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년 여주 두 번째 이야기

550년 여주 두 번째 이야기

$22.00
Description
세종대왕과 효종이 함께 묻힌 명당의 고장 여주

품질 좋은 쌀과 도자기 그리고 아름다운 강변도시
조선시대 8명의 왕비와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고장
역사의 중심에 여주의 인물과 여주의 진상품이 있었다
우리는 살기 좋은 지역을 말할 때 흔히 “살아서는 여주, 죽어서도 용인”이라는 말한다. 그러나 여주는 땅도 비옥하여 농사도 잘 되며 도자기를 굽는 흙이 좋아 가마터가 많이 있어서 진상 도자기를 많아 만들었다고 한다. 세종대왕의 능을 예종 때 여주의 현재 자리로 옮겼는데, 이 자리가 천하의 대 명당으로 풍수가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대단한 자리이다. 태조의 건원릉, 단종의 장릉과 더불어 3대 명당으로 손꼽히는 자리로, 일설에는 세종 같은 성인을 이러한 명당자리로 모셨기 때문에 조선 왕조의 수명이 최소 100여 년은 연장되었다는 소위 ‘영릉가백년(英陵加百年)’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의 고장이며 정승이나 대신들의 묘도 다수 있다. 또한 명성왕후를 비롯한 조선왕조의 8명의 왕비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김춘석은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경제기획원 예산청 총무과장을 거처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에서 정책상황 실장 등을 역임하고, 고향인 여주에서 민선 군수에 당선되어 재임 중 시로 승격 시키고 초대 시장을 역임했다. 저자는 ‘550년 여주 이야기’를 쓰게 된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5년 전에 『550년 여주 이야기』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는 2012년 경찰서장으로 부임한 분의 요청에 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근무지에 대해 알고 싶다고 여주를 소개한 책자를 군청에서 받아보기를 원하였으나 당시 적당한 책자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2005년 발간한 『여주군사(전 7권, 4,799쪽)』 한 질(帙)을 보내드렸는데 미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여주를 간략히 소개하는 책이 한 권은 있어야겠다는 생각과 이 책이 여주 시민들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길 기대하며 책을 냈었습니다. 그런데 첫 출간한 책은 여흥에서 여주로 지역 명칭이 바뀐 후 550년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여주의 위상이 높았던 조선 시대를 주로 다루었습니다. 이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근현대의 주요 사항이나 인물, 특히 여주시 승격에 도와주신 분들을 추가로 알릴 필요가 있어 두 번째 550년 여주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자

김춘석

서울대학교사회학과를졸업하고서울대학교행정대학원과위스콘신대학교에서행정학석사를받았다.제14회행정고시에합격하고경제기획원법무담당관,장관비서관,교육문화예산담당관,예산청총무과장,기획예산처기획예산담당관등을거쳤다.이후국무총리국무조정실에서연구지원심의관,심사평가1심의관,정책상황실장(1급)등으로근무하였다.공직을마친후한국전자거래진흥원장,건국대학교초빙교수,그리고제36대여주군수와초대여주시장을역임하였다.
지은책으로는『550년여주이야기』『미국한달여행』이있다.

목차

머리말

제1장여주의인문지리
삼국시대부터군사적요충지인여주
4대강사업으로국가예산1조901억원이투입된여주
[참고]4대강사업여주군관련일화
118년만에군에서시로승격한여주
[참고]여주시승격추진주요일지
[참고]여주시승격관련일화
36년만에제생일을찾은여주시민의날
100년만에돌아온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비
[참고]원종대사혜진탑비비신의귀환일화
이인좌의난에가담한역적이많았으나읍호가강등되지않았던여주
감세혜택폐지와세금과징에일어난여주농민항쟁
여주시내를배를타고다녔던1972년대홍수
여주시내가옥1,000여호를불태운1856년대화재
수학여행온49명이익사한조포나루의나룻배침몰사고
승객30명중26명이사망한섬강교버스추락사고

