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과 비사물 (현상학적 소묘)

사물과 비사물 (현상학적 소묘)

$19.00
Description
인간 존재의 조건을 드러내주는 ‘일상적 사물의 현상학’
매체철학자 빌렘 플루서, ‘사물’의 저물녘을 성찰하고 ‘비사물’의 미래를 예감하다
책 《사물과 비사물: 현상학적 소묘》의 한편에는 병, 가로등, 체스, 침대, 지레, 양탄자, 항아리…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정보, 상징화, 코딩, 이미지, 프로그램…의 세계가 있다. 앞의 것들은 지극히 단순하고 사소하며 고전적인 것들이고, 뒤의 것들은 어느 새 마찬가지로 지극히 일상적이 되었으되 우리의 존재와 맺는 관계가 앞의 것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들이다. 이 책의 지은이인 매체철학자 빌렘 플루서의 구분에 따르면, 앞의 것들은 ‘사물’이고, 뒤의 것들은 근본적으로 사물 아닌 것, 즉 ‘비사물’이다. ‘사물의 시대’에서 ‘비사물의 시대’로 넘어가기 직전 끝자락에 살았던 철학자인 그는, 자신이 세계가 비사물화되고 ‘프로그램들’의 한계 안에 갇히게 되리라는 낌새를 챌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이며 앞으로의 사물들은 비사물들에 의해 점점 지워지고 밀려날 것이라고, 다소 쓸쓸한 어조로 말한다. 이 책에 실린 일련의 에세이들은, 플루서가 그 자신의 철학적 출발점이었던 실존주의적 현상학의 방법론을 통해서 이제 곧 존재감이 희미해질 ‘사물들’로 하는 철학적 관조다. 지극히 단순하고 사소한 이 일상적 사물들은 소비사회와 대중문화를 통찰력 있게 비판하는 통로가 되어주기도 하며, ‘자연’ 대 ‘문화’ 대 ‘폐물’이라는, 플루서만의 독특하고도 설득력 있는, 인간이 대하는 세계 삼분법을 제시하는 받침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렇듯 플루서는 16개 에세이들의 소재가 되는 각각의 사물마다 특유의 각도로 빛을 비추며 인간 존재의 조건을 밝힌다. 독자들은 유희하듯 스케치하듯 펼쳐지는 사유를 접하며 일상적 대상들에 대한 관조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플루서 특유의 시적이기까지 한 문체를 살린 역자들의 세심한 번역과 적재적소의 역주로, 플루서의 이 아름답고도 지적인 산문을 한층 깊이 있고 쾌적하게 읽을 수 있게 했다.
저자

빌렘플루서

VilémFlusser

철학자,미디어이론가,저널리스트,작가.1920년체코프라하의유대계가정에서태어났다.프라하의카렐대학교에서철학을공부하던1939년나치의박해를피해런던으로건너갔다.가족을강제수용소에서잃고1941년브라질로망명했다.1959년상파울루대학교에서과학철학을가르치기시작했고1963년같은대학교커뮤니케이션철학교수로임용되었다.브라질군사정부의탄압으로1972년다시유럽으로이주한이후독일과프랑스,미국의여러대학에서강의했다.1991년강의를위해고향프라하를찾았다가교통사고로사망해프라하유대인묘지에잠들었다.평생에걸쳐독일어,포르투갈어,영어,프랑스어를오가며글을썼고,미디어와테크놀로지에의한인간문화의패러다임교체를탐구했다.사후에는뉴미디어연구자들사이에서대표적인매체철학자로여겨지고있다.저서로《몸짓들:현상학시론》,《사진의철학을위하여》,《디자인의작은철학》,《그림의혁명》,《문자.글쓰기에미래는있는가》,《테크놀로지이미지의우주로》,《탈역사》등이있다.

