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바다, 한때 (이자규 시집)

아득한 바다, 한때 (이자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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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돌과 나비』 이후 육 년 만의 시집이다. 이자규 시인은 달빛같이 서늘하고 고묘한 사람이다. 차갑고도 신중한 시인에겐 하나에 대한, 시와 삶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이 있다. 이번 시집의 시는 개성과 개인적 상징이 유달리 강하고, 의식의 저변엔 도저한 정신과 “난폭한 언어들”이 있다. 어둠과 밤이 깊이로 시 속에 녹아 있다.
저자

이자규

경남하동군에서출생하여국민학교6학년때열병을앓았으며『타잔』과『검은고양이』를단숨에읽었다.2001년계간시지『시안』가을호에「다림질을하면서」외3편으로등단하여작품활동을시작했따.지금은경산에서시와글씨와그림으함께하고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너의마지막입술

먼지들/달빛정크아트·1/달빛정크아트·2/마스크물고달리는핏자/어둠현상학/달아,아픈달아/너의마지막입술/서술적관능/분홍꽃무늬팬티를널다가/드론시첩/흰개를보냈던기억/무덤은철학가/맛있는말의마구간/야생의분석/일그러진티브이

2부연지찍은황혼이취한노을을안았다

사문진,내어깨에껌이/오디와번데기의계보학적고찰/물구나무/필름을풀다/순록이있는창밖/암괴류스케치/개의비명이들려주는문장/에스프레소/서랍을열때마다번식하는것들/허씨는매일매일/바닥은지렁이뇌를가졌다/아득한바다,한때/개는개가아니다/빈구두와날짜들/다섯징검돌의강물

3부꽃피어라김밥

벚꽃통신/두견이를위한헌사/무아명명법/옵스큐라/보헤미안나비로/무반주행성으로나는/백구의책/방황하는고독/꽃피어라김밥/바늘겨레/들키지않게또보다/너는해파리일까달일까/그와쇼난바닷가를걸었다/붉은원근법/낙엽

4부불굴의그늘이될귀환이므로

벌레잡이제비꽃/찻잔/늙고푸른재봉틀이야기/하모노그래프/이럴땐네가보여/완전한사건/안개지형도/유리벽에세이/술익는소리가내귀를달라했다/나는SOUL이다/새와나/날좀안아줘/바늘구멍풍경으로모는낙타몰기/버펄로에서버펄로윙을/일인용집

발문_달빛,십년후에나읽혀질_김상환

출판사 서평

나는달빛의근육이다
차고서늘한관념이다

이자규의시에는심연처럼어둠이가로놓여있다.유배의섬에갇혀울대제거된짐승,먼지,피투성이의달빛,쓰레기같은하늘등속의이미지가잘말해준다.사찰마당의커다란무쇠종이짐승처럼포효하는소리에는석양조차살이발려나간다.

으슥한뒷골목에서/살해된식욕이/창자를드러낸채/쓰레기같은하늘을바라보고있다//만찬을그리는내일이/가끔씩정체를드러내며/차갑고날카롭게지상을쓸고간다/반짝이는빌딩숲의뒷길을지나다가/피투성이된달빛이형이상으로/함께쓰러진다
-‘달빛정크아트ㆍ1’중에서

그어둠속에달이빛을발한다.서늘한시어는달빛과어우러져시위에싸늘하게내려앉는다.시인은순간의영원과아우라를가진달빛의이미지를편애한다.도심의뒷골목에버려져터진봉지에서새어나온온갖악취와부패의온상은인간의욕망이자동물에가까운야생의본능이다.그살해된식욕위로쓰러지는달빛은죽음처럼밝다.

달빛과정크가만나새롭게생성된세계는『아득한바다,한때』의절정이자유니크한지점이다.정크아트junkart가폐품·쓰레기·잡동사니를뜻하는정크junk와아트art의합성어라면,일상의부산물인폐품을소재로한미술작품으로서일종의폐-예술이다.폐廢와예술은어울리지않아보인다.하지만부서지는파도는위험하고도아름답다.저마다의빛과소리,색과향기,음영을지니며죽은듯살아있는들꽃은또얼마나귀하고아름다운가.

신체를매개로한죽음과생명의시편들도많다.‘장루腸瘻’를“일인용집”으로상상하기도한다.이자규시인만의독창적인언어와문법,사유가잘드러나있다.시인은일말의경계를무화시키며,서로대립적인것들을보다높은차원에서새롭게통합하는능력을발휘한다.종합적이면서도분석적이고,구체적이면서도추상적이다.표현주의시나초현실주의회화를마주하는듯하다.

글씨를삼키고그림자를삼키고입을막았다막다른골목을벗어나려면매우조급해지는날개를기다려야한다잉크덜마른종이성별따지지않는하마단낙타걸음마로기다려야한다/(중략)/캄캄할수록자라나는묘혈,그누구도여기를찾지는못할터,펄프냄새와잉크와기저귀의모래언덕검푸른언어들에누구나두귀를세워야한다
-‘어둠현상학’중에서

시인에게시를쓴다는것은하마단에이르는길이다.그길은사막이고묘혈이며,죽음과생명,하혈과해산이다.그리고무한과신생에대한기다림이며어둠의빛이다.사막과흰눈,서늘한기운과몸속온기의대비는너머와여기의경계로서묘혈의이미지를갖고있다.누구도찾지못하는이자규시인의묘혈은절망이라는희망이자,어둠속에서피어나는꽃이다.

장례식장옆에들어선예식장을보며십년후에나읽힐시를쓰는밤,그견고한시간은이번시집에서더욱빛을발한다.시인은“발칙하고비린내나는진창의살과뼈/내몸을통과한시를쓰고싶었다”라고말한다.그말처럼살아있는쓰레기더미같은시편들은외면하고싶으면서도시야구석에걸려무시할수없다.대조되는이미지로채워진시는강렬한잔상을남긴다.그야말로갈치속젓같은극빈의삶을매콤짭짤하게비비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