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생 (송동윤 장편소설)

5월 18일생 (송동윤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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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전두환은 죽었지만, 그래도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3번의 죽을 고비, 현장을 직접 목격한 감독의 절규
『5월 18일생』이 50부작 최초 ‘영상소설’로 탄생!

‘나는 5월 18일에 태어났고, 아버지는 행방불명됐다.’로 시작되는 『5월 18일생』은 1980년 5월18일에 태어난 여자와 그녀의 엄마, 그리고 공수부대원이 5·18로 인해 찢겨진 상처를 안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다가 결국은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나 소통하며 치유한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5.18 당시 재수생으로 메일 전남도청 앞에 나가 독제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친 시민군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시신수습도 하고 관을 옮기면서 치열하게 투쟁했다. 공수부대에 붙잡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 작가는 지금 살아있기에 이 글을 쓴다고 했다. 따라서 이 소설에는 실전적인 현장감이 느껴진다. 이 책 『5월 18일생』은 5.18과 광화문광장 촛불을 관통하는 내용으로 증오와 고통과 용서와 사랑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이 소설의 저자 송동윤 감독이 영화 형식을 빌려 50부작 배우들이 열연하는 ‘영상소설’로 재구성해 12월부터 유튜브 〈송동윤tv〉에서 공개한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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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송동윤

저자송동윤은영화감독이자소설가다.『5월18일생』은그의세번째작품이다.
저자의첫번째소설은『흔들리면서,그래도사랑한다』이다.우리의내면에조용히존재하고있는삶의원형을돌아보게만드는작품으로,이첨단의시대에놓치고있는진정성을깨닫기위해서는사랑,믿음,깨달음의의미를체화했을때비로소가능함을말하고있다.
두번째작품인『블랙아이돌스』는출구를잃고방황하는아이들을가두어버리는사회시스템과주류의시선에반항하면서도주류의시선에갇혀스스로를잉여인간으로만들어버리는학교문제를다루고있다.
저자는독일의보훔대학교에서연극영화TV학박사학위를취득하고,한일장신대학교연극영화학교수를지냈다.또한〈서울이보이냐〉〈바다위의피아노〉의각본과연출을맡았으며〈HID북파공작원〉의시나리오작업을했다.저자의영화관련저서로는『송동윤의영화이야기』『영화로치유하기』가있다.
저자는5.18당시재수생으로메일전남도청앞에나가독제타도와민주주의를외친시민군이었다.그는현장에서시신수습도하고관을옮기면서치열하게투쟁했다.공수부대에붙잡혀죽을고비를넘기기도한작가는지금살아있기에이글을쓴다고했다.

목차

5월18일생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분노와고통,증오그리고위로와화해가담긴책
〈5월18일생〉이50부작최초‘영상소설’로탄생!

3번의죽을고비,현장을직접목격한감독의절규와생생한기록

2017년5월18일문재인대통령은단상의여인이울먹이며“때로는이런생각도해봅니다.내가이세상에태어나지만않았더라면아빠엄마는참행복하게살아계셨을텐데,하지만한번도당신을보지못한불효가이제당신보다더커버린아이가되고나서야비로소신을이렇게부를수있게되었습니다.아버지,당신이제게사랑이었음을…사랑합니다.아버지!”아버지를그리며추도사를하자눈물을흘렸고,단에서내려오자뒤따라가한참을안아주면서위로하고자리로돌아가신장면은모든사람들의가슴을뭉클하게했다.
송동윤감독은자신이겪은5.18도청앞광장에서의10일간을이렇게말했다.

