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시의웅변적인글과예리한분석으로,세상을형성하는문화적힘을이해하고싶은사람누구나읽을수있는귀중한책이만들어졌다.개인주의와공동체적책임사이의균형에대해세월이흘러도변치않는교훈을주는중요한책이다.”-《아마존》리뷰
파편화와개인주의의시대를일찍이예언한문화비평의필수고전
《뉴욕타임스》베스트셀러,전미도서상수상작
나르시시즘은어떻게일상이되었는가?
50년전미국을통해지금을보다
2020년대에들어유독눈에띄게들려오는키워드가있다.바로나르시시즘이다.사람들은인간관계를고민하며‘나르시시스트’라는단어로상대를진단한다.서점가에서는심리학과인문학,자기계발등분야를막론하고나르시시즘을다루는책이잇따라출간되었다.이런접근에서나르시시스트는사이코패스나소시오패스처럼일상속인간관계를망가뜨리는문제적인간유형으로규정되었다.물론나르시시스트가새롭게등장한인간유형인것은아니다.나르시시스트들은동화〈백설공주〉속의왕비처럼오래전부터수많은작품에서강렬한존재감을드러내왔다.그런데왜지금에야나르시시즘이문제적성격으로불리게되었을까?왜나르시시스트가일상에서흔히발견할수있는유형이되었을까?
무려반세기전같은질문을던진학자가있었다.미국의문화비평가인크리스토퍼래시는《나르시시즘문화》를통해1970년대미국에서나르시시즘이어떻게유행할수있었는지를치열하게해부했다.나아가1970년대를나르시시즘문화라고대담하게선언한결과,이책은리처드세넷의《공적인간의몰락》과함께나르시시즘을논의할때면논외로할수없는고전반열에오르게되었다.이책을37년만에복간한이유도거기에있다.나르시시즘이라는개념의기원을파헤침으로써그단어의해상도를높이기위함이다.
크리스토퍼래시가주목하는1970년대미국은그로부터50여년이흐른현재와도유사하다.1970년대는여러모로종말론적인시대라할수있었다.홀로코스트의기억,쿠바미사일위기의여파,히로시마이후가시화된핵전쟁의기류,석유파동,천연자원고갈과생태적인재난등각종파국이연달아발생했다.그결과로세계가순식간에공멸할수있다는위기감이팽배해졌다.이러한감정은곧도래할밀레니엄과맞물리며한층더증폭되었다.래시는“이렇게세상이멸망하는구나.쾅하는소리없이흐느낌과함께”(T.S.엘리엇)라는말처럼,모더니즘문학의단골소재로쓰인이종말론적감수성이이제는현대인의일상적인감정이되었다는사실을지적한다.나아가이감수성은“너무흔하고익숙해서”무관심의대상이되었다고말한다.래시는위태롭고혼란스러운사회적분위기가어떻게나르시시즘이라는병리학적인감정을낳는지를상세한사례를통해독자에게제시한다.
래시가스케치한이러한1970년대의시대적감수성은다시현재로이어진다.기후위기,양극화된정치,극단적빈부격차,전운이감도는지정학적인위기등으로불안이팽배한현대에선여전히래시가분석한1970년대의미국의사회상과맞닿는지점들을발견할수있다.
지금우리는나르시시즘이라는문화속에살고있다
사회적도피에서비롯된공허한개인주의
래시는나르시시즘과나르시시스트의정의를다루고,그런인간상이어떻게1970년대미국문화에서성장하고드러나는지를다루며글을연다.그의문제의식은누구보다예리하다.그는1960년대이후의미국을“기대가축소되는시대”라고이야기한다.“공허한삶을채우고의미와목적의감각”을더해주었던미국의정치적급진주의가몰락한이후의풍경을개념화한것이다.또한래시는이시기를관통한수많은정치적사건(베트남전쟁,시카고시위,신좌파의등장,대학가의혼란등)을“소독된방식으로조차기억하고싶지않”은쪽으로1970년대의문화가흘러갔다고본다.개인이더이상정치적인문제를대면하려들지않으며,그대신사적이고탈정치적인쾌락에몰두하기시작하는것이다.이러한사회적인분위기아래서개인은“생존전략,장수법,건강과마음의평화를위한프로그램”등으로도피하고만다.정치로는더이상삶을개선할수없다는무기력이팽배해질수록각개인은“역사적연속성의감각,과거에서시작하여미래로뻗어나가며연속되는세대에대한소속감을빠르게잃어”버리고자기계발에몰두하게된다.
개인주의가일상화된사회적분위기는개인에게자기자신만소중하다는생각을심어준다.나아가이들은“개인의안녕,건강,심리적안정이라는느낌과순간적환영”에사로잡힌다.자아도취와과대망상안에머무르며,시대적공허함을마주하기보다그공허함을치료하려는행위에집중하는것이다.이런맥락에서현대의나르시시즘은비대한자아에몰두했던고전적의미의나르시시즘과는다른양상을보인다.오히려고통과박탈에의취약성이강해지고,무엇이든가질수있다는공허한약속과그약속을이룰수없는현실간의괴리에갇힌불안정한자아가탄생하게된것이다.하지만사회에서도피한이들이선택한개인주의에는타인과의긍정적관계망이소멸된개인적삶의황폐화만이기다리고있을뿐이다.이는취약성,생존주의등의키워드가대두되는지금한국사회에서도충분히논의될수있는문제의식이다.
