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 피로 쓴 7년의 지옥

징비록 : 피로 쓴 7년의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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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치욕의 역사는 반복된다!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였지만 조선에서는 잊혀진 책!!
죽은 사람의 뼈까지 갈아마시게 한 7년 전쟁은 지옥이었다
오늘 이 시대에 필요한 반면교사, 류성룡의 『징비록』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책이다. 과연 우리는 지금 징비하고 있는가? 이 책을 쓴 류성룡은 임진왜란을 진두지휘한 선조 시대 최고의 재상으로, 그를 빼놓고는 임진왜란을 이야기할 수 없다. 이순신을 발탁하여 임진왜란을 진두지휘하여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욕을 채우기 위해 당쟁을 벌이는 대신들과, 권력을 지키고자 일생 동안 신하들을 이용하고 백성에게 고난을 준 선조가 나라를 이끌던 이때에 류성룡과 이순신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사실은 가히 천운이라 할 수밖에 없다.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설민석은 『징비록』을 “임진왜란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조선, 그 역사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이 시대에 필요한 반면교사가 되어줄 책”이라면서 “임진왜란의 중심에서 모든 보고를 받고 훤히 들여다 본 재상 류성룡이 ‘다시는 이런 일이 이 땅에 일어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기록한 것’이다. 특히, 조선은 200년간 지속된 평화 때문에, 온 나라 백성이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었고, 전쟁이 날 것이라는 위기감이 없었기에 일본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무탈’하게 살라는 말은 악담이라 생각한다. 잦은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한다. 위기를 고통스럽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징비록』을 통해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남자 의병 못지않게 여자 의병들의 활약도 있었을 텐데 그 기록이 없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또 “다시 한 번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통 받은 여성의병들에게 감사와 추모의 마음을 이 자리를 빌어 전하고 싶다”고 했다.

『징비록』은 두 차례의 왜란을 진두지휘하며 나라가 몰락해 가는 과정과 백성들의 고통을 지켜봐야 했던 류성룡이 낙향한 뒤에 기록한 내용이다. 류성룡은 왜란 당시를 객관적으로 기록하여 후대인들이 같은 잘못을 선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 책은 청렴함으로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며 전쟁을 진두지휘한 류성룡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류성룡은 어떤 인물인가’를 통해 설명하고, 또 ‘징비록은 어떤 책인가’와 ‘류성룡의 자서’를 통해 당시의 역사와 류성룡이 글을 남긴 목적을 상세히 설명해 놓았다. 이어 『징비록』과 『녹후잡기』 본문을 싣고, 마지막에 조선시대의 관직과 관청을 정리해 이해가 쉽도록 했다. 왜란을 이겨 낸 걸출한 두 인물 가운데 재상 류성룡은 이제야 빛을 보고 있다. 전체 그림을 보며 나라를 이끌어 가야 하는 수장의 역할이 얼마만큼 중요한지에 대한 우리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까닭이라 생각한다.

저자

류성룡

임진왜란당시군사와외교에서핵심업무를맡았던문신이다.1542년경상도의성에서황해도관찰사유중영의아들로태어나16세에향시에급제했다.청년기에는퇴계이황의문하에서공부했고스물다섯에문과에급제한뒤중요한관직을두루거쳤다.임진왜란이일어났을때에는좌의정과병조판서를겸하고있었으며다시도체찰사에임명되어군사와국방외교에서막중한임무를맡았다.임금의피난,명나라구원병교섭,평양과서울탈환,권율과이순신의발탁,군사력을강화하는일들에서큰공을세워전쟁중에다시영의정에오르지만,정유재란이후반대파의탄핵을받아관직에서쫓겨난다.그뒤에는오로지글쓰기에만몰두했다.1607년66세를일기로세상을떠났으며,호는서애西厓이고시호는문충文忠이다.

저서로『징비록懲毖錄』『서애집西厓集』『난후잡록亂後雜錄』『신종록愼終錄』『영모록永慕錄』『관화록觀化錄』『운암잡기雲巖雜記』등이있다.

목차

책머리에:오늘에필요한반면교사,류성룡의『징비록』

류성룡은어떤인물인가
류성룡의일생
전란직후부터막바지까지
이순신의성정그리고류성룡과의인연
전란중나온류성룡의혁신적인제안들
류성룡의성장기와정치적입지
징비록을저술한그의말년과학문세계
류성룡과선조의관계
징비록은어떤책인가
지난일을징계하며뒷일을삼가다
재상류성룡의참회록
징비록의생생한사실기록
징비록의간행역사
징비록이후대에주는메시지
이글에덧붙이는말

