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해야백년인생
바로오늘,감정을들여다보는공부가필요한이유
<장자>의‘양생주’편에는이런구절이나온다.‘우리의삶은유한하지만,앎은무한하다.유한한것으로무한한것을좇는것은위태로운일이다.’삶은유한하지만공부해야할것은차고넘친다.놀랍게도춘추전국시대에이미평생을걸쳐다읽을수없는공부가산더미처럼쌓였다.양생의관점에서보자면책과골치아프게씨름하는것보다천수를누리는편안한삶이바람직한것일까.그렇지않다.인간은결국죽는다는두려움으로순간순간을소중하게여겨산다.지식을온전히채운다고우주의섭리까지취할수없다.우주의섭리앞에겸손할것,그래서조금이나마배우기위해노력할것을역설하여강조한것이다.
더욱이혼자있는시간이많아진우리는자신의감정을공부해야한다.인생을살면서많은공부를하는우리에게,분명지식만이앎의전부가아니다.자신의내면을알아야충분한공부다.현대인은하루끝에서오늘을돌아보고마음챙김을하는데열을올리고있다.다이어리를정성스레쓰고,좋은글을필사하며마음을다잡는다.명상을하고사진첩과메모를정리하고따뜻한차한잔으로하루를끝맺는것이다.
그런데내면과감정을돌보는일은왜잠자리에들기전에하는걸까?하루를마무리할때가아닌,하루를시작할때‘오늘하루도잘해보자’고다짐해보면어떨까?이것이바로≪논어로여는아침≫의저자김훈종이내일을기약하지않고,오늘바로“이현재를잘살아보자”며외친까닭이다.
고전苦戰을면치못하는사람들을위한아침고전古典
사람은밤에잠을자면서그날의정보와기억을머릿속에담는다.늦은밤공부는자신이확보한공부시간이많다는생각으로쓸데없는시간만잡아먹기일쑤다.오히려,충분한수면을취해준다음날공부가효율적이다.다시말해,짧은시간동안집중적으로하는아침공부가좋다.
≪논어로여는아침≫은저자김훈종의≪어쩐지고전이읽고싶더라니≫의차기작이다.저자가전작에서요즘시류에맞게고전을개정독해하고의미를풀이하는데집중했다면,이번책에서는감상과사색에방점을두어고전을처음접하는이들도쉽게접근할수있도록했다.아침공부에부담이없도록대중적인눈높이에맞춰간결하게쓴것이다.반면에예스러운문체의위트있는문장만큼은그대로이다.
더나아가,저자본인인생의에피소드와영화,소설을비롯해서양철학과버무려낸동양의정수의맛이한층업그레이드되었다.도장인印으로끝맺는마지막문장으로본문의핵심을짚어주어독자가생각을정리하고자신을돌아보기위한장치를마련해주었다.이모든것은저자의표현을빌려지혜로움과초연함이고픈‘우리네장삼이사들’을살찌워줄것이다.
책속에서
<논어>나<장자>도누군가에겐인생의반려가될수있지않을까.삶의지표가되어주는고전이야말로멋진반려의조건을완벽히갖추고있다.바가지긁는일도없고,술에취해주사를부리지도않으며,뭘사달라고조르거나,하루종일컴퓨터게임을한다고방안에처박혀있지도않는다.그저얼굴을마주하고싶을때면언제든내게웃는낯을보여주고,언제나자신의품안에재미,감동,지혜를감추고있다가보여준다.아무렴!고전이야말로최고의반려가아닌가!
_36쪽(내편이없다고느끼는당신에게)
공자역시‘배우고때때로익히니즐겁지아니한가(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고힘주어말한다.여기서의방점은‘습’에찍힌다.익힐습習을파자하면깃우羽와일백백白이지만,본디처음에는깃우羽와스스로자自인데훗날변형된것이다.알에서깨어난어린새가날갯짓을연습하여스스로날수있게성장한모습에서착안한글자다.
수천번아니수만번의날갯짓을통해앙상하고가녀린날갯죽지가창공을휘젓는튼실한날개로변모하는과정을상상해보라.얼마나많은노력과인내가스며들어있을까.배움에는바로그런‘익힘’의담금질이필요하다.그아름다운성장에는더디지만힘있는발걸음이느껴진다.
