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가슴 절절한 그리움이 위로가 되는 시어들
시인의 슬픔과 고단한 삶을 녹여준 한계령
시인의 슬픔과 고단한 삶을 녹여준 한계령
정덕수 시인의 시집 『한계령』은 한계령의 사계절이 그려지는 45편의 시와 함께 시인의 어린 시절 고단했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열여덟이란 나이에 한계령을 쓰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들이 한 권의 시집이 되었다.
한계령은 양희은의 노래가 되었다. 슬픔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노랫말로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정덕수 시인이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열여섯 살이며 이 시집의 134페이지에 수록된 『한계령에서』가 그의 첫 번째 시라고 한다. 시에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어머니를 그리는 절절함이 배어있다. 그가 한계령으로 가는 길처럼 굽이쳤던 세월이 시집에 오롯이 담겼다. 엄혹한 삶을 살아가던 시인이 한계령에 위로를 청하면 산이 말해주는 것 같다.
저 산은, /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저 산은, /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 잊으라 / 잊어버리라 하고...
저 산은, /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시인은 이 책을 내면서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그저 잡초에 불과한 풀도 꽃을 피운다. 구절초, 쑥부쟁이, 질경이, 졸방제비꽃, 한계령 풀, 구름송이풀 등 모든 들풀마다 고유의 이름을 지녔지만 제대로 모르면 그저 풀이고 잡초가 된다. 들과 산에서 만나는 모든 풀의 이름을 배워 부르며 시로 쓰고, 글로 풀어가며 살고자 했다.
오색(五色)으로 불리는 마을은 이 땅에 단 한 곳뿐이다. 오색나무가 마을에 자라서 오색리로 불렸는데, 이 나무는 키가 작았고 마을에서도 지금은 숙박시설이 들어선 자리를 따라 흐르던 아주 작아 골짜기라 부르기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도랑 가에 있었는데 1970년대 모두 사라졌다. 바로 그 마을에서 난 태어났고 유년기를 보냈다.
고달픔은 외로움을 느끼게 했고, 다시 그리움을 키웠다. 그 고달픔과 외로움, 그리움은 한계령 시의 바탕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듯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그동안 쓴 시들 가운데 한계령을 제목으로 한 시들만 모았다.’
한계령은 양희은의 노래가 되었다. 슬픔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노랫말로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정덕수 시인이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열여섯 살이며 이 시집의 134페이지에 수록된 『한계령에서』가 그의 첫 번째 시라고 한다. 시에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어머니를 그리는 절절함이 배어있다. 그가 한계령으로 가는 길처럼 굽이쳤던 세월이 시집에 오롯이 담겼다. 엄혹한 삶을 살아가던 시인이 한계령에 위로를 청하면 산이 말해주는 것 같다.
저 산은, /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저 산은, /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 잊으라 / 잊어버리라 하고...
저 산은, /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시인은 이 책을 내면서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그저 잡초에 불과한 풀도 꽃을 피운다. 구절초, 쑥부쟁이, 질경이, 졸방제비꽃, 한계령 풀, 구름송이풀 등 모든 들풀마다 고유의 이름을 지녔지만 제대로 모르면 그저 풀이고 잡초가 된다. 들과 산에서 만나는 모든 풀의 이름을 배워 부르며 시로 쓰고, 글로 풀어가며 살고자 했다.
오색(五色)으로 불리는 마을은 이 땅에 단 한 곳뿐이다. 오색나무가 마을에 자라서 오색리로 불렸는데, 이 나무는 키가 작았고 마을에서도 지금은 숙박시설이 들어선 자리를 따라 흐르던 아주 작아 골짜기라 부르기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도랑 가에 있었는데 1970년대 모두 사라졌다. 바로 그 마을에서 난 태어났고 유년기를 보냈다.
고달픔은 외로움을 느끼게 했고, 다시 그리움을 키웠다. 그 고달픔과 외로움, 그리움은 한계령 시의 바탕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듯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그동안 쓴 시들 가운데 한계령을 제목으로 한 시들만 모았다.’
한계령 (열여덟에 쓴 불후의 명곡 한계령)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