제2장여주관련인물
남북한첫축구대회를열고여주대학교를설립한정동성
대하역사소설이라는새로운문학분야를개척한유주현
퍼펙트골드란용어를탄생시킨올림픽명궁김경욱
대한민국임시정부군무부장을10년간역임한조성환
부인,딸과함께독립운동을한김구의최측근엄항섭
3.1운동독립선언서에서명한민족대표33인의한사람인홍병기
여주3.1운동을시작한조병하와뒤이은독립운동가들
병자호란시김화전투를승리로이끌고전사한홍명구
임진왜란시고래산전투에서순절한열녀청풍김씨
강물에빠진아버지를구하려다함께죽은효자길수익
장희빈때문에폐,서인되었다가복위된인현왕후
안동김씨60년세도정치를연순원왕후
소현세자가왕위에오르지못해공주가되지못한경순군주
실학의선구자로우리나라최초역사지리서를쓴한백겸
왕후의청탁을거절한북벌추진훈련대장이완
당쟁으로아버지부터손자까지4대가죽임을당한김창집
우리나라최초외국인신부주문모를입국시킨윤유일
한국화의대가로월전미술관을세운장우성
헌종앞에서소리를한판소리명창염계달
할아버지,아버지에이어3대가장원급제한민진장
법위반을처벌하면서도정리와의리를지킨민진후
살인강도범이역모죄인으로조작되어처형된강변칠우
5.16군사정변이후정치범으로사형당한임화수

부록1.4대강살리기사업관련자료
필자의조선일보독자투고란기고기사(조선일보2010.6.22.)
4대강사업관련사진

부록2.여주시승격관련신문기사
이범관전국회의원의기고(경인일보,2012.7.17.)
백연택여주시승격특별추진위원회위원장관련기사(중부일보,2012.7.24.)
이인순여주시승격특별추진위원회부위원장기고(여주신문,2012.7.13.)
노성형전육군대학육군종합군수학교교수기고(여주시민신문,2012.6.20.)
임영헌여주군인재육성장학재단이사장기고(경기일보,2012.6.11.)
방광업전경기도시공사경영관리본부장기고(경기일보,2013.9.23.)
정용진전미주한국문인협회회장기고(여주신문,2013.9.9.)
여주시승격신문기사(조선일보,2013.9.23.)
여주시승격신문기사(중부일보,2013.9.23.)

부록3.여주3.1운동관련자료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살기좋은고장,살아서도여주!죽어서도여주!
왕비와명당의고장여주에는‘세종대왕면’이있다

우리는살기좋은지역을말할때흔히“살아서는여주,죽어서도용인”이라는말한다.그러나여주는땅도비옥하여농사도잘되며도자기를굽는흙이좋아가마터가많이있어서진상도자기를많아만들었다고한다.세종대왕의능을예종때여주의현재자리로옮겼는데,이자리가천하의대명당으로풍수가들사이에서는평판이대단한자리이다.태조의 건원릉,단종의장릉과더불어3대명당으로손꼽히는자리로,일설에는세종같은성인을이러한명당자리로모셨기때문에조선왕조의수명이최소100여년은연장되었다는소위‘영릉가백년(英陵加百年)’이라는말까지있을정도의고장이며정승이나대신들의묘도다수있다.또한명성왕후를비롯한조선왕조의8명의왕비가태어난곳이기도하다.

이책의저자김춘석은‘550년여주이야기’를쓰게된배경을이렇게말했다.

우리고장이“여주”라는이름을얻은지553년이지났습니다.1469년(예종1년)세종의영릉을서울대모산에서북성산자락으로이장하기전까지는“여흥”이라불리었습니다.
5년전에『550년여주이야기』책을냈습니다.
이책을출간하게된계기는2012년경찰서장으로부임한분의요청에응할수없었기때문이었습니다.그는근무지에대해알고싶다고여주를소개한책자를군청에서받아보기를원하였으나당시적당한책자가없었습니다.할수없이2005년발간한『여주군사(전7권,4,799쪽)』한질(帙)을보내드렸는데미안하기짝이없었습니다.
여주를간략히소개하는책이한권은있어야겠다는생각과이책이여주시민들의애향심을고취시키길기대하며책을냈었습니다.그런데첫출간한책은여흥에서여주로지역명칭이바뀐후550년을대상으로하다보니여주의위상이높았던조선시대를주로다루었습니다.
이에일제강점기의독립운동가,근현대의주요사항이나인물,특히여주시승격에도와주신분들을추가로알릴필요가있어두번째550년여주이야기를쓰게되었습니다.
이책에실린사진의대부분을제공해준여주시청시민소통담당관실홍보팀이영숙주무관과여주박물관조원기학예연구사께감사의말씀을전해드립니다.
이번에두번째출간한책에여주관련주요사항이나인물인데도게재되지못하였거나수록내용중에도부족한부분이많을것으로생각됩니다.독자분들의많은지도와편달을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