목차

내주위의사물들


가로등
정원
체스
막대
비사물Ⅰ
비사물Ⅱ
침대
양탄자
나의지도첩
지레
바퀴
항아리
국자와국

발문.몸짓,사물,기계그리고투영에대하여_플로리안뢰처

출판사 서평

사물을낯설게응시하기,실패하기,숨겨진조건들이드러나기
이책에서플루서는‘비사물’에관한두편의에세이(〈비사물Ⅰ〉,〈비사물Ⅱ〉)를제외하고는열네편의에세이를모두평범하고단순하고고전적인사물들로부터출발하여쓴다.서두의첫에세이〈내주위의사물들〉에서플루서는자신이그사물들을‘홀대할만하다’고생각함을고백한다.그러나플루서는바로그‘홀대할만한사물들’,바로거기서그사물이지닌철학적의미를길어낸다.이를테면‘벽’(〈벽〉)은‘나’와세계를분리함으로써나대세계라는양가적선택지를만드는사물이다.그리고거기달린문이나창문은“이실존적딜레마의해법은아니”다.문이나창문을여닫기를결심하는것은인간주체이므로,인간은결국어떻게든벽안혹은밖둘중하나를선택해야만한다는조건,윤리적양가성의조건아래있는것이다.
이런식으로우리들인간의존재조건이,플루서의관조가사물들에게비추는빛언저리에서함께드러난다.또이를테면〈체스〉라는에세이에서,플루서는사물을마치처음보는것처럼,그것에대한배경지식이아무것도없는것처럼의도적으로망각한채사물을응시할것을독자들에게주문하고또스스로시도한다.그응시를시도할수록발견하게되는것은시도들이실패할수밖에없다는사실,‘알고있었지만잊었던것을재발견’하는것외에는도리가없다는사실이다.플루서는이에대해이렇게결론짓는다.결국사물을응시하기란“나보다먼저저사물을”발견한수천의타자들의목소리로사물이자신에게말을거는것을듣는것이라고말이다.우리의존재조건은이토록타자들과연결되어있으며,이사실은침대라는사물에서의활동에빗대어일종의인생론을논하는〈침대〉의제6절‘사랑’에서도다시한번드러난다.그런가하면사물의세계에서살아가는세대의사람이든,비사물의세계에서살아가는세대의사람이든,인간이“죽음으로향하는존재”라는사실에는변함이없음도또한알수있다.인식혹은존재에있어그것을가능케하는조건에대한사유는플라톤이래칸트를거쳐모든철학의화두였고,플루서의사유또한그선상에있다.플루서는일종의문학적인플라톤혹은유쾌한칸트인양,현상학적시선에서사물들을관조함과동시에반(反)-형이상학적인방법론을통해인간의존재조건을밝혀낸다.

사물이밀려나고비사물이밀려온다는것은우리에게무슨의미인가
스마트폰,SNS,“로봇”가전이나AI채팅프로그램등,오늘날우리의일상을둘러싸고있는많은사물들은사실본질적으로는사물아닌것들이다.그것들의존재론을규정하는것은그것들의사물성이라기보다는그안에내장된형체없고부드러운프로그램이기때문이다.평상시뿐아니다.비일상적여가를즐길때도우리는좀처럼비사물의세계밖으로나가지지않는다.현대미술의전시는많은부분실물조형이아니라홀로그램이미지나영상,사운드등으로이루어진미디어아트가대부분을차지한다.이처럼2020년대의우리는이제완연한‘비사물’의세계에서살아간다.그리고그것은인간의존재론을근본적으로바꾼다.지금으로부터30년가량전에이사실이인간의존재론에던지는의미에대해통찰력있게고찰한철학자가있다.국내에서도최근몇년사이다시금번역및주목의움직임이재개되기시작한매체철학자빌렘플루서다.그가관심을쏟는영역은물론디지털미디어가지배적이된다는,미디어의변화그자체이기도하지만동시에그변화가인간의조건과어떻게관계맺는가하는것이기도하다.그에따르면전자기기들탓에노동으로부터해방된“비사물적인미래의사회는,프로그래밍하면서프로그래밍되는사람들의사회”,“프로그래밍된전체주의”라고한다.사실스스로를‘사물들’과함께소멸할세대의일원으로여기는듯한플루서의어조에서이에대한그의전망이자못우울함을유추할수있지만,그것이책전반을압도할정도는아니다.그의여러에세이에서확인할수있듯,그는결국모든시야는“주체가선입지의문제”임을거듭강조하기때문이다.결국사물혹은비사물들을어느관점에서보는가가관건인것이다.이책을대하는우리,비사물들의세계한가운데서살아가는우리는과연어느입지에서서어느관점을취할것인가?플루서는어떤것을더선호한다고말하지않는다.그저사물을,혹은비사물들을보는새로운시야를가만히열어줄뿐이다.그를통해우리는적어도,우리의존재조건이이전의것에서근본적으로바뀌었음을,그러나인간실존의“근본정조”는변하지않았음을확인할수있을것이다.이처럼《사물과비사물:현상학적소묘》는,우리가살아가는일상의조건들을성찰하고자신에게익숙했던관점을떠나여러입지에서보면서자신의일상을이루는세계를“낯설게보기”할수있는체험을선사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