징비록자서

징비록제1권
01일본국사다치바나야스히로다녀가다
02일본국사요시토시등이오다
03우리통신사황윤길등이일본에다녀오다
04명나라를치겠다는일본국서가말썽이되다
05다급한군비(軍備)
06이순신의발탁
07신립장군의사람됨
08임진왜란이일어나다
09영남여러성의함락
10급보가연잇고,신립등이달려내려가다
11김성일의논죄문제
12김늑의민심수습
13상주싸움에서이일이패주하다
14서울의수비와파천문제
15신립이충주에서크게패하다
16임금이서울을떠나피란길에오르다
17왜적이서울에들어오고임금은평양에도착하다
18삼도군(三道軍)이용인싸움에서무너지다
19신각의승리와억울한죽음
20임진강방어선이무너지다
21왜적이함경도로들어오고두왕자가잡히다
22이일이평양으로쫓겨오다
23명나라사자가오고,평양성수비가논란되다
24임금이평양성을떠나다
25왜적이평양성에들어오다
26임금은정주·선천으로향하고민심도어지러워지다
27임금이의주에이르고,명나라구원병을오게하다
28명나라구원병5천명이먼저달려오다
29명나라구원병이평양성을치다가실패하다
30이순신이거북선으로왜적을격파하다
31조호익의충의
32전주방어전과의병정담등의용맹함
33평양성을공격해보다
34명나라심유경의강화회담
35경기감사심대의죽음
36원호가왜적을쳐부수다
37권응수등이영천을수복하다
38박진이경주를수복하다
39의병이일어나서왜적을무찌르다
40이일이순변사가되다
41왜적의첩자김순량등을잡아죽이다

징비록제2권
42평양성을수복하다
43이일대신이빈을순변사로임명하다
44명나라군사가벽제싸움에지고개성으로물러서다
45권율의행주대첩
46굶주리는백성을구제하다
47심유경의적극강화책
48서울이수복되다
49왜적이바닷가에진을치고진주성을함락하다
50임금이서울로돌아오고사신들이일본에왕래하다
51이순신을하옥시키다
52명나라군사의도움을받다
53원균이패하여한산도수군이무너지다
54황석산성이함락되다
55이순신을다시삼도수군통제사로삼다
56왜적이남원성을함락시키다
57이순신이진도벽파정에서왜적을쳐부수다
58왜적이남쪽으로물러가다
59명나라장수들의전황
60최후의결전
61이순신의인품
62군신(軍神)이순신의계엄

녹후잡기(錄後雜記)
01임진왜란의조짐
02괴이한일들
03왜적의간사하고교묘한꾀
04지세이용이승패를좌우한다
05성을굳게지키는묘법
06진주성포루의역사(役事)문제
07왜적을막아낼방도를강구하다
08임진강에부교를가설하다
09훈련도독을설치하다
10심유경에관한이런일저런일

출판사 서평

이순신이없었다면전쟁에패했을것이고
류성룡이없었다면나라가망했을것이다

‘책읽어드립니다’에서소설가장강명은“『징비록』은정작일본에서는『조선징비록』이라는이름으로번역되어그시대에베스트셀러였다고하는데,국내에서는2000년대이전까지는잊혀진책이었다는사실에안타까움을드러냈다.또한김상욱교수는“도로도없고,교통수단도없었는데일본군이부산에서한양까지20일만에진격했다.백성들이얼마나무서웠을까”라고당시의두려움을가늠하며“니체의말처럼,『징비록』은피로쓰인책이다.단순히읽기를바라기보다한자한자,기억되길바란책이지않을까생각한다.”고했다.?

군사일을봄놀이하듯한다면어찌패하지않겠는가?
나라를이끌어가는수장의중요성과사람을어떻게써야하는가를일깨워주는책

『징비록』본문을보면알겠지만순식간에나라가부수어지고,임금은살기위해도망가굴욕적으로무릎꿇고,백성들은잔혹한죽음을당하고굶주림을참다못해육신을목구멍으로넣는일까지발생한다.류성룡은이모든것을지켜보았다.돌이키지못할비극이발생했을때단지‘참담하다’‘분노를참을수없다’라고심정을밝히는일이무슨의미가있을까.
위엄있는군주가아닌불안에벌벌떨며자리에연연하는왕,역시자기이익을채우는길이어디인가를따라가는관료들,방위사업을귀찮아하는백성들의삼박자가맞아떨어진결과였으나,그럼에도비극의가장큰책임은최고결정권자인수장의몫일수밖에없다.
류성룡이『징비록』을기록한연유는과거를회한하며죄책감을덜고자함도아니고,다른누군가를탓하고자함도아니었다.류성룡이지은제목그대로비극이일어날수밖에없었던과정을징계하며앞날을도모하려는데그목적이있다.
외침의역사는비단임진왜란뿐만이아니나정치,경제,군사의중책을맡아나라의요직에앉았던인물이풍부한사료를바탕으로사실을객관적으로기록하였다는점에『징비록』의가치가있다.류성룡은왜란이일어난원인과전쟁의실황,군사기무의정리,여러사건의논평등을기록하여국난을극복한역사적사실을생생하게남겨놓았고,거기에더해당대의정치·경제·사회·문화등의문물제도까지연구할수있는귀중한문헌을남겼다.하나더덧붙이자면전란발발이후7년간의기승전결과,그안에서오간대화의기록들은전쟁문학의고전으로서도중요한가치를갖는다.