래시는날카로운통찰력으로1970년대의미국문화곳곳에깃든나르시시즘의흔적을파헤친다.커트보니것,존바스,도널드바셀미등포스트모더니즘문학부터정치,광고,스포츠와가정교육,자기계발서와경영학등전부열거하기어려울정도로많은분야를아우르면서지금까지어떻게나르시시즘이문화로발전해왔는지를조망한다.때로는포스트모더니즘소설가의메타픽션에서나타나는1인칭고백이타인에게자아를전시하는퍼포먼스가될수있는이유를분석하며,또때로는정치적문제를해결하기보다가짜뉴스와선전으로대중에게표를추수하는당대정치인의행동을비판하기도한다.그뿐만이아니다.프로테스탄트노동윤리의타락,현재지향적쾌락주의로전락한소비문화,진정한자아의성장대신자기홍보를권하는자기계발서의유행,인맥관리로전락한사교의노동화,자녀에게강요하는과잉교육,기술유토피아주의등당대의도덕적인쇠락을짚어내기도한다.여기에덧붙여,개인적관계속에내포한정서적위험등인간관계양상의변화까지매섭게포착한다.
마지막으로래시는1970년대에유행한영지주의와뉴에이지,오컬트.ufo음모론등서브컬처를통해나르시시즘이종교적형태로드러나있다는사실을지적한다.이처럼래시는“조작된환영”으로이루어진만화경같은동시대미국을조망하면서,그너머에공동체와역사성,기성질서,가정이라는안식처의붕괴가깔려있음을포착한다.이붕괴는공적인삶뿐만아니라사적인삶도하나의부조리극으로만든다.그에게“존재의공포에맞서는최선의방어는사랑,노동,가정생활이라는안온한위안”이지만그위안은이제사라지고말았다.
무너진공동체와자립하는법을잊은자아
나르시시즘은과거에서현재까지어떻게이어지고있는가
래시는나르시시즘이탄생한배경으로관료제와,명성을추구하는미디어의발달등을이야기한다.래시가강력하게비판하는관료제는모든것을시스템화할뿐더러각개인이전문가적능력을기르는자립의기회를박탈한다.“전문기술대부분을기업에넘겨준탓에,이제그자신의물질적필요를충족시킬수없다.가족은생산기능뿐만아니라재생산기능도대부분잃었기에,남성과여성모두공인된전문가의도움없이는더이상자녀를키우기어렵다.오랜자조(self-help)의전통이위축되면서일상생활을꾸려나갈능력도한분야씩차례로침식되고,이에따라개인은국가,기업,기타관료조직에의존하게되었다.”
“나르시시스트는때로자신이전능하다는환상을품기도하지만,자존감을확인하려타인에게의존한다.그는자신을우러러보는사람들없이는살수없다.그는가족의유대와제도의제약에서벗어나자유로운듯보이지만,그것이그에게홀로서거나자기의개인성을자랑스럽게뽐낼자유를주진못한다.이러한자유는오히려불안을증폭하는데,이를극복하려면타인의관심속에비친‘과대한자기’를보거나명성·권력·카리스마를발산하는사람들과자신을관련지을수밖에없다.세상은단호한개인주의자에게는자기설계대로만들수있는텅빈황무지이지만,나르시시스트에게는거울이다.”
다만나르시시스트가시대적감수성의희생자이기만한것은아니다.“나르시시스트는내면의온갖고통에도불구하고관료제도에서성공할특성을많이갖추고있다.관료조직은대인관계에서의조종을중시하고,깊은개인적애착의형성을억제하는동시에,나르시시스트의자존감을입증해줄인정을제공한다.나르시시스트는삶에의미를부여하고공허감을극복하기위해치료에의존할수도있지만,직업에서는상당한성공을누리는경우가많다.그에게개인인상관리는매우자연스러운일이고,성과자체보다“눈에띄기”,“기세”,승리한기록을중요하게치는정치조직이나기업조직에서복잡한일을능란하게다루는그의능력은큰도움이된다.“조직인간”이관료적인“게임인간”으로바뀌면서,즉미국기업계의“충성의시대”가“경영성공게임”의시대로바뀌면서,나르시시스트는진가를발휘한다.”오늘날각종SNS와그안에서탄생한인플루언서가만들어낸현상처럼보이는나르시시즘은사실디지털플랫폼이전부터미국문화깊숙이자리잡고있었다.
50년의간극을넘어,지금다시래시를읽어야하는이유
파편화된시대에서삶의의미를되찾는법
우리는이러한래시의문제의식이현대사회의유행에서도반복되고있다는사실을알고있다.그렇기때문에과거의미국이라는낯선사례에도불구하고이런분석에충분히공감하고,이논리를우리의삶에적용할수있다.경험적이고도덕적인준거점,진실의기준이사라져버린지금,이제는진짜삶을되찾아야할때가되었다.공동체와역사적연속성이약화되어점차파편화되는우리사회에서과연어떤방식으로삶의의미를회복할수있는가?《나르시시즘문화》는이질문에대한답이아닌,이를사유할수있게하는가능성을담고있다.50년이라는짧지않은시간적간극을잠시옆으로밀어둔채이책을다시읽어야하는이유도바로여기있다.나르시시즘은결코새로운것이아니다.현대사회의나르시시즘에대해고민해본적있는독자라면여전히유효한질문을던지는이논쟁적인저작에한번도전해보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