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그대이기 때문입니다 (최란주 유고시집)

그대는 그대이기 때문입니다 (최란주 유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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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최란주 시인의 유고시집. 202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남쪽의 집수리」로 등단, 그해 여름 영면한 시인이 생전에 남긴 시 250여 편 중 100편을 가려 실었다. 시인의 짧았던 인생과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다.

시집에서는 삶의 시차와 간극을 좁힐 수도 없고 매양 어긋나기만 하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불화를 읽는 이에게 체감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살이를 적실한 언어로 보여준다. 요란한 시적 장치를 동원하지 않고도 시의 깊이와 무게를 보여준다.
저자

최란주

ㆍ1967년전남구례군산동면출생
ㆍ1992~2020년법원근무
ㆍ2020.1.〈매일신문〉신춘문예시당선
ㆍ2020.7.19.영면

목차

시집을내며

첫째마당.사랑과그리움,다시기다림

내가산을사랑하는까닭은/삶/비오는날의커피/안구건조증/사랑/소낙비가쏟아지는저녁/천년만의데이트신청/속엣말다털어놓고/서있는강물/눈알이아파요/마른눈/소나무편의점/붙들고싶었다/줄장미붉은손바닥/자화상

둘째마당.고향을그리다

오래된원고/노랑꽃별이뜨는마을/밤을줍다/산그늘/막걸리풍경/아버지의초미금焦尾琴/메기/마지막유산/감꽃목걸이/산수유비/어머니가이상하다/오시어요어머니/어머니생각에/여름풍경/탈속

셋째마당.자연을품다

눈/토란잎/낮달/허허로운들녘엔/석불/지리산이야기/바람부는날/구름사다리/뼈대없는창살/숨쉬는무덤/스타카토로잘린손목/손바닥선인장/겨울나무/소나무가키우는집/눈이오는날엔쉽게잠든다

넷째마당.삶,그고단함에대하여

夢筆生花/신문지영토/유채꽃/거리에서/쌀알이내리는저녁/부화하고있는알/갈매기사내/상록수/턱없는그녀/동물보호법/이사/강천산애기단풍/곱사등이/도시와도시인/시를쓰는것

다섯째마당.사투리,유머를넘어관능으로꽃피다

늦겨울/촌닭/장호원복숭아/수락폭포셋째마당/젖꼭지/카페라캄파넬라/오이도조개구이집여자/홀로새우는밤/그는뱀이었다/말복,그응큼한/여명/빗방울랩소디/싱가폴슬링한잔하실래요?/길을끌고가는젊은마라토너/딱문고판크기의조그만사내와살고있다

여섯째마당.살며일하며

남쪽의집수리/책상은주름을양육한다/객관식요일과주관식주말/어느날당신의삶이경매된다면/땡볕법정/네모난겨울/개명/고문장/원안과밖의사람/뫼비우스월요일

일곱째마당.이별,예술로승화하다

옮긴이/장화/붙박이여자/빗살무늬햇살/엔젤피시를꿈꾸다/풀밭사이로/트럭에치인솔새/모르트퐁텐의추억/내몸의연결고리/네트워크/돌안의선율/내죽으면사랑하는이여/온시디움을들어내다/잠자리의눈물/가방을지키다

고故최란주시인의삶과작품세계_정준호

출판사 서평

내기억속에남겨질사람들에게
좀더오래악수를청한다

법정,판례,경매,구속,증거인멸,범죄경력조회…시와는전혀어울릴것같지않은법률용어를거침없이끌어와자신만의언어로시를짓는시인이있다.“완벽한증거들로가득찬네모난형사공판조서속에서각진얼굴들이빠져나오려고아우성”(‘네모난겨울’중에서)거리는소리를듣고,“북상하는꽃소식으로견적서를쓰고/문열려있는기간으로송금을하”(‘남쪽의집수리’중에서)는시인,최란주시인이다.

법원서기보로일했던최란주시인은법원회보를통해감수성넘치는시를발표하며두각을드러내었다.이후로도지속적인작품활동을통해끊임없이변화하고성숙해가는모습을보여주었다.하지만건강악화로매일신문신춘문예에당선된시한편을남기고2020년여름,생을떠나고만다.

시인의동료이자시집을엮은정준호는그런시인의자취를남기기위해시인이생전남긴시를모았다.회보에실렸거나발표된시에미발표유작까지총250여편의시가모였고,그중100편을골라엮었다.주제별로일곱마당으로나눈시는시인의인생전반이담겨공감과지난삶에대한반성을불러일으킨다.

시인은집착으로까지보일정도로지독한사랑을앓는다.때론고향에대한그리움으로,때론가족에대한사랑과회한으로,때론자연에대한티없는애정으로시를써내려간다.그대는그대이기때문에애타게찾는다는시인의순수하고열정적인모습이부럽게느껴질정도다.

첫째마당‘사랑과그리움,다시기다림’에서는애틋한사랑과끝모를그리움,언제까지나이어지는긴기다림이잘표현되어있다.둘째마당‘고향을그리다’에는고향산수유마을과사람들,특히아버지와어머니를그리는정이절절하다.셋째마당‘자연을품다’에서는도시생활과인간사에서잠시벗어나동심으로돌아가여유롭고편안하게자연을노래한다.

시인은특유의예민한감각과시선으로부조리한사회단면도고발한다.넷째마당‘삶,그고단함에대하여’에서는도시인의팍팍한삶을날카로운눈으로여과없이그려낸다.다섯째마당‘사투리,유머를넘어관능으로꽃피다’에서는걸쭉하고구성진사투리에관능미를더해시집전체의분위기를전환시킨다.

여섯째마당‘살며일하며’는자서전적인시,법정의모습을내면에체화한시로구성되었고일곱째마당‘이별,예술로승화하다’는예술적이고낭만적인분위기를풍긴다.교통사고후힘든시기를보내며쓴시와죽음을예감하고이별을곧예술로승화하여다시만남으로잇는시가담겼다.


내죽으면
정결하고맑은물가에나를앉혀다오
너의자태처럼아리따운백로가
가끔물한모금마시다노닐다가는
순하디순한강물곁에나를앉혀다오

(p.167,‘내죽으면사랑하는이여’중에서)

바랐던것처럼시인의무덤은소양강이훤히내려다보이는춘천신북읍산기슭에앉혀졌다.순하디순한강물곁에앉은시인은가장따스한눈빛으로사람들을바라보고있을것이다.최란주시인은끝없는윤회로떠나며시로위로를남겼다.

엮은이는황진이,허난설헌,이옥봉을잇는우리시대시인의애끓듯격정적인시에서삶의위로를받는다고말한다.단지그대이기때문에사랑한다말하는시를통해삶에대한통찰과영감그리고위로까지느껴보길바란다.