하늘이낸큰인물에게주어지는신묘함과그책임
전란발발이전류성룡이불길하게느낀조짐들은한둘이아니다.아무리첨단을달리는지금의시대라도무시하지못할그리고무시해서는안될자연적암시는존재한다.그처럼류성룡은하늘의기미들과세간에서드러나는기미들을보고느꼈다.
그중하나는류성룡이임진왜란발발1년전에꾼꿈이다.경복궁연추문에불이나그가주변을서성거리는데누군가가나타나“다시지을때는조금높여인근산에가까운높이로해야한다”라고말해준것이다.땀을뻘뻘흘리며깨어난류성룡은이불길한꿈이야기를차마아무에게도하지못하다가임진년에왜적이쳐들어온뒤에야가까운사람들에게이야기하였다.
실제로경복궁·창덕궁·창경궁세궁궐이모두불에타잿더미가되고,그리하여임금이피란하고,백성들은처참히목숨을잃어대부분의사람들이나라가다시회복되기어렵다고여기며자포자기하자,류성룡은지난꿈을언급하며“꿈속에서궁궐의고쳐지을일을의논하였으니반드시나라가회복되리라는뜻이다”라고말한것이다.류성룡은평생토록꾼꿈중에징후를경험한바가많았음을스스로밝힌사실이있다.
『징비록』본문에나와있듯이전쟁이터지기전류성룡을불길하게만든일들은여럿이고현실은이미끝나버린듯비참했지만,그날의꿈은분명류성룡이희망을버리지않고현실을기어이헤쳐낼수있게한중요한의미가되었을것이다.그리고류성룡의해석처럼왜적은결국물러갔다.비록긴시간이걸리긴했지만말이다.

나라의패망으로가는이런일저런일
우리나라는태평한세월이백년동안이나계속되다보니전쟁을알지못하다가,갑자기왜적이쳐들어오자어찌할바를모르고우왕좌왕하는와중에온국토가넋을잃고말았다.왜적은파죽지세로불과열흘만에서울까지들이닥쳐서,아무리지혜로운사람이라해도전략을도모할수가없었고,용감한사람도과감한결단을내릴수가없었다.민심또한무너져수습할길이없었으니서울을빼앗는교묘한계책이달리필요치않았다.
한심한일은여기에서그치지않는다.용궁현감우복룡이란자는자기고을군사를거느리고병영으로가다가방어사에예속된군사수백명이말에서내리지않고그앞을지나간단이유로모두죽여버렸고,순찰사김수는이행동에공이있다고임금에게알려서승진되도록하였다.파벌싸움에몰두하였던지사신잡은나라를잃고임금이피란해야하는상황에서나라를수복할계책을말하는것이아니라“임금께서는마땅히영변으로떠나셔야합니다.그곳에서가장조심해야할것은간장이없는것이옵니다”라는실소조차나오지않는말을하였다.
안타까운죽음도있다.평복으로바꿔입고도망다니는다른관원들과달리,경기감사심대는위험한곳을피하지않고왜적이알도록먼저공문을띄워알렸으며내응할사람도모집하였다.그러다첩자의말을진짜로믿고왜적에게죽임을당하고만다.
참혹함을겪은부끄러운우리의지난날을현실에결부시켜다시살피면서,앞날을바로잡는일이올바른도리라고생각한다면이책을꼭한번읽기를권한다.

“근심하고두려워하던마음이조금진정된뒤에지난일을생각하면황송하고부끄러워차마고개를들수없다.비록볼만한내용은없지만이로서나마간절하게충성을바치려는나의뜻을보이고또못난신하가나라의은혜에아무것도보답하지못한죄를드러내고자한다.”_서애유성룡


책속에서

1591년(선조24)겨울에류성룡이꿈을꾸었다.경복궁연추문에불이나류성룡이그주변을서성거리는꿈이었다.그때누군가가류성룡에게말하였다.
“이궁궐은처음자리를고를때에너무낮은지대를정했습니다.다시지을때는조금높여인근산에가까운높이로해야할것이오.”
땀을뻘뻘흘리며깨어난류성룡은차마이불길한꿈이야기를아무에게도할수가없었다.이듬해인임진년에왜적이쳐들어와임금이피란하고,경복궁·창덕궁·창경궁세궁궐이모두불에타잿더미가되었으며,백성들은처참히목숨을잃었다.이에대부분의사람들은나라가다시회복되기어렵다고여기며자포자기하였다.류성룡은그제야가까운사람들에게지난꿈얘기를하며말하였다.
-15쪽‘류성룡의일생’중에서

