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 (노천명 소설집)

우장 (노천명 소설집)

$15.11
Description
최초로 출판되는 노천명 소설
한국 현대시의 가장 아픈 상처 노천명 문학의 종결판!!

국립도서관 보존문서/일제강점기 신문잡지에 묻혀 있었던
노천명 소설과 수필, 시 민윤기 시인이 대대적 발굴해 수록!

“작품 속에는 연둣빛 수채화 같은 은은한 삶의 향기가 풍긴다”_시인 정지용

“올해 소설을 하나 써보려고 했던 것이 은근히 내가 벼르고 있던 계획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이 하고 싶은 일은 날마다 쫓기는 일에 무참히도 고개조차 들어보지 못한 채 이 해를 보내게 되었다. 소설을 쓰려는 의도는 내가 시를 쓰는 일에 하등 지장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손도 대지 못한 광우리 속의 숱한 일감 중에서 일감을 잡을 여유가 생긴다면 제일 먼저 집어 들고 싶은 일거리가 소설을 쓰는 일이다.”
이 글은 노천명 시인이 죽기 한 해 전인 1956년 12월 31일자 조선일보에 「올해 못한 일」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수필의 일부이다. 그만큼 노천명 시인은 평생 소설을 쓰고 싶어 했던 것이다.
노천명이 발표한 소설은 여덟 편이다. 이미 나와 있는 노천명 작품에 수록이 되어 알려진 소설은 여섯 편인데 이번에 노천명 전집 종결판을 기획하면서 새로 찾아낸 명품소설 두 편을 추가해 최초로 출간되는 노천명 소설을 단행본으로 엮어 발행했다.
저자

노천명

1912년황해도장연군순택면비석포리에서태어나1957년재생불능성빈혈(백혈병)로세상을떠난시인이자수필가이다.진명여고보와이화여전영문과(8회)를졸업한후조선중앙일보,조선일보사‘여성’편집부,매일신보학예부기자를거쳐,해방이되자서울신문,부녀신문등에서총13년간근무했고한국전쟁이후에는중앙방송국에서근무했다.생전에시집『산호림』『창변』『별을쳐다보며』를출간했고,사후에나온유고시집『사슴의노래』가있다.수필집『산딸기』『나의생활백서』『여성서간문독본』등생전에3권을출간했다.노천명은생애두번이루지못한사랑으로상처입고,일제강점기와한국전쟁을겪어내면서역사의소용돌이에휘둘려,씻을수없는행적으로고고한‘사슴’시인의이미지를지키지못했다.

목차

들어가는말|만년에는시보다소설을쓰고싶어했다
일러두기

1.단편소설
사월이
우장雨葬
오산誤算이었다
외로운사람들
결혼전후
하숙
일편단심
닭쫓던개

2.인물평전
인간월탄月灘
전원시인김상용
팔로군에종군했던김명시여장군의반생기
샘골의천사최용신양의반생半生
오월의여왕

3.문학론
시詩의소재에관하여
문학의처녀지處女地로
시詩와난해성難解性
익명匿名비평의유행에대하여
우리예술확립에로매진하자
한하운시집『보리피리』서평
의제좌익擬制左翼

4.일기
일기
병상일기

부록
노천명생애(1912-1957)
노천명의생애흔적을찾아서

출판사 서평

노천명시인은평생소설을쓰고싶어했다
어느이름없는여인이되고자했던사슴의여인
찬사와비난을동시에받았던암흑시대의희생자

여기에수록된8편의소설은노천명시인이그당시신문잡지에기고했던작품들이다.보물같은이소설들은보존문서속에파묻혀잊혀질뻔한작품들을시인이자문학평론가인민윤기회장의노력으로찾아내정리하여공개하게되었다.
이책의제목이기도한「우장雨葬」의작품성은한국현대문학을대표하는명작으로손꼽히는이효석의「메밀꽃필무렵」에필적하는향토성짙은뛰어난소설로도평가하고있다.