_71쪽(풍요롭고안온한삶을원한다면)
나이가들면서행복한이유는삶의덧없음을깨닫기때문이다.비록어린시절처럼굴러가는낙엽을보고꺄르르웃지는못하지만,봄여름가을겨울계절의순환이가져다주는작은변화를감지하고감사해할줄알게된다.봄이면돋아나는새싹에감사하고,여름이면초록잎사귀의싱그러움이고마우며,가을이면새빨간단풍의아름다움에취하고,겨울이면나뭇가지위에쌓인눈송이의순수함에반하게된다.돈이나명예혹은나만이옳다는독선과아집은삶의유한함앞에서,한여름뙤약볕아래아이스크림처럼가뭇없이녹아사라진다.그저자연이선사하는아름다움만이내눈길을사로잡는다.
얼마전라디오생방송에서받은청취자의문자하나가무척이나인상적이어서,휴대전화에적어놓고수시로꺼내본다.
“저는제주에서귤농사를지으며살아요.귤이녹색이면여름이고,녹색에황색이섞이면가을입니다.샛노란귤을보고있노라면겨울이왔음을알수있고,귤꽃향기가코를찌르면,봄이다시돌아왔다는것을알게된답니다.”
_129쪽(오십견이라는스승)
부자삼대가기어렵다는말이있지만,최부자댁은무려열세대에걸쳐가문의부를굳건하게유지했다.굳이비교하자면,피렌체를지배했던메디치가보다도백년이나오랫동안가문의위세를지켜낸것이다.‘최부자댁육훈六訓’에는노블리스오블리주를실천하여,주변어려운이웃을도우라는준엄한명령이드러나있다.
흉년에는굶주린서민들이헐값에전답을내놓을것이니,전답을사들이는행동은곧백성의고혈을빠는것이나다름없다여기고엄격히금지한것이다.당대최고의부잣집에시집온며느리들이니,그마음이얼마나들떴을까.그런며느리들에게도어려운이웃들의고충을알게하려고일부러비단옷을금한것이니,이또한아름다운일이다.소박하지만약자를배려하고자신을돌아보려는깊은뜻이아로새겨진가훈家訓이자가훈佳訓이다.
_139쪽(중용을지키는삶)
떠나야할때와머무를때를스스로결정한다는것은멋진일이다.세상의많은사람들은나아감과물러섬을자신의의지로결정하지못한다.때로는밥벌이의의무감으로떠나지못한채질척거리기도하고,때로는두방망이질하는충동에겨워남아야함에도불구하고자리를박차는경우가허다하다.어쩌면진퇴의서걱거림을감내하는것이야말로우리네삶이견뎌야하는전부일지도모른다.
어느덧희망퇴직이가능한나이에들어서보니,세월의무상함이뼛속까지파고들어시리고아프다.나이를먹는다는것,다시말해인생의황혼에점차가깝게다가가고있다는것을체감하게된다.그러다문득고민한다.어떻게나이를먹어야,멋지게늙어간다고할수있을까.
_176쪽(어찌할수없는진퇴앞에있다면)
창대가정약전에게물고기지식을가르치려바닷가로함께걸어가는장면이있다.시간을쪼개공부하려는창대는걸으면서도<논어>를읊어댄다.“남이나를알아주지않는것을걱정하지말고...”이준익은왜<논어>의수많은가르침가운데,유독이구절을창대의입을빌려관객들에게전했을까.천만영화의감독이자백상예술대상에서영화부문대상트로피를손에거머쥔감독이지만,늘세계의슬픔을위로하고약자의곁에서겠다는다짐은아닐까.비록세상그누구도알아주지않더라도말이다.
_197쪽(어쩌나생긴대로살아야지!)
나는비장애인이다.수십년살아오는동안,나도모르는사이장애인을차별하거나곤란하게했을것이다.나는남성이다.나도모르는사이여성을차별하거나불편하게했을것이다.나는이성애자다.나도모르는사이동성애자를차별하거나소외감을느끼게만들었을지도모른다.나는꼰대다.나도모르는사이청년층을차별하거나배려하지못했을것이다.아니,그렇게했음에틀림없다.
비록인격을도야하지는못했지만,그렇다고내품성이개차반은아니다.내가누군가를차별하거나배려하지못하는잘못을저지르며살아온이유는내가서있는자리때문이었다.두다리로성큼성큼걸어다니는나는,문앞작은방지턱하나가휠체어입장에서는만리장성보다높게느껴진다는사실을모른다.하여내가서있는자리를극복하고나의인격을한단계뛰어넘어누군가를배려하는일은눈속에핀매화처럼드물고귀하다.쇠를달구고,두드리고,때리고,식히고,다시이를반복하는단련의과정이내마음에도필요하다.
_292~293쪽(공감능력이부족한자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