미학적의식을지닌이들은아우슈비츠에서한계상황에맞닥뜨린다.아우슈비츠에서지식인은아무런쓸모도없을뿐더러,그들이세계를이해하는방식이전혀통하지않기때문이다.오히려아우슈비츠에서는기술자와노동자만이살아남는다.지식인은정체성을박탈당하고일머리가없는노동자중에하나로만취급당하며동료들의홀대를당하기일쑤다.정신의사회적기능이아예사라져버린곳에서,우리가흔히들이야기하는상식은더는통하지않으며지식인은움직이는시체로분류된다.인간의몸뚱이가타는냄새가진동하고있는비르케나우에서탈출하더라도의식의공간이박탈된,자신이마주한고통을체계적으로증언할수있는언어마저외면당하는탈인간화된자신을마주한다.매순간자신의사고가한계를마주하면서부서져버리는시공간이아우슈비츠인셈이다.그는지성의언어가무기력해지는아우슈비츠의지옥도를뼈저리게묘사한다.이는망명자에게도마찬가지다.아우슈비츠바깥에있더라도지식인은망명으로인해서제언어를상실한다.1933년부터1945년도까지참상을두눈으로본이들은과거,혹은과거의기억으로부터비롯되는고향에되돌아가지못한다.“망명중에는제대로늙지못한다.왜냐하면사람은고향이필요하기때문이다.”라고역설하는그는본인의독일어본명을애너그램으로뒤집어서지은프랑스어이름인장아메리로살아가는자신의이야기를하고있는것이기도하다.그는오스트리아인이지만평생토록스위스에머무르면서독일어로글을쓰는삶을살아가기에이른다.

한나아렌트도보지못했던악의맨얼굴을대면하는가장끔찍한체험,고문
장아메리는“고문은한인간이내면에간직할수있는가장끔찍한사건”이라고이야기한다.그는고문을행하는이들이누구보다평범한얼굴을지닌것을강조한다.이는한나아렌트가《예루살렘의아이히만》에서이야기하는악의평범성에대한비판이다.그는악의평범성개념이아렌트가아우슈비츠를“유리로된새장”으로보아서탄생한개념이라며자신을고문한이와의에피소드를상세히회상한다.아메리는현실이상상을넘어선다는말을반박하며,되레모든현실이상상대로진행되는과정이고문당하는이에게고통을준다고이야기한다.“무시무시하고,추상화시키는모든상상력을무너뜨리는다음단계의인식은그평범한얼굴이결국에는어떻게게슈타포의얼굴이되는지,그리고어떻게악이평범함과겹쳐지고그평범함을강화하는지분명히해주”기에아렌트의‘악의평범성’은성립하지않는다고본것이다.그는나아가서그평범한얼굴로부터고문당하는경험이야말로상상의범주를넘어서는것이라증언한다.그에따르면우리는“자기에게가해진첫번째구타와더불어우리가세상에대한신뢰라고부르고싶어하는것을이미상실하게될것”이라이야기한다.인간이지니는잔혹성으로인해우리가세계를이해하는체계가붕괴하기때문이다.또한고문에서행해지는“첫번째구타로내게자신의육체성을강요한다.그는내게접촉함으로써나를파멸시킨다.그것은강간,곧두당사자중한사람의동의가없는성행위와같은것”이라며그참혹한파괴성을더욱강조한다.나아가“우리의신체를제압하는것은결국완전히실존적인절멸행위가된”다며고문이우리를무너뜨리는방식을이야기해우리를충격에빠뜨린다.

원한으로인해뒤틀려버린시간
고문으로인한생존자의고통은원한의차원으로도이어진다.장아메리는“원한에사로잡힌사람의시간개념은비틀어져버렸다는것,어긋나버렸다”는것을이야기한다.나치이후의독일인세대에게아우슈비츠는사실상잊힌기억에가깝지만,아우슈비츠의생존자는영영원한아래서아우슈비츠의시간을사는셈이다.그는나치를평가하며이야기하는집단적죄(Kollektivschuld)라는수사를공격하며,지그문트바우만을연상하게끔만드는후기자본주의라는수사도공격한다.이러한수사는가해자를피해가고,아우슈비츠에가담한모든이의잘못을명령권을가진소수의몇사람과명령체계의책임으로돌려버린다.다만장아메리는“집단적죄로부담을느끼는사람은나자신이지그들이아니라고나는말하겠다.이미용서하고망각한세상은살인하거나살인이일어나도록내버려둔사람에게가아니라나에게유죄판결을내렸”다고이야기한다.일상으로섣불리돌아가고자하는흐름이지배적으로자리잡은독일의상황에서그는극단적인무기력을느낀다.나아가그는원한으로인해서계속거기에사로잡혀있는것이새로운세대에게는반동이되리라이야기한다.“우리,희생자들은말그대로역사에적대적인반동자로,정말로가르치기힘들고,화해하기힘든자로남아있을것이며,우리들가운데몇몇사람이살아남은것은마침내는업무상재해”로남을것이라며말이다.한편으로장아메리는이원한을이용해민족주의를형성하는이스라엘에대한비판도아끼지않는다.이스라엘을유럽에만연한반유대주의의해방구로보되,그는시오니즘에기반을둔민족주의를비판한다.유대인의종교성이나관습등을거부하면서도그는유대인이라는정체성을떨칠수없다는태도를견지한다.다만그것이반시오니즘으로드러날때만가능하다고이야기하면서말이다.아메리의정치적의견은아우슈비츠의생존자이면서도참사를애도하는데에수반되어야할계몽을이야기한다.스스로에게계속질문하며논증을이어나가는그의정치하고도치열한사유는그를위대한에세이스트의반열에서게끔했다.

기억해야할파국,묻혀서는안되는목소리가바로우리에게도있기에
그렇다면장아메리의이토록비타협적인태도,읽는이의마음을불편하게할만큼의통렬한증언을지금의우리는왜다시읽어야하는가?그이유는비단‘죽음의수용소’가인류모두가기억해야할인간사의가장어두운단면이기때문만이아니다.생존자의원한과우리삶과의연결점은그보다훨씬더직접적이다.위안부문제부터시작해서5.18민주화운동,제주4.3사건등피와한으로얼룩져있는우리역사에서도희생자의목소리를어떻게드러낼것이냐는문제는중요하게남아있다.동시대국내문학에서한강,김숨등유명작가들의손길을거쳐역사의희생자들을추모하고,그들의트라우마와목소리를복원하는움직임이차츰대두되고있는데서도볼수있듯,‘어떻게애도해야하는가’와‘파국이후를살아가는생존자들의증언을어떻게마주해야하는가’는지금우리에게가장당면한,가장현재적인문제라고도할수있다.그삶에는제도적이고형식적인추모로는갈무리하지못할평생의원한이남아있을것이므로.이러한맥락에서읽는장아메리의《죄와속죄의저편》은시공간을건너우리독자들에게‘역사와원한’의문제를다시사유하도록한다.그원한을섣불리달래려하기보다는,‘불가능성’을이해하고그들과함께해야한다는문제의식은국가적참사들을경험한우리에게강렬하게유의미한문제제기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