노천명이사랑했던세명의남자
남자들에게까칠하게대했던노천명도여자였다.1938년스물일곱의노천명은문인들이출연하는연극무대에서게된다.이해에그는최정희가사표를냄으로써공석이된조선일보발행월간잡지‘여성’에서근무한다.이무렵극예술연구회에참여,러시아의극작가안톤체호프의〈앵화원櫻花園,벚꽃동산〉에서모윤숙이맡은라네프스카야부인의딸아냐역을맡아연극무대에섰다.이날무대에서노천명이열연하는모습을지켜보던보성전문경제학과교수김광진(1902~1986)은그만노천명에게반하게된다.김광진은연극이끝나자노천명에게꽃다발을전했고이것이인연이되었다.노천명은시인김기림의구애도칼같이거절했을만큼까칠하고도도한성격의소유자였으나의외로김광진의구애에는흔쾌히마음을열었다.처음만난두사람은이내사랑에빠져결혼까지약속했으나안타깝게도김광진에게는이미아내가있었다.
김광진은노천명에게,아내와이혼하겠다고약속하였다.그러나김광진은노천명에게돌아오지않았다.
이런상처를입었는데도노천명은다시두번째사랑을하게된다.어느파티에서이성실이라는남자를만난다.이성실은1930년대에큰인기를얻었던‘고향의하늘’‘울지는않아요’‘방랑자의노래’등을작곡한작곡가겸가수였다.파티가끝나고나오는데비가내리기시작했다.마침우산을가지고있던이성실은노천명과같이우산을쓰고비를피하면서많은대화를나누었다.
이날이후로두사람은자주만나기시작한다.하지만어쩌랴.이성실역시유부남이었다.김광진처럼이성실도아내가있다는사실을알게된노천명은두번다시같은실수를반복하지않기위해눈물을머금고이별을선택한다.
그무렵노천명은안국동에살던집을언니에게내주고누하동에집을사기전이어서옥인동에사는김수임(1911~1950)의집에기거하고있었다.잘알려진것처럼김수임은일제강점기와군정시대의공산주의자이며간첩혐의로사형당한여성이다.그런데김수임은노천명이평양에서김광진과만날때함께자주어울린사람중한명이다.아무튼노천명을잊지못한이성실은밤이면밤마다옥인동김수임의집에찾아와노천명을만나려했으나끝내노천명은만나주지않았다.
그리고세번째사랑의주인공은(이것은필자의추측이기는하지만)그유명한시인백석(1912∼1996)이다.이화여전동기인모윤숙과선배기자이자친구였던최정희,동료기자이선희와함께백석을자주만났다.이네사람은입을모아백석을‘사슴’이라고불렀다.잘생기고,잘배우고,유능한백석에게반하지않을리가없었다.그래서항간에는노천명의대표작으로평가되는시「사슴」은백석을위한것이라는평판도있었다.백석이근무했던영생고보1939년졸업생인김희모씨는이렇게증언하고있다.
“백석선생님은너무도잘생긴모습에반할정도였다.머리는올백을하고연회색의산뜻한양복을입은모습이었다.당시에학교선생들은사회의지도층인사였기때문에존경을받았지만,나이어린백석선생님은시인으로,그리고그외모로더욱유명했다.”
이렇듯백석은여성들로부터많은인기를받았다.당시모윤숙은백석을이상형으로생각한다고했고,노천명역시그를바람직한시인의모델이면서자신의이상형으로생각했다고말한적이있다.

모가지가길어서슬픈짐승이여
언제나점잖은편말이없구나
관이향기로운너는
무척높은족속이었나보다
물속의제그림자를들여다보고
잃었던전설을생각해내고는
어찌할수없는향수에
슬픈모가지를하고먼데산을바라본다
-노천명의시「사슴」전문,1938

우정을나누웠던문인들의모임
조선후기의뛰어난학자이며개혁가인다산정약용에게는시詩짓기모임‘죽란시사竹欄詩社’가있었다.그는자신의친한친구들을집으로초대하여시짓기모임을가지곤하였는데,모이는날짜가매우시적이었다.그들은‘살구꽃이처음피면모이고/복숭화꽃이처음피면모이고/한여름참외가익으면모이고/초가을서늘할때서지(西池,서대문밖에있던연못)에서연꽃구경을위해모이고/국화가피면모이고/겨울철큰눈이내리면모이고/연말에화분에심은매화가피면모인다’는것이었다.
노천명에게도이런모임이있었다.당시그녀와친했던여류문인들은최정희(소설가,1906~1990),이선희(소설가,기자1911∼?),모윤숙(시인,1909~1990)등이었다.그들은“비가오면비가온다고서로찾고,눈이오면눈이온다고서로찾았으며,서로찾지못하는때면편지로써마음을서로알렸다”고했다.
특히노천명은소설가최정희와깊은우정을나누었다.한국전쟁1.4후퇴때세간살림하나챙기지못하면서도최정희와주고받은편지는꼭가지고피난갔을정도였다.모윤숙은노천명이사망하기며칠전집으로찾아와자신이외국출장이있으니깐귀국할때까지건강하게있으라고했지만노천명은그약속을지키지못하고먼저저세상으로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