“42년이지난지금도그는나에게악몽이었다.그악몽이저세상으로가버렸다.이로써나는악몽으로부터해방되었는가?아니다.오히려더깊어졌다.사죄의말도없이떠난그자리에허망한고통이맴돌았다.다시그날의분노가되살아났다.이제어쩔것인가?
매년5월만돌아오면그랬다.어디선가와∼하는함성과전두환타도를외치는시위대의구호소리가들려오는것만같다.그들이흔들어대는태극기가보리밭같은하늘에펄럭일것만같다.지금도5.18을관통해서살아온사람들에게그는악몽이었다.
나의5.18도다르지않았다.1980년5월18일2시나는광주금남로한일은행앞에서친구를기다리다가갑자기나타난무장한공수부대의무자비한진압에영문도모른채쫓겼다.등뒤로신음과비명이들려왔다.나는혼이나간채로도망치다가셔터가내려지고있는상점안으로몸을날렸다.뒤따라온공수대원의곤봉이내등을후려쳤다.동시에상점의셔터도꽝하고닫쳤다.나는상점주인이가리키는안쪽의마당을지나담을넘고또넘어재래식화장실로뛰어들어갔다.그안에는벌써2명이숨어있었고,우리는어두워질때까지쪼그리고앉아엄습하는공포와전율에몸을덜덜떨면서숨조차제대로쉬지못했다.
그다음날부터계엄군의진압은더잔인해졌다.개머리판을휘두르고대검으로찔렀다.머리가깨지고몸이갈기갈기찢겼다.사상자가늘어났다.하루에도몇번씩헬기가광주하늘을저공비행했다.기총소사라도할것같이위협적으로보였다.오직대학교합격에만관심을쏟았던재수생의눈으로봐도그것은진압이아닌토벌작전이었다.그들은더는내가초등학교시절국군아저씨께로시작되는위문편지를보냈던우리의국군이아니었다.나는시위에참여했다.그렇게서서히내몸은5.18에휩쓸려들어갔다.
그날이왔다.5월21일이었다.시위의흐름이바뀐날이었다.광주시민들이공수부대를몰아내자며도청으로몰려나왔다.버스들도시위에참여해금남로에줄지어섰다.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끌고온장갑차가그선두에자리했다.나는장갑차바로뒤에있었다.계엄군은물러가라는시위대의외침이도청광장을뒤흔들었다.그러나도청건물앞에주둔해있던계엄군은꼼짝도하지않았다.1시경이었다.갑자기애국가가흘러나오고,시위대를향해총을겨누고있던공수부대가집단발포를시작했다.콩볶듯총소리와함께나는골목으로뛰어갔다.바로내옆있던내또래의청년은총을맞고쓰러졌다.피흘리며죽어가는모습이처절했다.내머릿속에들어있는조국대한민국이그의미를상실하는순간이었다.
이제두려움과공포는사라지고그자리에분노가들어섰다.시민들이하나같이그랬다.이대로앉아서죽을수는없다며무장하기시작했다.시민군이등장한것이다.그날저녁에도청앞공수부대는더는버티지못하고시외곽으로철수했다.그와동시에광주는포위되어봉쇄되었다.그러나시민군의수중에들어온광주는해방광주가되었다.
나는날마다도청으로나가내가할수있는일을했다.상무관에안치된시신을운구하거나태극기로덮여있는관을정리하고,도청상황실에서발표하는그날그날의사망자와실종자명단을벽에붙이거나시민들에게나눠주었다.그러던중에소식을들었다.영광에계신부모님은내가죽었다고잘못알고관까지준비했다는것이다.그런이유도있었지만……솔직히는그랬다.항쟁기간이길어지면서서서히나는두려움속으로빠져들고있었다.계엄군이내일이나모레쳐들어온다는흉흉한소문까지돌았다.계엄군의심리전이었다,그것은언제어디서내가나도모르게총에맞아죽을지도모른다는공포로다가왔다.나는날짜를잡아광주를탈출하기로했다.26일새벽에출발했다.포위망을뚫고화순을거쳐,지금은광주시에편입된송정리에있는고모집으로갔다.종일걸어서밤에도착했다.살아있다는안도감보다는불길한예감으로잠을이룰수가없었다.뒤척이다가,집위로지나가는헬기의굉음을들었다.고모집은비행장근처였다.가슴이뛰고……손이떨렸다.숨을쉴수가없었다.눈물이났다.그날이5월27일새벽이었다.계엄군은탱크를앞세우고광주시내로진입했고,총격전끝에도청을함락시켰다.
