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한 뼘 배추 두 뼘 (채형복 시집)

무 한 뼘 배추 두 뼘 (채형복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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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무 배추 간격은 얼마면 되나요// 한심한 질문에// 땅에서 나고 자란 농부할머니가 답한다// 무 한 뼘 배추 두 뼘//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짧고 군더더기가 없다

-p. 86, 3부 ‘무 한 뼘 배추 두 뼘’ 중에서

『무 한 뼘 배추 두 뼘』의 저자 채형복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텃밭을 가꾼다. 법학자로서의 전문적인 모습과 달리 농사에 있어서는 무나 배추 심는 법도 모르는 초보이다. 그는 알량한 지식 나부랭이는 흙 속에 파묻어버리고 땀방울로 흠뻑 젖은 땅 위에 고꾸라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죽고 싶다고 말한다.

시인은 흙에서 배운 것을 시로 써냈다. 이웃이 건네는 ‘농사꾼 다 되었다’는 말이 교수가 되었을 때보다, 시인이 되었을 때보다 기쁘고 감격스러워 한다. 절기에 맞춰 씨 뿌리고 거름 주고 김매고 아삭한 열무를 거두며, 그는 이 세상의 수많은 교수와 시인이 실은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직 농부만이 할 수 있는, 땀 흘려 땅 가꾸고 움트는 새 생명을 돌보는 일. 그것이야말로 삶을 알아가는 일이다.
저자

채형복

시인채형복은1963년대구에서태어났다.
2012년시집『늙은아내의마지막기도』를펴내면서문단에나왔다.
시집으로『바람이시의목을베고』를비롯여러권이있으며,현재경북대법학전문대학원교수로재직하고있다.

목차

1부

땅·1/땅·2/농사꾼/땅의주인은누구인가/텃밭농부의자세·1/텃밭농부의자세·2/텃밭농부의자세·3/분재소나무/불두화/낫을갈다/쥐구멍/우물/호미한자루만있으면/부활

2부

모기/지네/지렁이/코스모스/어미개/상추·1/상추·2/바랭이·1/바랭이·2/옥수수·1/옥수수·2/질경이·1/질경이·2/공벌레

3부

미안,미안해/장미에게공간이란/국화가된장미/소국/배설/맛집·1/맛집·2/무한뼘배추두뼘/무의목을베다/호박손/늙은호박/딸기맛에목숨걸다/중노년의부부/들쥐

4부

겨울바람/그해겨울/분서焚書,책을불태우다/아궁이앞에서/옆집개·1/옆집개·2/옆집개·3/장미/사랑으로/엄마/포란/겨울아침에/염원/나무

출판사 서평

지혜로운사람의말은짧고군더더기가없다

무와배추심는간격을묻는초보농사꾼의한심한질문에땅에서나고자란농부할머니가답한다.무한뼘배추두뼘.지혜로운사람의말은짧고군더더기가없는것처럼깨달음은거창한경험에서오지않는다.세상에죄짓지않고조심조심살아갈일만남은이순의나이,관절은자존심으로중무장해쉬이꺾이지않을것만같다.하지만뻣뻣한허리는텃밭의상추와열무앞에달갑게굽혀진다.영겁의세월을기다린파란새싹을맞이하기위해서다.

법학자이면서텃밭을가꾸는채형복시인은『무한뼘배추두뼘』에서농사꾼으로서의정체성을확고히한다.총4부로나뉜56편의시는생과사,동식물과인간모두를아우른다.자연의흐름에누구보다빠르게반응하는농사꾼의시선에시인의감성이더해져새로운통찰이되었다.

나는나의일을할것이니그대는그대의일을하라

허세도,거창한담론도잊어버리고농사꾼으로흙위에선시인은성난파도로출렁대는푸른생명을본다.장엄한희망이가득한텃밭은경배할만하다.여린잎을가진상추를지키기위해바랭이와질경이를뽑지만그들은기죽지않는다.목을잘라도수십수백의씨앗을흩뿌려거친땅속굳센뿌리로내려앉는다.악착스레살아가는것이자신의일이라며담담하게말하는모습이그대로시가되었다.

생명이가득한곳에는늘죽음도함께한다.모두가자신의생존을위해간절히기도하지만목숨을건싸움에서승패는갈릴수밖에없다.시인은마당한구석에나뒹구는토막난쥐의꼬리를보며존재의초라한죽음에가슴아파한다.살아있는생명을뺏는일이쉽게만느껴진다.하지만자연에서의죽음은순환을의미한다.퇴비더미에서도파란싹을틔우는무청은초라해보일지라도거대한자연의순환안에서제몫을다하고있다.아플지언정무의미하지않은죽음은죽어서도되살아나는법을알려준다.

시인은하늘을향해뻗는호박손을보고헛된희망이라비웃지않는다.오히려그손가락을활짝펴비겁한세상의목울대를조아버리라고응원한다.이러한태도는손에착감기는호미한자루가있기때문일지도모른다.농사꾼의상징,땅을일구는호미는불의한권력을찍어내리는낫이되기도한다.나라마저갈아엎을수있는호미를손에쥐고쓴시는결핍을모르는욕망과잉사회를비판한다.

매순간목숨을걸고발버둥치는텃밭의생명을보다가소문난맛집에서야만으로도륙된생명을먹어치우는사람들을보면괴리감이느껴진다.모진추위마저견디고살아남는게질경이의일이고움트는새생명을돌보는게농사꾼의일이라면탐욕으로가득찬복잡한세상에서인간의일은무엇일까.

법학자이자시인인저자는농부의일을배우고서야그전까지아무것도모르고있었다는것을깨달았다.그깨달음을따라시를읽다보면질문에대한자신만의답을찾고욕망의위장을비우는방법을알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