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예측불허한생으로인해계속쓰기를”
시인이바람에실어보내는흰종이로의초대장
1부에서저자는시인으로서시란무엇일지자기나름의생각을정리하고,2부에서는<복희도감>등을통해들어온시쓰기에대한여러질문들에답변한다.3부는저자의일상을보여주며자연스럽게삶의행간에서시를길어내는방법을모험가들에게설명하니,『시를쓰고싶으시다고요』는김복희시인이시인으로서시간을보내는모든장면을숨김없이드러내는책이다.
어찌나숨김없는지,저자는독자에게시인의삶이얼마나고독하고지난한지를솔직하게보여준다.다만‘시인김복희는이렇게극복하(려고노력하)고있습니다’라고소소한다독임을함께덧붙인다.쓰는사람이능히갖는읽히고싶다는욕망과읽어줄이없을거라는불안감을말하면서도어딘가에반드시있을‘절대독자’를믿으라는대안을주고,구절하나를쓰기위해무던히노력하지만눈에보이지않아무용해보이는시간들을‘뜬구름채집’이라고명명해주는식이다.평생시를쓸수없는인간인줄알고살아왔지만,어쩌다시인이되어서도어디가서자신의직업을‘시인’이라고쉬밝히지못하지만,언어사이에말줄임표라는쿠션을넣지않고서는메시지를보낼수없지만,아직도제멋대로끝없이추락하는마음을주체할수없지만…인생은예측불허하며,타인과언어로연결되는환상적인순간들로가득차있다는것을알기에.저자는못내반갑게말할수밖에없는것이다.“시를쓰고싶으시다고요?”라고.
모험가님,진실은언제나하나
써야쓰는사람이된다는사실입니다
쓰는행위는하고자하는마음만있다면누구나쉽게시도할수있다.모양을제대로갖추지않은채영수증뒷면에급하게적어내려도좋고,핸드폰메모장에톡톡톡입력해도좋다.그저운을떼면그것이곧쓰기인데,첫발디딤이무척어렵다.그래서누군가나의등을지긋이밀어주기를내심바라게된다.‘그러면된다’라는말한마디면겁먹은발걸음이라도못이기는척앞으로나아갈수있다.그것이저자가이책으로말하고자하는바다.
“나는금붕어를주었는데,독자는개구리를받는”상황,쓴대로읽히지않아도전혀문제가되지않는시를,더많은사람이쓰고읽었으면좋겠다는저자의말처럼좋아하는마음만가지고오면된다.그럼이제무엇이든쓸수있다.새해를시작하며우리앞에놓인이책처럼,함께시작(詩作)해보면된다.
추천사
김복희의산문은반죽을떠올리게한다.자유자재로모양을바꾸면서도언제든부풀어오를준비가되어있는반죽말이다.반죽은쭉쭉늘어나그와함께한의원,광장,학교에가기도하고이야기의행간을야무지게메워주기도한다.책장을덮을때쯤이면글맛으로이루어진빵굽는냄새에기분좋게혼미해질것이다.이책은김복희가글로하는융숭한대접이다.”
―오은(시인)
책속에서
그들은알까.내가당신들이계속쓰고읽기를은근히바란다는사실을.대신나의격려나나의칭찬때문이아니라,순전히당신들예측불허한생으로인해그러기를바란다는사실을.그들이계속쓰기를바란다.오늘쓴것이아주별로일수있고,영마음에안들수도있다.그렇지만2030년이지나도그들이계속쓰고있다면나로서는그들의시를읽고싶어질게분명하다.내가그러했듯이그들도그들의독자를만날수있었으면좋겠다.그리고그게어떤기분인지같이이야기를나누고싶다.‘좋다,신기하다’외의다른이야기를.
―「좋다,신기하다말고」중에서
뭔가를남기려고시를쓰는건아니다.불행한시간이내내고통으로만채워져있지않듯이,행복한시간도내내기쁨으로만채워져있지는않다.속절없이살며,살아낸시간을시로쓸뿐이리라.인생의꽃같이아름다운시절이그쓰는시간에있으리라,나는주장하고싶다.
―「호―시:시를선물하는일에대하여」중에서
‘대접하기’는시를쓰기위한밑작업중하나다.잘만하면그대로시가되기도한다.그시,그음식,훌륭할것이다.물론,천사가음식을엎어버릴수있다.그러면울면서―혹은화내면서―치우는것까지차린사람이알아서다해야한다.거기까지가대접하기로써시를쓴다는의미다.
―「얘들아,무엇을대접할래」중에서
시는혼자쓰는것이지만,사실은혼자서는쓸수없다는것,타인의소원과타인의고통은쓰는사람의것이아니라는것.그것을잊지않았으면했다.나는나만의고통이라고썼는데타인의고통과연결되는경우도잦다.직접적으로든간접적으로든타인의고통에닿는일을피할길이없다.타인의고통을잘다루는방법을가르칠수없어서,나는타인에게고통이있다는사실을가르쳤다.
―「“깨끗한돈을줄게”―채에게」중에서
지금까지내가유일하게제의지로가질수있던빈것은흰종이뿐이었습니다.…집이작고,좁고,오래머무르셨을수록,빈벽이없을확률이높다고생각합니다.하지만흰벽이있든없든괜찮습니다.우리에겐흰종이가있습니다.가세요.등뒤를겁내면서가세요.겁이안난다면,겁내는사람처럼흉내를좀내보면서가세요.호랑이앞으로,절벽앞으로,흰종이앞으로가세요.
―「이리같은이불같은나같은」중에서
나는인간이하는일을찾다가인간이아닌것을찾고,거기서도로인간을찾는다.의식하고보니그런고리속에있었다.…이고리를타고도는일은내가잘하는일이고,좋아하는일이다.너무나자연스럽다.그러나늘바깥으로나가고싶다.나는왜이고리바깥으로나가고싶을까?인간도비인간도아닌종족을발견하고싶다.바깥에아무것도없다는말,바깥따위는없다는말,애초에고리는안팎구분이모호하다는말,그런말바깥으로.
―「고리」중에서
한시간정도더끙끙거린후접어낸것은아름다운금붕어한마리였다.지요가미가제진가를뽐내는,내가봐도잘접은하늘하늘한금붕어!주말에나는그걸조심히들고가친구에게주었다.친구는기뻐하며그걸받았다.“우와,화려한개구리네!귀엽다!”아닌데.나는금붕어를주었는데친구는개구리를받았다.이것역시시같았다.
―「나는금붕어를주었는데너는개구리를받았네」중에서
놀이는‘노릇’과도비슷한것같다.‘사람놀이’에숙달되면어느덧사람노릇이수월해진달까.눈감기놀이를해야혼자잠들수있었고,뜀뛰기놀이를해야팔다리를움직여뛸수있었던어린애를어른들이잘봐준덕에나는이제제법사람처럼보인다.
―「사람놀이」중에서
도대체‘시인’이란뭘까.대화를이어가기애매한이직업,나의생계와낯선이에게서얻을수있는호감도를전혀책임져주지않지만,정신과마음,위엄,내가말하지못하는나의모든고충을책임져주는이직업.과연언제쯤나를전혀모르는낯선이에게나스스로를시인이라고소개할수있을까.
―「신뢰할수없는직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