지식인들은침묵했고,정치인들은비겁했다.어디로숨었는지그들은그곳에없었다.시작부터마지막도청까지총을들고결사항전한이들은잡초처럼살아온구두닦이신문팔이노동자등의하류인생들이었다.역사가그랬다.임진란때선조가저먼저살겠다고도망쳐도그들은그자리에서나라를지켰다.
나는부모님이계신영광에내려갈수가없었다.도망쳐나온자의때늦은후회였다.알량한양심의가책이었다.5월28일,나는다시광주로갔다.절망과패배의그림자가무겁게드리워진거리의관공서마다계엄군이완전무장한채로서있었다.
그당시에나는증심사가는길목산밑의집에서하숙하고있었다.사람들은그곳을영천별장이라불렀다.그날5월28일오후에나는개울옆의밭길을걸어서하숙집으로올라가고있었다.그때갑자기섬뜩한소리가들려왔다.“손들어!움직이면쏜다!”머리끝이곤두섰다.나는소리나는쪽을바라보았다.산속에매복해있던군인들이나에게총을겨누고있었다.순간내머릿속에는수만가지생각이스쳤다.“어쩌지?도망갈까?개울로뛰어내려숨을까?아니면손을들까?내가도망가면방아쇠를당기겠지?”아무리궁리해봐도뾰족한수가없었다.어떻게해도죽은목숨이었다.나는그쪽으로몸을틀고두손을번쩍들었다.그러자군인한명이올라오라는손짓을했다.나는그들에게후다닥뛰어갔다.그래야만내가살것같았다.거친숨을몰아쉬며그들앞에섰다.내가차려자세를하기도전에느닷없이군홧발이날아왔고,나는뒤로나가떨어졌다.그들은이런빨갱이새끼들때문에나라가망한다며개머리판으로내가슴을내리쳤다.맞으면서도반발심이솟구쳤다.“내가빨갱이라니…….”
찰나의순간이었지만,초등학교시절크레파스로반공포스터를그렸던미술시간이떠올랐다.늑대를빨강으로색칠하고마지막으로써넣는문구는“때려잡자공산당!”이었다.학교를오가면서불렀던노래는월남전군가‘맹호부대용사들아’였다.이른아침에산속에서이슬을털며내려오는사람만봐도간첩이아닌가하고의심부터하는,누가뭐래도우리세대는공산당을바퀴벌레만큼이나싫어했던반공의전사들이었다.나보다두세살더많아보이는그들도나처럼초등학교시절부터반공교육을받았을것이다.그런데,우리는같은편인데,내가그들에게빨갱이로몰려죽어야한다니……기가막혔다.억울하고분했다.
폭행이계속되면서내의식은점점희미해져갔다.그때저멀리하숙집아주머니가밭길을걸어가고있었다.그절체절명의순간에나는어둠속의빛을본것이다.내가살수있는마지막기회였다.나는있는힘을다해목이터지라고아주머니를불렀다.아주머니가나를알아봤는지부리나케올라왔다.그리고내앞을가로막고서서군인들을설득하며나무랐다.공부만하는순진한학생에게이게무슨짓이냐고.그렇게나는아주머니의보증덕분에죽음의문턱에서살아났다.나중에들은얘기지만,그곳에주둔했던군인들은빨래나음식등아주머니의도움을많이받았다고한다.
그후로나의방황은시작되었다.1980년그해겨울에예비고사(지금의수능)를보고대학에합격했지만3개월만에자퇴하고산속암자로들어갔다.세상과단절하기위해서였다.그러나대학을그만뒀기때문에학변자로취급돼곧바로영장이나왔고,자퇴한지5개월만인10월에군에입대했다.논산훈련소에서헌병으로차출돼성남에있는행정학교에서8주헌병교육을받고수도경비사령부(지금의수도방위사령부)에서30개월복무를했다.그때의대통령은전두환이었다.그는나에게광주학살의원흉이었다.원한을사면언젠가는외나무다리에서만나다고했던가.수경사헌병단의임무가검문소파견근무와대통령경호도포함돼있었다.