도요토미히데요시의얼굴은작고누추하고낯빛은거무스름했으며,보통사람과다른의표는없으나다만눈빛은번쩍거려사람을꿰뚫는듯느껴졌다고한다.그는삼중석(三重席)을만들어남쪽을향하여앉았고,사모(紗帽)를쓰고검은도포를입었다.옆에는신하들몇이벌여앉았다가우리사신을안내하여자리를정해앉게하였다.
자리에는아무런연회기구가준비되어있지않았고,방가운데탁자하나가놓였는데거기에떡한그릇이놓여있었으며,질그릇사발에서따르는술역시탁주였다.그예가극히간단하여두어번술잔을돌리면그만이었고,절하고읍(揖)하는절차가없었다.
히데요시는잠시앉았다갑자기일어나서안으로들어갔는데자리에앉아있던사람들은하나도움직이지않았다.
-88쪽‘우리통신사황윤길등이일본에다녀오다’중에서

임금께서평양성을나온뒤로는인심이흉흉해졌다.지나는곳마다난민들이창고로들어가곡물을약탈하는일이빈번하여순안,숙천,안주,영변,박천의창고가차례로털렸다.
임금께서가산을출발하는날에가산군수심신겸(沈信謙)이나에게말하였다.
“이고을에는양곡이자못넉넉하고관청에도백미1천석이있습니다.이것으로명나라군사를먹이려했던것인데불행히도일이이지경에이르렀습니다.공께서조금만이라도머물러민심을진정시킨다면고을사람들이감히움직이지못할것이나,그렇지않다면난동이일어날것입니다.그렇게되면소인도여기에머무를수가없고부득이해변을향해몸을피하는수밖에없습니다.”
심신겸은이미부하들에게명령할수가없는상황이었다.
-167쪽‘임금은정주·선천으로향하고민심도어지러워지다’중에서

이보다먼저원균은이순신이와서자기를구원해준일을은덕으로여겨서로사이가매우좋았으나,얼마안가공을다투게되면서점차어울리지않게되었다.원균은성품이음험하고간사하여안팎의인사들과많이접촉하면서이순신을모함하였다.
“이순신이애초에는우리를구하러오지않았소.그런것을내가여러번청하여부득이왔으니,적을이긴공은내가으뜸을차지할것이오.”
조정의의논도두갈래로나뉘어있었다.이순신을추천한사람이나였기때문에나와사이가나쁜사람들은원균의편을강력히들었다.오직우상이원익만이잘못을밝히며그들의의견에반대했다.
-253쪽‘이순신을하옥시키다’중에서

“이순신은과연훌륭한장수로다.”
진린또한마음속으로진정흡족해하였다.
오래지않아왜적의배가가까운섬을침범하므로,이순신은군사를파견하여이를쳐부수고,적의머리40급을베어모두진린에게주며그의공으로돌렸다.진린은뜻밖에후한대접을받자더욱기뻐하였다.이로부터무슨일이든일체이순신에게물어서처결하였으며,밖으로나갈때면이순신과가마를나란히하고감히먼저나가지않았다.이순신은드디어진린과약속하여명나라군사와우리군사를구별함없이백성에게누를끼치는자가있으면잡아다가매로다스리기로했다.이로부터그명령을어기는병사가없어섬안에질서가섰다.
진린은임금에게글을올렸다.
‘통제사는온천하를다스릴만한재주와나라의어려움을이긴공이있습니다.’
이는진린이마음으로감복한까닭이었다.
-253쪽‘이순신이진도벽파정에서왜적을쳐부수다’중에서

이순신은명나라장수진린과함께바다의어귀를끼고가까이쳐들어가니,왜적의장수고니시유키나가는사천에있는적장시마즈요시히로에게구원을요청하였다.수로로와서합세하는시마즈요시히로를이순신이나아가공격하여적선200여척을불태우고,왜적을헤아릴수없이많이죽였다.아군은도망하는왜적을남해의노량까지추격하였다.이순신은몸소빗발치는시석(矢石)을무릅쓰고힘을다하여싸우던중날아오는총알이가슴을관통하고등뒤로빠져나갔다.이에좌우에모시던사람들이부축하여장막안으로들어가니이순신은가만히말하였다.
“바야흐로싸움이급한때이니내가죽은사실을알리지말라.”
그는곧숨을거두었다.
-277쪽‘최후의결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