한강다리에있는검문소에서의일이었다.나는1년에한두번파견나갔었다,보통탄창3개에실탄45발을가지고근무했다.아주가끔VIP가다리를지나갔다.그때마다검문소에비상이걸렸고,초소장은검문소에있는모든헌병의소총에서공이를빼내어철제함에넣고봉인하였다.지은죄가커서였을까.그VIP는자기부대도믿지않았다.
VIP경호를할때도마찬가지였다.30개월근무하는동안서너번은VIP원거리경호를나갔었다.그때마다1980년5월21일도청앞집단발포가악몽으로되살아나면서그어떤충동을느꼈다.그러나나는공이가없는M16소총을들고멀리있는그VIP를그냥바라볼수밖에없었다.그런데,총이온전했고탄창에실탄이들어있었다면정말내가그를향해방아쇠를당길수있었을까?
1985년5월에제대했다.고등학교선생님으로계신아버지의바람을배신할수가없어서나는다시예비고사를보고대학에입학했다.그러나5학기만에자퇴했다.여전히5.18에갇혀살아남은자로서의좌절감은계속됐고,1987년가을에도피하듯독일로유학을떠났다.그나라의낯선도시에서는내가할수있는것이공부밖에없었다.
지금생각해보면그렇다는것이다.나는한번도그증상으로병원에간적이없었다.내가스스로진단해서이런병이구나의심만할뿐이었다,그것은외상후스트레스장애였다.어쨌든독일은나에게기회와희망을줬다.나는나자신을치유해가면서공부에전념했다.그리하여보훔대학교에서7년만에연극영화로학사석사박사학위를취득했고,1995년여름에귀국했다.2년동안5.18과관련된시민운동을하다가그한계를깨달을즈음대학으로갔다.10여년동안연극영화과교수로재직하면서영화감독으로도데뷔하였다.
‘광주사태’는정치군인들과그들의비위를맞추었던자들이붙여준이름이었다.그러나역사는진즉에5.18을폭도들이나불순분자들이체제를전복시키기위해일으킨사태가아닌보통사람들이살기위해더나아가내가족과내이웃을지키기위해싸울수밖에없었던항쟁으로규정했다.그동안군사정권의독한탄압과그후들어선민주정권의의지부족의방관적태도속에서도시,소설,가요,연극영화등의예술분야가금기를깨고광주의진실을알리는데선봉에나섰다.
1995년독일에서귀국한이후로지금까지나는내위치에서내가할수있는시민운동과강연,출판과기고등을통해5.18정신과진실을알리는데미력하나마힘을쏟아왔다.최근에는5.18관련소설〈5월18일생〉을출판했고,지금은그소설을원작으로영화와드라마,영상소설을제작하고있다.
〈오징어게임〉에서보듯이영상의힘은압도적이다.제작자로서그런기대가없다면거짓말이다.영상소설〈5월18일생〉은5월18일에태어난여자와그여자의어머니,그리고그여자의아버지를죽인공수대원,이들세사람이각자의방식으로처절하게살아가다가,38년이지난2017년에가서야용서와화해를말한다는내용이다.전두환은떠났지만,5.18은끝나지않았다.여전히악몽이계속되고있다.나는이영상소설을통해광주의아픔과진실을알리고5.18정신을우리모두의정신으로승화시키는일을하려고한다.”고했다.

송동윤감독은금남로5.18광장에서의10일간의시간과밑바닥인생의역경이얼마나치열했는가에대한이야기는다음으로미룬다면서‘영상소설“을기회로42년묻어둔응어리를이정도라도털어놓게되어무척고맙게생각한다고했다
따라서그는그당시,재수생으로시민군이었던작가는공수부대에잡혀죽을고비를3번씩이나넘기고심한트라우마를겪기도했지만,독일유학에서독하게공부해연극영화TV학박사를받았다.5.18을처절하게앓고트라우마를공부로극복한저자는이소설을원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